지난 2월11일 아침, 경남 진주의 한 동물원에서 키우던 호랑이가 우리를 뛰쳐나갔다가 40분만에 경찰에 의해 사살된 사건이 벌어졌다. 뱅갈산 12년생으로 호순이란 이름을 가진 이 비운의 호랑이는 지난 9일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러나 동물원측이 인공 사육을 위해 하루만에 새끼들을 어미와 분리시키자, 수컷과 심하게 싸우다가 높이 5m의 철조망을 뛰어넘어 탈출했다고 한다.
아쉬운 일이다. 호랑이해를 맞아 정초부터 한바탕 호랑이 이야기로 꽃을 피운 게 언제인데 정작 대보름날엔 총을 쏴 죽이다니. 이 사고는 호랑이가 출산 직후 예민해졌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동물원측의 무지탓에 벌어진 참사다.
여기서 한번 당시 상황을 머리 속으로 재연해보자. 아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직면해 동물원 관계자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이고, 날뛰는 호랑이에게 우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을 것이다. 또 무장경찰을 불러 겁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가 이들의 외침을 알아들었을 턱이 없다. 만약 호랑이가 “우리로 돌아가라. 안돌아가면 쏜다”라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고 우리로 돌아갔다면 ‘민족의 영물’이 총을 맞는 일은 벌어질 까닭이 없다.
많은 학자들과 동물 사육사들은 실제 이같은 일을 막기 위해 동물과 사람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몰해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커스나 동물원의 동물 쇼는 치료와 연구 관찰 등 이른바 ‘사육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시작된 사람과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만들어낸 부산물이기도 하다.
본능에 맞춘 눈높이 교육
전문 사육사들에 따르면 사람이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일(좀더 구체적으로는 ‘길들이기’)이 갓난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말을 알아 들을 수는 없는 노릇. 마찬가지로 사람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동물에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길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단어를 반복해 들으며 자란 어린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말문이 틔듯이, 동물도 그들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 수준에 맞춘 ‘눈높이 학습’을 하면 일정한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사육사들의 경험담이다. 이들은 “훈련을 통해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동물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물론 아무리 훈련이 잘된 동물이라도 사람의 언어를 그 의미와 함께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지능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동물은 사람의 언어를 단지 음성신호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를 테면 말을 흉내낼 수 있는 기관을 가진 구관조나 앵무새는 훈련에 따라 같은 단어를 어느 때는 굵직한 바리톤으로, 또 어느 때는 높은 톤의 소프라노로 재현해낸다. 그러나 이들이 ‘발성하는’ 단어를 이용한다 해도 능동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즉 ‘안녕하세요’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반복한다는 얘기다.
언어를 갖지 못한 동물이 자신의 의사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은 행동이나 소리, 그리고 표정이다. 예를 들어 이전과 다른 몸짓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뭔가 이상이 있다는 표시다. 동물은 닫힌 공간에서도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 내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움직이는데, 만약 어제까지 낮잠을 즐기던 곳에서 소변을 본다면 분명 탈이 났다는 얘기. 또 표정만 해도 발정기의 그것과 아플 때의 표정이 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이상을 보통 사람들이 알아내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아기 아픈 것은 엄마만 알 듯이, 함께 생활을 계속해 온 사육사는 이들의 작은 변화를 읽어내 적절하게 상황에 대처한다.
동물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을 쌓는 일이다. 사람의 5-6살 수준에 달하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 등 영장류는 높은 지능 만큼이나 길들이기 까다롭다. 자신과 관계 없는 주변 환경에 극도의 경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육사들은 훈련 초창기의 한동안은 이들과 같은 우리에서 먹고 자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물의 경계 대상은 비단 사람 뿐만 아니다. 이를테면 볼펜처럼 사람에겐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도구라도 눈에 익지 않으면 동물에겐 두려운 존재다. 동물에게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다. 야생에서 자란 맹수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야생동물은 동물원으로 옮겨와도 우유를 먹여 키운 동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훈련시키기가 힘들다.
친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내미는 손은 동물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손을 사용하는 영장류의 경우 사육사가 물건을 건네줄 때 이를 덥석 받을 정도라야 상당한 친밀도가 형성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에게는 먹이도 처음에는 그냥 다른 곳에 놔주다가 조금 친숙해졌다고 판단되면 손에서 입으로, 다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단계를 거친다.
매보다는 사랑이 더 큰 효과
일단 사람과 함께 지내는 환경에 익숙해지면 목적에 따라 난이도를 차근차근 높이며 집중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놀랍게도 이 때 소용되는 방법은 수신호나 소리 등 단순화된 사인이 전부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외발자전거를 타는 침팬지, 부리를 이용해나무를 타고 숫자를 척척 맞추는 앵무새, 팔을 들어 경례를 붙이는 물개 모두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물개의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조련사는 물개와 장난을 치면서 발을 잡아 머리 부분으로 올리는 동작을 계속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구령과 동작을 일치시키는 훈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련사가 “경례” 구령과 함께 자신의 손을 머리 부분에 올리면 물개도 이 행동을 따라한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이 보여주듯 말과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일정한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각 동물의 특성과 본능을 이해하고,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통용되는 “말 안듣는 아이 다스리는데는 매가 최고”라는 것이 잘못된 신념이듯이, 동물을 교육하는데도 체벌은 오히려 인간과의 거리를 멀게 만들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침팬지, 앵무새, 곰, 물개, 멧돼지, 공작, 홍학, 호랑이, 사자, 매, 애완견 등 다양한 동물들을 훈련시켜온 에버랜드 동물쇼 리더 김준수씨는 “가장 중요한 훈련 도구는 칭찬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서커스에 호랑이와 함께 등장한 조련사가 긴 채찍을 들고 나오는 장면을 본 탓인지 “때려서 가르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휘두르는 채찍은 다음 동작을 알리는 소리 신호일뿐, 절대 매질로 훈련시킬 수는 없다는 것.
그에 따르면 공연 도중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는 물론이고, 또 관객 앞에서 조련사가 절대 야단을 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의 ‘구렁이’인 침팬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처벌은 조련사가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김씨는 무대에서 공연을 잘했으면 품에 안아서, 못했으면 손을 잡고 무대 뒤로 이동하는데,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안아주지 않으면 들어와 떼를 쓰기도 한다는 것.
물론 사육사들이 매를 드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없이 유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성인이 되면 언제라도 ‘맹수’로 돌변할 수 있는 침팬지가 휘두르는 주먹의 강도는 대략 2t에 달한다. 이들이 우리를 발로 차면 철근 용접이 떨어져나갈 정도다. 이런 침팬지가 어떤 이유에서 사육사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물린 부분을 입 안으로 더 밀어넣어 충격을 주고 바로 매를 든다.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면 이후에도 계속 덤비려 하기 때문에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정과 함께 사육사에게 요구되는 또다른 덕목은 자신이 키우는 동물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이해다. 이를 모르고서는 도저히 구사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두마리가 함께 나오는 침팬지 공연은 암컷이면 암컷, 수컷이면 수컷끼리 실시해야 한다. 수놈이 암놈을 보호하려는 이들의 본능을 모르고 암수 한쌍을 같이 넣으면 공연은 엉망이 되고 만다. 또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춰 관람자를 경탄케 하는 홍학춤은 무리 생활을 하며 사람이 손짓하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홍학의 습성을 모르고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다. 여러 마리의 홍학이 앞에 서 있는 조련사의 율동에 따라 그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걷는 장면은 마치 춤을 추는 듯이 보인다.
5월1일부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선보일 81마리의 홍학쇼에서는 이 기본 원리를 이용한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될 예정이다. 일렬종대로 늘어선 채 전후좌우 행진, 하늘로 날기 위한 날갯짓, 수중 발레, 헤쳐 모여 등 10여가지의 묘기가 펼쳐진다.
침팬지에게는 공연이 다 끝난 뒤에 그 보상으로 먹이를 주지만, 돌고래나 물개는 순간순간 먹이를 주는 것도 이들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고려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재롱을 피우는 동물들이 훈련에 돌입하는 시기는 생후 1살 반 정도부터. 각 개체의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이 때에 가장 지능이 발달한 상태를 보이며, 또 이 이후에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 어렵기 때문.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대략 1-3개월 가량 소요되는데,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훈련은 80% 완성됐다고 여긴다.
그러나 초기단계에서 실수하면 그 동물을 길들이는 것은 포기하는 편이 현명하다. 특히 초기 사육과정에서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절대 금물. 동물도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잘 대해준 것은 여러번 반복돼야 기억하지만, 처벌은 단 한번만으로도 깊게 새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앓고 있는 동물에게 주사를 놓을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에버랜드 동물기획팀 수의사 권수원 과장은 “어린 시절 주사를 맞았던 동물들 가운데 일부는 요즘도 나만 보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다닌다”고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 때문에 그는 침팬지쇼가 공연되는 도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늑대 생태를 연구해 개에 응용
훈련을 통해 성과를 보이는 동물을 이야기하면서 개를 빼놓을 수 없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는 흔히 IQ가 20-30, 즉 3-4살된 사람 수준에 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의 영특함은 지능 한가지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감각력은 개와 인간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표 참조).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개는 라브라도 리트리버종. 원래 캐나다에서 수렵이나 해안에서 어망을 회수하는데 투입되던 이 종은 영국인들에 의해 맹인 안내견으로 활동하기 시작, 전세계 안내견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다양한 개의 종류 가운데 전체적인 ‘성능’으로 보자면 셰퍼드를 따를 개는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러나 셰퍼드는 인상이 워낙 강하다는 점이 인도견으로 활용되기에는 결격사유로 작용한다. 라브라도종은 일단 사람을 잘 따르고 얌전하며, 체력도 좋고 외관이 준수해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맹인 안내견에게 요구되는 각종 조건을 이만큼 완벽하게 충족하는 개가 없다는 얘기다.
이들은 생후 7주가 지나면 일반 가정에 분양돼 1년간 사람과 사귀는 법을 배운 후 학교로 돌아와 안내견이 되기 위한 6개월간의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이 훈련을 통해 예비 안내견은 도로에서 주인을 보호하는 것(지적 불복종훈련 : 장애물이나 위험 상황을 인지해 주인의 명령과 상관 없이 안전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훈련) 외에도 대소변 가리기, 짖지 않기, 주위에 관심 안갖기 등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본 내용을 익힌다. 총 60단계로 나눠 이 ‘개의 인간화 과정’은 학교가 가진 일종의 ‘영업 비밀’이자 국제 공인 자격을 갖춘 조련사의 노하우에 속한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모든 훈련은 짧게 자주 하는 것이 철칙이다. 10분 공부를 했다면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식.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다음 시간이 기다려지도록 즐거운 상태에서 끝내야 한다는 점. 다소 어려운 공부가 계속된 날에는 익숙한 놀이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사육사들이 개를 훈련시키면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복종 훈련. 개를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개의 조상인 늑대의 본능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늑대는 명확한 우열관계를 이루며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 늑대가 휘하의 늑대를 통제하는 수단은 음식과 번식(性). 결국 개 훈련장에서는 사육사가 우두머리 늑대를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인명구조견센터 최경훈 과장은 “말 안듣는 개는 몽둥이로 때리는 것보다 두 손을 세워 목을 잡고 세게 잡아 흔드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늑대가 서로 싸움을 할 때 상대방의 목 부위를 노리고 공격하는 것에서 보이듯, 개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위가 바로 목이기 때문. 또 칭찬을 해줄 때는 머리를 쓰다듬기 보다는 소리를 내며 배나 목을 핥아주거나 잘근잘근 씹어주는 것이 훨씬 더 개에 어울리는 칭찬법이 된다는 것. 우두머리 늑대가 배를 보이며 투항한 늑대에게 해주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잠자리는 절대 양보 안한다
개 행동학을 응용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개의 행동은 크게 교정될 수 있다. 침대에 올라와 오줌을 싸놓는 개가 있다고 하자. 십중팔구 주인이 개를 귀여워해 침대에서 한두번 데리고 잔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개에게 주인을 만만하게 보도록 조장한 것이다. 왜냐하면 잠자리는 음식, 교미 대상과 함께 개가 절대 양보 않는 요소이기 때문. 이런 행동을 보이는 개에게는 처벌과 보상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인식시켜야 한다.
훈련의 가장 난코스는 음식이나 음식 냄새의 유혹에 초연해지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인도견으로 선발되기 위해 요구되는 첫째 항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주인의 눈이 돼야 할 개가 주인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면 생명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 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개는 혼자서 음식을 먹으려 하며, 누군가 식사 주변을 얼쩡거리면 으르렁거려 상대방을 위협한다. 이같은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조련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하루 정량(자기 몸무게의 10%)의 사료를 정해진 밥그릇에 준다. 일종의 거식(拒食) 훈련으로, 밥그릇과 사료의 냄새를 기억시킴으로써 조건반사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다. 개가 좋아한다고 고기 등 이것저것을 손으로 주거나 던져주어서는 음식 유혹을 떨칠 수 없다.
음식을 마구 헤집으며 먹는 것도 문제. 이 경우 개를 불러 앉으라고 명령하고 말을 들으면 즉시 음식을 주며 먹으라고 한다. 이때 덥석 달겨들면 ‘얌전히’라는 명령과 함께 감추는 과정을 천천히 먹을 때까지 계속한다. 말을 잘 들으면 역시 칭찬으로 보상한다. 그러나 이 공부는 어린 시절에 해야지 나이가 들면 별 효과가 없다.
개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명령어는 짧고 엄하며 단호하다. 개 역시 사람 단어의 의미를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음정의 변화와 눈치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에, 만약 ‘앉아’라는 명령어가 제시될 상황에서 똑같은 음색으로 ‘누워’라고 명령하면 ‘앉아’ 명령의 효과가 나타난다.
일단 선발된 개는 분양받을 맹인의 행동 특성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4주간 합숙훈련을 마친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물론 분양 이후에도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뒤따른다. 그리고 훈련 단계에서 불합격된 개는 환자 위안견이나 경찰견으로 활용된다. 또한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종견을 제외한 나머지는 암수 구별 없이 불임수술을 실시한다. 맹인 안내견의 보급률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1마리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1억원.
사람 30명보다 낫다
맹인 안내견이 사람에 봉사하기 위해 개의 본능을 철저하게 극소화시킨 경우라면, 구조견이나 마약탐지견 등 또다른 특수 임무를 맡는 개는 타고난 본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극대화하는 훈련을 통해 키워진다.
구조견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알프스에 위치한 세인트버나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눈사태나 산악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활용한 세인트버나드종. 구조견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스위스의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고,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에 맞추어 주로 셰퍼드나 라브라도 리트리버종이 활용된다. 세인트버나드종이 추위에 강하지만 더위엔 맥을 못추고, 또 넓은 알프스에서는 혼자 돌아다니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도 많고 곳곳에 덫의 위협을 가진 우리나라 산에서는 사람과 같이 다녀야 하기 때문.
이들은 산악 뿐 아니라 건물 붕괴같은 재해 현장에서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실종자의 위치를 신속하게 파악해낸다. 이미 서양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조견 1마리의 탐지능력이 구조대원 30여명의 수색능력보다 신속,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돼 있다.
사람이 따라올 수 없는 개의 감각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보다 1만배 이상 발달해 있는 후각. 이들은 사람이 발산하는 미묘한 호르몬 변화를 냄새로 감지해내는데, 이는 생물학적으로 동일인으로 간주되는 일란성 쌍둥이를 개가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교도소 탈주범을 좇는 영화의 장면처럼 개가 물건에 남아 있는 사람 체취를 통해 실종자를 찾는 것은 아니다. 산악사고처럼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실종자의 물건을 집에서 가져와 개에게 기억시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효율이 떨어지며, 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실종됐을 때는 더더욱 효과가 적기 때문. 구조견들은 사고 현장에 투입돼 예민한 후각으로 자신이 평소 맡아온 자연의 냄새와 다른 냄새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실종자를 찾아낸다.
뛰어난 후각을 이용한 탐지견의 활동도 볼만하다. 로키와 바코란 개 두 마리의 마약탐지견은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의 이른바 ‘코카인 골목’이란 지역을 순찰하면서 지난 1988년 한해 동안에만 9백명이 넘는 마약 사범을 잡아들이는 활약을 보였다. 멕시코의 마약 거물들이 이 두 마리 개의 목에 3만달러라는 현상금을 걸어놓았을 정도.
마약이나 폭발물을 찾아내는 개가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후각 외에도 집중력, 반응력, 체력과 함께 명령 복종이라는 5개의 요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마약탐지견 사육 방법은 일정한 특성을 가진 개를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생명은 대단히 짧다. 그러나 이 방법은 동물애호가들로부터 잔인하다는 거센 반발에 부딪혀 요즘들어 새로운 방법이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은 쾌락주의자다. 동물도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비록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를 통해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고등동물인 인간이 동물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수준에 맞추어준다면 양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물을 길들이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굶기기와 때리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