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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규명을 둘러싼 논란

법의학의 권위는 어디로?

이철규군 변사사건을 계기로 의학계에 법의학의 「제자리찾기」 노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철규군 부검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


최근 잇달은 의문사의 사인(死因)을 명쾌하게 규명해 내지 못함으로써 법의학의 신뢰성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대생 이철규군의 사체부검을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장기에서 다량의 랑크톤이 검출됐으므로 사인을 '단순익사'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지않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국내 법의학계의 권위자 이정빈교수(서울대)까지 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부검과정에 몇가지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부검당시 메스와 고무장갑을 계속 바꿔 끼지않아 플랑크톤 추출과정을 신뢰할 수 없고, 혈액에서 검출된 0.08%의 알콜농도만으로 술을 마셨다고 단정한 것은 법의학적 경험이 미숙한 탓이라고 이교수는 주장했다.

학생들과 재야단체 등에서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당시에도 은폐조작으로 말이 많았던 과학수사연구소가 이번 사건의 부검을 맡은 것에 대해 아예 근본적인 불심감을 표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법의학의 권위가 도전받은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시국사건과 관련한 의문사가 발생할 때마다 법의학자와 일반 의사, 과학수사연구소와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진실'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금년초 광주민주항쟁 당시의 사망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광주 주남마을 뒷산에서 발견됐다. 국회 광주특위의 요청을 받아 이를 조사한 이정빈교수는 "사망시기가 5년미만이며 총상이 아닌 점으로 미루어 당시의 사망자로 보기 힘들다"고 소견을 발표, 현지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최근 이교수는 사망시기에 대한 당초의 의견을 번복했다.

지난 4월 부산교대 이경현양이 시위도중 부상으로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부상원인에 대해 이정빈교수와 인도주의실천의사 협의회(약칭 인의협) 소속 의사들간에 상반된 견해가 나오 주목을 끌었다. 이교수는 '뛰다가 돌에 맞았거나 넘어지면서 돌에 찧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제시한데 반해 인의협 조사단은'상처가 분명히 경찰의 방패와 돌, 어느 쪽에 의해서도 날 수가 있었지만 현장상황을 감안할때 방패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결론지었다.

지난 5월25일 인의협이 주최한 '법의학의 사회적 의무'라는 주제의 학술강좌에서는 이교수와 인의협 소속 의사들간에 이 문제들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교수는 "최근 법의학자는 '권력'과 '여론' 양쪽으로 압력을 받아 소신껏 견해를 펼 수 없는 상황" 이라며 역사적으로도 해방이후 수차례에 걸쳐 수난을 당한 결과 의사들 사이에 법의학을 전공하기 꺼려하는 풍토가 조성돼 현재 국내에는 극소수의 법의학자만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법의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의사들이 부검 및 조사과정에 관여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인의협소속 홍영진씨(국립의료원)는 "전문가가 힘있는 자의 논리에 과학성을 더해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법의학자의 올바른 가치관을 강조하고, "법의학의 세부적인 결과는 상식적인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박종철사건의 경우 비전문가인 오인상씨(당시 중대부속 용산병원 의사)의 양심적인 용기에 의해 권력의 은폐조작가이 폭로됐다며 "더이상 비전문가가 나서지 않아도 될 사회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튼 현재로는 결정적인 반증이 나타나지 않는한 '익사'라는 이철규군의 사인이 뒤집히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이로인해 제기된 법의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198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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