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식물은 1백20종 내외. 여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사전을 찾아봐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게 있다. 또 잘못 번역된 것도 있다. 필자가 직접 이스라엘 현지에서 고증하고 촬영한 성서 속의 대표적 식물들을 소개한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식물 종은 대략 1백10-1백25종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15종의 차이는 나라에 따라 또는 학자에 따라 지역적인 차이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뿐만 아니라 나리꽃이나 상수리나무같이 어느 식물종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서 종수에 차가 생기기도 했다.
조가 중국에서는 피, 일본에서는 독보리로
마태복음 13장24절에는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그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다 가라지를 뿌리고 물러갔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가라지란 잡초는 조를 재배하던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귀찮은 잡초였다. 같은 말을 중국에서는 피라고 옮겼고, 일본과 영어권에서는 독보리로 번역했다. 여기에서같은 한 종의 식물이 가라지 피 독보리 및 밭토끼꽃 등 4종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서는 밀의 질을 떨어뜨리는 독밀을 지적했으나 환경에 알맞는 잡초로 대치한 결과 식물명에 변동이 생겼다. 이와 같이 참뜻을 받아들인 것도 있으나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성서에는 키가 매우 큰 나무들이 등장한다. 바빌론의 네브카드네자르 왕이 꿈에서 본 나무(다니엘서 4:11)는 "키가 하늘까지 닿았고 땅끝 어디에서나 바라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므레에서 자라는 참나무는 아브라함 시절부터 자라고 있는 나무이며 이스라엘의 헤브론에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이 나무라고 한다.
당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 건축재로 애용한 향백나무 지중해소나무 및 방백목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향백나무
이 나무는 소나무과에 딸린 상록교목이며 레바논 산맥 가운데 해발 1천5백-1천9백m 지대의 돌밭에서 자라고 있다. 수령은 2천-3천년 정도이며 당시 귀중한 건축재 및 선박재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연구결과에서 나타났다.
역대기(하) 2장3절의 "당신은 본인의 선친께서 궁을 지으실 때 향백재목을 보내 주셨습니다"에서 이 나무가 건축재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서에 들어 있는 향백나무는 송백 백향목 삼목 및 잣나무 등으로 옮겨졌으며 성서에 70여회 정도 나타난다.
향백이란 목재에 향기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3천년 전 니네베 궁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나무 조각이 영국박물관에 보관돼 있는데, 불에 태우면 아직도 향기를 발산한다고 한다.
이를 중국에서는 향백수라고 했고, 일본에서는 향백, 우리나라에서는 백향목이라고 했으나 중국과 일본역(譯)이 적당해 보인다. 높이 30m, 지름 2m 이상 자라는 나무로서 재질이 좋고 향기가 있을 뿐 아니라 수형이 아름답기 때문에 식물계의 왕자로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류
지중해소나무와 솔잣나무 등이 비교적 흔히 자라고 있다. 성서에서 지중해 소나무는 올리브 또는 들올리브 등으로 옮겨진 곳이 6곳 있는데, 전연 다른 식물이라고 본다. 지중해소나 무를 올리브나무로 혼돈한 것은 이 나무의 헤브루명이 기름나무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나무의 송진과 올리브의 기름이 같은 뜻으로 해석됐다고 본다.
지중해소나무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한 국도변에 많이 조림돼 있다. 건조한 기후에 강하고 생장이 빠르기 때문에 남쪽 네게브의 녹화수종으로 장려되고 있다. 높이 20m 내외로 자라고 수령은 1백-1백50년에 달하며 잎이 2개씩 달린다. 가지는 위 부분에서는 위로 향하고 밑에서는 수평으로 퍼지며 열매는 2년만에 성숙한다.
솔잣나무
이 나무는 잎이 2개씩 달리고 종자가 잣같이 커서 먹을 수 있다. 소나무에 잣이 달린다는 뜻에서 솔잣나무라고 불렀다. 성경에는 한번만 나타나는데, 헤브루명 티르자를 그대로 사용해 디르사라고 옮긴 곳이 있다. 이를 삼나무 삼목 상수리 백목 및 가시나무 등으로 옮긴 것을 보면 갈피를 잡지 못한 것 같이 느껴진다.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해안에 솔잣나무의 숲이 무성했고 에게해 해안과 레바논에도 분포했다. 갈릴리의 해안 및 갈멜산의 솔잣나무숲은 지난 날 자라던 숲의 흔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옛날에는 다량의 종자를 수출했다.
높이가 30m에 달하고 수형이 우산처럼 발달해서 우산같은 소나무란 뜻을 지닌 산송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중에 우산소나무가 있어서 혼돈이 우려된다. 화산재로 덮인 폼페이의 옛터를 발굴할 때 꿀병에 쟁인 솔잣이 나왔다는 보고가 있다. 일찍부터 식용으로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방백목
이 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침엽수이며 높이 25m 정도까지 자라고 가지가 위로 향하기 때문에 나무 전체가 촛대같이 된다. 그러나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변종도 있다. 중국에서 자라는 백목과 비슷하지만, 가지의 단면에 모가 나기 때문에 방백목으로 구분한다. 당시에는 이 나무가 많이 자랐다는 사실이 화분분석 결과 나타났으며 건축재로 사용했음이 출토품에서 밝혀졌다. 헤브루명으로 버로시라고 불렀으며 성경에 30여회 나타난다.
레바논 지역에서 수입한 스닐향나무와 스닐젓나무도 겉모양이 방백목과 비슷하기 때문에 당시 지역에서는 모두 버로시라고 불렀다. 따라서 성서에 나타난 젓나무 잣나무 소나무 및 방백나무 등으로 옮겨진 나무는 이상의 3종이 섞여 있다고 본다.
은백양
창세기(30:37)에 나타난 미루나무는 오늘의 미루나무가 아니다. 오늘의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를 말한다. 당시 지역에서 자란 미루나무는 은백양나무다. 은백양은 수피가 희고 잎의 뒷면에 솜같은 털이 밀생해 나무 전체가 희게 보인다. 따라서 은백양이란 이름이 생겼다.
중동지역이 고향이며 수피에 살리실산과 포플린이 들어 있으므로 과거에는 약용으로 했으나 근래에는 관상용과 용재수로 심고 있다. 수꽃과 암꽃이 딴 그루에 달린다.
6·25 동란중 수원농업생명과학대학 내의 수목원에서 사시나무와의 사이에서 잡종으로 생긴 은사시나무가 한때 속성수종으로 각광받아 각처에 심겨졌다. 이 나무는 후에 은수원사시나무란 별명까지 받았다.
플라타너스
에스겔서(31:8)에 나오는 플라타너스 나무는 가로수로 흔히 가꾸고 있는 버즘나무다. 플라타너스란 말은 라틴명이므로 틀린 번역이 아니다. 수피가 버즘먹은 것 같이 희뜩희뜩하다고 버즘나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이 모두 플라타너스란 이름을 택하고 있지 않다. 개신교에서는 단풍나무, 어떤 영문 성서에서는 밤나무, 중국에서는 오동나무, 그리고 일본에서는 버즘나무 및 느티나무로 옮기고 있다.
한 나무가 플라타너스 오동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및 버즘나무 등으로 옮겨진 것은 적어도 교육적인 입장에서 볼 때 좋은 현상이 아니다. 헤브루명 아르몬(벌거벗은 이란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참나무
당시 지역에서 자라는 참나무류를 6-9종이라고 보고 한 것이다. 어떤 학자는 3종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상록성인 성지참나무와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타볼산의 타볼참나무 등 2종이다. 전자는 그 밑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영접했다는 마므레의 참나무 또는 아브라함참나무라고 하며 헤브론에서 아직 자라고 있다.
영문성서에서 참나무라고 옮긴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상수리나무, 중국에서는 상수리 또는 큰나무, 일본에서는 가시나무로 옮겼다. 당시 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넓은 의미의 참나무임에는 틀림없으나 상수리나 가시나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상수리나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라므로 이를 당시 지역까지 확대하는 것은 무리다.
홍해를 건너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지대를 지나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늙은 참나무의 경외적인 인상은 상상할 만하다. 그들이 붙인 알론이라는 참나무의 헤브루명에는 신(神)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 뜻을 받아서 참나무를 성수(聖樹) 또는 큰나무라고 옮겼다.
참나무는 큰나무중에서도 큰나무로 나타내고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꿈에 나타났다는 큰나무도 뜰에서 자라고 있던 참나무라고 해석된다.
참나무는 크기가 클 뿐 아니라 벌채해도 죽지 않고 그루터기에서 새 순이 돋아자라 난다. 이를 보고 권력에 눌려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인내와 힘의 상징으로 삼았다. 열매로서 알려진 나무중에는 무화과 올리브 쥐엄나무 및 석류나무 등이 들어 있다.
무화과
이 나무는 뽕나무과에 딸린 나무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에서 심고 있다. 꽃이 달리는 화서가 독특하게 생겨서 겉에서 꽃을 볼 수 없다. 화서가 자라서 열매로 성숙하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고 달린 열매란 뜻에서 무화과나무라고 불러 왔다.
기원 전 5천년 석기시대의 유물중에 마른 무화과 열매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성서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중에 들어 있다. 성서에 예수가 알맹이 없는 화려한 겉차림을 꾸짖은 교훈의 소재를 포함해 60여회 나타나는데, 포도와 더불어 번영과 평화를 상징하던 과일이다.
무화과와 비슷한 나무중에 돌무화과나무가 있다. 예리고의 길가에서 아직 자라고 있는 돌무화과나무는 길을 지나가는 예수를 보기 위해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다. 이 나무를 성서에서 뽕나무라고 옮긴 곳이 있으나 지금 자라고 있는 나무는 돌무화과가 틀림없다.
당시에는 여기저기 많이 자라고 있었기에 돌무화과나무 같이 많았다고 표현한 것이 있다. 이집트의 카이로 근처에서 보호하고 있는 돌무화과나무는 요셉과 마리아가 피난 길에 아기예수를 안고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어 여행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재질은 엉성하고 연하지만 3천년 전에 이 재목으로 만든 미이라의 관이 출토됐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내구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열매는 연중 매달리며 맛은 좋지 않으나 먹을 수 있다.
올리브나무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딸린 상록교목이며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던 것을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 전 3천년부터 재배했다는 출토품이 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올리브나무의 잎은 평화를 상징하게 됐으며 새로운 삶과 희망의 사자로 떠올랐다. 옛날에는 교회의 장로들이 올리브기름을 항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귀중한 식량자원의 하나로서 수확할 때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1가지마다 2-5개의 열매를 남겨 두었다고 한다(신명기, 이사야서).
오리와 산록에 있는 겟세마네라는 곳은 올리브기름을 짜던 기름틀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기름틀이란 헤브루말이 고장의 이름으로 됐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며 뒷면은 은백색이다. 꽃은 봄철에 피며 순백색이다. 열매는 핵과로서 녹색에서 황색을 통해 11월에 검게 익는다. 올리브나무를 감람나무로 번역한 곳이 보이는데, 이것은 전연 다른 식물이다.
대추야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 분을 마중하러 나와 외쳤다(요한복음 12:12)."
여기에서 종려나무는 대추야자나무를 가리킨다. 대추야자나무는 당시 지역에서 자라는 과일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수종의 하나이며 4천년 전 재배한 출토품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건너 대추야자나무의 숲이 있는 엘림이란 오아시스에 이르렀다. 엘림이란 '나무 나무'란 뜻이며 나무를 처음 만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대추야자는 키가 크고 서 있는 곳이 뚜렷해 고장의 이름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보고 있는 에리고라는 도시 이름은 대추야자나무의 고을이라는 뜻이다.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성질을 의인에게 비교하고 정직 및 공정의 상징으로 삼았다. 키가 커서 찾기 쉽고 그늘이 좋아서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했다.
대추야자는 또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늘씬한 키에 앞가슴은 대추야자 송이같구나"라는 말과 같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인용했다. 나아가 대추야자나무의 헤브루명 다말이란 말은 미녀의 뜻이 됐다.
대추야자는 기독교 예식에서 신성한 부활을 상징하며 대추야자 잎을 들고 예수를 환영한 것은 승리의 축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성지주일(聖枝主日)의 시초다.
대추야자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로마인을 추방하고 만든 주화에는 대추야자의 잎과 열매가 들어 있다. 또 기원 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만든 주화에도 대추야자 밑에서 울고있는 여인상을 넣어 유다의 멸망을 나타냈다.
이 나무는 높이 10-20m 정도로 자라고 끝에서 깃 같은 잎이 사방으로 퍼진다. 꽃은 암·수가 딴 나무에 달리며 열매는 깊이 2-4㎝로서 여름철에 성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