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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프로그램 '이야기' 제작자 큰사람

"멀티미디어 통신 우리에게 맡겨라"

작년 3월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로 자리를 옮긴 통신에뮬레이터 '이야기'제작자 '큰사람'은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야기 6.1 발표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던 이들은 최근 이야기 7.0의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이름 만큼이나 큰 야망을 가진 '큰사람'을 만나본다.
 

'큰사람'대표 황태욱씨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를 켜고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디렉토리를 살펴보라.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우리 프로그래머가 만든 '신토불이 프로그램'은 과연 몇개나 있는가. 불행히도 그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다른 사람과 달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또 비록 국산 소프트웨어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가진 인물이라 해도 한글과 컴퓨터사의 워드프로세서 '한글'과 하늘소가 만든 통신 프로그램 '이야기' 정도의 국산은 갖추고 있을 것이다.

이들 두 프로그램은 국내에 컴퓨터가 확산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즉 대학에 다니던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진 두 프로그램의 개발자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만들면서 한 곳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말아먹기' 일보 직전으로 덩치를 키웠고, 한 곳은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내실을 다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볼 대상은 두 회사중 비교적 덜 소문난 곳, 토종 통신 에뮬레이터 '이야기'의 개발자 '큰사람'이다. PC통신 서비스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마당에, 이야기 6.1이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큰사람이 뭘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가 운위되는 요즘 이들은 앞으로의 통신세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이야기 7.0에 거는 기대

경북대 전자공학과 87학번 동기인 황태욱 이영상 이종우, 이 세사람은 지난 92년 대구에서 '큰사람'이란 회사를 차린 뒤 작년 3월 '모든 것이 몰려 있는'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무료로 보급하던 이야기 다섯째 마당(5.X)까지와는 달리 프로그램 개발이 동아리의 취미활동 수준에서 '밥벌이'로 발전(?)되면서 큰사람 팀은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내내 프로그램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리하여 통신 에뮬레이터 이외에도 미디용 음악 프로그램인 'IMPLAY', 그래픽프로그램인 '하늘그리기', 프로그램 전문가용 편집기인 '바다', 통합 자료관리프로그램인 '한국인' 등으로 진용을 갖추기에 이른다.

이들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작년 1년 동안 올린 성장률은 약 1천%. 이에 따라 올 한해 예상수익 30억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1천%의 성장에 대해 큰사람 측은 "워낙 기본을 작게 잡고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20명의 인원을 가진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이 정도의 성장률은 가히 경이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큰 몫은 저희 주력 상품인 '이야기 6.1'을 기업체에 묶음(번들)으로 판매한 것입니다. 소량이긴 해도 외국에 수출한 것이 조금 되긴 하는데, 대개는 미국이나 호주에 사시는 교포들이 주문한 것이죠. 저희 제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기 때문에 큰 이익을 남기지는 못하지만, 다른 회사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진 않습니다. 향후 2년간 이 정도 성장 추세가 계속된다면 종합 소프트웨어회사로 성장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이들의 판매 방식은 독특하다. 단순히 프로그램 디스켓만을 판매하지 않고 자회사인 컴퓨터 전문 출판사 '하늘소'에서 제작한 책에 디스켓을 끼워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중으로 비용이 지출되니 수익면에서는 박할 수밖에 없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싼 값에 제공해 저변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 방식을 고집할 생각이다.

한편 큰사람은 지난 5윌 27일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이야기 6.1의 기능을 대폭 강화한 이야기 7.0 시험판을 발표했다. 대개의 발표회가 호텔처럼 요란스런 장소에서 일부 관계자 중심으로 열리던 것과는 달리 이들의 발표회는 대형서점인 영풍문고 지하 2층 이벤트홀에서 '저자와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외형보다는 내실을 닦는다는 이들의 일관된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

이야기 7.0은 오는 6윌 열리는 소프트웨어 전시회(SEK 95)에서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인데, 버전의 숫자가 6에서 7로 옮겨진 만큼 획기적인 기능상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스용과 원도우용 두가지가 동시에 개발되고 있으며, 윈도우판에서는 한글윈도우이든 영문윈도우이든 환경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체 내장 한글을 지원한다.

7.0의 핵심 기능은 향후 예상되는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효과적인 지원으로 모아지고 있다. 화상이나 사진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압축기술을 이용해 음성 통신까지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사무실 환경을 위한 팩스 전송기능을 비롯해 집에서도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자신의 컴퓨터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원격제어 기능, 통신중 게임을 즐기는 등의 안정적인 동시작업 기능을 GUI 환경에서 지원함으로써 또다른 차원의 범용 에뮬레이터의 모습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발표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멀티미디어는 CD롬이나 비디오CD가 아니라 통신이 그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통신 방법도 다양해질 것이고, 더욱 편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발표하는 7.0은 이처럼 변화가 심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사용자들의 요구가 최대한 충족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앞줄 왼쪽부터 황태욱 대표,이종우 연구개발실장, 이영상 상무,뒷줄에 있는 이들은 이 곳의 프로그래머들이다.
 

사용자가 쓰기 편한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속성상 한번 손에 익은 프로그램을 버리고 다른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험'에 속한다. 새 프로그램을 사는데 드는 비용은 둘째 치고라도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단축키 조작법 등을 일일이 새로 버릇 들여야 하는 번거로움도 그렇거니와, 주변 사람과 자료를 교환하려 할 때 발생하는 '호환성' 문제도 감히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중 하나다.

이 때문에 시장을 주도할 만큼의 사용자를 움켜쥔 소프트웨어는 그 영향력으로 인해 종종 공과(功過) 시비에 휘말린다. 이를 테면 국내 컴퓨터 사용환경을 도스에 잡혀 있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한글'이 그렇고, '이야기'역시 마찬가지다.

혹자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통신 저변의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공은 인정하는 한편, 범용 에뮬레이터가 가진 한계 - 이를 테면 호스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이 에뮬레이터에 의해 제한되는 등의 - 에 사용자들이 안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더이상 그 효용성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큰사람'측도 할 말이 있다. 통신의 최대 과제는 바로 표준과 호환성의 확보인데, 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각자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그 불편함은 바로 사용자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라도 전용 에뮬레이터와 별개로 범용 에뮬레이터의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마당(버전)을 발표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또 다시 어디에선가 되풀이한다는 것은 중복투자에 의한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 큰사람의 입장이다.

기업체 내부에서 사용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에도 새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보다는 자체 개발한 프로토콜(Kmodem)을 무료로 지원하고 '이야기'를 단체로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사용상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결국 '큰사람'의 개발력, 혹은 '이야기'의 우수성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큰사람은 앞의 지적과 같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자체의 기술력만으로 dll 기술을 개발해냈음을 상기시킨다. dll이란 dynamic link libraries, 즉 두 프로그램에 의해 공유되는 데이터를 연결하는 동적 연결 프로그램의 집합. 큰사람은 새로운 dll을 만들어 제공하면 사용자가 자신의 시스템에 추가할 때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리 것에 대한 고집

통신 에뮬레이터 '이야기'가 우리나라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단지 이 프로그램이 안정성을 바탕으로 국내 통신 프로그램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거나, 이로 인해 통신 인구가 늘어났다는 현상보다 더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다. '큰사람'은 출발점인 학교에서부터 지금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게 '우리 것'을 지키려 해왔다.

프로그램을 풀그림, 마우스를 다람쥐라 부르는 등 외국어 투성이인 컴퓨터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은 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는 일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PC 통신의 포럼 메뉴에는 컴퓨터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방을 설치해놓고 있기도 하다. 또한 7.0을 비롯해 이후 발표되는 모든 프로그램의 첫마디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도록 할 작정이다.

이들의 이같은 우리 것 찾기는 '젊은이들의 한때 치기(稚氣)'는 아니다. '큰사람'은 지난 92년의 정보문화대상 수상만큼이나 그 이듬해 한글날 한글학회가 준 표창장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비록 외국에서 먼저 만든 기계(컴퓨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해도 혼마저 외국의 것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큰사람의 '소박한' 민족적 자존심인 것이다.

큰사람은 단지 에뮬레이터 전문 개발사에 안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운영체계를 비롯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우리 것의 개발은 큰사람이 생각하는 궁극의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당신들의 현재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들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정답을 말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우리의 경쟁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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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종승 기자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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