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국 불가리아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은 우유를 유산균에 의해 발효시킨 요구르트다. 요구르트는 영양소가 풍부할 뿐 아니라 장수식품으로 그리고 정장작용과 항암효과가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훌륭한 김치와 된장 등의 발효식품이 있다. 김치와 된장은 주식인 쌀밥과 함께 필요한 영양소 공급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유지를 위해 중요한 일익을 담당해 왔다.
발효식품은 식품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의 일종이다. 또 유용한 미생물들에 의해 큰 분자의 영양소를 소화가 잘되는 식품으로 만들고 맛도 있게 하며 여러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김치는 채소류 특히 배추를 소금에 절여 여러 양념을 넣은 우리 특유의 종합보호 전통 발효식품이다. 채소류를 섭취하는 사람은 임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역학 조사가 나와 있듯이 채소류는 항암효과 등 여러 성인병 예방에 중요하다.
특히 김치는 비타민 무기질 등 여러 생리조절 영양소가 풍부할 뿐 아니라 발효과정중 유기산이 생성되며 항암 및 정장작용을 나타내는 유산균의 보고이기도 하다. 김치 속의 유산균은 김치가 잘 익었을 때 1g(㎖)당 1천만-1억마리 정도가 들어 있다. 조상들은 겨울철에 섭취하기 어려운 채소류를 김치를 통해 충족해 왔는데 김치의 식이섬유와 유기산은 변비예방에도 좋다.
된장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으로 제조된다. 콩은 단백질 41%, 지방 18%, 당질 23%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콩 속의 트립신 인히비터, 이소후라본, 불포화지방산 등은 간의 건강유지 및 암예방에 중요한 인자다.
콩은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치료식이며 변비에도 좋다. 이러한 콩을 원료로 해서 만든 된장은 발효과정에서 소화가 잘 되는 영양소로, 건강에 유용한 식품으로 변한다.
부산대의 필자 연구실에서는 10여년 전부터 김치와 된장의 안정성 및 항암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 김치는 비타민C, 카로틴(비타민A), 식이섬유, 클로로필, 페놀성 화합물 등이 풍부하며 암예방 효과와 암세포의 성장도 억제하는 특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된장은 아플라톡신이라는 발암물질에 오염돼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오히려 된장은 여러 발암물질로 인한 암발생 위험을 크게 감소시키는 음식으로 확인됐다.
된장국(된장찌개)에도 암세포성장 억제 등 항암활성이 있으며 생체의 종양생성을 억제하고 면역계(면역세포)의 활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기 4세기에 전래된 불교는 한반도의 음식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유목민족의 육식습관은 불교의 전파로 점차 채식문화로 바뀌었으며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거의 1천년동안 채식위주의 식습관이 뿌리 깊게 정착됐다.
이 기간 동안 고기를 배제하고 곡물과 채소만으로 음식 맛을 내는 조리법들이 다양하게 발달했다. 참기름을 비롯한 각종 식물성 기름의 이용, 곡물을 분쇄하거나 볶아서 구수한 맛을 내는 각종 떡류 과자류 미수류(미숫가루) 단자병류가 발달했다. 그 한 예로 고려시대에는 약과의 제조가 너무 유행해 흉년에는 법으로 금할 정도였으며 중국에서도 약과를 고려병(高麗餠)이라 하여 크게 유행했다.
서기 13세기부터 거의 2세기에 걸친 원(元)나라 몽고인들의 침략으로 우리의 식습관은 다시 커다란 전환점에 서게 됐다. 몽고인들에 의해 이 땅에서 거의 잊혀져 가던 육식문화가 부분적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또한 소주의 증류법이 전래, 소주의 제조가 시작 됐다. 이 시대 몽고군의 병참기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 등지가 아직도 소주의 명산지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 때는 숭유배불(崇儒排佛)정책으로 우리의 식습관이 채식과 육식이 조화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와같이 일본인들이 1백년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지 않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우리 민족은 육식과 채식을 조화롭게 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7세기에 전래된 고추는 우리의 식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단순한 소금절임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김치가 고추를 사용하면서 다양하게 발달해 한국인의 구미를 사로잡게 된 것이다.
또한 된장에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고추장은 한국 특유의 발효조미식품으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어족(語族)으로 알려져 있는 헝거리인들이 유럽에서는 특이하게 고춧가루를 몹시 애용한다는 사실도 대단히 흥미 있는 일이다.
1827년 서유구가 저술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는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던 당시의 기술백과사전이다. 이 책의 정조지(鼎俎志)는 오늘의 식품가공학에 해당한다. 제1장 식감촬요(食鑑撮要)는 식품재료를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11종의 물, 36종의 곡물, 72종의 과채류, 13종의 수육가금류(獸肉家禽類), 34종의 어류, 8종의 조미식품이 수록돼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식품학 책에도 서두에 물의 종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식품제조에서 사용하는 물의 품질이 중요함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우리 고전식품학의 수준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잘 익었을 때 영양소 가장 풍부한 김치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기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식품발효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물성 식품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의 유목민족들은 우유나 고기가 빠르게 부패하므로 이들을 저장하는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식품저장기술이 발달했다.
곡물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쌀이나 콩이 저장은 쉽게 되나 밥만으로는 맛이 부족해 먹기 어려우므로 맛을 만들어 내는 여러가지 기술이 발달하게 됐다. 한국의 발효식품은 맛의 창조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식품들이다.
간장 된장은 콩에 있는 단백질을 미생물의 힘으로 분해해 구수한 고기맛을 내게 한 식품이다. 메주는 일본식 간장과 달리 겉에 황곡균 곰팡이(Aspergillus oryzae)가 자라지만 내부에는 청국장을 만드는 세균(Bacillus subtilis)이 주로 자라므로 왜간장보다 톡 쏘는 맛을 낸다. 이들 미생물들이 합세해 다양하고 풍부한 맛과 향을 낸다.
저급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구수한 고기맛을 낸다는 점에서 장류발효와 축산에 의한 육류생산은 같은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쇠고기를 생산할 때 사료단백질이 육단백질로 전환되는 율은 5%, 돼지고기 생산시의 사료단백질 전환율은 20%에 불과한 데 반해 장류발효에서는 콩단백질의 70% 이상이 간장 된장으로 회수된다. 즉 장류발효는 축산보다 단백질 이용효율이 훨씬 높은 경제적인 방법인 것이다.
김치발효는 채소가 없는 겨울철에 비타민을 공급받을 수 있는 훌륭한 저장방법이다. 채소를 식염농도 3% 내외의 소금물에 절여두면 대부분의 병원성 세균이나 부패세균이 억제되고 유기산을 생산하는 세균들이 생육하게 된다.
김치발효의 초기에는 Leuconostoc mesenteroids라는 세균이 주로 생육하는데, 이 균은 젖산과 초산을 동시에 생산하는 세균이며 pH 4.8이하에서는 잘 생육하지 못한다. pH가 낮아지면 젖산만 생산하는 Lactobacillus plantarum이 자라면서 pH가 더 낮아진다. 이 균이 왕성히 자라면 김치는 너무 시게 돼 맛이 떨어진다. 독일사람들이 즐겨 먹는 사우어크라우트는 식염농도가 1%이하로 낮아 처음부터 Lactobacillus가 왕성해 pH가 2-3 수준으로 내려가므로 대단히 강한 신맛을 낸다. 그래서 사우어크라우트는 한번 데친 후에 먹는다.
김치에 사용하는 마늘은 유산균 이외의 다른 유해세균이 자라는 것을 억제한다. 고춧가루에는 황곡균을 잘 자라게 하는 요소가 있다. 김치에는 이런 요소들이 작용해 발효를 조절하며 조화된 맛과 저장성을 가지게 한다.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김치가 먹기 좋은 상태로 잘 익었을 때에 영양소함량이 가장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타민 ${B}_{1}$, ${B}_{2}$, ${B}_{12}$, 니콘틴산의 함량이 김치가 잘 익은 때에 최고치에 도달하며 오래돼 시어지면 이들 비타민함량이 급격히 감소된다.
김치 장류발효와 맥을 같이하는 생선식해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수산발효식품들이 있는데, 이들을 크게 분류하면 젓갈과 생선식해로 구분할 수 있다. 젓갈은 중국의 고문헌에 의하면 생선을 식염과 메주, 맥아 등 여러 가지 다른 침장원을 섞어 담그는 예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집스럽게도 식염만을 사용해 담그는 방법을 택해 왔다. 이 방법은 식염을 너무 많이 쓰면 맛이 없고 적게 쓰면 변질하는 까다로운 방법이나 맛이 담백하고 생선의 조직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생선식해는 전분을 함유하는 곡물과 생선을 소금에 버무려 두면 전분의 유산균 발효에 의해 2-3일 이내에 pH가 4.5이하로 내려가 유해잡균의 번식을 막는다. 2-3주 지나면 적당히 익어 먹을 수 있게 되므로 변질하기 쉬운 생선을 1개월 가량 저장하면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생선식해는 식염농도가 8% 내외의 낮은 수준이므로 밥반찬으로 상당량을 먹을 수 있어 단백질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영양급원으로 가치가 크다. 이는 또 젖산을 생산해 맛과 저장성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김치와 같고, 생선단백질을 부분 가수분해해 좋은 맛을 낸다는 점에서는 장류발효와 맥을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