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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 인류 정말 한가족일까

인 류 의 탄 생




오늘은 인류학에서 가장 예민하고 논쟁이 많은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바로 인종입니다. “세계의 인류는 모두 하나의 종이며 인종은 그저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다 밝혀졌는데, 철 지난 문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주제는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으며, 연구 결과가 나올수록 논란은 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70억 인류를 바라보는 근본 생각 자체가 바뀔지도 모릅니다.


호주의 원주민이든 유럽인이든 다 같은 종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은 어떨까요.
생김새가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호주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 비해 차이가 월등히 큰 것도 아니거든요.

인종이라는 개념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기원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은 ‘사람’, 상대방은 (사람이 아닌) ‘오랑캐’로 분류하고 멸시하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문자 기록이 있는 문화는 물론이고, 문자 기록이 없는 민족지 문화에서도 나타납니다. 모두 자신이 속한 문화와 집단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근대적인 인종 개념은 겨우 한두 세기 전에 나타났습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1859년 무렵의 유럽인들은 세계 곳곳을 탐험하면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호주,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여러 면에서 대단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원주민들을 차마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이라는 세 가지 인종 개념을 만들었고, 원주민을 자신들과 다른 인종에 속한 인류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인종이 곧 서로 다른 종이며, 지구에는 세 개의 다른 종이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말은 백인종 외에 다른 종은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았습니다. 따라서 다른 인종끼리는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거나, 다른 인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이 점점 더 세계를 탐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의 다양성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종은 세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는 주장이 나왔고, 일곱 개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세계에 인종이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연구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인종은 없다, 다양한 사람이 있을 뿐

그러나 잠시였습니다. 현재는 인종을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생물학적으로 구분하기에는 세계 각지의 인류는 특징이 너무나 다양하고, 딱 잘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모호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형질은 인종의 지역적 분포와 일치하여 분포하기도 하지만(아시아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부삽모양의 앞니처럼), 반대로 인종과 상관없이 분포하거나 연속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에 딱 끊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피부색처럼). 현재 미국에서는 인종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나 문화, 사회 등 인문적인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인종이 생물학적인 종이 아니라고 밝혀지자, 이번에는 종의 하위 개념인 ‘아종’인지 묻게 됐습니다. 아종은 ‘어느 정도로 고립된 상태에 있는 생물로, 고립이 계속 되면 종이 될’ 집단으로 정의됩니다. 그런데 아종 역시 추상적인 개념이라 모호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고립돼야아종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종과의 경계는 정확히어디인지 정의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인간에 적용시켜 보니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종의 조건은 고립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집단이라도 고립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산지대에 숨어 지내던 사람까지 찾아가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소개하고야 마는 현실을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고립을 오래 지속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종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습니다. 당연히 아종보다 더 오래 고립돼야 나타날 새로운 종 역시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또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종이든 아종이든, 현실적으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같은 종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개체 하나하나를 직접 교배시켜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윤리적인 문제가 큽니다. 특히 그 대상이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거나, 아예 인간 자신이라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예를 들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가 서로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서로 교배를 시켜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둘이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알며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생김새를 관찰해 유추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이라면 유전자풀(gene pool)을 공유하기 때문에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멀리서도 사람인지 다른 동물인지 구분합니다. 한명 한 명 모두 생김이 다르지만 공통된 특징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두 생물 집단이 서로 고립돼 있어 유전자풀도 갈라져 있다면,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 생김새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서로 유전자를 주고 받지 않으니까, 차이점이 그대로 굳어지겠지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종이 되고, 결국 새로운 종이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다른 종, 원주민은 같은 종?

이런 논리를 현생인류의 기원에 적용해 보면 재미있는 의문에 부딪힙니다. 현생인류의 기원인 후기 구석기 유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얼마나 다르게 생겼을까요. 생김새의 차이가 서로 같은 종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클까요. 만약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같은 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다양성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다른 종으로 분류할 근거는 없지 않을까요.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졌기 때문에 일단 문제를 접어두고, 오늘날의 현생인류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1980년대에 인류학계의 맞수였던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크리스토퍼 스트링거 박사와 미국 미시건대의 밀포드 월포프 교수는 현생인류의 정의를 놓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스트링거 박사는 현생인류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야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현생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징들도 열거했지요. 일종의 ‘인간 조건’을 내세운 셈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조건’ 을 바탕으로 분류해봤더니, 호주의 원주민 등 상당수가 인류의 범주에서 제외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아닌 거죠. 이들은 다른 종(또는 인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월포프 교수는 이런 생각에 반대하고 현생인류에서 이들을 제외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틀린 것은 스트링거 박사가 제시한 ‘조건 목록’이었다는 것이었지요.

호주의 원주민을 같은 종으로 포함시킨다면, 생김새가 몹시 다양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종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바로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생김새가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호주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의 생김새 차이보다 월등히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생김새는 현생인류가 지닌 생김새의 다양성 범위 안에 충분히 포함됩니다. 그
렇다면 네안데르탈인 역시 현생인류의 일부가 될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자손이 나왔고, 그 결과 우리를 비롯해 지구 곳곳의 현생인류의 몸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을 다른 종으로 구분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인류는 정말 아프리카에서 홀로 기원했을까

스트링거 박사와 월포프 교수의 논쟁은 끝났지만, 그 뿌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누구를 인류에서 배제하느냐 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기원이 관련된 문제입니다.

인류의 이런 엄청난 다양성을 보고 나면, 현생인류가 언제가 한 순간에, 하나의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아프리카 기원론(완전대체론)’이 과연 옳은가 되묻게 됩니다. 하나의 기원에서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다른 인류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현생인류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적 다양성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모두 현생인류의 한 식구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생각은 현생인류가 어느 한 시점에 홀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여러 지점, 여러시점에서 다발적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아프리카 기원론의 맞수인 ‘다지역 연계론(다지역 진화론)’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서로 교류했다는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는 이런 생각을 조금씩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멀고 가까운 여러 친척 인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우리 자신이 속한 종의 시작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여러 문제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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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윤신영 | 글 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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