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386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6백만불의 사나이'는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인공 관절과 뼈는 물론 인공 혈관까지 사람의 것을 닮은 바이오 재료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조직은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회복할 수 없는 병이나 심각한 외상에 노출되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화상으로 피부가 깊이 손상받아 재생이 불가능할 때는 신체의 다른 부위(예를 들어, 허벅지)의 피부를 이식받아야 한다. 또 교통 사고로 뼈가 부러져 저절로 붙기에 뼈가 모자라면 엉덩이에서 뼈를 취해 이식하는 등 자기 신체의 다른 부분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의 심장, 신장, 눈 등의 조직과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도 있다.
자기 자신의 조직을 직접 옮기는 것(자가 이식)이 좋지만, 조직을 구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고, 조직을 취하는 부분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등의 단점이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동종 이식) 또는 다른 동물(이종 이식)의 조직을 이식하는 것이 차선책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것도 조직을 얻기가 쉽지 않는다는 점과 거부 반응이라는 난제가 있다. 대개 이식 전에 면역반응검사를 하는 것은 거부반응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식의 제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인체 조직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조직과 장기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인체 내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인체 조직과 조화를 이루는 바이오재료들이 의료계의 신소재로 등장했다. 금속, 중합체(polymer), 세라믹스, 복합물, 다공성 소재, 생체 흡수성 물질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인공 심장, 판막, 혈관, 뼈, 신장, 췌장, 귀 등에 이용된다.
6백만불의 사나이 다리는 합금
가장 이상적인 바이오소재는 염증을 일으키거나 다른 물질과 반응해 이물질 또는 독성물질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인체 조직과 강하게 결합해야 하고, 주변 조직의 성장을 도와줘야 한다. 또 물리적으로 외부의 기계적인 충격이나 변화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바이오소재는 없다.
고대 시대의 미라에서도 발견되듯이 인체에서 쓰인 가장 오래된 바이오소재 중의 하나는 금속재료다. 이것은 물리적 특성상 힘을 지탱하는 인체 구조물인 인공 뼈 와 관절, 치근과 판막 등에 응용될 수 있다. TV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에서는 주인공이 부러진 다리 대신에 인공 다리를 달고 놀라운 속도로 달리거나 뛰는 장면이 나온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6백만불의 사나이가 갖고 있었던 금속 다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코발트-크롬, 티탄 합금과 같은 종류의 합금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금속들은 쉽게 녹슬어 그대로는 장기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오재료로 사용되는 금속은 용도에 맞는 모양과 크기로 성형되고, 표면은 강산으로 처리해 부식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 여기다 인체 조직에 잘 접합될 수 있도록 요철을 만들어 준다. 예를 들면 엉덩이 관절의 뼈가 혈액 순환 장애로 주저앉은 경우, 이전에는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리 쪽과 골반 쪽에 금속으로 된 구조물을 고정시켜 움직이도록 해준다. 이것이 바로 인공 관절이다. 이때 각각의 구조물은 환자 뼈의 크기와 모양에 맞게 디자인된다. 또 뼈와 접촉하는 부분은 결합이 잘 되도록 미세한 기공을 만들든지 세라믹스의 한 종류인 아파타이트로 코팅한다. 그러나 이러한 금속 구조물은 체내에서 부식되면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식에 의해 유리되는 코발트, 니켈, 바나듐과 같은 독성 금속 이온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이오소재 중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폴리에틸렌,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 데크론, 테플론 등이 포함되는 중합체다. 이 중 폴리에틸렌은 단단하고 마모가 잘 안된다.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보다 훨씬 작은 마찰 계수를 보인다. 따라서 인공 관절 중 미끄러지면서 운동이 일어나는 관절면 처리 재료로 이용된다.
인체내의 시멘트
집을 지을 때 사용되는 시멘트처럼 인체에서 시멘트처럼 쓰일 수 있는 물질이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다. 가루에 용액을 붓고 잘 저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열이 나고 굳는데, 금속과 같이 이용해 인체내 빈 공간에 금속기둥을 세울 때 철근 콘크리트처럼 쓰이거나 다른 구조물을 고정하는데 쓰인다. 항생제나 항암제와 같은 약물을 섞어서 쓰면 지속적으로 약물이 유리되기 때문에 약물 전달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물질도 단량체(monomer)가 되면 인체에 문제를 일으킨다. 중합체에서 단량체로 된다는 것은 크기가 작아진다는 의미다. 이것은 단량체가 보다 쉽게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면역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백혈구는 덩치가 큰 중합체에서는 반응하지 않지만 작은 단량체는 이물질로 인식해 먹어버리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예전에는 협심증 환자의 경우 다리의 정맥을 떼어 심장의 관상동맥에 이식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적으로 만든 혈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이 섬유 형태로 만들어서 직물로 만든 데크론과 테플론이다. 이것은 인조 인대나 판막과 각막 등에도 이용된다. 예를 들어 인조 혈관은 데크론으로부터 실을 뽑아 짜서 만들거나, 테플론 고분자를 압축시켜 관형태로 만든 것이다. 물론 인조 혈관은 유연하고 탄력성이 있으며, 꼬이지 않고 잘 꿰맬 수 있어야 하며, 혈관 내에서 혈전(피가 굳어서 된 고형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혈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뼈처럼 자라기도
금속재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이오 세라믹스다. 여기에는 알루미나, 지르코니아, 바이오 글라스, 인산칼슘 화합물, 카본 등이 포함된다. 바이오 세라믹스는 인공 치아, 인공 관절, 인공 뼈 외에도 인공 판막, 안구, 중이 등에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알루미나, 카본과 같은 세라믹스는 주로 마모 저항이 큰 인공 관절에 사용된다. 하이드록시 아파타이트 또는 인산칼슘이 함유된 바이오 글라스 등은 뼈조직과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어 수술 후 초기에 뼈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바이오 세라믹스는 부작용이 적은 재료이지만 충격에 약한 단점이 있다. 따라서 그다지 큰 기계적 특성이 필요치 않는 부위에 쓰인다. 하중을 받는 부위에 사용될 때는 다른 금속 구조물과 함께 쓰인다.
바이오재료는 두가지의 성분을 섞어 그 특성이 변화되는 것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다공성 재료로 만들어 인체의 세포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이드록시 아파타이트를 인공 뼈로 쓸 때는 생체에 흡수되는 인산 칼슘 화합물을 섞어서 형태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치밀하게 만들지 않고 50-500 μm정도 되는 기공을 만든다. 이것을 뼈에 이식하면 뼈와 혈관이 자라 들어오면서 붙고 골수도 만들어진다. 인공 뼈가 내몸의 뼈가 된다는 말이다.
수술 후에 실밥을 뽑는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봉합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몸안에서 흡수되므로 따로 봉합사를 제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재료가 생체에서 흡수되는 폴리글리콜릭 산(PGA) 또는 폴리락틱 산(PLA) 등의 중합체다.
바이오소재의 절정은 인공 심장에서 이뤄진다. 완전 인체 매립형 인공 심장에는 각종 금속 구조물과 중합체로 만든 판막과 혈관, 전기 장치, 구동 장치 등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첨단 소재와 기술이 집약된 인공심장이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심장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금명간 사람의 조직과 가장 유사한 소재가 개발될 것이고 이들이 인공 장기의 앞날을 앞당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