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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왜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예쁜 유리, 똑똑한 유리

신데렐라는 왜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신데렐라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간 유리 구두를 바라보는 왕자는 가슴이 뛴다. 반짝이는 구두는 신데렐라의 눈부신 미모를 떠올리게 하고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의 연약함은 잡으면 쓰러질 듯 사라지던 그녀의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백옥처럼 깨끗한 투명함은 끝없이 빠져들 것만 같던 신데렐라의 눈망울과 닮은꼴이다.

유리가 투명한 이유는 모든 빛을 투과시키기 때문이다. 물질은 특정한 영역의 빛을 반사해 특정한 색깔을 띤다. 예를 들면 사과는 붉은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붉게 보인다. 정확히는 사과가 반사한 빛이 합쳐져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유리는 빛을 산란시키는 결정이 없는 비정질이라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통과시킨다.

유리는 자외선의 일부를 차단한다. 유리 성분 중에 자외선을 흡수하는 산화제이철(Fe₂O₃)과 이산화티탄(TiO₂)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리에는 이산화규소(SiO2) 70%, 산화나트륨(Na2O) 15%, 산화칼슘(CaO) 10%, 그 외 다른 물질 5%가 섞여 있다. 이런 첨가물 중 어떤 성분을 얼마만큼 더해주느냐에 따라 유리의 성질이 달라지는데, 철(Fe)을 많이 첨가하면 자외선 차단율을 높일 수 있다. 자외선 차단유리는 차량용 유리나 사진기 필터에 이용된다.

성분을 바꾸면 자외선이나 가시광선도 선택적으로 흡수하거나 반사시킬 수 있다. 유리에 산화제이철과 산화코발트(CoO)를 넣으면 파장이 1~3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인 적외선을 흡수하고 구리나 금을 넣으면 이 광물들이 가시광선의 일부를 흡수해 유리를 빨갛게 보이게 한다.

이 밖에 유리는 은을 첨가하면 노랗게 변하고 철을 넣으면 녹색, 코발트를 넣으면 청색, 백금을 넣으면 회색을 띤다.

인류가 처음 사용한 유리는 흑요석이다. 흑요석은 유리질을 포함한 용암이 화산폭발로 흘러나와 갑자기 식으면서 미처 결정을 만들지 못하고 굳은 화산암이다. 예리한 날을 손쉽게 만들 수 있어 석기시대에는 칼이나 화살촉으로 사용했다.

남서울대 환경조형학과 김형종 교수는 “검고 투명한 빛깔이 아름다워 나중에는 장식품으로도 쓰였지만 흑요석 같은 천연 유리에는 다른 광물들이 섞여 있어 요즘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마의 역사가 가이우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Natural History)에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5000년 쯤 처음으로 유리제조법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이집트에서 천연소다를 싣고 돌아오던 페니키아인들이 모래톱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모래와 소다를 섞어 가열하면 맑은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식으면 투명한 덩어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확히 누가, 언제부터 유리를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원전 3500년 쯤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리구슬이 이집트 왕의 무덤에서 발견돼 이보다 훨씬 전부터 유리제품이 제작됐다고 추정할 뿐이다.

유리는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다채로운 색과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 공예 재료로 많이 쓰인다.


깨지기 쉬운 아름다움

신데렐라는 왜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신축성이라곤 조금도 없는 유리 구두를 신고 춤을 출 정도라면 작은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을 것이다.

유리는 단단해서 잘 긁히지 않고 닳지도 않아 오래 신을 수 있지만 잘 깨지는 단점이 있다. 또 깨진 유리는 날카로워 발에 상처가 생기기 십상이다.

유리가 잘 깨지는 이유는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흠들이 많기 때문이다. 금이 간 그릇은 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깨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깨진 유리 모양이 날카롭고 뾰족한 원인도 이 흠들이 불규칙하게 나 있어서다.

유리는 겉으로는 일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고체지만 내부적으로는 원자 배열이 무질서한 액체처럼 불안정한 상태다. 이를 ‘과냉각 액체’라고 한다. 액체인 물은 어는점 0℃에서 고체인 얼음으로 변하는데, 어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여전히 액체로 남아있는 물질이 바로 과냉각 액체다.

요업기술원 임태영 박사는 “고체처럼 보이지만 유리는 결국 액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유리 구두는 깨지기 쉬운 신데렐라의 행복을 암시한다고 주장하는 평론가도 있다.

요즘은 결정질 유리가 만들어져 충격에도 강하고 가열해도 쉽게 깨지지 않는 유리제품이 생산된다. 결정질 유리는 불꽃 없이 전기로 음식을 요리하는 전자 조리기의 열판이나 냄비 같은 주방용 조리기구에 쓰인다.

하지만 가공비용이 비싸고 결정이 빛이 투과하는 것을 방해해 투명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결정을 미세하게 만들수록 유리는 투명해지지만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 이용범위가 제한된다.

요즘 기술로 현대판 신데렐라 유리 구두를 만들면 어떨까. 흐린 날은 투명하지만 맑은 날은 어두운 색으로 변하는 유리 구두를 만들 수 있다. 선글라스에 많이 쓰는 포토크로믹 유리를 사용하면 빛의 양에 따라 구두색이 변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유리는 산화납과 탄산칼륨이 섞인 납유리다. 두꺼워도 투명도가 높고 빛을 산란시켜 아름다운 광택을 띠기 때문에 식기류에 많이 이용한다.
신데렐라는 왜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현대판 유리 구두

휴대전화 액정, PDP 또는 LCD에 쓰이는 디스플레이용 유리는 화학적 방법으로 강도를 높여 얇으면서도 잘 깨지지 않는다.


포토크로믹 유리는 유리 재료에 염화은(AgCl)과 염화제일구리(CuCl)를 섞어 만든다. 이 둘은 태양빛을 받으면 산화?환원 반응을 일으켜 은(Ag) 입자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빛을 흡수해 색깔이 어두워진다.

구두를 신고 버클을 채우는 순간 투명하던 유리 구두 속의 발이 안보이게 할 수도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순간 유리벽이 하얗게 변해 바깥에서 안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경우는 유리 성분 자체에 첨가물을 넣기보다 유리 표면에 텅스텐 산화물을 코팅제로 입힌다. 여기에 전기를 흘려주면 포토크로믹 유리처럼 전자가 이동하는 산화?환원 반응이 일어나 유리 색이 변한다. 유리는 원래 부도체기 때문에 전기가 몸에 통할 염려는 없다.

유리 구두라고 부딪치면 깨질세라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강화유리로 구두를 만들면 발을 구르거나 뒷굽이 보도블럭에 끼었다고 구두에 금이 가지 않는다. 강화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충격에 5배 정도 강하다.

유리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유리 표면에 찬바람을 불어주는 풍랭강화가 그 첫번째로 유리두께가 적어도 3mm 이상 되는 건물의 창이나 수족관 유리, 자동차 앞유리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된다.

뜨거운 유리 표면에 찬 공기를 쐬면 표면은 빨리 식고 내부는 천천히 식는다. 때문에 표면은 식어서 수축한 다음에도 내부는 계속 수축하려고 한다. 그 결과 내부에는 딱딱한 표면을 안쪽으로 잡아 당기는 힘인 인장력이 표면과 나란하게 작용하면서 표면조직의 밀도가 더 조밀해진다.

표면이 조밀해질수록 유리는 더 많은 충격을 흡수하게 돼 잘 깨지지 않는다.

얇은 유리는 화학적 방법으로 강도를 높인다. 유리를 질산칼륨(KNO3)용액에 넣고 온도를 높이면 유리 속의 나트륨 이온(Na+)과 질산염의 칼륨이온(K+)이 맞교환되면서 강도가 높아진다.

나트륨이온이 빠진 자리에 그보다 반지름이 큰 칼륨이온이 들어가면서 유리 표면이 더욱 치밀해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휴대전화의 액정이나 카메라 렌즈처럼 작고 얇지만 잘 깨지지 않는 유리를 만드는데 이용된다.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신을 때만 해도 유리는 귀중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리는 장신구 대신 생활 식기나 건축자재 또는 산업용 특수기능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종류도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유리, LCD나 PDP 같은 디스플레이용 기판유리, 광통신이나 내시경에 활용되는 광섬유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기술을 응용하면 더 아름답고 가벼우면서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유리 구두를 만들 수 있다. 깨지지 않는 유리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는 그만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0102강화유리는 충격을 흡수해 잘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지더라도 날카로운 모서리가 생기지 않고 잘게 부서지기 때문에 안전하다. 이런 강화유리는 수족관(01)이나 건물 외장재(02)에 많이 쓰인다.0102강화유리는 충격을 흡수해 잘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지더라도 날카로운 모서리가 생기지 않고 잘게 부서지기 때문에 안전하다. 이런 강화유리는 수족관(01)이나 건물 외장재(02)에 많이 쓰인다.

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한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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