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생물종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같은 멸종 양상은 과거 지질시대의 집단멸종과는 달리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가 그 원인이다. 인류는 '하나뿐인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 해 경고한 바에 따르면 지금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30년 안에 지구상의 생물종 중 4분의 1이 사라진다고 한다.
멸종에 대한 경각심이 전지구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생물다양성 협약,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식물 보호협약 등 국제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들도 갈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생물에서 종이란 생물분류의 기본단위로 개체 사이에서 교배가 가능한 한 무리의 생물군을 말한다. 생태계는 이러한 종이 다양하게 모여 이루어질수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종다양성이라 한다. 근래 들어서는 종보다 한차원 넓은 개념으로 생물다양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유전자, 종, 생태계의 3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위기의 지구-매년 수만종의 생물 사라져
멸종이란 번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속성인 생물이 더 이상 이를 지속치 못하고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씨가 마르는 것이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다. 일차적으로 멸종은 지구 진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돼 왔다.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난 35억년의 역사 이래 지구환경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생물종의 99%가 멸종했다고 생물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무수히 많은 생물들이 생겨났다가는 사라져간 것이다.
이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멸종은 다윈식 진화론으로 설명됐다. 적자생존과 도태의 원리에 의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사라져 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질학사에는 이와는 다르게 진행된 멸종도 있다. 아직도 그 원인이 신비에 싸여 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집단멸종(mass extinction)이 그것이다. 집단멸종이란 생물의 역사에서 일정 시기에 많은 종의 생물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분류상 아주 다르고 바다 육지 하늘 등 사는 장소도 생활방법도 다른 매우 많은 생물종이 뒤엉켜 지구규모로 일제히 절멸하는 것이다.
지질학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집단멸종은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말과 데본기말, 고생대를 마감한 페름기말, 그리고 중생대의 삼첩기말과 공룡의 멸종으로 끝난 백악기말의 다섯차례를 꼽는다. 이를 5대멸종사건이라 한다.
심할 때는 생물종의 90%가 일제히 멸망한 시기도 있다. '노아의 방주'에 탄 생물만이 무주공산이 된 드넓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쳤다.
이같은 집단적인 멸종은 적자생존이나 도태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으로, 다윈식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들먹이는 사건이다.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하버드대의 고생물학자 스테판 J. 굴드는 조금 다른 이론을 펼쳤다.
단속적 진화론이 그것으로, 집단멸종은 우연의 요소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며 '운좋게' 이 시기를 살아남은 생물종들은 다음 시대에 다시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진화한다는 것이다.
포유류는 공룡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공룡의 전시대에 지구상에 나타났던 '포유류형파충류'가 절멸하지 않았더라면 공룡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에 깔린 굴드의 입장은 진화와 진보를 같은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포유류는 항온성을 가르며 재빠르고 현명한 우수한 생물이므로 공룡의 뒤를 이어 지상의 왕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과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포유류는 공룡과 공존한 약 1억5천만년 간 쥐와 같은 모습에 머무른 채, 공룡에게 압도당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6천5백만년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룡이 없어졌고 그러자마자 포유류는 숨겨온 가능성을 폭발시켰다. '적응방산'을 통해 생태계에서 점할 수 있는 모든 적재적소를 향해 갖가지 종을 분화시킨 것이다. 포유류의 역사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 그 뒤의 세계는 공룡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지금은 여겨지고 있다.
집단멸종이 우연의 요소가 개입된 것이라는 입장에 의거, 그 원인을 밝히는데도 각양각색의 가설이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소행성충돌설과 화산분출설이다. 그 원인이 지구밖에서 온 것이냐 지구 내부로부터 온 것이냐로 나누기도 한다. 어찌됐건 그 원인은 생물종과는 무관한 환경의 변화에 의한 것이었다.
5대멸종보다 규모가 작은 집단멸종은 수십차례에 걸쳐 있어 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 점에서 포유류형 척추동물이 등장하고 인류의 시대가 시작한 뒤에도 집단멸종은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멸종은 생물종의 하나인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1천년 전, 당시 남북 아메리카대륙에 살던 대형포유류의 70-80%에 달하는 종들이 크게 보아 1천-2천년이라는 극히 단기간에 멸종해 버렸다. 희생자 목록에는 검치호(劍齒虎, 칼 모양의 송곳니가 있는 호랑이), 지상성 큰 나무늘보(키가 6m나 되는 종), 거대 비버, 매머드 등이 올라 있다.
그 원인에 대한 여러 설들 중 '과잉살륙설'이 주목받고 있다. 당시 유라시아대륙에서 북아메리카에 도달한 인류가 대형 포유류를 대량 남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잉살륙설의 주요 증거는 우선 적어도 매머드, 아메리칸 마스토돈, 말(현재 신세계에 있는 말은 신대륙발견 후에 유럽에서 들여간 것이다) 등 5속의 멸종시기는 거의 동시였고 아마도 1만8천년전 경이라는 점, 둘째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확실한 문화유물(크로비스 석기)과 멸종동물이 공존한 기간은 1천년도 안된다는 점 등이다.
'대형'포유류만이 멸종한 이유는 수렵 대상으로서 효율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눈에 띄기 쉽고 목표가 뚜렷하며 한마리만 잡아도 많은 식량이 얻어지는 것이다.
![한때 무성한 숲을 이뤘던 아마존 지역^그러나 지금은 무분별한 별채로 인해 메말라 갈라진 땅이 도처에 보인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505/S199505N002_img_01.jpg)
인류의 손에 의한 집단멸종
이제 오늘날의 지구로 돌아와 보자. 현재 지구상에 있는 생물종수는 몇이나 될까. 학자에 따라 다르게 추산되고 있지만, 대략 1백40만종에서 1천만, 3천만종까지의 선이다. 이중 식물이 30%, 박테리아 25%, 곤충이 20%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생물종 대부분이 열대림 지역에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지난 해 유엔환경계획은 지구상에는 3천만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중 약 50만종만이 파악), 향후 30년간 이중 약 4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92년 국제자연보호연합(lUCN)은 포괄적인 연구보고서에서 2000년까지 1백만종의 생물종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멸종의 범위는 과거 지질시대 동안의 집단멸종에 버금가는 규모다. 또한 이는 미국 시카고대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우프가 추정한 자연멸종률(1백년에 약 90종)의 4만배가 넘는 것이다.
과거의 집단멸종과는 달리 현대의 멸종은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서식처 파괴, 인구의 과도한 증가, 외래종의 침입, 환경파괴 그리고 기타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 방대한 '인위적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생물다양성의 쇠퇴는 인간의 생명부앙계를 유지하는 생태계 기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유전 및 진화능력을 축소시킨다.
"고도로 물질교대가 발달한 생물일수록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범위가 좁다. 선사시대 지구환경의 변화는 열대의, 특히 군집을 이루고 살았던 생물들에서 가장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과도한 개발, 편리만 추구하는 소비 문화, 인간 중심주의 사고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 개발하고 파괴한 생태계의 가장 취약한 종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안동대 지질학과 이동진 교수는 지적한다.
환경파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경종은 여러차례 울린 바 있다. 1948년 세계 최초로 자연보전민간기구인 자유보호국제연맹(IUPN)이 탄생한 뒤, 1972년에는 스톡홀름에서 '하나뿐인 지구'라는 주제를 내걸고 인간환경회의가 열렸다.
특히 지난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생물종 다양성 유지협약은 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직접적인 주의환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회의를 계기로 전문용어였던 '생물다양성'이 상식어가 되었다.
세계 1백 65개국이 서명한 이 협약은 1993년 12월 발효됐다.
그 내용은 생물다양성을 지구 생명부양계의 기반으로 간주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각 국가별 지침을 별도로 마련, 실천해나가도록 하고 생물자원의 주체적 이용을 제한했다.
즉 생물다양성 보전에 필요한 조사 및 감시활동(제7조), 현지보전(제8조), 현지외보전(제9조), 생물다양성 구성요소의 지속가능한 이용(제10조)을 위한 대책수립을 규정하고 아울러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으로 연구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유지할 것(제12조)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백54번째로 이 협약에 서명했다. 당시 미국이 끝내 서명을 거부했을 정도로 경제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이었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는 생물다양성 유지협약과 기후협약 등이 채택됐다. 당시 자국 이익을 위해 소극적 태도를 취한 미국 영사관 앞에서 환경보호 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505/S199505N002_img_02.jpg)
멸종의 도미노현상
이밖에 '의제 21'에서도 생물다양성 문제는 언급돼 있다. 의제 21에서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평가, 연구 및 체계적인 관측능력이 보강될 것을 지적하고 과학 및 기술적인 방안의 연구개발을 촉구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협약'과 '의제 21'은 생물다양성 보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각종 연구를 적극 수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리우회의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생물다양성에 대한 경각심은 상당히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생물의 서식분포에 대한 기초자료도 갖추지 못한 최후진국에 속한다. 전북대 생물교육과 이병훈교수의 1994년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된 한반도의 생물상은 동물 1만5천여종, 식물 7천4백20여종 등 모두 2만2천4백20종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들은 연구조사가 잘 안된 분야를 고려할 때 적어도 3배 이상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고유의 생물다양성 확보와 유지를 위한 제반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 국내 생물유전공학 전문가들은 지난 해 2월 국내 생물다양성 보존에 관한 연구개발을 주도할 한국생물다양성 협의회를 결성했다.
"오늘날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은 그 존재가 미처 인식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불행에 직면해 있다. 자연계의 구성원이 소멸된다는 것은 이들 생명체가 지닌 고유한 유전자와 종의 소멸, 생태계의 질서와 다양성의 파괴를 뜻한다.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개발은 이같은 불행을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생물다양성협의회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선언문에서도 나타나 있듯, 생물다양성 연구는 1차적으로 멸종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이 지난 해 6월 발표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가계획안'에 따르면 한국의 동물상은 알려진 93종의 포유동물중 26%, 3백71종의 조류상 중 13%, 담수어류의 19%, 양서류의 60%, 파충류의 45% 정도가 멸종위기에 있거나 희귀종이 돼 있다.
또 조사가 이루어진 3천3백47종의 식물상 중 1백18종이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현재 수준으로 서식지파괴가 계속된다면 국내의 식물종은 매년 1%씩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은 멸종위기에 있거나 멸종의 위협을 받는 종들을 급히 회복, 보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전계획은 장기적인 생태계 보전전략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인간중심적 원인을 방지하는 작업을 포함한다"고 생물다양성협의회 회장인 이인규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말한다.
한 종이 소멸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체집합의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은 생태계내에서 특수한 생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의 손실은 생태계의 진화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다른 종과의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종 보존은 고립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특수한 종 보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많은 종들은 계속 멸종의 길을 걸을 것이다.
유전자원으로서의 경제가치도 중요
생물다양성 보존과 관련,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생물다양성은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경제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이 협약이 논란을 빚은 것도 이 대목 때문이다.
권인혁 생물다양성협의회 부회장은 생물다양성 분야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무한한 영역으로 확대발전 될 가능성이 많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요구하게 되는 생물다양성 분야에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유생물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생물 관련 기술이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생물다양성 협약 가입이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애초부터의 비판이었다. 생물자원 도입시 유전자원보유국에 돈을 내야하고 도입유전자원을 이용한 생명공학의 연구개발이익도 자원보유국과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지역의 생물다양성은 그 지역의 자연 및 인위적인 환경요인의 결과적 산물로, 문화의 고유성과 마찬가지로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는 국내 유전자원에 대한 조사 및 보호활동 강화에 따른 생물자원의 보전을 기할 수 있고 우리나라 고유의 유전자원에 대한 권리주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 생태계관리기술 및 생명공학 관련기술의 개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 원광대 분자생물학과 김병진교수의 지적이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또다른 국제협약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보호를 위한 국제무역협정'(CITES)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93년 CITES 가입으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사향 웅담 등 일부 한약 원료의 수입제한으로 한약재 공급에 제약을 받아 관련산업이 영향받고 있다.
세 국제기구, 즉 세계자원기구(WRI)와 국제자연보호연합(IUCN),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의한 '전지구적인 생물다양성 보전전략'(Global Bio-diversity Strategy)은 세가지 기본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생물다양성을 절약·보호하고 연구하며 지속성있게 활용(Save, Study, and Use Sustainably and Equitably)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지구는 다양한 생물종이 모여사는 거대한 생명체 '가이아'로서의 모습을 유지할지 아니면 인류라는 단일종만이 살아남아 자멸의 길을 걷는 폐허의 땅이 될지 판가름날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 해 경고한 바에 따르면 지금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30년 안에 지구상의 생물종 중 4분의 1이 사라진다고 한다.
멸종에 대한 경각심이 전지구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생물다양성 협약,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식물 보호협약 등 국제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들도 갈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생물에서 종이란 생물분류의 기본단위로 개체 사이에서 교배가 가능한 한 무리의 생물군을 말한다. 생태계는 이러한 종이 다양하게 모여 이루어질수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종다양성이라 한다. 근래 들어서는 종보다 한차원 넓은 개념으로 생물다양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유전자, 종, 생태계의 3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위기의 지구-매년 수만종의 생물 사라져
멸종이란 번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속성인 생물이 더 이상 이를 지속치 못하고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씨가 마르는 것이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다. 일차적으로 멸종은 지구 진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돼 왔다.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난 35억년의 역사 이래 지구환경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생물종의 99%가 멸종했다고 생물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무수히 많은 생물들이 생겨났다가는 사라져간 것이다.
이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멸종은 다윈식 진화론으로 설명됐다. 적자생존과 도태의 원리에 의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사라져 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질학사에는 이와는 다르게 진행된 멸종도 있다. 아직도 그 원인이 신비에 싸여 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집단멸종(mass extinction)이 그것이다. 집단멸종이란 생물의 역사에서 일정 시기에 많은 종의 생물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분류상 아주 다르고 바다 육지 하늘 등 사는 장소도 생활방법도 다른 매우 많은 생물종이 뒤엉켜 지구규모로 일제히 절멸하는 것이다.
지질학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집단멸종은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말과 데본기말, 고생대를 마감한 페름기말, 그리고 중생대의 삼첩기말과 공룡의 멸종으로 끝난 백악기말의 다섯차례를 꼽는다. 이를 5대멸종사건이라 한다.
심할 때는 생물종의 90%가 일제히 멸망한 시기도 있다. '노아의 방주'에 탄 생물만이 무주공산이 된 드넓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쳤다.
이같은 집단적인 멸종은 적자생존이나 도태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으로, 다윈식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들먹이는 사건이다.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하버드대의 고생물학자 스테판 J. 굴드는 조금 다른 이론을 펼쳤다.
단속적 진화론이 그것으로, 집단멸종은 우연의 요소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며 '운좋게' 이 시기를 살아남은 생물종들은 다음 시대에 다시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진화한다는 것이다.
포유류는 공룡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공룡의 전시대에 지구상에 나타났던 '포유류형파충류'가 절멸하지 않았더라면 공룡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에 깔린 굴드의 입장은 진화와 진보를 같은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포유류는 항온성을 가르며 재빠르고 현명한 우수한 생물이므로 공룡의 뒤를 이어 지상의 왕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과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포유류는 공룡과 공존한 약 1억5천만년 간 쥐와 같은 모습에 머무른 채, 공룡에게 압도당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6천5백만년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룡이 없어졌고 그러자마자 포유류는 숨겨온 가능성을 폭발시켰다. '적응방산'을 통해 생태계에서 점할 수 있는 모든 적재적소를 향해 갖가지 종을 분화시킨 것이다. 포유류의 역사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 그 뒤의 세계는 공룡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지금은 여겨지고 있다.
집단멸종이 우연의 요소가 개입된 것이라는 입장에 의거, 그 원인을 밝히는데도 각양각색의 가설이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소행성충돌설과 화산분출설이다. 그 원인이 지구밖에서 온 것이냐 지구 내부로부터 온 것이냐로 나누기도 한다. 어찌됐건 그 원인은 생물종과는 무관한 환경의 변화에 의한 것이었다.
5대멸종보다 규모가 작은 집단멸종은 수십차례에 걸쳐 있어 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 점에서 포유류형 척추동물이 등장하고 인류의 시대가 시작한 뒤에도 집단멸종은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멸종은 생물종의 하나인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1천년 전, 당시 남북 아메리카대륙에 살던 대형포유류의 70-80%에 달하는 종들이 크게 보아 1천-2천년이라는 극히 단기간에 멸종해 버렸다. 희생자 목록에는 검치호(劍齒虎, 칼 모양의 송곳니가 있는 호랑이), 지상성 큰 나무늘보(키가 6m나 되는 종), 거대 비버, 매머드 등이 올라 있다.
그 원인에 대한 여러 설들 중 '과잉살륙설'이 주목받고 있다. 당시 유라시아대륙에서 북아메리카에 도달한 인류가 대형 포유류를 대량 남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잉살륙설의 주요 증거는 우선 적어도 매머드, 아메리칸 마스토돈, 말(현재 신세계에 있는 말은 신대륙발견 후에 유럽에서 들여간 것이다) 등 5속의 멸종시기는 거의 동시였고 아마도 1만8천년전 경이라는 점, 둘째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확실한 문화유물(크로비스 석기)과 멸종동물이 공존한 기간은 1천년도 안된다는 점 등이다.
'대형'포유류만이 멸종한 이유는 수렵 대상으로서 효율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눈에 띄기 쉽고 목표가 뚜렷하며 한마리만 잡아도 많은 식량이 얻어지는 것이다.
![한때 무성한 숲을 이뤘던 아마존 지역^그러나 지금은 무분별한 별채로 인해 메말라 갈라진 땅이 도처에 보인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505/S199505N002_img_01.jpg)
인류의 손에 의한 집단멸종
이제 오늘날의 지구로 돌아와 보자. 현재 지구상에 있는 생물종수는 몇이나 될까. 학자에 따라 다르게 추산되고 있지만, 대략 1백40만종에서 1천만, 3천만종까지의 선이다. 이중 식물이 30%, 박테리아 25%, 곤충이 20%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생물종 대부분이 열대림 지역에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지난 해 유엔환경계획은 지구상에는 3천만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중 약 50만종만이 파악), 향후 30년간 이중 약 4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92년 국제자연보호연합(lUCN)은 포괄적인 연구보고서에서 2000년까지 1백만종의 생물종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멸종의 범위는 과거 지질시대 동안의 집단멸종에 버금가는 규모다. 또한 이는 미국 시카고대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우프가 추정한 자연멸종률(1백년에 약 90종)의 4만배가 넘는 것이다.
과거의 집단멸종과는 달리 현대의 멸종은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서식처 파괴, 인구의 과도한 증가, 외래종의 침입, 환경파괴 그리고 기타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 방대한 '인위적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생물다양성의 쇠퇴는 인간의 생명부앙계를 유지하는 생태계 기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유전 및 진화능력을 축소시킨다.
"고도로 물질교대가 발달한 생물일수록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범위가 좁다. 선사시대 지구환경의 변화는 열대의, 특히 군집을 이루고 살았던 생물들에서 가장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과도한 개발, 편리만 추구하는 소비 문화, 인간 중심주의 사고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 개발하고 파괴한 생태계의 가장 취약한 종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안동대 지질학과 이동진 교수는 지적한다.
환경파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경종은 여러차례 울린 바 있다. 1948년 세계 최초로 자연보전민간기구인 자유보호국제연맹(IUPN)이 탄생한 뒤, 1972년에는 스톡홀름에서 '하나뿐인 지구'라는 주제를 내걸고 인간환경회의가 열렸다.
특히 지난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생물종 다양성 유지협약은 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직접적인 주의환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회의를 계기로 전문용어였던 '생물다양성'이 상식어가 되었다.
세계 1백 65개국이 서명한 이 협약은 1993년 12월 발효됐다.
그 내용은 생물다양성을 지구 생명부양계의 기반으로 간주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각 국가별 지침을 별도로 마련, 실천해나가도록 하고 생물자원의 주체적 이용을 제한했다.
즉 생물다양성 보전에 필요한 조사 및 감시활동(제7조), 현지보전(제8조), 현지외보전(제9조), 생물다양성 구성요소의 지속가능한 이용(제10조)을 위한 대책수립을 규정하고 아울러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으로 연구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유지할 것(제12조)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백54번째로 이 협약에 서명했다. 당시 미국이 끝내 서명을 거부했을 정도로 경제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이었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는 생물다양성 유지협약과 기후협약 등이 채택됐다. 당시 자국 이익을 위해 소극적 태도를 취한 미국 영사관 앞에서 환경보호 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505/S199505N002_img_02.jpg)
멸종의 도미노현상
이밖에 '의제 21'에서도 생물다양성 문제는 언급돼 있다. 의제 21에서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평가, 연구 및 체계적인 관측능력이 보강될 것을 지적하고 과학 및 기술적인 방안의 연구개발을 촉구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협약'과 '의제 21'은 생물다양성 보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각종 연구를 적극 수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리우회의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생물다양성에 대한 경각심은 상당히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생물의 서식분포에 대한 기초자료도 갖추지 못한 최후진국에 속한다. 전북대 생물교육과 이병훈교수의 1994년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된 한반도의 생물상은 동물 1만5천여종, 식물 7천4백20여종 등 모두 2만2천4백20종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들은 연구조사가 잘 안된 분야를 고려할 때 적어도 3배 이상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고유의 생물다양성 확보와 유지를 위한 제반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 국내 생물유전공학 전문가들은 지난 해 2월 국내 생물다양성 보존에 관한 연구개발을 주도할 한국생물다양성 협의회를 결성했다.
"오늘날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은 그 존재가 미처 인식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불행에 직면해 있다. 자연계의 구성원이 소멸된다는 것은 이들 생명체가 지닌 고유한 유전자와 종의 소멸, 생태계의 질서와 다양성의 파괴를 뜻한다.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개발은 이같은 불행을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생물다양성협의회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선언문에서도 나타나 있듯, 생물다양성 연구는 1차적으로 멸종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이 지난 해 6월 발표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가계획안'에 따르면 한국의 동물상은 알려진 93종의 포유동물중 26%, 3백71종의 조류상 중 13%, 담수어류의 19%, 양서류의 60%, 파충류의 45% 정도가 멸종위기에 있거나 희귀종이 돼 있다.
또 조사가 이루어진 3천3백47종의 식물상 중 1백18종이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현재 수준으로 서식지파괴가 계속된다면 국내의 식물종은 매년 1%씩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은 멸종위기에 있거나 멸종의 위협을 받는 종들을 급히 회복, 보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전계획은 장기적인 생태계 보전전략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인간중심적 원인을 방지하는 작업을 포함한다"고 생물다양성협의회 회장인 이인규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말한다.
한 종이 소멸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체집합의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은 생태계내에서 특수한 생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의 손실은 생태계의 진화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다른 종과의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종 보존은 고립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특수한 종 보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많은 종들은 계속 멸종의 길을 걸을 것이다.
유전자원으로서의 경제가치도 중요
생물다양성 보존과 관련,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생물다양성은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경제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이 협약이 논란을 빚은 것도 이 대목 때문이다.
권인혁 생물다양성협의회 부회장은 생물다양성 분야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무한한 영역으로 확대발전 될 가능성이 많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요구하게 되는 생물다양성 분야에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유생물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생물 관련 기술이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생물다양성 협약 가입이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애초부터의 비판이었다. 생물자원 도입시 유전자원보유국에 돈을 내야하고 도입유전자원을 이용한 생명공학의 연구개발이익도 자원보유국과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지역의 생물다양성은 그 지역의 자연 및 인위적인 환경요인의 결과적 산물로, 문화의 고유성과 마찬가지로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는 국내 유전자원에 대한 조사 및 보호활동 강화에 따른 생물자원의 보전을 기할 수 있고 우리나라 고유의 유전자원에 대한 권리주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 생태계관리기술 및 생명공학 관련기술의 개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 원광대 분자생물학과 김병진교수의 지적이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또다른 국제협약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보호를 위한 국제무역협정'(CITES)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93년 CITES 가입으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사향 웅담 등 일부 한약 원료의 수입제한으로 한약재 공급에 제약을 받아 관련산업이 영향받고 있다.
세 국제기구, 즉 세계자원기구(WRI)와 국제자연보호연합(IUCN),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의한 '전지구적인 생물다양성 보전전략'(Global Bio-diversity Strategy)은 세가지 기본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생물다양성을 절약·보호하고 연구하며 지속성있게 활용(Save, Study, and Use Sustainably and Equitably)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지구는 다양한 생물종이 모여사는 거대한 생명체 '가이아'로서의 모습을 유지할지 아니면 인류라는 단일종만이 살아남아 자멸의 길을 걷는 폐허의 땅이 될지 판가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