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m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계 천문학계의 추세에 비하면 늦은감이 없지 않으나, 최첨단 관측장비를 갖춘 보현산 1.8m 망원경의 가동으로 한국 천문학계는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천문학계의 숙원, 보현산천문대가 10월(날짜 미정)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단장이 한창이다.
1.8m 망원경을 비롯해 태양플레어망원경, 1m 자동망원경을 갖춘 보현산천문대는 그동안 60㎝ 망원경(소백산천문대)에 머물렀던 우리 천문학의 수준을 '3배' 이상 도약시킬 전망이다.
망원경의 크기만을 따지면 3배지만, 보현산 1.8m 망원경은 분광기, CCD카메라 등 관측기기와 운영체계면에서 최첨단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에 도약의 질에 있어서 어느 정도일지 예상할 수 없다.
포항 영일만이 한눈에
경부고속도로 영천 인터체인지에서 청송쪽으로 30분 정도를 자동차로 달리면 영천군 화북면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금호강 지류를 따라가다 보면 보현산의 위용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다. 보현산은 팔공산과 더불어 경북지방을 대표하는 명산. 두 산의 높이(1천1백24㎞, 1천1백92㎞)도 엇비슷하다. 보현산천문대 이정표(이 곳에는 영문명칭으로 optical observatory, 즉 광학천문대란 뜻이 명시돼 있었음)를 끼고 좌측으로 새로 포장한 가파른 고갯길 9㎞를 오르다 보면 정상에 자리잡은 1.8m 망원경 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망원경의 돔은 대형 천체망원경의 돔으로 익히 보아온 반구형(돔)이 아니다. 컴팩트한 사각형(가로 세로 8m, 높이 7.2m) 모양이다. 그렇지만 천문학계에서는 사각형 돔이라고 부른다. 용어 자체가 변한 것이다. 연구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앙증맞은 태양망원경 돔이 자리잡고 있다. 보현산의 사방은 전망이 확 트여 있다. 특히 동남쪽 사면은 더욱 그러하다. 영일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영천, 대구 방향의 팔공산에 이르기까지 거칠 곳이 없다. 보현산이 천문대 부지로 확정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새 천문대 프로젝트가 확정된 것은 지난 88년. 보현산 덕가산 소백산이 마지막까지 경합하다 기상조건 지리조건 주위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현산이 마지막으로 '간택'됐다. 보현산은 소우(小雨)지역으로 전국 평균관측 일수(보통 1백일)가 10% 정도 많은 곳이다. 이밖에도 평탄한 능선이 이어져 있어 추가로 망원경을 설치할 때 매우 유리한 장소다.
애초에 메인망원경의 지름은 1.5m로 정해져 있었으나 90년 10월 프랑스 텔라스사와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1.8m로 한단계 진전됐다(가격 30억원). 보통 광학망원경을 구분할 때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누는데, 보통 중형은 1.5-4m까지. 이보다 작으면 소형, 크면 대형으로 취급한다. 1.8m는 중형망원경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보현산 천문대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인우부장은 "1.8m 망원경은 첨단연구를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본격적인 연구용망원경으로는 손색이 없다"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본격적인 연구용이라는 의미는 제대로 된 분광관측을 할 수 있다는 뜻. 천체에서 오는 빛의 강도를 측정하는 기본은 측광관측.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여러가지 빛이 섞여져 있어 세세한 천체의 성질을 밝히기가 어렵다. 따라서 빛을 세부 파장별로 나누어 스펙트럼으로 파악하는 분광관측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분광관측을 하려면 빛의 집광력을 높여야 하는데 보통 중형망원경 이상은 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분광관측을 하면 광원의 흡수선과 방출선이 구분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흡수선을 분석하면 천체의 화학적 조성을 알 수 있다. 은하의 형상 등도 파악하기 쉽고, 도플러효과를 이용해 시선속도를 측정하면 초신성 폭발과정 등도 추적할 수 있다. 분광관측이야말로 20세기 천체물리학의 기본인 것이다.
보현산 1.8m 망원경은 분해능이 0.4초로 12㎞ 떨어져 있는 1백원짜리 동전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리치크리티얀형의 주경에 초점비가 다른 두개의 부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시스템이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데 원하는 별의 위치를 입력하면 거의 오차없이 추적한다. 1㎞ 떨어진 물체의 조준 오차가 1㎝ 이하. 관측 중에 목표물이 1/18,000도 이상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자동추적 장치도 달려 있다.
최근에는 여러가지 풍동실험 결과 원형돔보다 컴팩트한(망원경의 크기와 돔의 크기가 거의 비슷함) 사각형 돔이, 관측에 방해가 되는 대기의 요동현상을 더욱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정에 건설중인 8.3m 망원경도 사각형 돔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사각형이 클레인 설치에도 유리하다는 것.
1.8m 망원경의 관측장비로는 디텍터로서 1024×1024의 화소수를 갖는 CCD카메라, 분광기(4억원 상당), 대기의 요동을 극복하고 고분해능 사진을 얻기 위한 스펙클카메라(1초에 30프레임씩 작동) 등이 있다. CCD카메라는 천문대에서 직접 파견한 연구원(천무영)이 제작에 참여해 개발해 냈다.
앙증맞은 태양잡이
1.8m 주망원경 못지않게 보현산천문대를 빛낼 보배는 태양플레어망원경. 지구 생명의 원천인 태양만을 전문적으로 좇는 망원경이다. 이 태양잡이는 망원경 4개(구경 지름 20㎝ 두개, 15㎝ 두개)가 한세트로 작동하여 태양에서 일어나는 4가지의 천문현상(광구의 자기장분포, 태양표면기체의 흐름 속도, 플레어, 밝기분포)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특수망원경이다. 더구나 고가(5억원 상당)의 필터 3개를 장착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첨단망원경이다.
특히 자기장 변화를 3차원으로 관측할 수 있어 MHD(자기유체역학) 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 망원경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태양 표면의 여러 현상을 지속적으로 정밀하게 관측하여 태양 주기 활동의 기본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망원경의 외형은 미끈한 조각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앙증맞다.
이외에도 보현산 천문대에는 별을 관측하다 날씨가 나빠지면 스스로 관측을 중단할 수 있는 1m 자동망원경도 설치할 예정이다. 돔을 여는 것에서부터 별을 추적하고 관측하는 행동을 알아서 하는 전천(全天)탐사용 특수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은 앞으로 변광성의 고정밀 광전관측, 퀘이사의 변광관측, 혜성 및 소행성 관측, 인공위성 관측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물론 여기에도 고분해능의 CCD 카메라가 달려 있으며 고정밀의 광전측광기가 부착돼 있다.
이제 걸음마이긴 하지만
총 예산 1백25억원(도로공사비 74억원 포함)이 든 보현산천문대는 9월20일 현재 주요 관측설비를 1백% 세팅하고 개관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물론 시험관측 및 습기에 약한 전자장비의 보수작업도 한창이다.
한인우 박사는 "1940년대에 이미 5m 망원경을 설치했고 지금은 8m 이상에 도전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 비교해 우리는 이제 겨우 1.8m 망원경에 자족하고 있는 현실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국제 천문학계에 입문한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들이고 있다"며 "1.8m 망원경이 규모면에서는 비록 중소형이지만 여러 부대 시설이 최첨단이기 때문에 활용가치는 매우 높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국내에는 6개 대학에 천문 관련학과가 설치돼 있고 천문 연구인력이 늘어나 망원경 관측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이 수요를 충족할 망원경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 소백산의 24 인치와 일부 대학에 설치돼 있는 몇대의 30인치 망원경으로는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현산천문대의 준공은 천문학 연구의 최소조건을 만족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한 연구원은 "기초과학 투자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춘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문제는 애써 완공한 보현산천문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이 천문대가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보현산천문대는 예산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첨단 망원경을 운영하는데 꼭 필요한 전자 기계쪽 우수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천문학계의 숙원, 보현산천문대는 이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 남들이 모두 20세기 초중반에 마친 것에 비하면 너무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늦었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기초과학이고 보면 이제부터 얼마나 연구성과를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