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 심곡본동에 위치한 정명고등학교를 찾았다. 로봇을 사랑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신생 동아리, ‘STAR’를 만나기 위해서다.
제보 메일에는 ‘학생 스스로 학생을 가르쳐 로봇을 개발한다’는 내용이 강조돼 있었다. ‘학생 스스로’는 흔히 동아리를 홍보하는 문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제보를 한 사람도, 취재 약속을 잡은 사람도 선생님이 아닌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취재 전부터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로봇 만드는 즐거움을 더 많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는 김수진(2학년) 학생이 말하자 동아리 친구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주 학교 축제에 선보일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하느라 기자가 과학실에 들어설 때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학생들은 로봇을 만드는 동아리 시간이 학교생활 가운데 가장 즐겁다고 덧붙였다.
과학실 양쪽 벽면에는 로봇 외형을 만들기 위한 블록과 그간 학생들이 만든 로봇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올해 3월에 만든 동아리지만 벌써 3개의 크고 작은 과학축전에 참가해 자신들이 개발한 로봇을 선보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가기로 예정된 과학축전도 아직 3개가 남아 있다. 내년 1월에는 전국 규모로 열리는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손끝으로 로봇 체험하고 싶었던 학생들
현재 STAR에는 1학년 7명, 2학년 11명 등 총 18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정명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다. 하지만 로봇을 좋아하고 공학을 손끝으로 체험해 보고 싶었던 학생들은 수능 위주의 공부만 하는 학교생활에 목이 말랐다. 김수진 학생이 주도해 일단 동아리를 만들고 전교에서 함께할 친구들을 모았다. 동아리 이름도 ‘공학과 로봇을 공부한다(Studying Technology And Robot)’는 말의 약자로 ‘STAR’라고 지었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김영주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서 활동하는 만큼 단합이 정말 잘돼서 다른 과학 동아리 학생들이 부러워할 정도”라며 “외부 대회 출전 비용도 학생들이 용돈을 아껴 모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해서 교사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든 로봇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부터 게임을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신동혁 학생(1학년)은 무선 조종기를 돌리는 각도를 센서가 감지해 그 각도만큼 바퀴를 회전시키는 무선자동차를 개발했다. 지난 부천과학페스티벌에서는 시민들이 로봇공학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로봇 축구 게임을 만들었다. 터치 센서가 달려 있어서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공이 골대로 정확히 발사된다. 신동현 학생(2학년)은 “축전 일정이 공개되면 야간자율학습과 주말 시간을 쪼개 로봇을 만든다”고 말했다.
“전국구 로봇 동아리 만들어 우리 열정 홍보할 것”
취재를 하는 도중에 학생들 책상 위에 놓인 ‘로봇기술자격 시험준비서’가 눈에 띄었다. ‘누가 벌써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냐’고 묻자, 신동혁 학생은 “로봇 관련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해 구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끼리 모여 로봇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였다. “밤새 프로그램을 짰는데 명령어가 충돌하면 로봇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로봇이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어서 막막하죠.” 서민석 학생(1학년)은 이런 어려움쯤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 교사도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는 게 기특하다가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은 로봇을 만드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로봇 외형을 만드는 블록과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가 포함된 키트 한 대가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김수진 학생은 “과학축전에서 로봇공학자로 유명한 데니스 홍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속 가능한 동아리 활동을 하려면 연구 성과를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내년 1월에 전국 규모 로봇 동아리를 출범해 우리의 열정을 홍보하고 후원도 받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어려운 사람 돕는 로봇 만들 것”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더 큰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장형중 학생(1학년)은 “로봇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2학년이 되면 이과가 아닌 문과에 진학할 예정”이라며 “요즘 노인 복지를 위해 심부름하는 로봇, 치매 예방 놀이 로봇 등이 활용되는 추세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돼서 노인 로봇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송창민 학생(1학년)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한 데니스 홍 교수님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로봇 공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교훈 학생(2학년)은 “생명 물리 화학이 모두 접목되는 로봇공학을 공부해, 인공 생체 조직 같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로봇 공학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부천 정명고의 STAR를 찾아보면 어떨까. 미래에 로봇으로 세상을 밝히고 싶은 학생들이 오늘도 밤늦게까지 과학실의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