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대어의 짝 선택 양상을 보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처녀생식하는 '아마존 몰리'라는 어종의 생식을 돕는 세일핀 몰리의 경우, 이종 암컷의 생식을 도움으로써 동종 암컷의 인기를 얻는다.
요즘은 결혼식도 제철이 따로 없는 것같다. 그 짜증나는 여름에도 계속하여 청첩장이 날아들더니, 가을이 되니 주말이 따로 없어졌다.
어느 날인가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동료들이 모여서 잡담을 하던 중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결론은 "그냥 눈감고 하는 것" 이라고 낙착이 됐지만 여러가지 말들이 왔다갔다 하였다. 그 중 빠지지 않은 것이 진선미에 관한 것이고 덧붙여 부와 집안도 빼놓지 않았다. 거기다 2세를 생각하면 똑똑한 배우자를 골라야 한다는 등 배부른 소리도 곁들여졌다.
라디오에서 들은 텔런트 최명길씨 같은 경우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하고 아직 장가를 못간 어떤 선배는 '땡기는, 첫눈에 반할 여인'을 찾는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의 경우에 배우자 결정은 대체로 당사자인 여성과 남성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기준은 매우 복잡하고 각인각색인 게 사실이다.
이런 복잡하고 머리 아픈 사람들의 기준을 잠시 제쳐두고 다른 생물의 배우자 결정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종(異種)간의 교미가 주는 득은?
일반적으로 자연계의 성적 선택을 생각하면 동물의 왕국 등에서 보았던 수컷과 수컷 사이의 경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최근엔 암컷의 선택(female choice)이 매우 다양한 분류군에서 성적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쌓여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호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열대어 몰리(Molly)의 배우자 결정 사례가 나왔다.
사실 이 논문 주제는 배우자 선택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전부 암컷으로 이루어져 처녀생식을 하는 암컷열대어의 알이 발생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촌쯤 되는 물고기로 부터 알을 자극하기 위한 정자를 빌려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생물학적, 진화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다. 대개의 수컷은 살아있는 후손을 만들 수 없는 다른 종과 교미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 세일핀 몰리(Poecilia latipinna 수컷은 쓸데없이 정자를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종(異種) 간의 교미를 피하려는 진화상의 기본원리를 벗어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처녀생식을 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모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종족의 이름을 딴 열대어 아마존 몰리(Amozone molly, Poecilia formosa)를 돕는다.
왜 세일핀 몰리 수컷이 이런 일을 계속하는지, 거기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를 밝힌 것이 이 논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나타난 배우자 선택 양상 또한 흥미롭다.
생물학자들은 이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비진화적 현상이 성적으로 기생당하는 수컷이 식별에서 실수를 하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하면 수컷이 동종의 암컷과 처녀생식하는 다른 종을 구별하지 못하여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텍사스 대학(오스틴) 동물학과의 리안(Ryan M. J.) 등은 그 가정을 부정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배우자 선택의 매우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science' 263, 373(1994)).
리안 연구진의 실험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그들은 큰 수족관을 다섯 등분하여 양쪽 끝의 한쪽 구획씩을 투명한 유리벽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탱크의 양끝은 두마리의 수컷이 들어갈 장소다. 가운데 각 양끝 물탱크의 3배에 해당하는 수족관의 중심구역은 바닥과 옆면에 유성펜을 사용하여 다시 3부분으로 구분되었다. 암컷은 이 중심지역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질투가 매력이 된다?
일단 두 마리의 수컷을 위한 양끝 수조에 각각 한마리씩 크기가 다른 수컷 세일핀 몰리를 넣고 암컷 세일핀 몰리를 가운데 수족관에 넣었다. 약 20분 가량 환경에 순응시킨 뒤 10분 동안 암컷이 양쪽 수컷 지역 가까이에서 지낸 시간을 재 보았다. 만약 암컷이 수컷 중 하나와 66%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면 그 암컷은 선호도를 나타낸다고(즉 어느 한쪽을 더 좋아한다고) 판단하여 두번째 실험에 착수했다. 이때 보통은 보다 큰 수컷 물고기를 암컷이 좋아하는게 일반적이다.
두번째 단계 실험에서 우선 선호도를 나타내는 암컷 몰리를 수족관 가운데 투명한 원형 용기에 담는다. 다음 각 수컷 지역을 탱크의 긴 쪽과 평행하게 다시 2등분하여 암컷 아마존 몰리를 수컷이 없는 각각의 수컷의 반쪽지역에 넣는다. 물론 세일핀 수컷은 인접한 반쪽 수족관에 있다. 그러므로 양쪽의 세일핀 몰리 수컷은 암컷 아마존 몰리와 상호작용할 수 있고 자극받을 수 있다.
탱크 가운데 있는 암컷 세일핀 몰리는 양쪽 수컷이 행동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가운데 있는 세일핀 몰리 암컷은 서로 교제하는 암수 한 쌍을 볼 수 있지만, 반대편의 탱크는 반쪽은 불투명한 격막으로 가려져 있어 그 곳에 담겨진 아마존 몰리는 관찰할 수 없게 한다.
각 경우에서 세일핀 몰리 암컷은 아마존 몰리 암컷과 교제하는, 첫번째 실험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수컷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그 암컷은 첫번째 실험에서 더 좋아했던(선호도를 나타냈던) 반대편 수족관에 있는 수컷을 관찰할 수 있으나 그 수컷과 교제하는 아마존 몰리 암컷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20분 뒤 실험수조는 첫번째 실험상태로 되돌려져서 '암컷 아마존 몰리와 교제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세일핀 몰리의 초기 선호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란 귀무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선호도 검사가 반복되었다. 결과를 보면 이들 암컷들은 처음에 선호하지 않았던, 즉 매력을 덜 느꼈던 수컷들이 처녀생식하는 암컷들과 교제하는 것을 본 후 선호도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즉 처음에 선호되지 않았던 수컷과 보내는 시간이 두번째 실험에선 커다란 증가를 나타냈다.
이 실험은 수컷 세일핀 몰리가 처녀생식하는 아마존 몰리와 교제함으로써 동종의 암컷에게 그의 매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수컷이 이종의 암컷과 교미를 하는데서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다는 보편적인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수컷은 이종의 암컷과 교미함으로써 이것이 동종의 암컷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생식적 이득을 얻는다. 암컷이 다른 암컷의 짝 선택을 모방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행동을 배우자 모방선택(mate copying) 이라고 한다. 이 경우엔 이종이 관련된 배우자 모방선택이지만 보다 직접적인 동종을 대상으로 한 배우자 모방 선택의 증거도 있다.
서인도제도산 열대어인 트리니다디안 구피(Trinidadian guppy, Poecilia reticulata의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는 위에서 보여진 것과 유사한 수족관 실험을 20번 시행하면 그중 17번이라는 높은 확률로 모방선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Am. Nat. 139,1384(1992)).
'남따라'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
이외에도 많은 연구들이 포유류 조류 물고기 등에서 암컷이 동종 암컷의 짝 선택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를 보고했다(Am. Nat. 140, 1000(1992)).
이런 배우자 모방 선택은 교미하지 않은 암컷이 막 교미한 동종 암컷의 선택을 흉내낼 것 임을 뜻한다. 즉 교미에 의하여 수컷은 그 순간에 있어서 생식적 성공뿐 아니라 미래의 생식적 성공을 보장받는다고 하겠다.
단 주의할 점은 암컷이 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다른 암컷을 모방한다는 사실이 특정한 수컷의 형질에 대한 암컷의 개인적인 선호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에 의하면 열대어 구피 암컷은 꼬리의 크기, 색상의 밝기와 활발한 정도 등과 같은 특징에 기초를 두고 두 수컷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모방행동은 다른 것의 짝 선택이라는 정보가 이용될 수 있는 조건에서 이 정보를 암컷이 이용함을 보임으로써 배우자 선택 체계에 한가지 양식을 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다른 암놈을 흉내 낸다는 사실이 광범위한 현상일지라도 왜 암놈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이는 결국 암컷들이 독립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경우엔 배우자 선택까지는 몰라도 물건을 살 때 다른 사람이 무얼 사면 덩달아 같이 사고싶고, 점심시간에 밥집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집을 골라서 가며, 남들이 박사하니 나도 하고, 남들이 유전공학하니 나도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리더라도 요즘 잘나가는 비디오 뭐예요? 라고 묻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동물과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사실 인간도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주변의 친구들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다. 친구가 괜찮다면 괜찮아 보이고 별로라면 좋다가도 싫어지니 말이다.
트리니다디안 구피 암컷의 모방행동실험
트리니다디안 구피(Trinidandian guppy, Poecilia recticula )의 짝 선택 동안의 암컷의 모방행동 실험내용을 살펴보자.
수족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양쪽 끝에는 크기와 색깔 같은 형태 선명도 등이 유사한 수컷을 한마리씩 넣었다. 가운데에는 둥근 유리통을 넣고 그 속에 실험대상 암컷을 한마리 넣었다.
한쪽 끝은 둘로 나누어 또다른 암컷을 넣을 자리를 마련하고 모델 암컷을 넣었다. 이 두암컷은 크기가 비슷하고 성적으로 성숙한 것이 선정되었다. 우선 두 수컷과 두 암컷의 각자의 위치에 넣어진 후 10분 동안 순응시간을 가졌다.
그때까지 불투명한 격막이 수족관 끝방 사이에 보는 것을 막았는데 불투명한 격막이 사라진 후 실험대상 암컷이 두 수컷중 하나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모델 암컷을 볼 수 있었다. 이 동안 모델 암컷 근처에 있는 수컷은 암컷에 구애하느라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모델 암컷은 교미에 앞서서 암컷에 의하여 보여지는 전형적인 활주행동(gliding motion)을 보여주면서 이 수컷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델 암컷과 유리 격막이 제거된 후 통에 들었던 물을 가운데 수족관에다 부드럽게 붓자 통에서 실험대상 암컷이 자유롭게 되었다. 실험대상 암컷이 자유롭게 수영할 10분이 주어지고 그녀가 선호하는 수컷을 선택했다.
암컷이 10분의 대부분은 어느 것과 보내는지가 수컷의 선호도로 기록되었다. 그런 선호도 실험의 결과가 실제로 교미가 일어나는 암컷선택의 실험과 잘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실험대상 암컷은 20번 시행에서 17번 모델 암컷 옆에 있었던 수컷을 골랐다. 이 실험의 결과는 암컷이 다른 것의 짝선택을 흉내낸다는 가설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