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제품고르기 전 반드시 A/S·매뉴얼 확인

소프트웨어는 문화상품이다. 따라서 일단 한 제품에 익숙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제품을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제품의 완성도, 매뉴얼의 충실도, 사후서비스 정도에 따라 컴퓨터 사용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컴퓨터를 '애물단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길들여진 탓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사람들은 너무 관대하다. 불만이 있어도 잘도 참는다. 수시로 불통되는 핸드폰과 경인전철도 체념 속으로 잦아들기 일쑤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컴퓨터만큼 사용자 마인드가 없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요즘이야 안 그렇지만 2-3년 전까지만 해도 파워 스위치가 뒤쪽에 있는 것이 많았다. 또 모니터 전원을 1백10V에서 2백20V로 옮기려고 하면 모니터의 뚜껑을 열어야만 하는 기가 막힌 시대도 있었다. 초보자 안내서라는 컴퓨터 책은 어떤가? 10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두 손들고 나앉을 만큼 어렵고 재미없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이르면 더욱 난감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시커먼 디스켓 속에 담긴 소프트웨어는 책과는 달리 그 내용을 당장 눈으로 확인할 길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면 사뭇 위협적인 문구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이 포장을 뜯는 것은… 계약에 동의함을 …" 포장을 뜯는 순간 모든 불이익을 소비자가 떠 안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소비자 주권의 시대에 사는가? 소비자 수난의 시대에 사는가?

'왕초보' 이대리의 수난기

어린 조카들도 두드리는 컴퓨터에 늘 주눅들어 지내던 진짜왕초보 이 대리는 어느 날 큰 맘먹고 그 잘나간다는 멀티미디어 컴퓨터를 사러 용산에 갔다. "컴퓨터 하나만 주세요"

점원이 대답한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멀티미디어컴퓨터요."

어쨌든 몇번의 선문답을 거쳐 기종을 선택하고 가격도 결정했다. 이제 드디어 신비의 마술 상자같은 컴퓨터를 갖게 된 것이다. 2백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카드로 결제할 때까지만 해도 들뜨기만 했을 뿐이다.

이때 점원이 다시 묻는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십니까?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는 소프트웨어를 사면 다른 곳보다 많이 싸게 살 수 있을텐데요."

이 대리는 당황했다. 아니, 컴퓨터를 사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것 아닌가? 알고보니 도스도 사야 하고 한글윈도우, '한글'도 따로 사야 한단다. 그제서야 이 대리는 컴퓨터가 자동차나 냉장고와는 달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뉘어져 판매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 대리는 소프트웨어도 샀다.

배달원이 이 대리의 집에 컴퓨터를 설치하러 왔다. 그는 복잡한 케이블들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컴퓨터의 스위치를 켰다. 삑 소리가 나면서 모니터에 글자가 나타나고 화면이 이리저리 바뀌었다. 배달원은 한 30분간 이것저것을 설명하고 가버렸다. 이 대리는 옆에서 열심히 필기한 것을 읽었으나 도무지 혼자서 컴퓨터를 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 후부터 이 대리는 6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퇴근을 했다. 꽤 잘 가르친다는 컴퓨터 학원에 등록을 했던 것이다. 두어달 열심히 수강한 결과 이 대리는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실행해 기초적인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작성한 문서를 디스켓에 복사하여 회사의 컴퓨터에서 그 문서를 불러오는 정도의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던 도중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키보드를 두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학원에서 배운대로 리셋키를 눌렀더니 컴퓨터는 다시 시동됐지만 5시간 동안 작성한 문서를 날려버리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학원에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대리는 어디다 물어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컴퓨터 가게의 명함을 찾아내고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문제이니 한글과 컴퓨터사에 문의해 보세요."

이 대리는 소프트웨어 매뉴얼에 적힌 고객지원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또 약 5시간 동안 전화와의 전쟁을 치른 후에 겨우 고객지원부와 전화접속이 이루어졌다.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다른 컴퓨터들에서는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컴퓨터를 구입한 업체에서 A/S를 받으셔야 할 것 같군요."

이 대리는 다시 컴퓨터 가게와 소프트웨어 업체에 몇 번 반복해서 전화를 했으나 컴퓨터가 다운되는 현상을 고칠 수 없었다. 이제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하나?

최근에 만난 이 대리는 이렇게 말했다.

"어, 거 애물단지, 버리기엔 아깝고 차라리 누가 훔쳐라도 가버렸으면 좋겠네."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된 매뉴얼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소프트웨어 민주화는 개발 과정부터

필자는 이 대리의 고뇌를 이해하지만 그의 체념에 동의하진 않는다. 뒤집어진 상식을 다시 뒤집어야 한다. 이 대리는 정당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는 당연히 유지보수를 요구해야 한다. 이 대리의 카드결제 2백만원 속에는 A/S와 사후지원 서비스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한 권리 주장은 개발업체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보라. 그들은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부터 일반 사용자들의 엄정한 테스트를 받는다. 사용자들이 불편해 하는 점을 재빨리 간파하고 개발과정에서 그것들을 고친다. 이런 마인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는 것이다.

윈도우 95만 하더라도 그렇다. 비록 그 제품의 출하시기 약속을 몇번씩이나 어기는 괘씸함을 보이긴 했으나 그 과정이 기본적으로 제품의 편리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충분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러한 마인드는 빌 게이츠라는 일 개인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용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제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공개 자료실을 통해 무수히 올라오는 공개프로그램들은 사용자들의 충실한 품평회를 거쳐 버전업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맹아적인 민주주의라 할 만하다. 개발과정에서부터 사용자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마인드야 말로 '소프트웨어 민주화'를 이루는 핵심고리이다.

이 대리는 처음에 당황했다. 그는 '자동차는 한 번 사면 그걸로 끝인데 왜 컴퓨터는 따로 소프트웨어를 사야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대리의 무지는 이 대리 개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자동차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 대리는 컴퓨터 왕초보인지라 소프트웨어 포장에 적힌 제품의 기능에 대한 소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개발업체들이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사용자 마인드를 갖기를 요구한다.

우선 셰어웨어 버전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배포해야 한다. 셰어웨어(Shareware)는 시험적인 이용을 할 수 있도록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배포되는 소프트웨어다. 셰어웨어가 정품 소프트웨어의 판매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보통 셰어웨어는 정품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지만 몇가지 주요한 기능은 뺄 수 있다. 예컨대, 인쇄기능만 불가능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혹 개발업체의 영세성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셰어웨어를 만들지 못했을 때라도 사용자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하는 프로그램이며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상품의 포장지에 적힌 제품의 기능소개는 초보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들에 소비자들이 직접 볼 수 있는 몇 대의 컴퓨터를 준비해 두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보기를 원하는 기능들을 점원이 직접 시연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컴퓨터 잡지들이나 일간지, TV나 라디오 등의 언론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미리 특정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를 가지고 그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잡지나 신문들에서 소프트웨어 리뷰같은 코너들을 충실히 꾸미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의 이 대리는 컴퓨터가 다운되는 문제를 결국 어디서 해결했을까? 그것은 하드웨어 업체도 소프트웨어 업체도 아닌 '컴퓨터 좀 한다'는 친구에게서 였다. 우리의 컴퓨터 업체들이 이런 수준에 계속 머무른다면 개방의 물결속에서 사용자들에게 외면을 당해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고객지원센터'설립이 눈길을 끈다. 맨 처음 한국 IBM이 고객지원센터를 설립, 운영에 들어갔고(93년), 뒤를 이어 삼성휴렛팩커드, 컴팩코리아 등이 사후지원체제 정비에 들어갔다. 우리 업체들의 발빠른 대응과 정부의 지원이 긴급히 요청되는 시기인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은 하루빨리 질적인 사후 서비스개선에 들어가야 한다.

우선 전문 용어 중심의 매뉴얼이 개선되어야 한다. 사용자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는 것이다. 보다 친절한 사용자 매뉴얼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책상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이는 그만큼 업체에 대한 불신도 같이 쌓일 것이다. 또한 매뉴얼은 왕초보를 위한 기초적인 내용과 기능 중심의 해설서,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고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져 함께 공급되어야 한다.
 

PC통신 서비스의 자료실.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실익을 안겨주는 민주주의의 광장이다.


소비자 권리 확보는 개발업체에도 이득

다음으로 서비스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요체는 신속한 A/S와 무상 교환 시스템이다. 제품의 기능 소개와 실제의 기능이 다르다면 신속하게 교환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업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쌓이며 끊임없는 버전업을 믿게 될 것이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용자들의 A/S 요청은 사용자들의 무지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 수신자 요금 부담 전화나 팩시밀리, 컴퓨터 통신을 통한 친절한 답변과 무료, 유료 강좌들을 개설하는 것이 서비스 개선의 질을 담보해 줄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제도의 개선은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다면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뜻있고 능력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년 10월 '소프트웨어 재산권 보호위원회'와 검찰은 관련업체의 제보를 받아 서울 시내 일부 대학의 전산원, 평생교육원 등을 단속했다.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 단속으로 한글과 컴퓨터사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한글과 컴퓨터는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소프트웨어 재산권 보호위원회' 탈퇴를 선언했다. 사실상 이 대학 단속은 '미국 사무용 소프트웨어 협의회(BSA)'가 추진한 것인데 이 불똥이 엉뚱하게 '한글과 컴퓨터사'로 튄 것이었다.

탈퇴선언에서 한글과 컴퓨터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재산권 보호위원회가 근원적인 불법복제의 사전방지 활동보다는 단속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고조와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및 관련 기관을 고소할 의사가 없을 뿐더러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용자들은 정품을 구입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개발자들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며 또 앞으로 사용자들에게 많은 편리와 생산력을 담보해줄 것이다. 한편으로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해야 하며 그래야 개발업체들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가격의 현실화도 불법복제를 막고 정품소프트웨어를 사는 풍토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유해룡 컴퓨터 칼럼니스트

🎓️ 진로 추천

  • 소프트웨어공학
  • 컴퓨터공학
  • 정보·통신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