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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미크로네시아 해양과학기지를 가다!

태평양의 오아시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 과학동아가 주최한 열대해양연구단 10기 단원 7명이 지난 8월 18일 뜨거운 여름 바다로 떠났다. 이들이 향한 곳은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축주(州)에 위치한 KIOST 태평양해양과학기지. 수많은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인 이곳에서 보낸 8박9일을 담았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탄 지 16시간 만에 축에 도착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습도가 방금 떠나온 고국을 연상케 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눈을 뜨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 추가된 정도였다. 우리나라 간이역과 비슷한 크기의 축 공항에서 태평양해양과학기지(이하 기지)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렸다. 8km가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이 중 미끈하게 포장된 도로는 500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시간이 배로 들었다. 수 차례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도착한 기지 앞 풍경은 이런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탁 트인 에메랄드 빛 바다와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 나무들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여기 서있으면 코코넛 열매가 떨어지니까 조심하래요!” 열대해양연구단원들도 이 풍경에 저절로 말문이 트였는지 어색함은 잊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학생 1명과 고등학생 6명으로 이뤄진 열대해양연구단원들은 출신 지역도, 나이도, 학교도 제각각이었지만, 해양 생물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금세 친해졌다.

도착한 첫 날은 학생들이 일주일간 축에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 심바이오디니움 변이체를 이용해 산호 백화현상을 줄일 수 있는지 연구해보고 싶다는 강인한(경기 용인외대부고 1학년) 학생은 외국 논문까지 찾아오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세계대전의 아픔을 마주하다

축에 도착한 지 이틀째부터 축의 여러 섬과 유적지를 본격적으로 탐방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등대였다. 축은 아름다운 모습 이면에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일본이 1914년 축을 점령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축에 강제징용됐던 한국(당시 일제강점기) 사람들도 3000여 명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요 군사기지로 이용됐던 일본 해군기지는 축 곳곳에 전쟁의 잔해를 남겼다. 태평양과학기지가 있는 웨노 섬에는 축에 들어오는 배를 감시했던 등대가 남아있다.

“산호로 둘러싸인 축의 지형 특성상 배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저기 보이는 작은 두 섬 사이, 딱 한 군데 뿐입니다.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불을 피워 신호를 보내고, 아까 올라오는 길에 봤던 전차로 배를 격파해 축을 방어했죠.” 동행한 최영웅 KIOST 생태기반연구센터 연구원이 말했다. 거대한 환초로 둘러싸여 외부에서의 접근이 쉽지 않은 축은 전쟁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었다. 일본군은 전쟁의 막바지까지 축에서 연합군과 싸웠다.

축의 바다 아래에도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다. 적군을 공격했던 군함과 포탄이 그대로 바다 아래 가라앉아 있다. 가슴 아픈 역사의 잔재지만, 70여 년이 흐른 지금은 과거의 시간을 간직한 낭만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강동진 KIOST 태평양해양과학기지대장은 “이 지역은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라며 “축의 자동차 번호판을 잘 보면 ‘다이버들의 천국(Diver’s heaven)’이라는 말이 쓰여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니모와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요!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를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이날 오후부터 열대 해양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기 위한 스노클링이 이어졌다. 환초로 둘러싸인 축주는 최대 수심이 70m 정도로 깊지 않은데다, 태평양에서 오는 파도를 환초가 막아준다. 잔잔하기 때문에 스노클링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축의 바다는 밖에서 봐도 속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에메랄드 색 물감을 타 놓은 듯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물 속에 얼굴을 넣고 보는 광경은 또 다른 세계였다.

5일간의 스노클링 일정 중 압권은 마지막 날 방문한 펜룩 섬 해안에서의 하루였다. 3일간 비가 온 터라 뿌연 바다만 봤던 열대해양연구단 앞에 펼쳐진 펜룩 섬의 바닷속 풍경은 실로 놀라웠다. 보라색, 분홍색, 노란색 등 무지개 빛깔의 산호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은 단원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열대어들을 본 단원들은 바다 속에서 만날 때마다 얼굴을 수면 밖으로 내놓고는 자신이 본 물고기를 설명하느라 바빴다. 모상현(경북 울진고 1학년) 학생은 물 속에서 기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예쁜 산호 쪽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예쁜 산호를 감상하는 것은 자유지만, 해양 생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칙이 있다. 살아있는 산호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해양 생물 종의 25% 이상이 산호초에 살고 있을 만큼 산호는 해양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존재다. 자포동물에 속하는 산호는 석회질 외골격(탄산칼슘, CaCO3)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수많은 해양 생물의 보금자리다. 실수로라도 산호를 밟거나 부수면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또 하나의 수칙은 산호를 만질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만져야 한다는 점이다. 수온이 높은 미크로네시아의 바다에는 27℃ 이상에서 살 수 있는 딱딱한 경산호가 많아 자칫 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독성을 가진 촉수로 다른 생물을 공격하는 종도 있다(조심하지 못했던 기자는 실제로 산호를 만지다가 손에 가시가 박히기도 했다!).

안전 수칙을 잘 숙지한 연구단원들은 살아있는 산호 대신 바닥에 떨어진 산호 조각이나 속이 비어있는 예쁜 소라 등을 주워 올라왔다. 처음엔 잠수를 어려워하던 조혜린(경남 거제고 1학년) 학생도 어느새 2m 이상을 잠수해 들어가 바닥에 있던 보라색 산호를 손에 꼭 쥐고 올라왔다. 처음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인 백종원(상명대 2학년) 씨는 자이언트크랩을 잡아 올리기도 했다. 동행했던 경광진 KIOST 태평양해양과학기지 행정팀장은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 씨가 잡았던 게가 바로 이 자이언트크랩”이라며 “맛은 별로 없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흑진주 만들어 보셨어요?

스노클링을 하며 잡은 해양 생물을 직접 해부해 보는 실습 시간도 있었다. 축의 바다에는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보다 3~5배 가량 큰 해삼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해삼 잡이는 축 현지인들의 몇 안 되는 수입원 중 하나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단원들이 직접 잡은 해삼과 물고기는 이날 도마가 아닌 수술대에 올랐다.

“물고기 배를 가르고 뇌, 심장, 위, 간, 장을 분리하면 됩니다. 장부터 분리한 뒤에 다른 장기들을 하나씩 꺼내야 합니다.” 해부 실습을 지도한 최영웅 연구원이 말했다.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해부에 집중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용석(제주 제주고 1학년) 학생은 “해부를 하는 도중에 심장이 터졌다”며 “장기들이 너무 작아 생각보다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 물고기의 뇌는 정말 눈곱만 했다(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크기가 그렇다).

물고기 해부만큼 단원들이 재미있어 했던 실습은 ‘흑진주 삽핵’이었다. 태평양해양과학기지에서는 2008년 국내 최초로 흑진주 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이후, 꾸준히 흑진주 수확률을 높이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한준 KIOST 생태기반연구센터 연구원은 “골드, 에코그린, 실버, 블랙, 블루 등 다양한 색의 진주가 있다”며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색은 에코그린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유난히 흑진주가 인기가 많아 가장 경제성이 높다”고 말했다. 흑진주 양식 기술은 교재도 없고, 관련 논문에도 자세히 서술돼 있지 않아 기술자의 존재가 무척 중요하다. 이곳 역시 김 연구원이 없으면 삽핵과 같이 세심한 기술이 필요한 과정은 진행할 수 없다.

학생들이 실습한 삽핵은 진주조개의 생식소에 진주가 될 핵(조개 껍질을 뭉쳐 동그랗게 만든 것으로 마치 구슬같이 생겼다)을 삽입하는 과정이다. 핵이 성공적으로 들어가면 진주조개는 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핵에 일종의 ‘코팅’을 하게 된다. 여러 겹이 코팅되면 우리가 아는 진주가 된다. 조개가 죽지 않게 조개 입을 3cm만 열어준 뒤 생식소에 핵을 집어넣으면 되는데, 매우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어! 핵을 놓쳤어요. 조개 안에 핵이 잘못 들어갔는데 어쩌죠?” 이준원(동성고 1학년) 학생이 당황하며 말했지만 김 연구원은 평온한 얼굴로 “다시 빼면 된다”며 안심시켰다. 뒤이어 실습한 대부분의 단원들이 핵을 놓치거나, 심지어 생식소가 아닌 다른 기관에 핵을 넣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반면 이상현(경기 신갈고 2학년) 학생은 한번에 삽핵에 성공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상현 학생은 “먼저 실습한 친구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본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 과학의 중심엔 태평양해양과학기지가 있다

8박9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연구단원 중 유일한 대학생인 백종원 씨는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해양 생물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며 “이 사진들을 모아 해양 생물 도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혜린 학생은 “오기 전까지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연구원들과 나눴던 대화나 실습들이 진로 결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동진 기지대장은 “여기 온 학생들에게 해양 과학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며 “학생들을 통해 태평양에서도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정 내내 해양 생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최영웅 연구원은 “생물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다”며 “이번 캠프로 해양 생물에 관심이 많던 연구단원들이 많은 것을 얻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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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미크로네시아 축=최지원 기자
  • 사진

    미크로네시아 축=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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