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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족의 기원은 무엇일까. 인류가 살아가는 각종 생활양식의 근저에 깔린 원리를 찾기 위해, 인류학에서는 유인원의 행동을 관찰한다. 유인원의 생활과 성, 종족보존 양상을 통해 인간의 행동 근저에 깔린 동물적 본성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가지 성, 즉 남성과 여성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짝을 이루어 가정을 일구고 육아를 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는 대개 일부일처제의 형태를 띠고 이루어진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불륜이나 파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일까.

동물행동학에서는 인간의 동물적 특성을 동물의 행동 연구를 통해 상당부분 해석하려 시도한다. 특히 유인원의 생활연구는 인간의 성과 가족의 기원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독특한 가족과 결혼에 대한 해석으로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성가를 얻고 있다. 그의 저서는 국내에도 '성과 계급'이란 제목으로 소개돼 있다. 그의 가족과 결혼의 기원을 바라보는 입장을 중심으로 소개해보자.

그는 먼저 동물에 있는 공통점을 생리학 생태학 문화인류학적으로 보아 인간에게 대입, 해석한다.

새끼를 기르기 위해 가족이 필요했다

포유류 중 교미 후 같은 암수컷이 짝을 이뤄 공동생활을 하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종은 인간을 포함, 여우와 늑대 등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같이 짝을 이루는 동물은 육아를 하는데 모친에게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이다.

이들 3%의 동물은 모친의 젖이 묽고 언제나 자식들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모친은 자신의 먹이를 찾을 여유가 없게 된다. 그 때문에 먹이를 가져다주는 수컷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식이 젖을 떼면 이들 짝은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수컷은 수컷, 암컷은 암컷끼리 생활하게 된다.

이같은 자연의 법칙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종족보존을 위한 방편으로 암수의 쌍, 즉 '가족'이 만들어 졌다는 인과관계다.

과거 인간의 선조들은 삼림 속에서 네 발로 생활했다. 그러다가 기후의 변화, 화산활동 등에 의해 이들의 활동범위가 초원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지금부터 약 4백만년 전에 그들은 두 발로 서서 생활하게 됐다.

네발로 걸어다닐 때 어미는 자식을 등에 태우고 이동했으나 두다리가 되자 자식을 언제나 가슴에 안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런 자세로는 자신의 식량을 구하기도 불편하고 불시의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다. 그 때문에 자식을 가진 어미는 먹이를 주고 보호해주는 수컷이 필요했다.

대개 암컷은 성적으로 공격적인 동물이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동물들은 종의 보존을 따지지 않더라도 암컷이 성적인 준비, 즉 발정하지 않으면 수컷도 성적으로 자극받지 않았다. 동물의 섹스는 항상 암컷의 발정 뒤에 수컷이 그 뒤를 쫓는 식으로 반복돼온 것이다.

물론 인간은 수만년에 걸친 진화에 의해 현재의 인간에 도달했다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한다면, 인간 암컷은 진화 과정에서 배란에 동반하는 주기적인 발정이 사라지고 동시에 '섹스=임신'이라는 도식도 없어졌다.

인간 암컷에서 발정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인간은 암수가 쌍을 이루는 동물이므로 암컷의 발정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서로 언제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되었다는 설, 암컷이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수컷의 옹호가 필요할 때 그 보답으로 언제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육체적 상황이 필요했다는 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시기에 대량의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아야 했고 2세들이 1년 내내 골고루 태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생태학적인 설 등 각양각색이다.

헬렌 피셔 박사는 이중 암컷의 생활수단설을 지지한다. 그의 책에 실린 소설과도 같은 가상장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약 4백만년전 동아프리카 초원에서 두다리로 살아가기 시작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이들은 유인원에서 떨어져 나온 우리들의 최초의 선조다. 그들은 유인원과는 다른 최초의 인류로서 '호미니드'(인간에 가까운 자라는 뜻)라 불린다.

호미니드는 그때까지의 다른 영장류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남녀 모두 성기의 발달이 현저해지고 그중에서도 암컷에게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언제나 발정할 수 있는 형질을 획득하고 체모는 엷어졌으며 유방이 커지고 목소리도 가늘어졌다. 짝을 이루는 수컷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신체구조가 된데다 스스로도 깊은 오르가즘을 경험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 가운데서도 발정기가 없어진 것, 즉 언제나 발정할 수 있게 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호미니드 이전의 암컷은 발정기 이외 시기에는 수컷의 성적인 접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수컷을 유혹할 수 있는 것도 발정기뿐이다.

수컷은 발정하지 않은 암컷보다는 발정한 암컷에게 접근하다. 많은 고기를 분배받는 것도 발정한 암컷이다. 발정기가 긴 유전형질이 바람직한 것으로 이어져 내려와 언제나 발정이 가능한 호미니드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숭이는 무리를 이루어 살지만, 인간과 같은 가족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의 번식전략

암컷과 수컷의 성의 목적이 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남성 쪽이 성을 좋아하고 바람기가 있다는 전형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수컷이 복수의 암컷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많이 남기고 그 중에서 선별된 종이 다음 세대로 남겨진다는 역할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본래 수컷이 구하는 암컷은 좋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가능하면 젊고 건강하며 생기 넘치는 육체다.

한편 암컷은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자식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의 목적 타산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즉 성은 갖가지 의미에서의 물질적 정신적 자산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성은 여성의 무기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결혼상대로 가난한 시인보다는 돈 많은 의사나 변호사를 택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고릴라에서 이성애는 암컷의 발정기간이 끝나면 남남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 모성애는 길게 이어진다. 자식이 자립한 뒤에도 털 손질이나 싸움에서 자신의 자식을 응원하는 등의 형태로 이어져간다.

이 같은 사랑 방식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 즉 자손을 얼마나 늘리는가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번식전략에 따른 것이다. 즉 일단 교미가 성공하면 수컷은 다음 암컷과의 교미에 정력을 쏟는 쪽이, 한편 암컷은 교미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육아에 힘쓰는 쪽이 번식전략상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헬렌 피셔는 세계 각국의 이혼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사랑은 4년으로 끝난다는 학설을 제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또 바람기, 불륜도 생물학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파,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사회의 일부일처제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 이끄는 방향이다. 특히 과거 여성의 경제력이 없을 적에는 그것이 다른 여러 사회적 법적 문화적 통제와 더불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기제가 되었으나,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경제력이 확보된 오늘날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가족은 해체될 것인가. 그의 이론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건 오늘날의 가족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모성애는 원초적 본능일까. 유인원의 이성애는 생식기간과 동시에 끝나버리지만 모성애는 길게 이어진다.
 

199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현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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