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제외한 생리기능이 기계로 대치된 인간, 사이보그는 물론, 인간의 마음을 기계에 이식하는 아이디어까지 등장했다. 과연 미래의 인류는 어디까지 기계이고 어디까지 인간일까.
인류의 장래를 예측함에 있어 생물적 요인보다 기술적 측면을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작금의 추세는 결코 놀라운 일이 못된다. 생명공학과 정보기술로 대표되는 기술 문명이 인류의 진화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개연성이 갈수록 농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은 이미 새로운 생물을 창조하는 길을 터놓았으며, 컴퓨터 기술은 생물처럼 자식을 낳고 진화하는 기계의 개발을 겨냥하고 있다.
더욱이 두 기술이 제휴하여 분자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분자 크기의 기계, 즉 분자기계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분자기계는 생명공학에 의하여 대장균으로부터 합성된 단백질분자로 구성되므로 살아있는 기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진화의 새로운 국면
분자기술은 나노(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측정되는 분자를 개별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나노기술(nanotechnology)이라 불린다. 나노기술의 출현으로 미래의 기계가 생물체와 유사한 기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엿보임에 따라 사람과 기계의 관계를 생물의 진화 측면에서 논의하는 과학자들의 저술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그레고리 스톡박사는 그의 저서 '메타인류'(Metaman, 1983년)에서 인류가 메타인류라 불리는 한 차원 높은 생물로 진화되는 와중에 있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메타인류는 인류와 현대문명이 결합되어 형성된 전지구적 규모의 초유기체로 정의된다. 따라서 메타인류는 사람을 포함해서 과학기술과 지구상의 모든 기계류 건물 통신시설 따위로 구성된다. 인류가 기계 , 특히 컴퓨터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미래사회를 하나의 생물체로 간주한 셈이다.
스톡은 메타인류의 출현을 생물진화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했다. 지구상의 생물은 세차례의 도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화의 역사에서 첫번째 사건은 35억년 전에 최초의 생명체가 박테리아 형태로 출현한 것이다. 두번째 도약은 21억년 전에 나타난 진핵세포이다. 박테리아를 제외한 모든 생물은 세포 속에 핵을 갖고 있는 진핵생물이다. 7억년 전에 발생한 세번째 사건은 여러 개의 진핵세포가 모여서 다세포생물을 구성한 것이다. 스톡은 현재 진행중인 메타인류의 형성이 이러한 사건에 맞먹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생물진화의 역사에서 네번째의 도약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타인류의 개념은 다소 과장되고 논리적으로 엉성하지만 인류의 다가오는 진화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까닭에 관심을 끌고 있다.
뇌만 남은 미래의 인류
인류의 생물진화가 완료된 이후의 세계를 처음으로 탐구한 과학자는 영국의 데스먼드 버널이다. 그는 1929년에 펴낸 '세계, 육체, 악마'(The World, the Flesh and the Devil)라는 소책자에서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세개의 적으로 가난 홍수와 같은 물질적 장애(세계),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신체적 약점(육체), 마음속의 탐욕 질투 광기(악마)를 열거하고 인류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증식하는 기계, 즉 자식을 낳는 기계를 제조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버널처럼 미래의 인류가 기계와 공생할 것으로 전망한 생물학자는 미국의 린 마굴리스이다. 나노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한 그녀는 1986년에 펴낸 '미생물 우주'(Microcosmos)에서 "우리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특별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인공공생(cybersymbiosis), 즉 인간 신체의 부분품이 미래의 생명체 안에서 진화하는 것이다. (중략) 미래의 인간은 팔다리가 보철에 의하여 잘려나간 형태-아마도 정교하게 해부된 신경계만이 전기적으로 구동되는 플라스틱 팔에 부착된 형태가 될지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사람이 몸통과 사지가 없이 뇌만 남은 형태로 진화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사이보그를 연상시킨다. 사이보그는 생리기능이 기계로 대치된 인간이다. 인체의 일부를 기계장치로 치환하는 보철기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의 모든 부위에 대해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미구에 사이보그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기계장치로 대치할 수 있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뇌를, 늙어 죽게 마련인 인간의 몸에서 끄집어내서 특수 설계된 로봇의 몸통으로 옮겨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뇌를 로봇에게 이식시키는 일이 콩팥이나 각막 따위를 떼어내는 것처럼 쉬울 리 만무하다. 왜냐하면 뇌에서 사람의 마음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뇌로부터 마음을 뽑아내서 기계에게 옮겨주는 방법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을 이식하는 수술
미국의 로봇공학 전문가인 한스 모라벡의 저서 '마음의 자식들'(Mind Children,1988년)이 출간 직후 신선한 충격을 던진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기계로 옮기는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드러누워 있는 당신 옆에는 당신과 똑같이 되려는 컴퓨터가 대기하고 있다. 당신의 두개골이 먼저 마취된다. 그러나 뇌가 마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의식은 말짱하다. 수술을 담당한 로봇이 당신의 두개골을 열어서 그 표피를 손에 수없이 많이 달려있는 미세한 장치로 주사(走査)한다. 주사하는 순간마다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가 기록된다.
로봇의사는 측정된 결과를 토대로 뇌 조직의 각 층이 보여주는 행동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이 프로그램은 즉시 당신 옆의 컴퓨터에 설치되어 가동된다. 이러한 과정은 뇌 조직을 차근차근 도려내면서 각 층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시행된다. 말하자면 뇌조직의 층별로 뇌의 움직임이 모의실험(simulation)되는 것이다.
수술이 끝날 즈음에 당신의 두개골은 텅빈 상태가 된다. 물론 당신은 의식을 잃지 않고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이미 뇌로부터 빠져나와서 기계로 이식되어 있다. 마침내 수술을 마친 로봇의사가 당신의 몸과 컴퓨터를 연결한 코드를 뽑아버리면 당신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잠시 동안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당신은 눈을 뜨게 된다. 당신의 뇌는 비록 죽어 없어졌지만 당신의 마음은 컴퓨터에게 온전히 옮겨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새롭게 변형된 셈이다.
모라백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에 이식됨에 따라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컴퓨터의 처리성능에 힘입어 사람의 마음이 생각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속도가 수천배 빨라질 것이다. 마음을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의 성능이 강력해지면 그만큼 사람의 인지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을 복사하여 동일한 성능의 컴퓨터에 집어넣을 수 있으므로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기계를 여러 개 만들어 낼 수 있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복사하여 보관해두면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사멸하지 않게 된다. 마음이 죽지 않은 사람은 결국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은 그의 저서 '모든 방향으로의 무한'(Infinite in All Direction, 1988년)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을 설정하고 "아마도 조상의 뇌 안에 있는 생존시의 경험을 기록한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그러면 이 기술로 조상의 기억과 감정을 살아있는 사람의 의식 속으로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미래와 과거의 구분이 흐릿해질 것이다"라고 21세기 과학기술을 전망하였다.
문화적 진화 시작된다
모라벡은 더 나아가 마음을 서로 융합시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조합시키는 것처럼 여러개의 마음을 선택적으로 합치면 상대방의 경험이나 기억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유전에 의한 진화를 마감하고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를 시작하게 된다.
문화적 진화 개념은 2차대전 직후에 러시아 출신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세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1900~1975)에 의하여 정립되었다. 그는 "문화는 유전자에 의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다른 인간으로부터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유전자들은 완전히 새롭고, 비생물학적이고, 초유기체적인 요인, 즉 문화에 인간진화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태인 대학살을 몰고 온 인종적 편견에 혐오감을 느낀 도브 잔스키는 인류가 유전자의 굴레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그 해답으로 문화적 진화를 내놓은 것이다.
문화의 전달이 진화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유전자의 전달에 비유될 수 있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1976년)에서 문화의 전달단위를 밈(meme)이라고 명명했다. 밈은 진(gene)처럼 한 음절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밈은 유전자처럼 복제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방의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뇌로부터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뛴다. 사상, 노래, 관습, 옷의 패션, 건축 양식 등이 모두 밈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문화적 진화는 밈에 의하여 수행된다.
문화적 진화가 유전적 진화와 다른 점은 다윈(1809~1882)의 진화론보다는 라마르크(1744~1829)의 진화론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라마르크는 생물체의 몸 중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분이 점차 커져서 그렇게 획득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진화된다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예컨대 기린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목이 길게 늘어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문화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달리 획득형질이 밈에 의하여 복제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요컨대 문화적 진화는 본질적으로 라마르크 진화론의 과정이다.
두번째의 유전자 점령
인류의 진화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후손보다는 마음의 자식들인 기계에 의하여 주도된다면 인간의 유전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모라벡은 진화의 주역이 유전자에서 마음의 기계로 바뀌는 과정을 유전자 점령(genetic takeover)현상에 비유했다. 유전자 점령은 영국의 화학자인 케언스-스미스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 점토이론에서 내놓은 개념이다.
점토이론에 따르면, 최초의 유전물질 역할을 수행한 것은 핵산이나 단백질 같이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인 점토이다. 점토는 물의 작용으로 단단한 바위들이 풍화작용을 일으킴으로써 형성된다. 지구는 항상 엄청난 양의 점토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토는 대부분 결정물이다. 점토가 다소 형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점토의 결정이 아주 미세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가장 흔히 존재하는 스스로 조립된 물체가 결정이다. 설탕, 얼음조각 등의 분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질서정연하게 조립되어 결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완벽한 결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 표면에 결함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결정들은 실제로 크기가 유한하고 특정한 모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점토의 미세한 결정이 지니는 크기와 모양은 개별 결정의 특징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서 결정의 크기와 모양은 그 결정의 원자배열 속에 들어 있는 특정한 내용의 정보를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결정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복제된다. 점토의 결정체가 주변에 있는 물에 용해된 원자에 부착되어 커질 때, 새롭게 형성된 결정층은 그 아래에 있는 결정층과 동일한 패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토 결정체는 유전물질의 두가지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복제할 수 있으며, 그 정보를 주변의 다른 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점토결정체가 확산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케언스-스미스는 점토결정체를 저급기술의 유전자에 비유한 반면에 핵산은 고급기술의 유전자로 간주했다. 그리고 저급기술의 유전자로부터 역할을 인계받은 고급기술의 유전자가 뒤늦게 출현한 것으로 설명했다. 점토처럼 아주 흔해빠진 물질에서 핵산처럼 고급기술의 유전물질로 기능이 넘겨지는 과정을 유전자 점령이라고 명명했다.
로봇이 지구의 주인으로
기계가 인간의 도움없이 스스로 증식하고 진화하기 시작할 무렵에 두번째의 유전자 점령이 완료될 것이다. 기계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는 오늘날과 딴판일 것이다. 영국의 작가 사뮤엘 버틀러 (1835-1902)가 풍자소설인 '에레혼'(Erewhon, 1872년)에서 지능을 가진 기계가 사람의 지위를 물려받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뒤부터 끊임없이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살아있는 기계가 모습을 드러낼 날도 멀지 않았는지 모른다.
인류의 미래가 인간의 혈육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넘겨받은 기계에 의하여 발전되고 승계될 것이라는 모라벡의 주장은 실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자식은 순전히 상상력의 소산이긴 하지만 적지않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 이론의 선구자인 미국의 마빈 민스키교수는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94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나노기술을 사용하여 뇌를 기계로 대치할 수 있을 것으로 단정하면서, 미래의 기계는 마음의 아이들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모라벡에게 전폭적으로 공감하는 의견을 다음과 같이 개진했다. "로봇이 지구를 물려받을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의 자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