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거인'이라 불리는 중국의 과학기술은 첨단과 낙후가 공존하는 전형적인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거인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는 전대미문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대해 서구언론들의 관심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2003년의 세계경제지도 재편을 전망하면서 "홍콩 대만을 포함하는 중국경제권이 창출되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년 4.2%에서 2000년 6.5%, 2003년에는 20%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같은 수치는 90년 세계무역에서 차지했던 미국(11.3%)과 일본(8.3%)의 비중을 능가하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이 중국이 7-10%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지속하고 미국이 중국의 절반수준을 유지할 경우, 오는 2003년이면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물론 중국은 지금도 경제규모에서 미국·일본·독일 다음가는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GNP가 3백80달러에 불과하지만 12억의 인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낮게 책정된 석탄 등 각종 생산물의 국내가격을 국제가격 수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GNP 역시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잠재력이 가시화될 때 세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타임'(중국, 다음 세기의 수퍼파워)이나 '비지니스 위크'(21세기의 떠오르는 경제대국, 중국) 등이 중국특집을 다루면서 내린 결론이다.
중국의 성장은 80년대 이후 등소평 체제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동적인 체제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체제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성장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는 새로운 실험들이 현재 중국 발전전략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실험들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거대한 잠재력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수준의 항공우주기술
1970년 4월 24일. 주천우주기지를 떠난 1백73kg의 로켓 '동방홍(東方紅)1호'는 모택동사상을 찬양하는 '동방홍' 멜로디를 내보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95년 현재까지 35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항공우주기술분야에서 중국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자체 개발된 위성제작과 발사기술을 보유한 5개국 중 하나이고, 위성회수기술을 보유한 3개국 중의 하나다. 또한 다연장 위성로켓 발사기술을 보유한 4개국 중의 하나이며, 자체 개발을 증속로켓을 이용해 정지궤도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5개국 중의 하나다.
중국 로켓의 기원은 11세기 경 중국무기인 '화전'(火箭:포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로켓을 '포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격적인 위성개발은 50년대말부터 시작됐다. 57년 소련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적 발사에 자극을 받은 모택동은 58년 5월 17일 인공위성개발을 강력히 지시, 60년 2월 19일 중국 최초의 실험용 로켓인 'T-7M'을 쏘아 올리기에 이른다.
특히 중·소대립이 노골화되면서, 소련의 원조나 기술지원을 받지 않는 자체기술로 현대형 포첸, 즉 ICBM 개발에 착수했다. 이 당시 핵심적으로 로켓개발을 주도한 인물은 1940년대 미국 로켓개발의 중심인물 중 한사람이었던 전학림(錢學林) 박사였다.
60년대 말 주은래는 대규모의 운반로켓 및 위성개발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무원내에 구성해 로켓개발을 강력히 추진함으로써, 중국의 우주기술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장정(長征)1호'(CZ-1)는 중국운반로켓연구소에 과학기술자들을 집결시켜 연구에 박차를 가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중국의 로켓 개발 노력은 몇 차례의 기술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1975년 11월 16일 네번째 발사된 위성은 중국 최초로 위성을 회수했다. 81년 9월 18일, 9번째 발사된 위성은 하나의 운반로켓에 3개의 위성을 싣고가 궤도에 진입시켰다. 서로 다른 목적과 구조, 궤도 등을 가진 3개의 위성을 충돌없이 발사하는 정교한 기술을 세계에서 4번째로 보유하게 된 것이다.
84년 4월 8일에는 정지궤도 위성을 쏘아 올렸다. 이때 사용된 로켓은 중국 우주기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된 '장정3호'로, 이전의 로켓과는 다른 3단식의 지상 3만6천km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것이었다. 86년 2월 1일 방송통신용 위성발사는 실험기에서 실제 사용기로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88년 9월 7일에는 최초의 기상위성을 발사하였으며, 90년 10월 5일에는 미 휴스턴사의 '아시아새트(Asiasat)1호'를 발사해줌으로써 세계의 우주세일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1984년까지 14개의 위성을 쏘아 올린 중국은 이미 지난 85년, 그동안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위성발사의 상업화를 선언했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 기술력과 값싼 비용을 무기로 충분한 경쟁력을 자신한 것이다. 그리고 급증하고 있는 통신위성의 수요에 따라 중국의 로켓이 앞으로 우주를 누빌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중국은 항공기술 분야에서도 지난 40여년 동안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왔다. 각종 군용기와 소형 다목적여객기를 비롯해 50-90인승짜리 중형여객기, 통근용 항공기(미국과의 합작), 중형수송기 등의 민간항공기, 헬리콥터와 초경량 항공기 등 지금까지 1만4천여대의 항공기를 생산했다. 또한 25종 5만여개의 각종 항공기 엔진을 개발했고, 항공통제시스템 컴퓨터항법장치 기상데이터컴퓨터 조종실계기판 센서 등 국내수요에 필요한 3천종 이상의 항공장비를 생산한 바 있다.
현재 서안 상해 하얼빈 청도 남창 심양 창해 산서 등지서 항공기가 생산되고 있다. 중국의 기술수준은 많은 항공기의 개발경험으로 설계, 시험평가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으나 질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항공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실정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항공산업을 집중 육성하려는 장기 프로그램(flying program)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가장 큰 변화는 93년 6월 설립된 항공공업총공사(航空工業總公司)의 등장이다. 1988년 항공공업부(航空工業部)와 항천공업부(航天工業部)가 항공항천공업부로 통합된 이후 다시 항공공업총공사와 항천공업총공사로 분리되면서 국방기술을 관장했던 행정기관이 하루 아침에 거대 기업으로 변신했다.
국무원 직속의 국영기업인 이 총공사는 산하에 2백개 이상의 기업과 56만여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으며 항공산업의 연구개발에서부터 생산과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이와같은 과감한 행정조직 개편은 민간부문으로의 기술이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세계 시장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마케팅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관료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의 우주개발 노력은 이른바 모택동의 '자력생생'에 따라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룩했다는데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전학림(錢學林) 임신민(任新民) 같은 뛰어난 과학자들과 국가적 프로젝트로 총력을 기울인 중국 지도층의 노력이 뒷받침됐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주기술이야말로 국가능력의 거울이자 국가 번영의 상징"이라는 등소평의 말은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한발 뒤진 정보통신 분야에 총력
중국의 정보통신기술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실험발사, 자체기술에 의한 컴퓨터의 개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국방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수준에 도달해 있거나 상당한 잠재력을 축적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 반도체 통신기술 등의 시작은 선진국과 크게 뒤떨어지지 않게 시작되었지만, 인공위성이나 군수산업의 일환으로 육성됐기 때문에 관련 기술과 응용기술 분야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은 낙후돼 있는 형편이다. 특히 공장이 소규모이고 생산라인이 미미해 양산에 어려움이 있어 생산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고, 연구개발의 상품화 능력도 부족한 실정.
그렇지만 최근들어 국가차원에서 정보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 있는 국방관련 정보기술들의 효율적인 민수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조만간 세계적인 정보산업대국이 되리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컴퓨터 역사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에 컴퓨터 연구를 시작해 58년에 진공관식 컴퓨터 제1호기인 '103'을 발표한다. 이때의 컴퓨터 기술은 주로 소련으로부터 도입돼 복제품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중국의 제2세대 컴퓨터는 1965년 중국과학원 계산연구소에서 '109Z'를 개발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선진기술을 확보하였다.
제3세대 컴퓨터는 71년에 개발한 111기로, IBM 300시리즈가 발표된 7년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있어서는 외국과의 교류가 적어 세계 기술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기종간의 계열화와 호환성이 경시되거나 경제성이 고려되지 않은 임무달성 제일주의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컴퓨터의 발달은 80년대에 들어와 급진전돼 83년 국방과학기술대학이 슈퍼컴퓨터인 '은하'를 탄생시켰으며 85년에는 IBM 호환 기종인 '장성'시리즈와 애플 호환기종인 '자금(紫金)II'가, 87년에는 미니컴인 '태극2200', 91년에는 슈퍼마이크로컴퓨터인 'YH-MAC'이, 94년에는 병렬처리 컴퓨터인 '서광1호'가 발표됐다.
그러나 반도체 주변기기 등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약해 거의 수입품에 잠식 당하는 형편이며, 소프트웨어의 부족으로 기계가동율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반도체도 56년 게르마늄 트랜지스터를 개발할 정도로 역사는 길지만 현재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매우 낙후돼 있다. 대부분 보유공정은 바이폴라, CMOS 3-5m 등의 가공수준 정도로 낙후되어 있으며, 웨이퍼 역시 3인치와 4인치 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품생산은 1K, 4K, 16K S램과 64KD램 등 메모리 분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선진국에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고 자체 판단한 첨단 정보기술 발전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걸고 육성에 나서고 있다. 2000년까지 선진국 수준에 근접 또는 추월하는 것을 목표로 국제수준의 기술개발을 위한 핵심분야에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바이오 테크놀로지 분야는 의외로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연구성과를 보면 B형 간염 백신, 원형질 재생산 기술, 인간세포의 생쥐이식, 암세포만 선별해서 없애는 '간암 미사일'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전통 한의학과 양의학을 접목하는 작업은 중국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분야다.
첨단과 낙후공존하는 기술구조의 이중성
중국은 모든 면에서 실질적인 21세기의 초강대국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단시일내 도약과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 앞에는 많은 당면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이 문제는 국방기술과 산업기술, 첨단기술과 생산기술, 도시와 농촌, 연해지역과 내륙지역 등 곳곳에서 벌어진 '불균형'으로 함축된다.
첨단 기술이 총동원되는 위성을 발사했다 해도 이러한 위성발사소식이 중국 전역에 전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시골지역의 통신체계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행정관리가 파견된 행정부락의 50% 정도에 전화가 없으며, 많은 시골지역의 각 가정에는 이따금 라디오 소식을 전해주는 유선 확성기만이 설치돼 있는 상황이다. 유선 확성기의 보급률도 그나마 42% 정도에 불과하다.
도시와 농촌, 핵심지역과 주변지역의 극심한 이중구도를 가진 사회체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과학기술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시골 가정의 유선 확성기와 인공위성의 대비처럼 조악한 중저급 상품에서 나타나는 낙후된 생산기술과 외국의 상업위성을 우주에 발사해 줄 수 있는 첨단기술이 공존하는 나라. 중국의 평균 과학기술수준을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사람만큼 이해하기 힘든 것이 첨예한 양극구조의 중국 과학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이중구조는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 과시와 국방력 강화라는 우선순위에 따라 항공우주기술, 국방관련기술, 기초과학 분야 등에 한정된 자원을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한데서 연유한다. 따라서 군수산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인공위성, 핵, 광섬유, 리모트 센싱 분야 등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불균형의 해결책으로 과학기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개혁의 총지휘자였던 등소평은 "과학기술은 제1의 생산력"이라고 선언, 그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중국의 첨단기술은 초창기에 국방기술의 연장선상에서 발전하였고, 기술개발의 시작도 선진국과 결코 시기적으로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둘러싼 정치경제 메커니즘에 따라 과학기술은 발전과 정체의 파고를 겪었고, 특히 기술혁신의 주체인 사기업이 발달할 수 없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성 때문에 상당수준의 첨단기술 관련 연구개발 결과들이 상업화되지 못하고 사장됐다. 이것이 전반적인 첨단기술의 낙후를 가져오는 악순환을 야기한 것이다.
78년 등소평의 등장과 함께 중국 정부는 첨단기술의 발전에 최우선을 두고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산설비의 후진성, 산업설비의 노후화, 기업의 기술혁신 동기유발 부족, 기술구조의 취약성, 기술적 하부구조의 빈약 등 구조적인 문제점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도약과 발전의 손자병법
최근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원칙들을 과감히 뛰어 넘는 조치들을 통해 새로운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기술전쟁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면서 중국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려나가기 위한 새로운 과학기술 손자병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먼저 과학기술의 풍향을 결정하는 정치경제 메커니즘의 개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다소 주춤거렸던 개혁속도는 92년 2월 등소평의 "남순강화(南巡講話)"와 92년 10월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계기로 다시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문은 심화되어 있는 기술의 양극현상을 타파하려는 노력이다. 즉 발전된 기초과학이나 거대 과학을 생산기술에 접목시키기 위한 일대 '기술확산정책'을 실시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은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술창출도 중요하지만 기술의 활용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간부문에 대한 자율성도 크게 신장됐다. 국가가 모든 것을 감독지휘하고 지원한다는 이른바 '3철원칙"(鐵原則)이 타파되고 새로운 경쟁시스템이 강조되고 있다. 공관계획(攻關計劃 : 기존 산업의 기술개발), 성화계획(星火計劃 : 과학기술을 통한 농촌개발), 화거계획(禾炬計劃 : 첨단기술의 상업화), 863계획(첨단기술개발), 기초성 연구계획(기초과학발전), 과학기술추광계획(科學技術推廣計劃 : 주요 기술의 전국적 확산) 등 6개의 국가 과학기술 프로그램도 치밀하게 수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추광계획은 90년부터 시작된 과학기술 연구결과의 응용을 대폭 확대하려는 시도다. 연간 1만여건 이상의 새로운 연구결과중에서 응용되는 비율은 10% 미만임을 감안해 연구결과의 응용을 확대하기 위한 환경조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최근 등소평이 "11억 인구중 9억이 농촌에 살고 있으므로 농민생활의 향상 여부가 중국의 사회정국 안정과 직결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성화계획(spark plan)에서도 적정기술의 집중적인 확산을 통해 농업생산량의 8-9% 성장률을 계획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추진되고 있는 화거계획은 첨단기술분야의 과학기술적 성과 자체만이 아니라 첨단기술의 개발과 기업화를 촉진해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즉 중국이 개발한 첨단기술의 상업화 기업화 세계화에 초점을 둔다. 현재 진행중인 관련 연구개발 성과를 충분히 이용하고, 기술-상품화-무역을 할 수 있는 고도기술기업(예 : 기술개발공사)을 연구기관이 보유하고 연구기관과 기업간의 콘소시움을 형성하는 한편, 기술공원(technology park) 및 첨단기술개발구(高新技術産業開發區) 등에 첨단기술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최근 3백개의 사업장과 37만명의 종업원을 가진 일렉트로닉스 복합사업체인 차이나트론(중국전자공업총공사)의 발족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국방기술의 민수전환도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그동안 국가우선순위에 의해 발전돼 있는 국방기술들을 민간용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91년 걸프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고도의 첨단기술에 충격을 받았던 등소평은 "발전고과기 실현산업화(發展高科技, 實現産業化)"라는 말로 첨단기술개발 및 첨단기술의 실용화를 강도높게 지시한 바 있는데, 이는 '863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863계획의 정식 명칭은 '고도기술연구개발계획'으로, 86년 3월에 시작됐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것은 재원과 인력의 한계 때문에 중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나 미래에 대비해 특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를 선택해 도전하려는 중장기 발전 전략이다. 이러한 목표와 전략에 따라 생명공학 우주기술 정보기술 레이저기술 자동화기술 에너지기술 신소재 등 7개 분야가 선정돼 현재 진행중이다.
지금 중국은 21세기 기술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대장정"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