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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초 초고밀도의 한점-대폭발 급팽창

우주배경복사 발견 후 유력-암흑물질 정체규명이 걸림돌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크고 무지막지하게 뜨거웠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팽창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현대우주론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Hubble)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우리로부터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A라는 은하가 B라는 은하보다 2배 멀면, A라는 은하는 B라는 은하보다 2배 더 빠른 식으로, 마치 은하의 후퇴속도 와 거리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따라서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향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다가와 우주 초기 어느 순간 모든 은하들이 한 점에 모여야만 한다.

즉 우주는 대폭발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우주론을 가리켜 흔히 대폭발(BB, Big Bang) 우주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곳에 다 모여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았다. 어떻게 온 우주가 현미경으로도 안보일 만큼 작은 태초의 '알'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까. 바로 여기에서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정설로 굳어진 표준이론

태초의 알은 끔찍하게 높은 온도와 밀도를 갖는 특이점(singularity)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특이점이란 현대 물리학으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마치 수학에서 분모가 0이 되는 점과 같은 난해함을 지닌다. 블랙홀의 중앙에도 여러 가지 모양을 갖는 특이점이 있다. 즉 특이점이란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가능하면 피해보려고 시도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다. 앞글에서 소개된 정상(CC, Continuous Creation)우주론은 바로 관측되는 우주의 팽창은 받아들이되 초기의 특이점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된 모델이다.

CC 우주론은 본디(Bondi) 호일(Hoyle) 골드(Gold)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 천문학 연구소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지금도 케임브리지대 천문학 연구소의 현관에는 SF '암흑성운'으로도 유명한 호일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반면 BB우주론은 주창자인 소련계 미국인 가모프(Gamow)를 위시하여 주로 미국의 천문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따라서 'BB냐 CC냐' 논쟁은 어떻게 보면 영국 천문학과 미국 천문학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 대결처럼 보였다.

본초 자오선이 지나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가진 영국이란 나라의 천문학에 대한 집념은 정말로 대단하다. 이는 케임브리지대 같은 곳에 천문학만을 위한 연구소가 있다는 점이나, 지금도 왕립천문학회를 존속시키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만한 일이다. 호킹(Hawking)이 옛날 뉴턴(Newton)이 받았다는 석좌교수직을 오늘에 승계하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다는 1687년으로부터 꼭 3백년이 되는 1987년, 뉴턴이 1661년부터 1696년까지 다녔던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는 대대적인 중력 발견 3백주년 기념학회가 개최됐다. 그 학회 내용을 담은 두꺼운 책은 물론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인쇄되었고 편집자 역시 호킹과 그의 동료 이스레이얼(Israel)이었다. 그 책의 표지는 맛이 없을 것 같은 초록색 둥근 사과가 떨어지는 사진으로 장식되었다. 필자가 1989년 케임브리지대 천문학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미니 블랙홀에 관하여 공동연구를 했던 당시 소장 리즈(Rees)교수에게 붉고 맛있게 생긴 사과를 표지에 썼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고 무심코 농담을 건 적이 있었다. 그랬다가 " 만일 뉴턴이 속설처럼 사과에 얻어맞았었다면 그 사과는 바로 그렇게 맛없게 생긴 영국 재래종이었을 것이다"라는 리즈 교수의 대답을 듣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영국 천문학자들인 만큼, 아직도 CC우주론에 대한 미련이 약간은 남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 9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호킹마저 '우주의 기원'(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강의에서 특유의 기계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There doesn't seem any way to explain this radiation in the Steady State theory. I believe that Hoyle still claims that it could be generated by iron needles, distributed throughout intergalactic space, and heated by ultraviolet light. However, the recent microwave background observations, by the Cosmic Background Explorer satellite, show that it has such perfectly thermal spectrum, that I think even Hoyle, will now abandon the Steady State theory···'

와 같이 말할 만큼, BB와의 승부는 패배로 끝났다. 이제 우주론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빅뱅 이후 현재의 우주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태초의 대폭발

BB우주론에서 대폭발이 일어난 바로 그 때를 우리는 태초라고 부른다. 태초라는 시간을 정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럼 그 이전은 어땠냐고 묻고 싶어 근질근질해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이전에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향하여 꾸준히 거슬러 올라가면 시간의 시작점에서 과거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지구상에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마침내 북극에 도달하는 순간 북쪽 방향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극에 서 있는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넘어져도 남쪽인 것처럼 시간의 시작점에서는 오로지 미래의 방향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태초가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학설이 분분하다. 현대 우주론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1백억 년 전,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2백억 년 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남북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관망파'들은 중도적인 입장에서 1백50억 년 전이라고 말한다. 우주론에서 나오는 수치들은 이처럼 부정확한 것들이다.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크고 무지막지하게 뜨거워야 했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팽창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태초 후 몇 분이 지나자 급격히 팽창하는 우주 속에는 수소와 헬륨의 원자핵들과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전자들, 그리고 높은 에너지를 가진 빛만이 존재하였다.

빛은 전자들 때문에 진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질과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온도가 떨어짐에 따라 전자들이 원자핵에 잡혀 정상적인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를 이루어 가자 비로소 빛들은 마음것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즉 우주는 빛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처음에는 흐리다가 나중에는 맑아진 셈이다.

그 때 우주공간에 고루 퍼져 나간 빛들은 오늘날 모든 방향에서 마이크로파(전파)의 형태로 관측된다. 앞에 인용한 호킹의 강연내용 중 microwave background observation 이란 바로 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것을 말한다. 미국의 펜지아스(Penzias)와 월슨(Wilson)은 1963년 전파 안테나를 정비하던 중 우연히 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우주배경복사는 현재 절대온도 3도(3K)의 온도에 해당하는 낮은 에너지를 가질 정도로 식어 있다. 우주 배경복사는 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비밀을 알려 주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관측된 우주배경복사는 어느 방향 에서 날아오는 것이든 놀라우리만큼 똑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반대 방향에서 광속으로 날아온 우주배경복사가 어떻게 그렇게 완벽할 정도로 똑같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광속으로 날아와 이제 우리에게 도착한 두 빛은 서로 뒤섞여 모든 정보가 똑같아질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제각기 걸어온 두 사람이 사전에 전화를 이용하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었다면 완벽하게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인플레이션(inflation) 우주다. 인플레이션 우주란 우주값이 떨어졌다는 이론이다. 즉 처음에는 모든 빛과 입자가 상대적으로 더 작은 우주에서 잘 뒤섞여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다가 인플레이션을 겪어 현재의 우주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펜지아스(왼쪽)과 윌슨


암흑물질의 규명시급

우주는 대폭발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하와 은하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하지만 팽창속도는 은하와 은하 사이의 중력에 의하여 점점 감속된다. 왜냐하면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서로 잡아 당기는 방향으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초 폭발의 세기가 어떤 값보다 컸으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을 계속하지만, 작았으면 언젠가는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는 하늘을 향해 던져진 돌이 초속도가 어느 값보다 큰 경우에는 지구를 탈출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즉 우주의 운명은 이미 시작 때 결정된 셈이다.

우주가 팽창을 멈춘 후 수축하는 경우에는 종말에 이르러 대폭발의 반대인 대함몰(BC, Big Crunch)을 맞이하게 된다. 반대로 영원히 팽창하는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일단 수소나 헬륨이 핵융합 과정을 통하여 형성한 무거운 원자핵들은 다시 수소나 헬륨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별들이 윤회하여 여러 세대가 되풀이된다고 해도 핵융합의 원료는 점점 더 고갈되어 이론적으로 언젠가는 우주에서 빛이 사라져야만 한다. 영원히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별들의 시체인 백색왜성 중성자성 블랙홀들이 모여 이곳 저곳에 대한 블랙홀들이 생성되면서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느 경우가 실제로 적용될지 알기 위해서는 우주내 물질의 총질량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물질의 총질량이 어떤 기준값보다 작으면 질량에 비례하는 중력의 크기도 작아져 우주의 팽창은 계속 되고, 크면 팽창은 언젠가 멈춰지고 마침내 수축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문제에서 천문학자들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 눈에 밝게 보이는 은하들은 이 우주에 '있어야 하는' 질량의 10%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있어야 하는 질량이란 별이나 은하들의 관측된 운동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추산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물질을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르는데 천문학자들은 아직까지 그 정체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제 지름이 10m가 넘는 초대형 천체망원경들을 통하여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천문대가 내년 보현산에 설치할 예정인 지름 1.8m 망원경도 이미 '소형'으로 분류되고 있는것이 세계적 추세다. 우주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199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석재 천문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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