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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꿈 「재택근무」

직장생활 회사중심에서 가정중심으로

출퇴근전쟁에 시달리지 않고 안방에서 컴퓨터통신으로 회사업무를 볼 수 있는 재택근무제도를 채택하는 기업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집에서도 업무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반론도 만만찮은데….

이명희씨의 출근길은 불과 30초도 채 걸리지 않는 부엌과 거실 사이. 남편 출근 준비를 도와주고 국민학교 1학년인 큰 아이까지 학교에 가면 그 다음부터는 집이 그의 사무실이 된다.

어지러진 집안을 대충 치우고 설거지를 하면 상오 9시 30분 쯤된다. 출근하기 위해 외출복을 갈아 입거나 화장을 할 필요도 없다. 남들이 '지옥철'이라 부르는 지하철에 시달리며 사무실에 도착,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뒤숭숭한 기분을 겨우 추스리는 시간에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국내 금융업계에선 처음으로 한덕생명이 지난해 가을 실시한 재택근무제의 첫 직원인 이명희씨. 회사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는 그는 일주일에 한번 회사에 나가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되는 부분을 상의하며 완성된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작업중 발생하는 간단한 어려움이나 프로그램 수정 등은 굳이 회사에 나가지 않고서도 회사와 교신이 가능하지만 다소 복잡한 문제는 같은 부서 직원들 얼굴도 볼 겸 직접 회사에 나간다. 그것도 복잡한 출퇴근시간을 피해 주로 낮시간을 이용한다.

휴식시간인 점심을 이용해 미뤄 놓았던 집안 일을 하고 그날의 기분에 맞춰 식사를 한 후 남편이 돌아올 시간쯤에 일손을 놓는다. 하지만 낮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집안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느긋이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하오 9시부터 다시 밀린 일을 하기도 한다.
 


전화 컴퓨터 팩시밀리 등 첨단 기기를 이용, 회사일을 집에서 처리하므로 출퇴근 교통지옥에서 해방된다.
 

전자사서함으로 연락

남들이 출근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 아침이면 아내와 함께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아파트 주변에 있는 공원에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한국듀폰의 유봉하 차장. 그래서 가끔은 이웃 사람들로부터 "저집 아빠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하며 반상회에 참석한 동네 아주머니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유봉하 차장은 운동후 느긋이 아침식사를 한 다음 8시반이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전자우편함을 열면 서울 본사, 이천공장을 비롯하여 듀폰 본사가 있는 미국과 그 밖의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보내온 전자편지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하고 필요한 연락을 취하고 나면 오전 10시경이 된다.

10시 이후에는 시장 조사를 하거나 직접 거래처를 방문, 마케팅 상담을 한다. 재택근무가 도입되기 전에는 일단 회사로 출근, 그 곳에서부터 멀리 있는 고객사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으나 이제는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되어 더 많은 고객들과 만날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업무 한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2년째 재택근무 경력을 자랑하는 유차장이 고객사를 방문한 후 집에 돌아와 대강 정리를 하고 전자우편으로 국내 및 국외의 상사들에게 보고 하느라면 어느덧 9시 뉴스가 시작된다. 그래서 저녁시간은 예전처럼 늦어지기 마련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2,3시간을 허비한 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기혼 여성에 적합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안방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정보 사회의 새로운 업무형태인 재택근무.

출근 전쟁에 시달리고 상관 눈치보며 사무실에 갇혀 지내는 직장인들이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꿈이다. 특히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요즈음, 일과 가정을 병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혼여성들의 희망사항인 재택근무는 최근 한국통신연구개발단이 '재택근무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현재 국내에서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한국듀폰을 비롯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럭키금성 계열의 정보처리용역회사인 STM, 보험회사인 한덕생명, 컴퓨터 회사인 한국IBM 등이 대표적이다.

90년 4월 이 제도를 국내에서 최초로 실시 한 한국듀폰은 처음에는 영업사원 4명이 회사가 제공한 온라인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집에서 일을 처리했으나 최근에는 유봉하 차장을 포함 2명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기혼여성이 임신을 이유로 재택근무를 신청, 허가 한 STM은 그후 3개월동안 시범적으로 운영하다가 직원들의 반응이 좋자 5월부터는 아예 이 제도를 사규로 정해 시행하고 있다. 현재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은 모두 15명이며 희망자 가운데 업무의 성격이 비교적 독립적 이어서 회사에 나오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사원만 골라 실시 중이다.

STM 관계자는 "재택근무로 1인당 네트워크 구성방법에 따라 매월 20만~60만원의 경비가 소요되지만 제반비용이 크게 줄어 오히려 매월 1인당 10만원 정도씩 경비가 줄어 들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한 한덕생명은 전문지식과 경험은 많지만 임신, 아이 돌보기, 집안일 등으로 사무실 근무가 어려운 기혼여성들을 대상으로 신규업무 개발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업무를 맡기고 있다. 애초 3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6명으로 늘어날만큼 근무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혼여성에 적합
 

공중전화망을 이용

88년 8월 일찍이 재택근무시스템을 도입한 한국전자통신연구소와 지난 7월 도입한 한국통신 연구개발단의 재택근무제는 한국 듀폰이나 STM, 한덕생명과는 약간 다른 형태다. 본격적인 재택근무제라기 보다는 연구소 특성상 집에 가서도 정보를 필요로 하는 연구원들을 위해 가정에서도 회사 네트워크와 연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국통신연구개발단이 개발한 재택근무시스템은 가정에서도 회사 컴퓨터를 통해 자료 검색이나 업무처리 등 회사 일을 할 수 있도록 회사의 근거리통신망(LAN)에 연결된 각종 국제학술정보망인 인터네트(Internet)와 비트네트(BITNET) 등 국내외 1백50여개의 컴퓨터 정보망을 이용, 정보 및 자료교환이 가능하다.

연구원 30명을 대상으로 올 12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될 한국통신의 재택근무시스템은 집안의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회사의 컴퓨터로 전화를 건 다음 일단 전화를 끊으면 회사의 컴퓨터가 그를 자동으로 호출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작동, 사용자는 비싼 통화 요금을 물 필요없이 작업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

현재 일부 기업에서 실시 중인 재택근무시스템이 전용회선을 주로 이용하는데 반해 한국 통신의 재택근무시스템은 공중전화망을 이용하면서 이용자의 통신료 부담을 없애주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공중전화망을 이용한 재택근무시스템의 일반화를 유도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IBM 또한 본격적인 재택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해 영업본부장급 이상 중역간부들의 집에 단말기를 설치해 본사 컴퓨터와 연결시켜 퇴근뒤 또는 출근이 어려운 때도 회사 일을 보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 실험중인 「위성오피스」

매일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며 가족과 어울릴 시간도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일중독증' 환자가 많은 일본에서도 이의 해결방안으로 재택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 통산성은 지난해 신칸센 통근과 재택 근무를 잇는 형태로 1주일에 2일만 출근하고 나머지 4일을 가족과 지내면서 직장 분위기를 연출해 생활패턴을 기존의 회사중심에서 가정중심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통산성은 도쿄 집중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분산형 오피스실험으로 집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한 '위성 오피스', 단기체재형 '리조트 오피스'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실험은 지난해 7월부터 약 9개월간 도쿄인근 도시의 2층짜리 단독주택 2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6가족이 2,3개월씩 교대로 살게 될 이 주택은 보통 가정집과 같은 구조지만 2층에 있는 방 한칸이 사무실로 꾸며 졌다. 이 사무실에는 TV 전화 팩시밀리 사무자동화(0A) 기기 등이 갖춰져 회사와 업무환경에 있어서 격차가 나지 않는다. 실험 대상이 될 직종은 기획 설계 소프트웨어개발 등의 분야다.

독일IBM도 지난해 사무실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강제조항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독일IBM 직원들은 업무 조정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회사에 출근 한다.

「직장」과 「가정」, 분리 어렵다

회사측은 재택근무를 위해 컴퓨터 구입 및 배선비용 외에 전기요금 등 모든 업무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70명의 직원에게 시험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낸 뒤 시행된 재택근무로 독일IBM은 새로운 비용을 부담하게 됐지만 직원들이 자기 책임 아래 업무를 처리하게 되므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지에서는 80년대 초반 각광 받던 재택근무가 최근 들어 시들해지고 있는 추세다. 그것은 직장과 가정이 분리되지 않는데서 오는 스트레스 및 소속감의 상실 등 부작용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동양맥주가 89년 9월 영업직 사원 4명의 집에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재택 근무를 실시했으나 6개월만에 중단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람끼리 얼굴을 맞대야 일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고정 관념을 극복하기 어려웠고 사원들도 '거래처에 나가서도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한다' '회사와 동료들로부터 고립된다'고 불만을 호소해와 일단 중지하게 됐다"고 동양맥주 재택근무 관계자는 밝힌다.

대덕의 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들도 "집에 있다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아 단말기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도 "집에 와 드러누워도 단말기만 보면 하던 일이 생각나 잠을 설친다"고 푸념한다.

재택근무제는 출퇴근 시간의 혼잡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에너지 절약, 전문 여성인력 활용, 사무실 비용 절감 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새로운 형태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회사 일을 집에까지 싸들고 오는 셈이 되고 노동통제가 강화되어 노동자의 권리와 단결이 위협받는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계약직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한 기혼여성은 "집안 일과 고소득의 일을 병행할 수 있어 좋지만 불리한 계약조건을 강요해도 일거리가 끊어질 까봐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아직까지는 상사의 눈에 띄어야 승진 기회가 넓다는 회사 중심의 사고방식이 남성들로부터 '회사로부터의 고립감' 등의 이유로 재택근무를 외면하게 만든다.

미국의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일찍이 '제3의 물결'이라는 저서에서 예견했듯이 재택근무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에 따른 교통난과 회사 제반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정보사회의 새로운 근무형태이자 샐러리맨의 꿈이기도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 부족 및 인간관계 결핍, 정보교환 부족 등을 제기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이제 막 시작된 재택근무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연구 및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199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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