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청객, 황사가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황사가 극심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보도가 있어서인지 요즘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주문이 밀려 반달 가량 기다려야 할 정도다. 덕분에 주식시장에서는 공기청정기 관련 업계가 덩달아 뜨는 추세다.
황사의 영향이 아니라도 최근에는 실내 공기의 질을 높이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현대인이 실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 평균 20시간이 넘는다. 그러나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공기가 오염된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청정기는 가정의 필수품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막상 공기청정기를 구매하려고 하면 다양한 광고 속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망설여진다. 실제로 공기청정기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연 오염된 공기를 얼마나 잘 걸러줄 수 있을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공기청정기의 허와 실을 따져보자.
음이온 공기청정기라고 다 전기식 아니다
소비자가 구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어떤 공기청정기를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다. 음이온 공기청정기, 헤파필터 채용 공기청정기, 플라스마 공기청정기 등 방식이 다양하다. 또한 내부가 어떤지에 따라서 가격차도 크다.
공기청정기는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 공기 중의 먼지 입자를 걸러주는 방식에 따라 여과집진식과 전기집진식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이 두가지 방식이 현재로서는 가장 대표적이다.
여과집진식은 섬유 필터를 이용해 먼지 입자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여과집진식의 공기청정기는 일반적으로 몇개의 필터를 사용한다. 공기청정기로 유입되는 공기는 가장 먼저 큰 먼지를 걸러주는 프리필터를 지난다. 그런 다음 전체 먼지의 60-90%를 걸러내는 중간필터를 통과하고, 반도체 공정에 사용돼온 헤파필터에서 미세한 먼지까지 걸러진다. 헤파필터는 2차 세계대전 때 방사능 낙진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여과집진식 공기청정기마다 이 모든 필터가 다 쓰이는 것은 아니다. 헤파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는 가격이 50만원대가 보통이고 1백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여과집진식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기 때문에 유지비용이 따로 드는 단점이 있다. 제때 필터를 교체해주지 않으면 공기청정기가 오히려 공기를 더럽히는 원인이 된다.
전기집진식은 여과집진식처럼 처음 유입된 공기는 프리필터를 지난다. 이를 통과한 먼지 입자들은 코로나 방전을 통해 발생하는 양이온이나 음이온과 결합하면서 전기를 띠게 된다. 코로나 방전은 두 전극 사이에 높은 전압을 걸어주면 공기 중으로 전기가 흐르는 현상이다. 이때 두 전극 중 어느 한쪽이 뾰족한 침이나 전선으로 돼 있는데 이 극이 양극이냐 음극이냐에 따라 각각 양이온 또는 음이온을 발생시킨다.
코로나 방전에 의해 전기를 띠게 된 먼지 입자는 양극과 음극이 번갈아서 나타나는 집진판을 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먼지 입자가 음이온을 띨 경우 반대인 양극에 가서 모이게 된다.
전기집진식은 가격대가 여과집진식보다 싸고 유지비가 따로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내부를 주기적으로 청소해주면 따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과집진식과 마찬가지로 제때 청소해주지 않으면 공기 오염의 원인이 된다.
유행어가 될 정도로 많이 알려진 음이온 공기청정기는 코로나 방전을 이용해 음이온을 방출하는 경우다. 물론 음이온 공기청정기라고 해서 모두 전기집진식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음이온이 숲속이나 폭포수와 같은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광고를 위해 여과집진식에 음이온 방출기만 붙여서 음이온 공기청정기라고 하는 제품도 있다.
공기청정기의 집진성능은 99.97%?
공기청정기를 구입할 때 ‘집진성능이 99.97%’라는 광고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공기청정기에 100%의 먼지가 들어가면 0.03%만이 통과돼 나온다는 말이다. 99%도 아니라 99.97%라니 공기청정기가 먼지를 꽤 잘 걸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연 이 생각은 맞는 것일까. 많은 소비자들은 단지 99.97이라는 숫자에만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공기청정기의 집진성능을 평가하는 현재의 기준은 질량이다. 즉 효율이 99.97%라는 것은 1백g의 먼지 중 0.03g이 공기청정기를 통과한다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공기청정기의 성능이 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싼 먼지 입자는 평균 지름이 수십nm(1nm=${10}^{-9}$m)-수십μm(1μm=${10}^{-6}$m)까지 크기가 무척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잠시 공기 중에 지름이 0.1μm인 먼지와 지름이 10μm인 먼지가 섞여있다고 가정하자. 10μm의 먼지입자는 0.1μm 먼지입자보다 지름이 1백배 크다. 부피는 지름의 세제곱이므로 1백만배 차이가 난다. 따라서 질량은 1백만배나 크다. 10μm 먼지입자 하나는 0.1μm 먼지입자 1백만개와 질량이 같은 것이다. 이 경우 질량 0.03%만이 통과한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공기청정기가 큰 먼지들을 걸러내면 집진효율은 쉽게 99%를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당수의 미세먼지는 그대로 통과할 수 있다.
미세먼지는 인간이 활동함으로써 발생한다. 불을 지필 때나 자동차가 운행될 때 배출되는 먼지가 바로 그렇다. 때문에 서울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하다.
문제는 미세먼지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거대먼지는 주로 코와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가지 않고 걸러진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기관지, 폐로 들어가 각종 호흡기 질환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 암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1982-1989년까지 조사결과 대기오염이 최악인 지역주민의 사망률이 최저지역의 주민 사망률보다 15%나 높았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공기청정기의 성능 평가 기준을 입자 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가 공기청정기가 어느 정도의 먼지까지 걸러주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현재 판매중인 공기청정기의 광고에서 입자 수를 강조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헤파필터를 채용한 제품은 0.3μm 크기의 먼지입자 제거효율이 99.97%라고 강조한다. 즉 0.3μm 먼지입자 1만개가 헤파필터를 통과하면 3개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헤파필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울파필터는 0.12-0.17μm의 먼지에 대해 99.9995%의 제거효율을 가진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공기청정기에서는 아직까지 울파필터가 쓰이지 않고 있다.
작은 입자일수록 잘 걸러지지 않는다?
공기청정기는 여과집진식이든 전기집진식이든 큰 먼지일수록 걸러내기 쉽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기청정기를 통과한 후의 먼지입자들을 조사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먼지 입자의 크기와 제거효율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곡선은 마치 흙을 파낸 구덩이와 비슷한 모양이다(그림 5). 즉 어느 입자 크기를 기준으로 그보다 작거나 클수록 제거효율이 높아진다. 필터나 전기집진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공기청정기는 0.3μm 크기에서 이같은 제거효율 특성을 보인다. 즉 0.3μm 전후로 한 0.1-0.5μm 크기의 먼지입자들이 가장 잘 걸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여과집진식의 경우 0.3μm를 기준으로 입자의 운동이 다른 법칙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질량이 클수록 물질은 운동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이 커진다. 0.3μm보다 큰 입자는 바로 관성 때문에 쉽게 걸러진다. 공기가 내부의 필터에 의해 막혀있는 부분을 지나기 위해 휠 경우, 큰 입자는 그 흐름을 타지 못하고 필터의 벽면에 충돌하고 마는 것이다.
0.3μm보다 작은 입자의 경우는 브라운 운동을 한다. 미세 입자는 공기 흐름을 따라 이동하기는 하지만 그 경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불규칙적이다. 따라서 입자는 공기 흐름을 따라 이동하면서 불규칙한 운동 때문에 벽면에 부딪치고 만다.
0.1-0.5μm 크기의 입자는 관성과 브라운 운동에 완전히 지배받지 못하는 애매한 영역에 속한다. 때문에 가장 잘 걸러지지 않는 것이다. 헤파필터가 이 영역의 먼지를 가장 잘 걸러낸다.
전기집진식의 경우도 입자 크기와 제거효율의 그래프가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그 이유는 입자의 전기적 특성이 서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집진식의 경우 집진 성능이 질량기준으로 볼 때 99% 이상이지만 작은 질량의 입자에 대한 제거효율이 낮은 편이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전기집진식에 헤파필터가 추가되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또는 나노입자에 대한 효과적인 제거를 위해 광촉매나 자외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공기청정기가 황사 먼지에는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황사 먼지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알아야 한다. 2000년 봄 서울시 대기 중 먼지 입자의 크기 분포를 조사한 자료(그림 6)에 따르면 황사가 있을 때는 10μm 정도의 큰 입자의 농도가 심하다. 반면 평상시에는 1μm 이하의 미세먼지의 농도가 가장 심하다. 따라서 큰 입자가 주로 많은 황사에는 공기청정기가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두얼굴 가진 음이온 공기청정기
최근에 국내에서 판매중인 음이온 공기청정기의 유해성 논란이 법적까지 간 일이 있었다. 음이온 공기청정기에서 발생하는 오존이 인체에 유해하느냐를 두고 공기청정기 제조사와 판매업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음이온 공기청정기의 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용시 인체로부터 50cm-1m 거리를 두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개 무심코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좋은 공기를 쐬게 해준다고 머리맡에 음이온 공기청정기를 놓아두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공기청정기를 사용할 때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 사용설명서의 명시와 비릿한 냄새의 원인은 오존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 방전을 이용한 전기집진식 공기청정기에서는 음이온이나 양이온을 발생시킬 때 오존이 같이 나온다. 오존은 양면의 얼굴을 갖고 있다. 살균력이 뛰어나 극장, 학교, 병원에서 소독, 표백에 이용된다. 그러나 실내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미 환경보호청(EPA)의 발표에 따르면 가슴과 목에 통증이나 기침을 유발하며 만성 호흡기 질환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은 공기청정기에서 발생하는 오존의 양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오존은 0.01-0.02ppm 정도의 미세한 농도에서도 특유한 냄새를 느낄 수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0.1ppm 이상이면 강한 냄새가 나고 코와 목에 자극을 준다. 장기간 노출시 인체에 해롭다.
그런데 공기청정기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에서 오존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농도가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유해성 유무를 쉽게 결정짓기는 어렵다. 또한 공기청정기마다 배출하는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공기청정기에 대한 오존 규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오존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양이온 전기집진식이 이용되기도 한다.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공기청정기에서 오존 발생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발생한 오존을 제거하기 위해 이산화망간과 같은 촉매를 사용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최고의 공기청정기는 반도체 공장에
청정한 환경을 요구하는 곳은 다양하다. 반도체, 의약품, 식품 등의 제조 공장에서는 미세한 먼지나 오염 물질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때문에 이들 환경은 특수 크린룸으로 설계된다. 이 중에서도 점점 더 청정한 환경을 요구하는 곳이 바로 반도체 크린룸이다.
TV나 사진에서 보면 반도체 공정실에서는 마치 우주비행사와 같은 특수복을 입고 다닌다. 이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화장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주 미세한 입자가 반도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생산되는 DRAM 메모리 반도체는 저장용량이 기가(109)급으로, 반도체 회로선폭이 고작 1백30nm에 불과하다. 이 경우 반도체 크린룸의 청정시설은 회로선폭의 1/10인 10nm 크기의 초미세입자까지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기가급 반도체 크린룸의 청정도는 0.1μm 이상의 입자가 가로, 세로, 높이가 30cm인 공간에 1개 이하가 존재하도록 유지돼야 한다.
이 정도 청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크린룸에는 헤파필터가 쓰인다. 헤파필터는 크린룸 천장에 설치돼 있어 그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를 정화시킨다. 내부로 들어온 공기는 곧바로 구멍이 뚫려있는 바닥으로 하강하게 돼 있다. 만약 필터에서 걸러내지 못하거나 내부에서 발생한 먼지 입자가 생길 경우 돌아다니지 못하고 한곳만 스쳐지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공기가 바닥 아래로 내려가면 적당한 산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공기와 섞이고 난 후 다시 천장으로 가는 순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