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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새, 바람피운 '아내'새끼 박대

요지경 동물세계

부모가 함께 자식을 부양하는 새들의 세계에도 친자와 남의 자식 사이 차별이 있다. 멧새는 오쟁이 진정도에 반비례하여 자식을 먹인다.

생물이라면 어느 종이나 새끼를 기르는 데 들이는 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큰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감수한다.

바다코끼리(elephant seal) 같은 경우 몸무게가 6백50㎏ 정도 나가는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새끼 체중이 약 1백㎏에 도달할 때까지 모유로 키우게 되는데, 새끼 몸무게가 1㎏ 정도 늘 때마다 어미의 체중은 2㎏씩 빠지게 된다고 한다. 어미의 평소 몸무게의 30%인 2백㎏ 정도가 5주 동안 빠지게 된다. 뼈만 남겨놓고 자신의 살과 피를 새끼에게 모두 투자하는 셈이다.

바다코끼리는 어미가 주로 새끼를 키우게 되지만 어미와 아비가 함께 새끼를 부양하는 동물 역시 그 노력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다.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에게 교대로 먹이를 물어다 주는 제비. 한번쯤 툇마루에 누워 제비가 몇 번이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지 헤아려본 사람이라면 제비의 헌신적 노력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제 새끼라면 어느 놈이 귀엽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이런 내리사랑 측면에서 바라보면 자신은 1백원짜리 하나둘 가지고 쩔쩔매지만 지나치게 비싼 신발 사달라고 투정하는 자식에겐 무리임을 알면서도 덜컥 사주었다던 한 친구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런데 만약 그 새끼가 자기 새끼가 아니라면 그 때에도 똑같이 헌신적일까. 어미야 자기가 직접 낳으니 확실히 자기 새끼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수컷은 배우자가 낳은 새끼가 자기 새끼가 확실한지 아닌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런 연유로 생물의 세계에서는 자기 구역이나 짝 근처에 다른 수컷이 얼씬도 못하게 함으로써 확실히 자신이 아버지가 될 가능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여의치 못했던 아비가 새끼가 자기 핏줄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경우, 그 때에도 수컷은 땀흘려 새끼들을 부양하려 할까?
 

제비. 생식기간 동안 암컷이 외도를 많이 했을수록 수컷은 새끼보호에 덜 적극적이게 된다.


열심히 키운 자식이 남의 자식이었다?

지난 2월 21일자 조간신문에는 친자식인 줄 알고 호적에 올려 키웠던 아이가 아내의 불륜으로 태어난 남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2년 만에 알게 되어 발생한 사건이 실려 있었다. 그 남편은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1년이 다 되도록 자기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고 아내의 행실에 대한 소문도 있고 해서 혈액검사를 해보니 그 아들이 자신의 친생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오쟁이졌다는 사실을 알 때, 더구나 오쟁이만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과 딸이 사실은 남의 아들과 딸임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혹 의심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과연 남자들이 밖에서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까.

땅에 둥지를 틀고 사는 참새목 멧새과의 새(Emberiza schoeniclus)가 있다. 우리나라의 검은머리쑥새와 유사한 종이다. 이 멧새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새들과는 다른 특징 한가지가 있다. 우리가 아는 보통 새들은 교미기간에 한번 교미하여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하면 자랄 때까지 어미아비가 교대로 먹여서 새끼가 다 자라면 한 철이 끝나는 게 보통인데, 이 멧새는 한 철에 연속하여 두번 번식을 한다.

즉 두번 가정을 꾸민다는 말이다. 첫번째 새끼가 다 자라면 다시 교미하여 알을 낳고 부화시키며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한번 더 반복하는 것이다. 두번째 짝짓기를 할 때는 원래의 짝과 가정을 꾸밀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원래의 짝과 다시 보금자리를 튼다. 금슬이 좋아서 그렇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 멧새는 다른 많은 종류의 새에서 알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암컷은 자기 짝 이외의 다른 수컷하고 교미를 한다. 수컷이 자신의 보금자리와 영역과 암컷을 지키려고 애쓴다고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수컷도 짝 이외의 다른 암컷과 교미한다.

1994년 '네이처'지에 실린 바에 따르면  학자들이 2백16마리의 새끼를 포함하는 58쌍의 멧새 가족으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DNA지문법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새끼들의 55% 정도가 그 영역을 지배하며 새끼를 돌보는 수컷의 새끼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한배 새끼중 진짜 자기 새끼 비율은 각각의 한배새끼마다 다양했다. 즉 첫번째 가정을 꾸민 후 알에서 깨어난 새끼중 자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새끼의 비율이 각각의 쌍마다 달랐을 뿐만 아니라 두번째 다시 짝을 지은 후 낳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 중 자기 새끼의 비율도 역시 처음에 보금자리를 꾸민 뒤 얻은 새끼속의 자기 친자의 비율과 달랐다.

이런 비율상의 차이가 생기는 까닭이 무엇이든, 과학자들에게는 수컷이 자기 핏줄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새끼들을 먹이는 정도가 어떠한지 알아볼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특별히 한번의 교미기간에 2번 다 같은 짝과 번식한 13쌍의 한배새끼를 조사해보았더니 수컷이 새끼를 먹이는 속도가 친자가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변화가 있었다.

혹 독자들은 58쌍의 멧새에서 친자의 비율과 먹이를 주는 양상을 비교하면 되지 뭣하러 2번 연속하여 같은 짝과 번식한 13쌍의 한배새끼를 조사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이는 수컷이 암컷을 지키는 능력이나 새끼를 돌보는 능력에 있어서 그 놈만 특이하게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변인을 통제하기 위하여 그런 쌍을 선택해야만 한다.

교미기 암컷행동에 따라 자식 부양태도 달라져
 

검은머리쑥새. 여느 새들처럼 암컷과 수컷이 보금자리를 꾸미고 새끼들을 함께 키운다.


비록 수컷이 어느 새끼가 자기의 진짜 새끼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해도 한배새끼를 먹이는데 있어서 친자의 비율이 적은 수컷은 명확히 새끼를 덜 먹였고, 자기새끼의 비율이 높은 한배새끼를 가진 아비는 더 많은 먹이를 열심히 갖다 먹였다. 오쟁이 진 정도에 반비례하여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것이다.

물론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기가 낳은 알에서 나온 새끼임을 잘 알고 있는 어미는 새끼를 먹이는데 있어서 지금의 배우자 핏줄을 많이 물려받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전혀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유전적 관계가 없는 새끼들이 결코 먹이를 덜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 새끼들을 차별하여 먹이를 덜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떻게 수컷이 자기 유전자를 가진 새끼가 많은지 적은지를 판단할까. 유행했던 우스갯소리 중 '척 보면 압니다'라는 말이 있다. 멧새도 인간처럼 뛰어난 직감을 가지는 것일까.

만약 멧새가 어떤 유전적 징표에 의해 각 새끼들의 친자여부를 알아챌 수 있다면 유전성이 없는 새끼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적 관계가 전혀 없는 새끼도 여전히 먹이를 준다고 하므로 유전적 징표 등의 표식으로 추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과학자들은 수컷이 암컷의 수란기간 동안 미래 새끼들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을 추정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그 기간 동안 암컷과 보낸 시간 등과 같은 행동적 힌트를 사용하여 추정가능하며 그에 따라 훗날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데 들이는 노력의 정도가 달라진 다는 것이다.

실제로 윗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바위종다리의 일종(Prunella modularis)과 제비 (Hirundo rustica)에서 발견되었다. 1991년 '동물행동'지에 실린 바에 따르면 일처다부형인 바위종다리는 그들의 새끼를 먹이는 비율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느 수컷이 지배적인 수컷이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컷과 암컷의 실질적 교미 참여 정도를 참작하여 정한다고 한다.

'봐, 발가락이 닮았잖아'

또한 1992년 '동물행동'지에는 일부일처형 제비에서 수컷이 새끼들을 보호하는데 자신의 피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반영한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박제된 작은 올빼미 포식자를 가지고한 실험에 의하면, 실험적으로 제비 암컷의 생식기간 동안 외도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수컷을 일시적으로 붙잡아둔 경우, 이 수컷은 그들의 새끼를 보호하는데 덜 적극적이고 경고음도 덜 발했다고 한다. 새라고 우습게 여기기 쉬우나 그들은 결코 아무 생각 없는 미물이 아닌 것같다.

멧새를 연구한 학자는 "나중에 자신의 확실한 핏줄을 얻을 확률이 더 높다면 현재의 한배 새끼보다는 다음번 한배새끼에 투자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기에 친자의 비율이 적으면 오쟁이진 수멧새가 자식에게 투자하는 양도 적게 된다"고 설명한다.

의심은 가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멧새는 보금자리는 망가뜨리고 싶지 않기에 "봐, 발가락이 닮았잖아'라며 어떻게든 의혹을 삭여보려 노력하며 새끼들 부양에 애써본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의 핏줄이라고 여길 때보다는 신바람도 덜 나고 일할 맛도 덜하니 자식을 먹이는 양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까.

앞에 인용한 사건에 따르면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실은 아내의 부정으로 생긴 남의 아들임을 안 남편이 아내를 간통혐의로 고소한 뒤 곧바로 이혼했으며 친생부인(親生否認) 청구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친생부인은 가족관계의 안정을 위해 마련된 규정에 부닥쳐 기각되었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에게 있어서 부정(父情)과 핏줄의 진화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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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현 생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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