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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 자동화 후유증-신종 직업병 속출

 

컴퓨터 질병은 작업자의 자세뿐만 아니라 작업장의 조명 온도 소음등과 같은 환경요인과도 관련이 있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등장한 많은 기계들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기계가 항상 인간을 '편안한 삶'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난 역사를 통해 얼마든지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컴퓨터 작업에 의한 질병 'VDT증후군'도 그 한 예다.

국내에 보급된 컴퓨터 단말기가 4백만대를 넘어섬에 따라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신종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일명 VDT증후군(Video Display Terminal, 단말기)이라 불리는 이 병은 하루 종일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업무 때문에 생기는 신체적, 정신적 장해다. 이 병은 주로 경견완장해 시력장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드물게는 이상출산까지도 일으킨다.

사무 자동화의 발달로 모든 사무실에서 캐비닛과 서류철들이 없어지는 대신 워드프로세서나 개인용 컴퓨터 등이 등장했고 그 사용범위도 일반 사무 관리 부분을 넘어서서 제조, 판매 회사의 제품관리, 건축 회사의 설계, 항공 운송 회사의 운항 예약, 신문 잡지의 편집과 제판, 병원에서의 원무 행정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급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곳은 전산화가 급속히 진행된 은행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초 1인당 하루 10건 남짓하던 시중 은행의 창구 거래 처리 건수가 요즈음엔 1백건 이상 급증했고 소액 구좌가 많은 은행의 경우에는 하루에 무려 3백건을 처리할 정도이다.

전화 교환원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 114 전화안내를 할 때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일일이 뒤져서 안내 응답을 했지만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단말기 화면에 전화번호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날마다 7백50통의 전화 안내를 처리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처럼 문명의 이기라는 컴퓨터는 업무를 단순화시켜 사무직 내에서의 여성노동자를 급증시키는 한편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와 같은 반복적인 작업, 고정된 자세, 심화되는 노동강도가 VDT 장해를 초래한다.

호주에서는 두 자녀를 둔 여성 타자원이 경견완 장해로 더 이상 타자를 칠 수 없게 되자 회사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지살하고 말아 VDT 장해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킨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필자가 직접 진료한 환자중에는 수년에서 십여년간 VDT 작업의 결과로 계속되는 고통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약혼까지 파혼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114전화안내 근무자들. 컴퓨터 사용의 보편화는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아 직업병 발병률을 높였다.


피로 무력감 두통 불안 우울증

그러면 작업자에게 큰 고통을 주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경견완 장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경견완 장해는 상지(上肢, 어깨 팔 손)를 반복해 움직이는 작업(동적부담)이나, 상지 및 목을 특정위치로 고정시켜 일하는 작업(정적 부담)에 의해서 주로 발생한다. 이 장해의 증상은 뒷머리 목 어깨 팔 손 및 손가락의 어느 부분 또는 전체에 걸쳐 아프거나 걸리거나 쑤시거나 뻣뻣해지며, 증상이 진행되면 신경이 마비돼 손이 떨리거나 운동장애, 감각장애 등이 일어난다. 따라서 경견완장해는 VDT 작업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신체의 특정부위를 집중적으로 사용해 보통 6개월 이상 반복작업을 해온 사람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경견완장해는 VDT 작업 여부가 결정적인 요인이라기 보다는 얼마나 제약된 자세로 어느 정도 기간동안 일하는가가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음은 경견완장해와 관련하여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몇가지 증상들을 나타낸 것이다. 혹 컴퓨터를 자주 만지는 독자라면 이 자각 증상 조사표로 스스로의 상태를 조사해보도록 하자.

이부자리를 얹고 내릴 때 괴롭다.
빨래를 꼭 짤 수 없다.
전화기를 들고 있기가 괴롭다.
양치질하기가 힘들다.
차를 탈 때 손잡이를 잡고 있기가 어렵다.
밤중에 팔, 다리, 어깨 등이 심하게 아파 잠이 깬다.
단추를 끼우기가 힘들다.
밥먹을 때 팔이나 손이 아파 숟가락을 들기가 힘들다.
머리 빗기가 힘들다.
글씨 쓰기가 어렵다.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렵다.
잡고 있는 물건을 자주 떨어뜨린다.
핸드백을 드는 것이 괴롭다.
칼로 과일 껍질을 벗기기가 어렵다.
계단을 내려가기가 괴롭다.
물에 손을 넣기가 괴롭다.

한편 많은 VDT 작업자들은 눈에 관련된 여러가지 증상들을 호소하고 있다. 대부분이 눈의 피로와 관련된 것들로, 눈이 아프거나 쓰리며 조절기능의 장해로 인해 눈에 안개가 낀 것같고 물체가 흐리게 보인다.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는 VDT 작업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근시가 되는 현상이 VDT 작업을 하지 않는 다른 사업장에서 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업량 과다, 작업조작의 단조로움, 작업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작업, 컴퓨터의 고장에 의한 작업중단 등으로 스트레스가 생겨 평소에도 불안, 초조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피로와 무력감, 소화불량, 두통 등도 자주 발생하는 증상이다.

그리고 아직 논란이 있긴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1일 4시간 이상 VDT 작업을 하는 임산부는 정상인보다 조산이나 선천적 기형아 출산의 위험이 더 높다고 발표되고 있다. 그래서 몇 몇 선진국에서는 임신부가 VDT 작업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도 하다.

안전한 VDT 작업을 위하여

선진국에서는 VDT 증후군에 대해 사업주가 종업원의 정기적인 시력 검진 및 시력교정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고 VDT 업무의 작업기준을 마련하는 등 VDT증후군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더구나 은행 보험회사 등 VDT 작업을 많이 하는 서비스 업종은 산재 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빠져 있어 직업병으로 인정된 경견완 장해 조차도 자기부담으로 치료를 하는 형편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안전한 VDT 작업을 위한 10가지 점검사항'은 1988년 일본 노동 과학 연구소에서 펴낸 '안전한 VDT 작업을 위한 10가지 점검사항'에 실려 있는 것으로 VDT 장해의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작업량, 작업 시간을 전체적으로 규제한다. 눈이 피로하고 가물거리며 아프거나, 머리가 띵하고 오타가 늘어나며 조작속도가 둔해지고 어깨가 결리며 선하품을 하는 것이 VDT병의 일반 증상이다. 가장 해로운 것은 다음날 아침 깨어나도 피로가 남아 만성화되는 것이므로 작업 수칙 등을 만들어 작업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

일본의 전국 금속 노동조합과 사용주가 맺은 'VDT 작업 기준에 관한 협정'에서는 VDT 작업시간의 한도를 주당 30시간으로 정하고, 남은 시간은 다른 업무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다른 선진국에서는 하루 4시간 이상의 VDT작업을 금하고 있다.

2. 장시간의 연속작업을 규제하고 휴식을 탄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오래 일하고 한번에 몰아쉬는 것보다 짧게 여러 번 쉬는 것이 피로의 진행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1시간에 10분, 2시간에 15-20분 정도 쉬는 것이 좋으며 또한 피로할 때 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정기적인 휴식시간이 아니더라도 피로할 때 스스로 쉴 수 있는 '자발휴식' '탄력휴식'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몸담은 병원에서 실시한 '은행원의 VDT작업에서 나타나는 증상조사'에서도 하루 평균 사무기기 사용기간, 작업량, 1회 연속 작업시간, 중간의 휴식시간의 유무가 VDT 증상에 가장 연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3. 상태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 앉은 면의 높이는 두발이 마루에 닿고 허벅지가 의자의 앉는 면보다 약간 높게 놓아지도록 하여야 한다. 화면의 높이는 어깨의 힘을 빼고 손가락 끝을 키보드에 놓았을 때 팔꿈치의 각도가 90도 정도가 되도록 한다.

화면과 서류 받침대, 키보드의 위치는 등받이에 가볍게 기댄 상태에서 바라보았을 때 편하게 보여야 하고, 양눈에서의 거리를 비슷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서류 등을 놓을 충분한 공간이 있는 작업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리를 꼬고 뒤로 제칠 수 있는 등받이 의자를 사용, 편한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4. 조명 환기 소음 등의 환경 조건을 정비한다. VDT작업은 다른 사무 작업과 달리 주변이 무조건 밝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VDT 작업자는 어두운 화면과 주변의 밝은 곳을 번갈아 보면서 반복 작업을 하므로 불규칙한 조명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태양광선 등의 광원이 시야에 들어오거나 화면에 반사되지 않도록 커튼 블라인드 등을 설치하고 조도는 키보드면에서 5백-7백 룩스, 화면에서는 5백룩스 이하가 되도록 하며 화면 서류 키보드면 사이의 조도차를 가능한 한 줄이도록 한다.

5. VDT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불필요한 서류까지 VDT에 의지하거나, 필기로 충분한 내부 자료까지 워드프로세서에 의존하는 것은 장해를 불러올 기회를 스스로 키우는 일이 된다.

6. 노사간의 협약을 정해 운용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부나 학계에서 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규제, 작업환경 설비, 건강진단 등을 정한다.

7. VDT만 취급하는 전담자를 두지 않는다. VDT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직장 안에서 신중히 검토해 특정인에게 부담이 편중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8. 소프트웨어의 개선을 요구해 작업이 편하게 행해지도록 노력한다.

9. VDT 작업에 대한 충분하고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10. 건강 진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직장 조건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평균 1일 2시간 이상 VDT 작업에 종사하는 경우 배치 전과 배치 후 연 1회 정기 건강 진단을 하되, 건강 이상에 대한 호소가 있을 때에는 임시진단을 한다.

지금도 컴퓨터에 매달려 일하며 VDT 증후군에 시달리는 환자가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VDT 작업의 폭발적 증가로 새로운 환자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은 아직 VDT 증후군의 인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예방은 고사하고 진단조차 미미한 실정이다. 첨단 사회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질병 VDT 증후군은 예방될 수 있고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다. 사업주의 관심과 VDT 작업자의 건강에 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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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임상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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