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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델 동물실험 의약산업 혁명 눈앞에

인간게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험동물이 필요하다. 인간과 유사성이 많으면서도 교배가 쉽고 수명이 짧은 동물이 제일 적격이다. 인간을 위해 '몸바치는' 동물들로는 어떤 게 있을까.

필자가 어렸을 때는 항상 약간씩은 배가 그 고픈 것이 정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살이 많이 쪄서 뚱뚱한 사람을 보기 드물었다. 내가 살던 시골동네에 나와 동갑내기로 배가 불룩 나온 아이가 있었는데, 동네사람들은 그를 '사장배, 뚱배 '라고 놀렸다.

회사 사장 정도는 되어야 잘 먹어서 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별명이었으리라. 하지만 영양실조가 되어도 병적으로 배가 나올 수 있음을 의과대학에서 배운 후로, 그 아이가 실은 영양실조가 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의 집은 음식의 총량이 특히 모자라는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근래의 우리나라는 사정이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이제는 진짜 사장배를 가진 어린이들을 아무데서나 흔히 보게 된다. 이들은 배뿐만 아니라 얼굴 목 팔다리 등 온몸에 보기 민망할 정도로 살이 잔뜩 쪄서, 약간의 운동도 힘들어한다. 이같은 비만 어린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비만증으로 인하여 유도되는 각종 심장 혈관계의 질환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결국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식욕은 왜 각인각색일까

여기서 이야기의 각도를 좀 바꾸어보자. 살은 왜 찌나? 우선 많이 먹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날씬한 내 친구는 멀쩡한데, 왜 나만 살이 쪄야 하나"하면서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체질상으로 칼로리 대사 정도의 차이 때문에 살이 잘 찌는 경우도 있으나 일차적으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사용하고 남은 칼로리가 지방으로 바뀌어 살이 된다. 음식이 부족한 사회에서 살이 찌기는 어려운 일이다. TV에 보이는 북한 사진에서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살찐 사람을 찾기가 힘든 것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주변의 비만인 사람을 눈여겨 보면, 이들은 항상 허기진 상태이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많이 먹는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음식을 웬만큼 먹으면 더 안 먹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만족치 못하여 자꾸 먹게 될까? 어떤 사람은 포만감이 쉽게 오고, 또 어떤 사람은 쉬이 만족을 못할까? 또한 이러한 살찌는 경향은 유전성이 강한 것 같은데 (뚱뚱한 부모에 뚱뚱한 아이) 어떠한 유전자들이 이러한 특성을 정하게 되나?

이러한 궁금한 문제들을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을 실험동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용하는 것이 모델동물이다. 집쥐를 모델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집쥐는 전체 몸에 지니고 있는 지방의 양을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조절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집쥐에게 튜브를 이용하여 억지로 계속하여 음식을 먹이면 집쥐의 몸에 지방이 잔뜩 축적되어 뚱보쥐가 된다. 이렇게 유도된 뚱보 쥐는 음식이 잔뜩 있는 상황에서 키워도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음식을 잘 안 먹게 된다.

이 뚱보쥐의 몸에 지방이 너무 많다는 신호는 혈액을 따라 흐르는 특수호르몬에 의해 뇌로 전해진다는 것도 알려졌다. 즉 두마리 쥐를 혈관수술에 의해 혈액이 서로 통하도록 해 두고서 한쪽 쥐에게 뚱보가 되도록 억지로 많이 먹이면 그 쥐는 뚱보가 되고, 혈관이 연결된 다른 쥐는 음식을 먹지 않아 빼빼가 된다.

너무 많이 먹은 뚱보 쥐의 혈액에 '지방이 너무 많다'는 신호를 갖는 호르몬 양이 높아진 것이 옆의 쥐에게로 흘러가서 그의 뇌에 전달되어 배부르다고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의 정체는 역시 모델동물인 생쥐를 연구함으로써 최근에 밝혀졌다.

이 생쥐는 '비만생쥐'라 불리는 돌연변이 생쥐로서 식욕이 끝도 없기 때문에 보통 생쥐보다 몸무게가 몇배나 나가게 된다. 최근에 게놈 연구를 통하여 이 유전자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체 게놈연구의 대중적 모델
 

인간을 대신하는 실험용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원숭이.


게놈 연구의 목표는 우리 게놈 전체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의 구조(염기서열)를 한 끝에서 다른 한 끝까지 질서정연하게 밝히고자 함이다. 생쥐에서 이러한 연구가 특히 잘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생쥐가 모델동물로서 유전학적인 분석을 쉽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학의 아버지라 할수 있는 멘델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완두콩을 교배시켜서 태어나는 잡종 완두콩, 그리고 이들 잡종 완두콩을 다시 적절히 교배하여 태어나는 완두콩을 분석하여 유전자를 연구했듯, 생쥐에서도 이러한 교배를 통한 유전자 분석이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현재 생쥐의 게놈에는 각 염색체의 부분부분에 골고루 산재하는 표지가 1천6백개나 확립되었다. 이는 서울-부산 경부선 철도를 이루는 레일에 일정간격으로 번호표를 붙인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어느 특정 레일, 가령 대전역에서 남쪽으로 1.5㎞ 위치에 있는 레일을 찾아내기란 아주 쉬운 일이 된다. '비만'유전자도 이같은 방법에 의해 생쥐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유전자의 구조(염기서열)를 살펴보니 과연 호르몬을 만드는 유전자의 특징을 갖추고 있고, 또한 생쥐를 굶기면 유전자발현이 증가했다. '비만' 돌연변이 생쥐는 이 유전자가 기능을 잃어버린 것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비만 유전자를 분리하여 분석해보니 생쥐의 '비만' 유전자와 구조가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 생쥐의 유전자가 이미 분리돼 있기 때문에 이를 도구로 이용하여 사람의 유전자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이같이 인간의 비만 유전자가 확보되었으므로 이제 인간의 살찌는 일에 관한 여러가지 궁금한 점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병적으로 심한 비만증을 나타내는 사람의 경우 '비만' 돌연변이처럼 이 유전자가 돌연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통으로 비만인 사람들은 이 유전자의 기능이 약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 '비만'유전자처럼 유전학적 분석을 쉽게 할 수 있는 모델 동물에서 각종 실험 방법을 동원하여 연구한 결과가 인간의 비슷한 문제를 분자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인체게놈 연구'의 구체적인 연구계획에 모델게놈연구가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되게 마련이다.

특히 생쥐의 경우 각종 인간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처음 분리되고 연구된 예가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근래에는 특히 학습과 기억과 같은 정신기능, 공포감과 공격성과 같은 정서기능 등에 관한 유전자의 연구도 생쥐에서 진행되고 있다.

생쥐가 이같이 유전학적인 연구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다는 점 이외에도 인체게놈연구의 모델 동물로 쓰이게 되는 또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는 많은 유전자들의 구조(염기서열)가 인간과 생쥐간에 매우 비슷하게 유지돼 왔을 뿐 아니라 이들 유전자들이 염색체 내에 배열돼 있는 순서도 인간과 생쥐의 게놈 사이에 상당히 보존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인간과 생쥐간에 닮은 유전자 약 9백개의 게놈상의 위치가 생쥐와 인간에서 함께 밝혀졌다. 이제는 생쥐에서 어떤 유전자의 위치가 알려져 있을 때 그 유전자가 사람게놈에서 어느 부분에 있을지 올바로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이 90% 이상이 된다. 이러한 장점과 이유 때문에 생쥐 게놈은 인체게놈연구계획의 중요한 모델게놈이 되고 있다.
 

복어와 인간의 게놈비교. 인간의 염색체 1에서 12번까지가 윗줄에, 13번에서 X, Y까지가 아랫줄에 놓여 있다. 크기면에서 복어의 게놈은 인간염색체의 1번 전체와 2번 절반 정도를 채운다.


좀더 편리한 모델게놈을 찾아서

인간의 게놈에는 약 10만개에 달하는 유전자가 들어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 유전자가 23개의 염색체에 분산되어 존재한다. 인체 게놈이 3×${10}^{9}$염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각 염색체는 크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 1.3×${10}^{8}$염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DNA분자인 셈이다.

인체게놈연구의 목표는 바로 이들 23개의 거대한 DNA분자들의 염기서열을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 모두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얻는 바는 게놈에 기록돼 있는 모든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의 해독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과정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단세포인 수정란이 분열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분화된 세포를 만들어내고, 이들 세포들이 상호작용하여 각각의 장기를 만들어내며, 또한 전체적인 청사진에 따라 개체의 입체구조가 결정된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따져도 옳은 말이다. 개의 수정란에서 닭이 나올 수는 없다. 또한 여러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한 방안에 섞여 있어도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만들어지는가?

종교적인 논의를 피하고 말할 때, 이같은 다양성과 유사성이 만들어지게 되는 청사진은 게놈에 들어 있는 유전자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시작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거의 똑같은 개체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인체 게놈에 들어 있는 모든 정보를 캐서 해석하게 되면 이같은 우리 자신의 발생과정도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보의 주요 부분인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는 전체 게놈의 3% 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고 대부분의 게놈은 반복서열 등 핵심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DNA(이를 잡동사니, junk DNA라고 부르기도 한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체게놈의 3X${10}^{9}$ 염기보다 좀더 작은 크기의 모델 게놈을 찾으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주인공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매운탕으로 즐겨 찾는 복어다. 몇가지 분석결과를 보면 복어의 게놈 크기는 인체 게놈의 7-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많은 잡동사니 DNA를 분석하지 않고도 복어 발생과정을 관장하는 주요 청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는 복어가 과연 인간하고 얼마나 비슷한가다.

이에 대한 답은 적어도 척추동물의 발생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골격은 복어 게놈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중요한 유전자들의 구조(염기서열)는 종이 다양하게 진화하는 동안에도 신기할 정도로 변화없이 유지된 경우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생쥐나 인간의 척추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진화상으로 멀리 떨어진 초파리의 몸마디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구조에서 뿐아니라 때로는 기능에서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실험결과를 고려할 때, 척추동물인 복어의 유전정보는 인체 유전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편리한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 된다.

복어 이외에도 전통적으로 생명과학 연구에 모델생물로 이용되는 많은 생물들이 게놈연구의 대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를 들면 균효모 원형동물 초파리 개구리 등이다. 각 모델 게놈들은 나름의 장점들이 있고 인체 게놈을 대신하기에 부족한 단점 또한 있다.

산업적인 목적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모델게놈들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발효산업의 핵심요소인 효모게놈이 그 한 예가 되겠다. 어떠한 목적으로 어떠한 게놈을 연구하건 간에 그 연구결과로 얻어지는 유전정보는 생물의 분류와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높이게 될 것이다.

각 생물간에 게놈이 얼마나 비슷한지, 어떠한 방향으로 달라져 왔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각 생물들이 진화상 서로 어떠한 친척관계에 있었는지를 좀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구의 역사로부터 남겨진 DNA를 추출하여 분석하는 기술이 점차 발달 할수록 진화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지리라고 생각된다. 우리를 쥐라기 공원으로까지 인도하지는 못할지라도···
 

‘비만 ’유전자를 가진 생쥐는 식욕을 통제할 수 없다. 끝없이 몇배나 되는 몸무게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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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신희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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