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과학기술원이 현재 미국과 일본만이 상품화한 슈퍼컴퓨터를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고 발표해 과학기술계를 한차례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확인결과 과장발표와 이를 부추긴 언론의 합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기술원김명환교수(전기전자과)는 지난달 7일 "최첨단 슈퍼 컴퓨터기술인 하이퍼큐브(hypercube)방식의 슈퍼컴퓨터를 2년간의 연구결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교수는 단위컴퓨터(노드)를 8개 병렬로 연결해 처리속도가 4메가플롭스(초당 4백만번의 연산)에 달하는 것을 확인했고, 노드를 1백28(${2}^{7}$)개까지 연결시킬 경우 현재 시스템공학센터에 도입된 미국산 '크레이2' 수퍼컴보다 1.3배 가량 빠른 2.6기가플롭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도하 각 일간지들은 김교수의 슈퍼컴개발을 '쾌거' '개가' '자신감' 등의 미사여구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는 '세계 2번째'라고까지 과대포장해 마치 국내기술이 선진국을 앞지른 것처럼 법석을 떨기도 햇다.
그러나 슈퍼컴개발 내용이 자세히 알려지자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개발당사자인 김교수조차도 학자들의 반론에 부딪히자 "슈퍼컴을 구현하는 기술중 하이퍼큐브방식으로 초보적인 하드웨어 실험을 해본 것이지 슈퍼컴퓨터를 완성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나섰다.
실제 교수팀이 개발한 4메가 플롭스급의 하드웨어는 수퍼컴이라기 보다 퍼스컴의 바로 윗단계인 슈퍼마이크로급에 속한다. 김교수는 노드수를 1백28개까지 늘리면 슈퍼컴의 성능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수를 늘리는 만큼 성능이 정비례로 증가할지는 의문이고 1백여개의 노드를 통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직 실용화된 것이 없다.
하이퍼큐브방식의 슈퍼컴은 현재 거의 한계에 부딪쳐있는 슈퍼컴의 처리속도를 무한대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한창이지만 아직 이론에 불과할뿐 상품화된 사례는 없다.
즉 초보적인 병렬처리형 하드웨어는 손쉽게 개발할 수 있으나 △ 대용량데이터베이스 △병렬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 △컴퓨터언어 등 관련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 연구실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 국내에서도 금년초 포항공대 방승양교수팀이 김교수가 개발한 것보다 노드수가 많은 20개의 노드를 연결한 병렬처리 하드웨어를 제작한 바 있어 획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천억원씩을 투입해 미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수퍼컴개발에 나서고 있는데 불과 2억여원으로 그보다 앞선 수퍼컴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무시한 일이라고 지적가기도 한다. 현재 국내 컴퓨터기술 수준은 중형컴퓨터인 슈퍼미니급을 전자통신연구소를 중심으로 4개 재벌기업이 공동참여해 개발하는데 2백50여명의 기술진과 3백35억원이 투입될 정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해프닝이 과학기술계에 성과위주의 과장발표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축적되는 것이므로 인력과 돈의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획기적인 성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 이와 함께 정확한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과장보도를 일삼은 무책임한 언론도 이번 일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