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9일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스웨덴 고텐보르그 대학의 아르비드 카를손(Arvid Carlsson), 미국 록펠러 대학의 폴 그린가드(Paul Greengard) 그리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에릭 캔델(Eric Kandel) 등 3명이 노벨 생리ㆍ의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신경세포들 사이의 ‘느린 시냅스 전달’에 의한 뇌의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밝혀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여기서 시냅스란 무엇일까. 우리의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미세한 결합 부위를 말한다. 뉴런들은 시냅스라는 구조를 통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회로와 같이 복잡한 신경망을 형성한다. 우리의 뇌가 작동하게 되는 이유는 신경망을 통해 신호가 전달돼 정보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신경망에서 전기적인 신호가 시냅스를 통해 앞의 뉴런에서 뒤의 뉴런으로 전달된다. 일단 신호가 앞의 뉴런의 끝부분, 즉 시냅스 부분에 도달하면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이 다음 뉴런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해 전류가 흐르면서 새로운 신호가 발생한다. 이 메커니즘은 신호가 전달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서 ‘빠른 시냅스 전달’이라고 한다.
기억과 감정이 지속되는 과정
정보처리기구로서의 뇌의 기능은 이러한 시냅스의 신속한 신호전달방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을 통한 기억이나 경험을 통한 감정처럼 오래 지속되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러한 뇌의 기능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번에 노벨상을 타게 된 느린 시냅스 전달이다.
느린 시냅스 전달에는 빠른 전달과는 다른 수용체가 관여한다.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 이 수용체에 결합하면 일정한 생화학적 신호가 만들어진다. 세포 안에서는 이 신호가 차례로 증폭되면서 신호전달경로가 활발해진다. 이러한 신호전달에 의해 생체의 이온농도가 조절되고 또 세포핵에서 일어나는 유전정보 발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이와 같이 복잡하면서 단계적인 신호전달과정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 효과는 증폭돼 오랫동안 유지된다.
카를손은 1950년대에 정신분열증 치료를 연구하던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특정 약물을 토끼에 투여했더니 토끼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몸이 굳는 것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해 뇌의 기저핵에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이 다량으로 존재함을 밝혔다. 그리고 뇌에 존재하는 도파민 양을 인위적으로 감소시키면 운동장애가 나타남을 알게 됐다. 또 생체내에서 도파민으로 변하는 물질(L-도파)을 투여하면 운동장애가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도파민은 느린 시냅스 전달의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며, 운동 조절이외에도 욕구의 만족과 정신분열증에도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다.
카를손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바로 그린가드다. 그는 뇌의 특정 부위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뉴런들을 이용해, 세포 내에서 도파민이 어떻게 신호를 전달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시냅스의 뉴런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에 결합해 주변에 있는 특정 단백질을 활성화시킨다. 이 단백질은 효소를 활성화시켜 세포 내의 다양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한다.
캔델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마음의 정체에 관심이 있었다. 결국 뉴욕 의과대학을 입학해 심리분석학을 전공하게 된 이 야심찬 과학자는 필자의 박사과정을 지도해준 은사이기도 하다. 캔델은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신호전달체계가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기억이 뇌에 저장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단순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는 바다달팽이를 이용했다. 바다달팽이에 자극을 주면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의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시로토닌이 분비된다. 시로토닌은 효소를 활성화시키고, 이 효소에 의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한다. 이러한 시냅스의 촉진현상은 오래가지 못해 ‘단기 기억’의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또 같은 자극을 여러차례 반복하면 효소는 다양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들은 시냅스를 구조적으로 강화해 시냅스 기능을 장기적으로 촉진한다. 이것은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입력된 정보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장기 기억’을 설명해준다.
치매 정복의 단서 마련
올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이들 3인의 연구업적은 짧은 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30-40년에 걸쳐 꾸준히 연구했고, 결국 그 노력이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심리학의 영역으로 인식된 학습과 기억현상이 자연과학적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복잡한 뇌의 기능을 간단한 신호전달과정을 통해 설명해준 것이다.
또 이들의 연구는 신호전달 체계의 이상이 어떻게 신경·정신질환을 유발하는지 중요한 단서가 됐다.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파킨슨병의 치료제 L-도파, 우울증의 치료제로 사용되는 프로작 등의 약품은 모두 이들 덕분이다. 앞으로 뇌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실체가 완전히 밝혀진다면 치매를 비롯한 각종 뇌질환을 정복하는 일도 가능하다.
1909년 뇌의 구조를 신경세포 수준에서 명확하게 보여준 라몬 카할과 카밀로 골지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래 여러 신경과학자들이 노벨상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두뇌는 소우주라 불리는 것처럼 신체기관 중에 가장 복잡한 구조로 돼있으며 아직까지 풀지 못한 비밀이 무궁무진하다.뇌의 신비가 완전히 풀리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접근과 함께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