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역사속에서도 양적 질적 팽창을 거듭해온 국내 PC통신 서비스는 이제 멀티미디어 정보에 목말라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멀티미디어 열풍이 전사회를 휘감고 있는 요즈음, PC통신 서비스업체들만큼 이 현상을 첨예하게 느끼고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업체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축적해온 각종 정보를 어떻게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출 것인가에 고심해왔다.
현재의 여건을 고려해보건대 멀티미디어 정보와 PC통신은 썩 어울리는 커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이미 화려한 그래픽이나 음성, 동화상에 길들여진 사용자들의 계속된 요구-PC통신에서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차후 PC통신업체들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우콤, 고속 앞세운 속도전략 성공
최근들어 업체들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고속통신 서비스의 개시. 고속통신은 멀티미디어 정보와 같은 대용량의 정보가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 2천4백bps(초당 2천4백비트 전송)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각 서비스업체들이 제공하는 현재 최고 속도인 1만4천4백bps조차 본격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주고 받는데는 아무래도 무리이긴 마찬가지지만, 6배나 빨라진 속도에 걸맞는 서비스가 나와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동감한다.
한국 PC통신의 종합정보서비스인 '하이텔'은 수도권에만 제공하던 전송속도 1만4천4백bps 서비스를 지난 9월부터 전국 5대 도시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올해 말이면 고속 정보서비스 이용가능 지역은 제주도를 포함해 30개 지역으로 늘어날 예정이고 내년에는 이미 미국에서 표준화가 이뤄진 2만8천8백bps 서비스도 점진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 3개월간 사내에 '멀티미디어 사업 추진팀'을 설치, 다가올 변화를 이끌 서비스 개발에 착수한 데이콤은 올해 9월부터 가입자가 몰려 있는 서울지역에서 1만4천4백bps 서비스를 제공중이며 11월 부터는 2만8천8백bps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와 같은 국내 PC통신의 양대 산맥 하이텔과 천리안의 고속서비스 개시는 사실 후발 업체인 나우콤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지난 4월 출범한 나우콤은 시작부터 1만4천4백bps를 지원하는 고속노드를 운영해 본격적인 속도경쟁을 유발했다. 사실 나우콤의 등장 이전까지 1만4천4백bps 성능의 고속모뎀이 현재와 같이 빠르게 보급되리라 생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공급에 의해 수요가 창출되는 상황이 PC통신에서 벌어지자 고속모뎀의 가격은 3년 전과 비교해 4배 이상 내려갔다.
'나우누리'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나우콤의 PC통신 서비스는 시범서비스 5개월만에 무려 9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또한 지난 10월1일부로 유료화를 단행한 후에도 이탈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다가, 오히려 가입신청자가 몰리고 있는 형편.
이처럼 나우누리가 급속히 사용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속도를 앞세운 차별화 전략이 성공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선발 PC통신 서비스에 비해 축적된 정보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의 고속통신에 대한 열망을 실현함으로써 후발주자의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나우콤측의 구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우콤 시스템부 박원연 부장은 "우리는 나우누리가 현재 제공하고 있는 1만4천4백bps에 만족하지도 않고, 또 서비스의 모든 내용을 그에 맞추려 하지도 않는다. 내년쯤으로 예정된 2만8천8백bps 서비스로 통신 노래방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질 높은 서비스'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히면서 속도문제에 대한 나우콤의 대응을 설명한다.
"오래 전 전화 케이블을 이용해 전송할 수 있는 통신속도 한계는 1만9천2백bps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2만8천8백bps까지 올라왔다. 이 속도 역시 새로운 변조방식이 개발됨으로써 앞으로 극복될 것이 분명하다. 광케이블이 깔리지 않았다고 영업을 안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송속도가 갑자기 대폭 향상 되길 기대할 수는 없어도, 서비스업자는 기술이 등장하면 즉시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준비는 항상 돼 있어야 한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는 먼저 시작할 것이고, 여기에 우리는 자신 있다."
전용에뮬레이터 개발에서 한판
속도와 함께 자사의 호스트와 사용자들의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전용 에뮬레이터 개발도 한창이다. 멀티미디어 통신과 관련해 전용 에뮬레이터 개발이 가진 의미는 제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가장 편안한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전용 에뮬레이터에 의해 서비스 제공자가 가진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욱이 전용 에뮬레이터는 호스트와 PC 양쪽에서 동시에 제작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한 터미널 규약에 얽메이지 않아도 원하는 내용의 표현을 빠르게 PC에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우리보다 선진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의 컴퓨서브와 아메리카 온라인, 프로디지, 그리고 일본 NEC가 운영하는 PC-VAN 등이 전용 에뮬레이터를 이용해 GUI 기반의 멀티미디어 정보를 지원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전용 에뮬레이터의 등장은 멀티미디어 통신에 한발 다가갈 여건을 마련하는, 매우 고무적 현상으로 평가된다.
전용 에뮬레이터의 개발면에서도 나우콤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지금까지 양대 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이전에 전용 에뮬레이터를 내놓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기능상 '전용'이라기 보다는 '범용'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나우콤이 9월부터 사용자들에게 무상 제공하고 있는 윈도즈용 전용 에뮬레이터 '나우로-WIN'은 자체에 나우누리 서비스에서 구현되는 거의 모든 명령체계가 인식돼 있어 에뮬레이터 안의 명령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신속히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나우콤은 윈도즈용 뿐만아니라 앞으로 도스용 LAN용 매킨토시용 등 각 운영체제별로 동화상과 음성 지원이 가능한 전용 에뮬레이터를 선보일 계획이다.
천리안은 지난 9월말 avi 형식의 동화상을 지원하는 범용의 한글 윈도즈용 에뮬레이터 '다윈'을 선보였는데, 전용은 내년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하이텔의 경우 원래 10월말 내놓기로 했던 도스용 전용 에뮬레이터의 테스트버전을 오는 11월 중에나 선보일 예정이다.
제공 데이터의 멀티미디어화가 급선무
속도 향상과 에뮬레이터 개발에 한창인 업체들을 바라보는 사용자들중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담긴 음식이 보잘 것 없으면 찾는 사람이 없듯,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제공되는 정보가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다는 얘기다.
사실 이 부분, 즉 '내용물의 멀티미디어화'는 업체를 막론하고 대단히 부진한 상태다. 문자중심의 정보제공에 치중해온 PC통신 업체들이 앞다투어 화상과 음성 등을 함께 서비스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도 아직 이렇다할 만큼 눈에 띄는 것은 없다. 각 서비스마다 그림정보가 늘어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사용자들의 구미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각 업체들은 뉴스나 날씨, 홈쇼핑 등에서 현재 제공하고 있는 사진정보를 더욱 확대하며 조만간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서비스 제공을 준비중이이고, 장기적으로는 무선망이나 ISDN, B-ISDN 등을 통해 원격 의료검진 원격학습 전자신문 등의 전문화된 가공정보와 함께, 한 발 더 나가 전자화랑 전자영화관 비디오게임 등의 서비스도 구상하고 있다.
데이콤 부가통신 사업본부 상품기획과의 김병순 과장은 "문자중심인 현재의 서비스를 클라이언트 서버 시스템을 기반구조로 한 데이터베이스로 구성을 바꾸고 하이퍼텍스트 등 지능적인 검색기능을 추가하면서 지속적으로 멀티미디어 정보를 구축 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하지만 지금으로선 제일 먼저 선보일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어떤 것이라고 확정된 것은 없다"며 그 이유로 기술적 문제와 사용자, 정보제공자(IP)의 여건을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PC통신이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실시하는데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단계까지 활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미국의 컴퓨서브 등이 제공하는 CD롬을 제시한다. '컴퓨서브 CD'란 의미의 CCD로 불리는 이 타이틀은 통신망에 접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에 들어 있는 각종 정보를 탐색하다 원하는 정보를 선택하면 즉시 호스트에 연결돼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한다(과학동아 9월호 컴퓨터스페셜 참조). 이 방법은 물론 온라인을 통한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실시간 제공과는 거리가 있어도 그 효율성에서는 꽤 쓸만한 아이디어로 평가되는데, 아직 국내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