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부담금 논의가 뜨거워지면서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설탕 다음에는 어떤 식품이 규제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이미 잠재적인 건강 위협요인으로 ‘초가공식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탕처럼 일일이 측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지만,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식품들에 부담금을 매기는 ‘건강세’가 타당한지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식품 건강의 경계를 과학적인 기준에서 물었다.
깊은 밤, 배가 고플 때 우리가 손을 뻗는 곳엔 대개 간편식품들이 놓여있다. 라면, 소시지, 냉동 피자에 햄버거…. 간단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심지어는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데우기만 하면 완성된다. 한입만으로도 조미료의 진한 풍미가 입안에 맴돌 정도로 자극적인 식품들이다.
이런 식품들을 ‘초가공식품’, 영어로는 ‘UPF(Ultra Processed Food)’라고 한다. 이름에도 담겨있듯이 엄청난 공정을 거친 끝에 탄생한 식품이란 뜻이다. 초가공식품(UPF)이란 명칭은 2009년 브라질의 영양보건학자 카를로스 몬테이로 상파울루대 명예교수가 식품 가공 정도를 기준으로 만든 식품분류체계(NOVA)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식품을 비가공식품, 가공식재료, 가공식품, 초가공식품이라는 네 가지 분류로 나눴다. 현재는 세계보건기구(WHO) 등 인류의 식습관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주로 쓰이는 분류로 자리잡았다.
저렴하면서도 편리하고 저장이 용이한 덕에 초가공식품의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나 가쁘게 일상을 버텨내는 현대인에게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선택 중 하나로 자리했다. 2025년 브라질 상파울루대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중국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3.5%에서 10.4%로 3배가량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이 높아졌으며, 한국 또한 1998~2018년 사이 12.9%에서 32.6%로 약 2.5배 솟았다. 예부터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이 50%를 넘은 미국과 영국의 증가율은 미미하지만, 섭취율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 중이다. doi: 10.1016/S0140-6736(25)01565-X
초가공식품을 먹다 보면 이따금 죄책감이 든다. 이런 심려감은 초가공식품 속에 포함돼 맛과 향을 향상시키는 첨가제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가공식품을 대놓고 건강을 해치는 담배나 술과 비교하기엔 다소 미안한 면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초가공식품을 먹어야 하거나, 기호로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테다.
이런 와중 초가공식품을 필두로 국민 건강에 해로운 제품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부과해 소비를 줄이고 보건 재원을 확보하는 정책인 ‘건강세’ 논의가 설탕부담금을 기점으로 더욱 확대하고 있다. 초가공식품은 정말 식탁 위에서 군림하는 악의 축일까. 불안한 소비자들을 위해, 연구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과학적 기준’을 초가공식품에 가져다 잣대질해 봤다.
초가공식품은 음식 아닌 ‘산업 제조물’?
초가공식품은 단순한 가공식품과는 차이를 둔다. e메일 인터뷰로 만난 최윤상 한국식품연구원 가공공정연구단장의 대답은 생각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 그는 초가공식품이 “산업적으로 유래된 물질과 첨가제를 광범위한 산업 공정을 거치며 조합해 만들어진다”며 초가공식품을 하나의 ‘산업 제조물’로 정의했다. 우유나 치즈처럼 약간의 첨가물만 들어가는 가공식품과 달리, 초가공식품은 원래의 식재료 형태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초가공식품의 위해성에 관한 연구는 서구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2023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공중보건정책평가단과 브라질 상파울루대 공중보건대학원 등이 속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영국 조사기관 바이오뱅크의 데이터로 약 19만 7000명의 식습관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여 년의 추적 기간 동안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10% 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전체 암 발생 위험은 2%, 난소암은 19% 증가하는 경향성을 발견했다. 특히 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전체적으로 6%, 난소암과 유방암은 각각 30%, 16% 늘었다. doi: 10.1016/j.eclinm.2023.101840
2023년 노르웨이 베르겐대 임상과학부 연구팀의 메타분석 연구도 초가공식품과 암의 관련성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초가공식품 11개의 연구를 종합한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10% 증가할 때마다 전체 암 발생 위험은 13%, 유방암은 11% 증가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장암은 30%, 췌장암은 49%로 위험성이 가장 높았다. doi: 10.1016/j.clnu.2023.03.018
초가공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암뿐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늘어나면서 비만,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도 함께 점증하고 있다. 최 단장은 “초가공식품은 영양가는 낮으면서도 열량, 나트륨, 포화지방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여기에 보관을 오래 할 수 있도록 넣은 보존제와 첨가물들이 뒤섞이며 여러 질환을 일으킬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초가공식품 규제, 설탕과는 무엇이 다른가
여기까지만 보면 초가공식품의 위해성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정책 입안자들은 신중하다. 이미 유해성이 검증된 담배나 알코올, 비교적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져 여러 대응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당류와는 연구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최 단장은 초가공식품의 정의가 “학계에서도 완전히 합의된 개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WHO를 비롯해 여러 국가가 초가공식품의 정의를 내놨지만, 국가나 연구자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설탕처럼 정량화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과학에서는 이처럼 정의가 갈리면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가공의 정도가 클수록 나쁘다고 해도, 경계를 긋기가 사실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치즈도 가공식품인데 이 모두 규제하는 게 타당한지 판단하기 힘든 것처럼요. 초가공식품이라는 광범한 범주에 일괄적 세금을 부과한다면, 과학적·정책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발생합니다. 설탕부담금은 설탕 함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충분하지만 초가공식품은 아직 그렇지 않거든요.”
초가공식품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3월 9일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만난 신상아 중앙대 식품영양학 교수 또한 “초가공식품의 범위가 너무 다양해서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포인트도 없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소시지 같은 가공육류를 예로 들었다.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가공육류를 1군 발암물질로 정의했지만, 한국은 섭취 수준이 문제 될 정도가 아니”라며 “오히려 어린 연령층의 육류 섭취가 늘어나는 추세라 초가공식품을 당장 규제 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트랜스지방이나 나트륨처럼 구체적인 성분을 기준으로 내린 정책은 가능한데, 초가공식품이라는 광범위한 범주에 일괄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초가공식품 규제를 논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 단장은 “(초가공식품 자체보다는) 당류, 나트륨, 포화지방 같은 특정 성분이나 식품군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보다 과학적인 접근”이라고 제언했다. 한국인 건강에 실제로 위협이 되는 특정 성분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식품분류체계(NOVA)에 따른 식품의 가공 정도 4단계
냉동, 분쇄, 건조, 저온살균, 진공 포장 등 선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작업만 거친 식품.

식품에서 얻거나 추출한 성분. 선도 유지를 위해 첨가물이 포함될 수도 있음.

일반적으로 2~3가지 성분이 함유된 식품. 소금, 설탕 등 2군 물질을 첨가한 단순 가공식품.

인공색소, 방부제, 인공 감미료, 유화제 등 화학적 첨가물이 함유된 고도로 가공된 식품.

규제의 그림자, ‘식품 여론’이 남긴 교훈
결국 고민해야 할 질문은 좁혀진다. 우리가 식품을 정말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다. 과거 인류가 식품에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1970년대의 사카린이 대표 사례다. 1970년대 초, 동물 실험에서 대체당인 사카린이 쥐의 방광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후 미국에선 사카린이 함유된 음식에는 “이 제품은 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필히 붙어야 하는 행정명령이 시행됐다. 그리고 2000년까지, 23년을 이 경고는 계속됐다. 한국에서도 1973년부터 거의 모든 제품으로 사카린 제한 범위를 확대해 갔다.
하지만 이후 연구들이 밝혀낸 사실은 달랐다. 쥐의 방광에는 사카린과 특정 물질이 결합해 미세 결정체를 형성하는데 인간의 몸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2001년 FDA와 캘리포니아주는 사카린을 안전한 식품으로 재평가했다. 30년간 축적된 100개 이상의 인간 역학 연구도 사카린과 암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보여줬다. 미국은 연구가 나온 이후 모든 제한을 철회했다.
특정 식품을 향한 ‘공포 여론’은 늘 존재해 왔다. 이들 중 대부분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음이 드러났고, 모두 무해하다고 결론 났다. 그럼에도 사카린이나 MSG(글루탐산나트륨) 논란처럼 공포 여론의 영향은 아직도 잔존한다. 그만큼 식품은 다른 제품보다 인식에 아주 민감하고 한번 씌운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사례들이 던지는 질문은 현재 도마 위에 오른 초가공식품에도 여운을 남긴다. 초가공식품에 섣불리 강한 규제나 프레임을 씌우다가 이런 오판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6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이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부원장도 신중을 강조했다. 그는 “증거가 충분하면 규제는 합당하지만 증거가 부족한 영역에서는 공중 여론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가공식품은 여전히 식탁 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저소득층이나 저개발 국가, 특정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경우도 함께한다. 지금은 과학이 초가공식품의 위해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책을 지정하기에 앞서 현재 연구와 과학적 검토가 충분한지, 다시 평가될 가능성은 없는지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의견을 전했다.
주요국의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 추이(총열량 대비)
제2의 ‘사카린 오해’ 막으려면
건강세는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당할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요구된다. 최 단장은 “건강한 선택을 쉽게 만들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규제보다는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교육, 그리고 산업의 제품 개발(저당, 저나트륨 제품 개발)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의 양선희 전문위원은 3월 4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부담금을 정책으로 여러 개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입을 열었다. “부담금 정책을 시행한다면 우선 설탕부담금을 안정화하는 데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나트륨 같은 다른 성분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도 충분한 거죠. 초가공식품 규제는 설탕부담금이 성공적으로 정착된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입으로 또 한 번 물오른 건강세 논란. 그 첫 단추는 설탕부담금이다. 설탕부담금이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논란 없이 정착된다면,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식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최 단장은 “정책적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선 영양 성분, 섭취량, 식생활 패턴, 건강 영향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카린에 덧씌워졌던 오해를 막기 위해선, 먼저 설탕부담금으로 우리 음식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지켜보고 다음을 논의해도 늦지 않음을 과학은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