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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뭔가 다른데가 있기 때문이죠.

작년 2월에 문을 연 '휴먼컴퓨터'는 아직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다. 사실 그동안의 영업실적이 1백20만원에 불과하므로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컴퓨터업계에서는 이 회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인적 구성부터 자금원까지 여러 면에서 기이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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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를 대표하는 정철사장(30)은 스스로를 경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할분담을 하다보니 어쩌다 대표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PC를 수출한다고 해서 국내의 정보산업 수준을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국내보다는 해외의 소프트웨어를 경쟁상대로 삼고 있어요. 1차 목표는 일본입니다."

사실 우리와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문화적으로 꽤 가까운 나라다. 물론 같은 한자문화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도 양국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예컨대 보기 좋은 한자체를 소프트웨어에 담는 일은 두 나라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의 공동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앞으로 5년간은 한자체 개발에만 전념할 작정이에요. 글자체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활용까지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가 개발한 한자체는 전부 일본에 수출하기로 올초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왜 하필 한자체 개발이냐"고 묻자 그는 "문자는 곧 문화입니다. 그런데 각종 인쇄물에 사용하는 한글체도 일본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주었어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간지'는 우리가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라고 정사장은 대답했다.

'휴먼'의 사무실은 온통 한자체로 꾸며져 있었다. 책상마다 놓여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 위에도 각종 한자체들이 넘실댔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희한한 한자체도 개중에는 많이 있었다.

그는 79년 서울 중동고를 나와 그해 서울대 자연계열에 입학했다. 자연계열을 지원한 당초 이유는 동물학과에 들어가 생화학을 전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은 계산통계학과를 택했다. 부모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정씨는 과학원 전산학과에 진학, 학문의 길을 이어갔다. 여기서 그는 시스템 엔지니어링 전문가인 전길남교수 밑에서 석사 2년 박사 4년 과정을 마친다. 분산처리 시스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지난 해 2월 말이었다.

"지도교수인 전박사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20년, 미국에서 18년간을 생활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공학, 즉 시스템엔지니어링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귀국했어요. 사실 이 분야는 지금도 우리의 가장 낙후된 분야중 하나지요. 제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분산처리시스템'은 컴퓨터 여러 대를 가지고 작업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그는 '원천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기 위해 '휴먼'을 창업했다.

처음 '휴먼'은 12명의 인원으로 출발했다. 대개가 과학원 선후배였는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기술담당 1부 이사로 있는 허진호(30)씨와 정사장, 두명이었다. 기술담당 2부 이상인 임순범씨는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는데, 그는 '휴먼'의 첫 사업인 문자처리를 전공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6개월 만에 식구가 두배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창업한지 1년쯤 되는 요즘은 총 48명이 일하고 있어요."

정사장은 새 '식구'를 맞아들일 때 성실성과 의욕을 주로 본다고 한다. 개인적인 능력은 우선 순위에서 거의 꼴찌에 가깝다.

역삼동에 위치한 '휴먼'은 삼영빌딩 세층을 사용하고 있다. 각 층은 80평 정도.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두가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금방 띄었다. 정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퇴근시간도 따로 없다. 아무 때고 나오는 시간이 출근시간이고 나가는 시간이 퇴근시간이 되는데, 대부분의 '휴먼'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한다고 한다.

"개업한 이후 밤 12시 이전에 귀가한 경우가 열번이 채 안돼요. 집에서 일요일을 보낸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구요. 회사내에 침대를 마련해 놓았는데 거기서 지낸 날이 더 많아요."

'휴먼'의 창업 자본금은 5억원. 여느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지금까지 쓴 돈만도 18억원이 넘는다. 1천 만원대의 기기들을 다수 구입하다 보니 그 정도 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이렇다할 매출 수입도 없지만 자본금도 곧 23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큰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정보산업연합회 회장이며 삼보그룹 회장인 이용태박사로부터 전액 지원받았어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 보라면서 아무런 조건없이 거금을 제공해 주었지요.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갈지 몰라도 그게 그분의 특징입니다. 일전에 TV의 대담프로에 나온 이박사는 '휴먼'같은 회사를 1백개 만들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휴먼'은 삼보컴퓨터의 자(子)회사인가. 돈을 계속 투자만 하는 기업인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묵계가 있을까. 무슨 인척관계라도 있는걸까. 왜 삼보의 자체 연구팀에 편입시키지 않았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좀 특이한 회사지요. 한국의 정보산업은 선진외국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으므로 이를 따라 잡으려면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안돼요. 이 점을 인식한 이박사가 젊은 엔지니어를 돕기로 한 것이지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박사와 저는 아무런 인척관계가 아니며, '휴먼'이 개발한 신기술은 '삼보'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점입니다. 웬만한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이용태박사는 한국의 정보산업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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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지망생이었으나

이용태박사와의 인연은 그가 과학원에 들어온 뒤에 맺어졌다. 그의 지도교수와 이박사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자연히 얼굴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사장이 45페이지에 달하는 사업계획서를 이박사에게 내밀면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다.

"이박사는 우리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제가 찾아간 것입니다. 한번에 1~2시간씩 3번의 면담이 있은 후에 지원을 약속했지요."

'큐닉스'돌풍을 몰고 왔던 이범천박사의 과학원 10년 후배인 그는 '큐닉스'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

"이제는 후배들이 저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꼭 기술개발에 성공해서 후배들에게 과감성 도전성을 갖게 해 줘야 할텐데…. 그들에게 자극을 주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원래 그는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다. 은막의 주역을 꿈꾸다가 황당하게도 컴퓨터전문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영화에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다.

한자체 개발이 끝나면 '휴먼'은 멀티미디어(multimedia)에 도전해 볼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문자처리는 이미 꽤 오래 전에 시작된 '쫓아가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는 태동하는 기술, 다시 말해 우리가 동참하는 기술이죠. 오디오의 소리와 비디오의 이미지를 총괄하는 차세대 컴퓨터로 알려진 멀티미디어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 봐야지요."

앞으로 2년 동안은 한 푼도 벌지않고 기술개발에 전념하겠다는 정사장은 '휴먼'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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