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사고 발생! 대피! 대피!”
6월 8일 목요일 오후 2시, 화학회사의 로고가 적힌 거대한 시멘트 건물과 노란 페인트를 칠한 크레인이 빼곡한 인천 남항. 바다 쪽 100m 밖에 설치한, 화물을 하역하는 돌핀부두에서 오렌지색 연막탄이 피어 올랐다. 짙은 연기 속에서 누군가 팔을 내저으며 뛰쳐나왔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터미널 사의 작업자 네 명이었다. 무전기에서 곧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경! 해경! 여기는 ◯◯터미널입니다.” “네, 인천해경 상황실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지금 우리 배에서 육상탱크로 자일렌을 이송하는 중에 배관이 파손됐습니다. 자일렌이 해상으로 유출되고 있어요! 작업자 네명은 대피했는데, 한 명은 남아있습니다!” 사이렌을 시작으로 고요했던 부두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5년 간 유출된 유해화학물질 20만 L
이 날 기자가 찾은 곳은 인천해양경비안전서(이하 인천해경서) 주관으로 실시한 유해화학물질(HNS) 해상유출사고 대비 합동훈련 현장. HNS는 ‘기름을 제외한 물질로 해양환경에 유입되면 인간의 건강과 해양생물자원 등에 해롭고, 해양의 쾌적함을 손상하거나 다른 합법적인 바다의 이용에 방해가 되는 물질’이다(위험·유해물질의 오염사고 대비, 대응 및 협력에 관한 의정서).
국내에서는 1년에 세 번 꼴로 사고가 났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일어난 14건의 사고로 HNS 20만6223L가 유출됐다. 해양자원이나 인간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쳐 절대 해양에 배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해양환경관리법에서 ‘X류’로 정한 HNS인 크레오소트도 60L가 유출됐다. 이찬근 국민안전처 기동방제과장은 “HNS가 바다에 유출됐을 때 이를 수습하려면 화학지식을 갖춘 전문인력이 해상과 육지에서 동시에 대응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해양경비안전서, 소방서, 환경부,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지자체, 군부대, HNS 취급 업체 등이 다 함께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훈련은 자일렌 2만 L가 해상과 해안으로 유출되는 사고를 가정해 실시했다. 자일렌은 폭약, 염료, 페인트, 수지, 광택제 잉크, 접착제 용매 등으로 널리 사용되는 고휘발성, 고인화성의 HNS다. 눈이나 기도의 신경을 자극하며 발암성이 있다. 훈련 시작 7분 뒤, 지원반이 경고를 보냈다. “현 대응력에게 알림! 현재 유출되고 있는 자일렌은 고인화성 독성물질로 현장 접근 시 바람을 등지고 30m 이상 거리를 유지하기 바람!”
인천해경서 113정이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사고 해역으로 다가왔다. “금일 14시경 본 해역에서 인체에 유해하고 화재 위험이 있는 물질이 유출됐습니다. 해역 내 선박은 신속하게 이탈하시기 바랍니다.” 부두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됐고, 주민 대피 안내 방송이 반복됐다. 훈련시작 10분 뒤, 중간밸브가 차단돼 있다는 ◯◯터미널의 보고를 끝으로 응급조치는 마무리 됐다.
‘무엇이’ ‘얼마나’ 유출됐는지가 관건
“오늘 훈련이 그리 긴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훈련을 시작하기 직전, 현장에서 만난 백동진 인천해경서 해양오염방제과장이 이렇게 말했다. 갸우뚱 하는 기자에게 그는 “기름은 종류가 달라도 대부분 성질이 비슷해서 바로 오일펜스를 치면 되지만, HNS는 종류별로 성질이 판이해서 어떤 물질이 얼마만큼 유출됐는지를 먼저 정확히 알아 내고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HNS는 6500여 종류가 있고 전용 선박을 이용해 우리나라 해상에 드나드는 것은 130여 종이다. 유럽표준분류기준(SEBC)은 증발, 용해, 부유, 침강 등 수중에서의 주요 거동을 기준으로 HNS를 12가지로 분류하지만, 개별 물질의 성질은 훨씬 복잡하다. 예컨대, 벤젠은 증발하는 HNS로 분류되지만, 일정량은 용해된다. 모든 특성을 고려해 대응 계획을 짜야 한다. 한 선박이 한 종류의 HNS만 싣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실제 사고 시 어떤 물질이 유출됐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 날 응급조치의 다음 단계는 구조나 방제가 아닌 위험성 평가였다. 화학물질안전원은 훈련 전에 화학물질사고대응정보시스템(CARIS) 프로그램으로 피해를 예측했다(실제 상황에는 사고 직후 구동해 결과를 통신으로 전달한다). CARIS는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나 테러가 발생했을 때 해당 지점의 날씨와 유출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고려해 피해 범위를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일렌을 선택하고 온도, 습도, 풍향과 풍속, 대기안정도 등의 정보를 입력한 결과, 폭발하면 반경 107m 지역이 가장 위험했다. 반경 499m까지는 통제구역에 속했다.
자일렌이 해상에서 확산되는 정도도 예측했다. 최종욱 국민안전처 기동방제과 주무관은 “자일렌은 상
온에서 액체이기 때문에 해상에서의 거동도 예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 결과, 썰물의 영향으로 사고 세 시간이 지나면 자일렌이 항구 밖까지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물질은 수거 어려워…물 이용한 중화가 최선
곧이어 해경 탐지반과 소방 인명 구조반이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보호를 위해 내화학성 보호복과 방독마스크를 착용했다(훈련이므로 자일렌보다 훨씬 유독한 HNS에도 대응할 수 있는 최고 보호등급 보호복을 입었다). 붉은 방제복을 갖춘 인명 구조반이 재빠르게 사고 부두로 진입해 의식불명의 환자(마네킨)를 구조해 나왔다. 그 사이 노란형광색 방제복을 입은 해경 탐지반은 위험성 평가 결과에 따라 빨간색 통제선을 설치했다. “위험구역 통제선 설치 완료했고, 사고지점으로 진입해 파손부위 봉쇄하겠습니다.”
몇 분 뒤, 육상 지휘소에서 “탐지반은 파손부위 누출방지 여부 보고하기 바란다”고 통신했다. 묵묵부답. 통신 두절이었다. 실제 사고였다면 아찔하고 애가 탈 상황이다. 탐지반은 재빠르게 사고 선박에 있던 통신 장비를 활용했다.
초동조치까지 마친 오후 2시 30분. 이후 방제조치를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훈련에 참여한 민·관·군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인천해경 예방지도계장입니다. 자일렌은 휘발성이 매우 강한 물질로 분산, 휘발시켜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현재 일부 구간에서 최대 200ppm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소방차 소화포와 제독차량으로 농도를 최대한 낮추는게 급선무입니다. 현재 썰물 때이므로, 해상에 부유한 자일렌의 확산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오일펜스를 친 뒤 방제선들이 소화포를 살포해 온도를 낮추고 분산을 촉진해야 합니다.”
HNS가 바다에 유출되면 사실상 수거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수용성이라 바닷물에 녹거나 대기로 증발
하기 때문. 훈련에 앞서 만난 김성범 여수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 연구관은 “보통 유출량의 100배쯤되는 양의 물로 중화한다”며 “만약 물과 반응해 유독한 증기를 생성하는 물질이라면, 흙이나 비가연성물질을 뿌려 덮는다”고 설명했다.
하기 때문. 훈련에 앞서 만난 김성범 여수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 연구관은 “보통 유출량의 100배쯤되는 양의 물로 중화한다”며 “만약 물과 반응해 유독한 증기를 생성하는 물질이라면, 흙이나 비가연성물질을 뿌려 덮는다”고 설명했다.
HNS가 바다에 유출되면 사실상 수거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수용성이라 바닷물에 녹거나 대기로 증발
하기 때문. 훈련에 앞서 만난 김성범 여수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 연구관은 “보통 유출량의 100배쯤 되는 양의 물로 중화한다”며 “만약 물과 반응해 유독한 증기를 생성하는 물질이라면, 흙이나 비가연성물질을 뿌려 덮는다”고 설명했다.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인천937호, 105청령호가 길이 150m 가량의 오일펜스를 해상에 놓았다. 자일렌이 떠 있는 바닷물이 다른 해역으로 이동해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 인천해경서 방제19호정, 113정 등이 소화포를 뿌리며 접근했다(바닷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이 날은 물을 뿌렸다). 부두에서도 거들었다. 소방차 한 대가 사고 해역을 향해 살수를 시작했다. 육상에서는 인천해역방어사령부의 제독차가 물을 뿌리며 인근 부두를 한 바퀴 돌았다.
시흥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탐지반이 각종 검지기를 들고 나와 사고 해역과 가까운 부두를 훑었다. 인천해경서 탐지반도 사고 부두로 나가 잔류 화학물질을 검출했다. “모니터링 결과, 현재 5ppm 이하로 나타납니다.” 자일렌의 농도를 40분의 1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훈련 시작 한 시간 만인 오후 3시, 합동지휘소에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방제조치가 신속하고 적정하게 이뤄졌습니다. 금일 ◯◯터미널 자일렌 유출사고 방제조치를 이 시각 이후로 종료하겠습니다.”
국민안전처는 내년에 첫 500t급 화학방제정을 울산과 여수에 배치할 계획이다. 화학방제정에는 HNS가 선내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가압장치와 특수정화필터, 그리고 소화시설, 가스감지시스템, 분석실 등 각종 HNS 대응 시설을 설치한다. 이찬근 국민안전처 기동방제과장은 “추후 1500t급 화학방제정 건조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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