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CERN의 미래 가속기, FCC 지을까, 말까

◇읽으면 천재

 

우리가 천체망원경으로 보는 하늘은 빛이 탄생한 이후의 우주다. 빛이 탄생하기 전의 우주는 무엇으로 이뤄졌을까? 물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0년간 고에너지 가속기를 건설했고, 여기서 빛이 생기기 전의 우주를 재현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가속기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둘레 27km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다. LHC는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 입자를 발견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CERN이 둘레 100km에 이르는 초대형 가속기인 미래원형충돌기(FCC·Future Circular Collider) 건설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가속기는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 또 가속기로 우주의 비밀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까.

 

4층 건물 크기 검출기로 ‘신의 입자’ 발견


필자가 처음 CERN을 찾은 건 2000년 대학원생이었을 때다. 당시 CERN은 ‘미래 가속기’로 불리던 LHC 구축에 한창이었다. 원형으로 설계된 LHC에는 입자(양성자)가 충돌하는 4개 지점에 검출기가 하나씩 총 4개가 설치됐는데, 그중 필자의 목적지는 CMS(Compact Muon Solenoid)였다. CMS는 이름처럼 양성자 충돌로 생성되는 뮤온, 광자, 전자 등의 입자를 검출한다. 


CERN은 제네바 근처 스위스와 프랑스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제네바 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CERN에 들어서면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엔리코 페르미, 막스 플랑크, 마리 퀴리처럼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이름을 딴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름을 확인하며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인 실험 시설에 도착한다.  


CMS는 길이 21m, 높이 15m로 4층 건물 정도 크기의 대형 검출기다. 주변에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어 외형만 보면 첨단 시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유럽의 작은 시골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지하로 내려가면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LHC를 이루는 가속관은 지하 100m 내외에 묻혀 있다. 가장 깊은 곳은 지하 175m다. 당시에는 검출기도 들어서기 전이어서 검출기를 세울 수 있도록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있었고, 구멍을 통해 지하에서 바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신비로워서 마치 SF에 나올법한 비밀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것 같았다. 


CERN은 2008년 LHC를 처음 가동했고, 2009년 처음으로 양성자 충돌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2년 마침내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검출기가 CMS와 아틀라스(ATLAS)다.

 

시속 150km 고속열차 충돌 에너지로 빅뱅 재현


LHC의 둘레는 왜 27km로 설계됐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드브로이가 1924년 쓴 두 페이지짜리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전자(입자)의 파동성을 처음 주장했는데, 이를 기술한 식이 논문에 등장하는 ‘λ=h/p’다. 모든 입자가 플랑크 상수(h)를 입자의 운동량(p)으로 나눈 값은 파장(λ)의 특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는 이중성은 지금은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드브로이의 주장(이를 ‘물질파’라고 부른다)은 획기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 연구로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박사학위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드브로이의 식에 따르면 아주 작은 입자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파장이 작아야 한다. 전자의 운동량을 크게 만들면 파장이 작아져서 아주 작은 입자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9년 CERN의 설립을 제안했고, 중립국인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의 알프스 자락에 CERN 건설이 시작됐다. 


그리고 CERN에 설치된 LHC는 드브로이의 공식에 따라 둘레 27km의 거대한 원형 가속관을 따라 양성자들이 빛에 가까운 속도로 돌다가 충돌해 우주 초기에 만들어진 입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LHC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입자는 양성자가 아니다. 양성자 빔의 에너지가 충분히 크면 양성자가 업(위) 쿼크 2개와 다운(아래) 쿼크 1개가 글루온이라는 입자로 강력하게 묶인 구조(강한 상호작용)임을 볼 수 있다. 그 안을 좀 더 큰 에너지로 들여다보면 쿼크와 글루온들이 수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실제로 LHC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양성자끼리가 아니라 쿼크와 쿼크, 혹은 글루온들 사이에 일어난다.

 
현재 LHC의 양성자 빔 충돌에너지는 13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eV)다. 먼저 1eV(전자볼트)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면, 1eV는 1.6021764634×10-19J(줄)로 환산할 수 있다. 즉 13TeV는 약 2.08×10-6J 정도다. 


1TeV는 모기 한 마리가 날아갈 때의 운동에너지와 비슷해 어쩌면 일상에서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에너지이다. 하지만 양성자 한 개가 이 에너지를 갖고 있고, 이런 양성자들이 모인 다발 하나에는 1000억 개가 넘는 양성자가 있으며, 양성자 빔 하나는 2808개의 다발로 이뤄져 있다. 
이는 0.6GJ(기가줄·1GJ은 10억J)과 같고, 400t(톤) 정도 되는 KTX-산천 기차가 시속 150km로 달릴 때의 충돌 에너지와 맞먹는다. 이 정도로 큰 에너지가 양성자 수준의 아주 작은 입자 안에 있다고 가정하면, 이들이 충돌할 때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의 초기 상태를 재현할 만큼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필자는 LHC에서 CMS 실험의 국제공동연구팀에 참여했고, 기본입자 중에서 가장 무거운 톱(꼭대기) 쿼크의 성질을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 또 이를 통해 표준모형(Standard Model)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힉스와 톱 쿼크 사이의 상호작용을 측정하는 데도 참여했다.

 


둘레 100km, 크기는 4배 에너지는 7배 강력


현재 CERN은 ‘포스트 LHC’로 최대둘레 100km의 초대형 가속기 FCC를 검토 중이다. FCC는 LHC보다 둘레가 4배 가량 길고 충돌 에너지가 약 7배 강력하다. 최대 4.2GJ로 100TeV의 충돌 에너지를 낸다. 건설 비용만 210억 유로(약 28조7600억 원)가 투입된다. 계획대로라면 2040년쯤 공사를 시작해 2050년경 충돌 실험을 할 수 있다. 


FCC 건설 계획은 2019년 1월 CERN의 ‘FCC 개념설계보고서’에서 처음 공개됐다. 그리고 올해 6월 19일 CERN은 유럽 입자물리의 미래를 이끌 전략으로 FCC 건설을 검토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CERN이 FCC와 같은 초대형 가속기를 건설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의 성질을 더욱 정확하게 탐색하기 위해서다. 


LHC에서 양성자를 충돌시키면 사실상 쿼크와 글루온들이 충돌하는 것이어서 이들이 양자역학적 확률 분포에 따라 에너지를 나눠 갖고, 이에 따라 힉스 입자의 성질을 측정하는 실험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만약 양성자 대신 전자를 충돌시킨다면 전자는 내부 구조가 없는 기본입자여서 정확한 충돌 에너지를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힉스 입자의 성질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FCC를 이용해서 더 큰 에너지로 전자를 충돌시키고 이를 통해 힉스를 대량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새로운 입자 발견이다. 이 경우 FCC를 새로 건설하는 대신 현재 가동 중인 LHC의 에너지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자기장을 16T(테슬라)까지 끌어올리면 양성자의 충돌 에너지를 27TeV까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LHC의 자기장을 16T까지 끌어올리기가 당장은 어렵다. 그래서 FCC를 건설해 16T의 자기장을 걸어 충돌에너지를 100TeV까지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CERN의 FCC 건설 계획을 멈추고, 인류에게 시급한 기후 변화 연구나 전염병 예방을 위한 연구 등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물론 새로운 가속기로 알아낼 물리현상이 당면한 인류의 과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제임스 클라스 맥스웰이 1864년 전자기파(전기)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을 때를 떠올려 보자. 당시 아무도 그 가치와 유용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FCC와 같이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는 정당한 논의를 거쳐 꾸준히 진행해 가야할 것이다.  

 
필자에게는 여전히 가속기 실험을 통해 알아내고 싶은 우주의 비밀이 많다. 우주와 만물의 근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 중에서 초대칭 이론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이론이 맞는지, 그도 아니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물리현상이 등장할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그래서 FCC 건설 계획이 발표된 것만으로도 아무도 걷지 않는 산속을 걸을 때처럼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항공·우주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