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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솜씨 보고 얼굴형 알 수 있다

한국화가 조용진의 한국인 탐구④

그동안 한 개인에 대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조사했다. 그 가운데는 그림그리기의 경향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을 테스트해 본 결과 여기에서도 한국인의 대표적 세 얼굴, 즉 북방형 남방형 서남형이 각각 공통의 특징으로 그림 그리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모(假母)에게서 자란 새의 울음소리는 키워준 가모의 것을 닮지만 발음기관(새들에게는 성대가 없다)의 해부학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키워준 어머니의 울음소리(문화)를 배워서 익혀도 목부분의 해부학적 구조(체질)가 다르면 똑같이 울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 한국인, 한국의 문화에 대해 생각할 때도 반드시 한국에 끼친 주변민족의 '문화'와 더불어 한국인 고유의 '체질'적 특성도 결부해 고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얼굴이 닮았으나 문화가 다른 것은

지구 위의 여러 민족들 중에 체질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얼굴의 형태로 비교해 보면 역시 가장 닮은 모습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일본문화, 그 중에서도 예술문화는 우리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양국인이 서로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일본인들, 그 중에서도 에도시대 이후 일본문화의 중심지인 동경 주변의 출신들은 말의 전개방식, 음악성, 미술적 감각 등 고등한 사고능력면에서 내 주변의 같은 전문분야의 한국인들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보인다. 한국인이라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고 시공간적으로 말할텐데, 일본인들은 대개 "…죽어도(죽는다 해도)…"라고 가상적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보통이다. 노래도 드라마틱한 이탈리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보다 잘 다듬어 속삭이듯 부르는 독일 가곡을 좋은 음악으로 여긴다.

일본인 성악가의 의상이 은은하고 밝은 중간 색조의 단색 드레스가 대종인 것에 반해 한국의 성악가들은 원색조의 강렬하고 화려한 색상대비의 의상을 주로 입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일본의 성악과 학생들이 한자리에서 같이 발표하는 음악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때 한국 학생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왔는데, 이를 본 일본인 청중들이 놀라고 감탄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사정은 미술분야에도 마찬가지다. 고분벽화에서 현대의 비디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서로 개성이 다르다. 왼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기하학적이고 평면성이 강하게 나타난 벽화양식은 같은 고분벽화이면서도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으며 또한 이런 점이 일본미술의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특색이기도하다.

현대미술의 경향도 일본의 미술작품이 한국의 것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개념의 전달이 뚜렷하다. 한사람의 작품경향을 추적해 보면 한국의 미술가들은 귀납적 발상으로 작품을 구상해 한 점 한 점 작품의 함축성이 크나 작품들 간에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에 비해 일본인 작가들의 경우는 한가지 모티브를 잘 연역해 수년 간에 걸친 양식 변화의 추이가 연결돼 보인다.

미술사가들은 일본의 미술은 평면적이고 인공적(artificial)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비해 한국의 것은 자연스러운(natural) 특색이 있다고 정의한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체질이 유사한데도 이렇게 문화의 차가 뚜렷이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인쪽의 문화가 체질과 다르게 됐거나 아니면 우리 한국인쪽이 다르게 됐거나 둘중에 하나일 것이다.

먹고 자고 입는 일에 의해 생기는 생활문화는 한국인 거의가 양복입고 사는 것 같이 문화적 전파에 의해 비교적 쉽게 변한다. 그러나 정신문화, 그중에서도 예술문화는 생활문화만큼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직관의 영향이 큰 예술문화가 사고의 패러다임을 크게 제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그리기 테스트에 나타난 세 가지 그림의 유형
 

(그림1) 얼굴을 이렇게 이집트 벽화처럼 그리는 사람들 중에는 남방계형의 출현율이 높다. 일본의 미술이 평면적이고 기하학적 요소가 큰 것은 이들 남방계형의 체질적 특성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한국인이 가진 사고의 패러다임 속에 녹아 있는 한국적 특성을 미술문화의 측면에서 찾아 보고자 몇 가지 시도를 해봤다. 우선 한국인의 평균적 측면 얼굴을 작도해 거기에 눈 코 입 귀를 그려 넣게 함으로써 한국인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얼굴'의 패러다임을 찾아 보고자 했다.

얼굴그리기 테스트에서 얻은 그림의 유형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가장 빈도가 높게 나타나는 그림은 (그림1)처럼 이마를 좌우로 넓게, 그리고 눈썹도 길게, 눈은 정면에서 본 나뭇잎 모양으로, 콧망울도 크게, 입도 길게, 그리고 인중이 보이도록 그린 타입이다. 이런 그림에서는 대개 귀의 위치가 뒷머리쪽으로 가깝게 붙어 그려져 있다. 이런 타입의 그림은 한국의 일반인, 학생한테 80% 이상의 빈도로 나타난다.

또 하나는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은 타입이다. 눈썹과 눈이 얼굴의 측면 중앙 윤곽선에 붙어 있어서 미간이 아예 없이 그려지고, 콧망울이 작고, 입술을 붕어입처럼 짧고 작게 그리는 타입이다. 이런 그림에서는 대개 귀의 위치가 실제의 위치에 그려진다. 이마의 좌우 넓이도 실제만큼 좁게 표현된다. 이 형은 5% 정도의 빈도로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는 (그림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중간형이다. 이마의 넓이, 미간의 넓이, 눈길이, 콧망울 크기, 인중의 폭, 입의 길이, 귀의 위치 등 거의 모든 항목이 (그림1,2)의 중간에 그려진다.

이 세 가지 타입의 그림 중에서 가장 실제의 한국인 평균얼굴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그림2)로서 가장 출현빈도가 낮은 타입이다.
(그림3)은 실제의 한국인에는 볼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가장 잘 그린 그림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응답자는 이런 형의 그림을 꼽는다.

한국인의 얼굴을 옆에서 보면 대부분 미간이 보이지 않고 눈이 거의 중앙선에 붙어 있으며 입술은 마치 붕어입 같이 보인다. 이렇게 실제로 자기들이 봤거나 보고 있는 얼굴과는 다른 모습인데도 이런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1)을 셋중에 잘 그렸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어떤 경위를 통해서든 이미 형성돼 있는 판단기준이 (그림1)을 잘 그렸다고 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집트 벽화의 인물 그림과도 흡사하게 그려진 이 타입은 실제 한국인의 측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눈이 옆으로 붙고 입술도 길게 찢어진 얼굴이 실재한다면 아마도 메기나 닭의 중간 잡종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자기는 (그림1)타입으로 그렸으면서도 잘 그린 그림이라고 평가할 때는 (그림3) 형을 꼽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양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훌륭한 예술가로 평가 받고 있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여타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그려진 얼굴들을 분석해 보면 거의 (그림3)형이다.

이 세 가지 형을 편의상 개념형(그림1) 사실형(그림2) 예술형(그림3) 이라고 부르자.
 

(그림2) 측면얼굴을 본 바대로 그리는 사실형의 그림. 이런 식으로 그리는 사람은 대개 북방계형이었다.
 

〈개념형 그림의 특징〉

개념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그림에 얼굴에 대한 개념적(언어적) 정보가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눈과 눈씹이 정면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눈은 나뭇잎 모양이고 눈동자는 동그랗다'는 언어적 정보를 동원해 그렸기 때문이다. 입이 길게 그려진 것도 사실은 정면에서 본 입 즉, 가장 개념적으로 정확한 입술을 그리되 옆모습에서 보이는 반만 그렸기 때문이다.

코의 콧날개가 크게 그려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정면에서 본 코의 넓이를 높이를 그리는 데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형의 그림들만 모아서 재어 보면 한국인 코의 넓이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사실형 그림의 특징〉

눈썹과 눈이 윤곽선에 붙은 형의 그림은 비록 그림은 어색해 보일지라도 실제로 봤던 모양을 잘 기억해 그린 것이다. 즉 후두엽에 있는 1차 시각상의 정보를 변형없이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렇게 화가가 실제로 본 바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그림을 우리는 흔히 사실적 묘사적 재현적 그림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사회주의국가에는 이런 형의 그림이나 화가가 많다.

〈예술형 그림의 특징〉

개념형 그림과 사실형의 그림을 정확히 평균내어 중간으로 그리는 형이 있다. 이 형은 우리 주변의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많다. 사실형도 그림 그리기에 좋은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형의 출생빈도가 이 예술형의 출현율보다 낮기 때문에 보통 예술가들 중에는 이 타입에 속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의 미술가들 중 특히 공모전 수상경력이 많은 사람은 예외없이 이런 형이다.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림 형이다.
 

(그림3) 개념형과 사실형의 중간으로 그리는 타입. 미술에 소질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림형이다. 화남계형에서 이런 형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다.


그림그리기 특성도 힌민족의 이동경로와 유관

필자는 그동안 한 개인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조사해 보고자 했다. 피검자 개인당 얼굴을 3면에서 촬영 해 1백80가지 이상을 조사하고 등고선 사진을 찍어서 얼굴의 복잡한 형상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좌우뇌반구의 우열관계, 그림그리기의 경향, 가치판단의 기준, 지능지수와의 관계, 글씨쓰기, 연필잡기 등 여러 면에 걸친 특성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를 끄는 일이 있다. (그림2)형으로 그리는 사람은 대개 북방계의 얼굴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1)형으로 그리는 사람은 대개 남방계형의 얼굴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림3)형으로 그리는 사람 중에는 한반도의 서남부 출신에게 많았다. 이런 사실은 한민족의 이동 경로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북방계형은 기나긴 빙하기를 적어도 5천세대 거치는 동안 주로 활쏘기사냥에 의존해 생활했을 터이므로 원거리 시야의 시각처리 능력과 대상의 전체를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직관적 판단능력을 발달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과 관계 있는 우뇌반구의 정보처리 능력에 의존하며 진화해 왔을 것이다. 따라서 얼굴 그리기라는 과제를 해결할 때 얼굴 전체의 시각적 기억상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남방계형은 주로 해안가에서 조개를 캐거나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아가는 생활방식이었을 것이므로 고도한 시각적 분별력이나 섬세한 손기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남방계형의 유전자형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도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대개 투박하며 섬세한 손기술로 만들어지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얼굴그리기 과제의 해결에 이들이 가진 능력은 그렇게 유용하지 못하다.

한편 황해를 통해 1만년 이전부터 꾸준히 이주해 왔을 것으로 여겨지는 화남형은 그들의 조상이 오랜 기간 산악지방의 숲속에서 도토리 등 견과류를 채집해 살았을 것이다. 따라서 상악동(上顎洞)이 커지고 근거리 시야의 시각정보 처리능력과 서로의 신호교환을 위한 발성능력 청각능력이 발달됐을 것이다. 또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자니 폐활량이 커지고 하체는 짧고 튼튼해졌으나 건조한 환경이 아니므로 코가 길어지고 코허리가 높아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체에 비해 팔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큼직한 손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미세한 손동작이 발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류학 연구의 데이터를 늘어 놓고 다른 민족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의 특징이 하체가 굵고 목이 가늘며 상체가 작은 편에 손이 큰 편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들 화남형이 한반도로 이주해 끼친 체질적 영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얼굴그리기 과제에서는 미켈란젤로식의 (그림3)형으로 그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럴 듯하게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 내의 지역에 따른 문화양식의 차이와 얼굴형의 차이가 서로 연관돼 보인다. 한국인들은 코허리가 낮은 이가 많지만 평안도 등 서북지방 출신들은 코도 긴 편에 코허리가 한국인 중에서 높은 편이다. 이는 서도민요에서 콧소리를 많이 내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콧소리는 비강을 공명시켜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한국인과 다른 점은 화남계형의 출현율이 적은 탓

남도민요는 곡조의 고저 장단의 변화가 뚜렷하고 목을 눌러내는 소리와 목놓아 부르는 발성 바이브레이션 등 창법의 기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목놓아 부르는 소리는 강인한 성대와 구강의 공명을 통해 내는 소리다. 한국인 중에서는 호남지방 출신가운데 구강과 구강의 공명을 돕는 상악동의 크기가 큰 사람이 많다.

일본인 중에는 일본열도의 서반부 규슈지역의 출신들이 한국의 호남지방 출신들처럼 목소리도 크고 모음의 공명양식이 비슷하다. 이런 사실은 일본 규슈와 호남, 두 지역 출신들 사이에 해부학적 구조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일본의 민요에서 비음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이는 역시 일본인쪽이 한국인쪽보다 중안의 길이가 길고 코 허리가 높은 북방계의 해부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각 지역에 따라 단 몇 명이 더 가진 이러한 체질적 경향으로 인해 주위에 문화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화의 지역차 민족차를 가져오는 것이다.

체질적 특징과 문화적 특징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전제 하에 일본인이 체질적으로 한국인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화남계형의 출현율이 한국보다 적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서 이마의 전두융기간폭(全頭隆起間幅)과 전두최소폭, 눈이 작고 단두(短頭)의 경향이 크게 나타나는 것은 이들 화남계형의 분포비가 일본 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진 문화적 소양이 한국의 문화를 일본과 다르게 하는 요소다. 이는 거꾸로 일본이 한국보다 남방계적 체질 특성의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며 일본의 문화를 한국과 다르게 하는 점이기도 하다.

남방계의 유전자형을 많이 가진 일본인들은 주로 동경을 중심한 관동지방에 분포하는데, 관동의 문화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다. 앗싸리하다(담박하다), 마지메하다(성실하다), 냉정하다, 겉다르고 속다르다, 째째하다, 인색하다, 철저하다, 타산적이다, 점잖다, 현명하다,… 등등의 일본인에 대한 비난과 찬사가 실은 이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생긴 근대 일본문화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다.

199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용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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