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업계는 자타가 공인하는 하이테크산업의 중심이다. 하지만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회사들의 생존법칙은 밀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첨단'으로 중무장한 이들 회사들 중 지금 '최고'의 자리는 누가 차지했을까. 또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1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총성없는 전쟁터'.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적인 기업들이 겨루는 컴퓨터 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왕좌를 향해 달려가는 기업들은 숨 돌릴 틈이 없다. 끊임없이 앞서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뒤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컴퓨터 시장의 1위가 된다는 것은 '기업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테크놀러지를 바탕으로 보다 편리하고,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열어나가는 정보화 사회의 선도자가 되는 길이라는 점에서도 기업들의 선두 다툼은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로 펼쳐진다.
판매고 1위 컴팩 컴퓨터
올해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승리자는 단연 미국의 컴팩 컴퓨터사다. IBM 호환업체로 출발한 컴팩은 올해 세계 PC산업을 일구어낸 '원조'이자 PC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아온 미국의 IBM과 애플컴퓨터를 누르고 당당히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창업 12년만에 만년 3위의 설움을 벗게 된 것이다.
세계 하이테크 산업을 이끌어 가는 선두로 부상한 컴팩의 무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랜세월 쌓아온 기술력이며, 또한 시장 흐름을 주도하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경쟁자들 보다 한 발 앞서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 그것은 창업시부터 컴팩을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고속 성장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컴팩의 역사는 IBM이 'IBM PC'를 발표한 이듬해인 1982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해 미국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l) 출신의 로드 캐니언과 짐 무토, 빌 해리스 등 세명의 엔지니어는 독립을 선언하고 게이트웨이 테크놀러지스사를 설립했다. 그들의 꿈을 담은 게이트웨이 테크놀러지스가 바로 오늘날 PC 시장을 정복한 컴팩 컴퓨터의 전신이다.
81년 발표된 IBM PC가 PC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당시, 컴팩은 '호환 PC'의 필요성을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생각해냈다. 당시는 IBM 이외에도 PC를 만드는 업체들이 많았지만 서로 다른 구조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았던, '호환 기종'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컴팩은 IBM과 같은 기능에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PC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물론 이 세사람이 아무리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처음부터 IBM에 직접적으로 맞서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은 '휴대용 IBM 호환 PC'에서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휴스턴에서 열리는 PC 쇼에 참가해 IBM PC를 면밀히 검토해 보던 중 그들은 전시회장 근처 식당에서 냅킨에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그려 보았다. 그들이 식당 한구석에서 냅킨에 휴대용 PC를 스케치하던 일은 PC 시장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로 컴팩은 나중에 이것을 기업 광고에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IBM PC의 성공으로 PC산업은 유망분야로 주목을 받았고 모험 자본을 손쉽게 끌어 들일 수 있었다.
컴팩을 설립한 세사람은 초기 사업자금으로 1백50만달러의 자금을 모아 곧이어 '하이테크 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모험 자본가 벤로젠의 지원을 약속 받았다. 벤 로젠은 로터스 디벨럽먼트사나 볼랜드 인터내셔널사 등 실력있는 젊은 기업가들의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인물이었다.
사업의 방향을 잡은 컴팩이 시작한 일은 아이디어를 지탱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것이었다. 하이테크 산업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요건이었다.
어렵게 자금을 거두고 호환 PC 개발에 성공한 컴팩은 설립시부터 고속 성장 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1983년 PC를 판매한 첫해에 컴팩은 1억1천1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역사상 사업 첫해에 그 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한 업체는 없었다.
컴팩은 곧이어 원래의 사업 구상을 되살려 휴대용 PC로 제품 라인을 확장해가기 시작했다. 캐니언은 경영의 스타로 탄생했으며 컴팩은 오래지 않아 최상의 품질과 최상의 디자인을 갖춘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PC 시장에서 발판을 굳혔다.
민첩하게 위기 대처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컴팩은 3년만에 '포춘'지가 선정하는 5백대 기업에 진입하게 됐다.
컴팩이 내세웠던 호환 PC의 개념은 PC시장의 보통명사로 자리잡았고 컴팩은 'IBM 호환 PC 군단'을 이끄는 선봉으로 IBM에 맞서는 위치로까지 껑충 뛰어 올랐다.
그러나 정작 컴팩이 세계 1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비결은 위기를 극복하는 탁월한 능력에 있다. 지칠 줄 모르고 고속성장의 '아우토반'을 달리던 컴팩에게 급정지 신호가 들어온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델 컴퓨터나 게이트웨이 2000, 팩커드 벨 등 신생 PC업체들에 의해 주도됐던 PC시장의 극심한 가격경쟁이 컴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IBM의 뒤를 잇는 PC 업체로서 컴팩이 가진 자존심은 처음에는 신생업체들이 주도하는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컴팩은 나름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서의 신뢰도를 내세워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으로 경쟁 호환업체에 맞선다는 전략이었다. PC가 차츰 고부가가치를 가진 기술 집중적인 산업에서 벗어나 일상용품화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적극적인 가격 정책으로 추격하는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받으며 매출 성장이 둔화됐던 컴팩은 91년, 창업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경영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몸짓은 누구보다도 민첩했다. PC시장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하며 컴팩과 같이 가격면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워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을 고수해왔던 IBM, 애플 컴퓨터 등이 추락하는 이익 곡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컴팩은 해결책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컴팩의 창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벤 로젠 회장은 즉각적으로 창업자인 로드 캐니언 사장을 해고하는 결단을 내렸다. 컴팩의 고속성장을 사실상 전면에서 주도했던 캐니언 사장을 한해 적자를 기록했다고 몰아내는 것이 업계의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벤 로젠 회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과거의 영광을 이뤄낸 캐니언은 결코 컴팩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캐니언의 뒤를 이어 최고 경영책임자(CEO)에 오른 에카드 파이퍼 사장은 벤 로젠회장이 요구하는 것들을 빈틈없이 수행해내며 컴팩을 거인으로 성장시켰다. 파이퍼 사장이 처음 기획한 사업은 델이나 AST 등 저가전략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쟁업체들을 오히려 선도하는 획기적인 가격인하 정책이었다. 컴팩은 92년 6월 저가형 PC '프로리니어'를 발표하며 PC 시장의 가격 인하 흐름을 선도해나가기 시작했다.
PC 가격을 1천달러로 끌어내린 프로리니어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컴팩은 어려웠던 경영상의 문제를 말끔하게 풀어버렸다. 컴팩에 이어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인하를 발표하고 뒤를 바싹 쫓을 즈음이면 컴팩은 다시 대폭의 가격 인하와 뛰어난 성능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성큼 한걸음을 앞서 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가정용 PC '프리자리오' 또한 대히트를 기록하며 올해 미국 PC 시장에 '가정용 PC 열풍'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컴팩은 올해 그토록 바라던 '세계 1위'의 왕관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 1.4분기와 2.4분기 연속 IBM과 애플을 앞질러 세계 PC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던 컴팩은 9월까지의 3.4분기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매출이 늘고 있어 올해 전체 실적에서도 PC시장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애플의 PC기술선도
새로운 강자에 밀려난 IBM과 애플이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대응하는 방법은 '공생 정책'이다. PC산업의 역사를 일구어낸 주축이자 오랜 숙적이었던 IBM과 애플은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동지로 변했다.
특히 최근에는 'IBM 호환'과 애플의 '매킨토시' 양대 진영으로 나눠졌던 PC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IBM과 애플은 '파워 PC'칩을 기반으로 한 '표준 컴퓨터'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계획이 성공을 거둘 경우 PC 시장의 양대 진영은 하나로 결집되며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지난 77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잡스의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면서 설립됐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애플은 비록 세계 PC 시장에서 10%를 좀 넘어서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거대한 'IBM 호환 군단'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PC 시장에서 기술을 주도해왔다.
PC업체들이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보다 사용하기 편리한' 컴퓨터는 바로 애플이 내세우는 최대의 장점이었다. 지난 84년 애플이 발표한 '매킨토시'는 까다로운 명령어들의 나열이 아닌, 화면에서 그림을 통해 PC의 기능들을 사용하는 방식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채용, IBM 호환기종보다 한걸음 앞서 나갔다. IBM 호환 PC에서는 90년대 들어서야 GUI를 채택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매킨토시가 얼마나 획기적이었는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PC 하드웨어 시장에서 선두 경쟁의 구도가 IBM-애플-컴팩으로 이어지고 올해는 컴팩이 승리를 거머쥔 반면, 소프트웨어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아성을 굳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명성은 운영체계(OS)로부터 시작됐다. 81년 IBM PC에서 사용되는 OS로 MS-DOS를 공급하게 되면서부터 행운의 여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MS-DOS로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GUI방식의 OS인 '윈도스'를 발표, 더더욱 입지를 강화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응용 프로그램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해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등 응용 프로그램을 한데 결합시킨 통합 패키지 '오피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올해는 OS는 물론 응용 프로그램 분야에서 추격자가 없는 1위의 자리를 계속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스 프로그램에 통신 기능을 대폭 강화한 '원도스 NT'를 발표, PC 시장뿐만 아니라 유닉스 환경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첨단 PC 통신 서비스 '마블'(코드명 )을 선보이며 PC 통신 시장에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손끝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지향점이다.
'칩의 왕자'인텔의 위치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강자는 '컴퓨터의 두뇌'를 만드는 미국 인텔사다. 인텔은 IBM 호환 PC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 PC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텔이 PC시장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단순히 시장 점유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PC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386', '486', '펜티엄'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명칭과 일치한다. 인텔이 한층 성능이 강화된 칩을 발표할 때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PC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인텔은 지난해 펜티엄칩을 내놓은데 이어 내년에는 훨씬 더 성능이 강화된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표, PC 시장의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인텔의 뒤를 따르는 추격전도 만만치 않다. 91년 미국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사가 386 호환칩을 발표하면서 호환 시장을 개척한 이후 계속해서 막강한 경쟁자들이 호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AMD나 사이릭스, 신생기업인 넥스젠사 등 호환업체들이 펜티엄급에 맞먹는 고성능 제품을 개발하면서 '칩의 왕자'를 상대로 보다 적극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반도체시장의 강자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사가 호환 칩 시장에 등장했으며 IBM도 사이릭스, 넥스젠사와 생산 계약을 체결하면서 후면에서 인텔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인텔의 수비는 호환업체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아키텍처로 승부를 걸려는 막강한 경쟁자들도 줄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IBM 애플 모토로라사 등이 힘을 모아 개발한 파워 PC진영은 인텔이 가장 경계해야 할 강적으로 예상된다. 지난 91년 힘을 모은 이들은 강력한 파워 PC를 선보이며 인텔과 성능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파워 PC 이외에도 RISC(축소 명령어 세트 컴퓨팅) 기술에 바탕을 둔 마이크로프로세서들도 인텔의 고성능 펜티엄칩의 경쟁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컴퓨터 시장에서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결과는 항상 사용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기업들의 경쟁은 뛰어난 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자들의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