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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전기, 두 금속 접촉·산화할 때 생긴다

관련 단원/산화·환원 반응

전기현상을 둘러싸고 옛 화학자들이 행한 실험과 이를 바탕으로 내린 주장을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전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원전 6백년 경 탈레스는 호박(琥珀)을 마찰하면 종이나 깃털을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17-18세기부터는 체계적으로 마찰전기, 대기현상의 결과로서 전기 등을 이용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1600년 경에 길버트는 검전기를 고안했고, 1729년에 네델란드 라이덴 지방의 과학자 무셴브뢰크와 독일의 목사 클라이스트는 라이덴병에 전류를 저장할 수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이렇게 얻은 전기를 이용해 금의화물 속에서 금속을 얻기도 하고(1770),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와 산소를 발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1789).

이 시기에 전기적 현상의 해석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도 있었다. 연을 띄워 공중전기를 유도한 것으로 유명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전기를 한 종류로 보았다.

"전기는 한 종류다. 전기가 많을 때는 음전기를 띠며 이것이 적을 때는 양전기를 띤다."

반면에 화학자 베르셀리우스는 전기를 두 종류로 파악 했다.

"모든 원소는 양전기와 음전기를 가졌고 대전현상은 그 한쪽이 많아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논쟁으로 인해 마찰전기를 이용해 물질의 변화를 관찰하는 많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전기가 한 종류인지, 두 종류인지를 해결해줄 열쇠는 뜻밖에도 전기가 마찰로부터 일어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을 통해서 발견됐다.

갈바니전기의 발견과 잘못된 해석
 

(그림1) 줄처의 두가지 관찰


독일 사람인 요한 게오르크 줄처(1720-1779)는 1750년에 처음으로 두 금속의 접촉에 의한 전기현상을 관찰했다(그림 1). 줄처의 관찰은 완전히 고립적인 연구로 끝났기 때문에 그 관찰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 과학의 발달로 그의 연구결과가 재발견되기까지 그대로 묻혀버렸다.

여러분이 줄처의 실험을 직접 해 보라. 혀 끝에 짜릿한 느낌이 오는가? 이 간단한 현상을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는가? 당시 줄처는 자신이 관찰한 현상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줄처의 추론은 여러분의 의견과 어떻게 다른가? 줄처의 추론은 과학적인가?

줄처 : "구리 납은 아연 등의 금속 하나 하나를 혀에 대면 어떠한 맛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두 개의 금속이 결합하면 그 중의 하나, 혹은 양쪽에서 이들 금속 원자의 진동이 일어난다. 이 진동이 혀의 신경을 필연적으로 흥분시킴으로써 미각을 일으킨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한편 갈바니(1737-1798)가 접촉전기를 발견하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관찰로 비롯되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방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조수 한 사람이 기전기 옆에서 껍질을 벗긴 개구리의 가랑이 사이에 우연히 메스 끝을 갖다 대었더니, 관절의 모든 근육에 마치 강렬한 수축이 일어나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갈바니는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계속 실험해 기전기 가까이에 있는 개구리 다리에 대한 방전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할 목적으로 공중전기(번개)에 의해서도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지를 알아 보고자 했다. 그리고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에 개구리 근육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킴을 확인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전기의 방전 현상에 의한 새로운 효과, 즉 개구리 다리 근육의 경련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의 관찰은 기전기의 영향에 의한 것일 뿐, 새로운 전기의 발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갈바니는 개구리 근육의 경련 현상을 방전의 효과로 설명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모로 실험을 하던 중 척수에 꽂은 갈고리를 해부된 개구리가 놓여 있는 철판 위에 대었을 때 경련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 현상을 공중전기와 관련지어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이 현상은 기전력이 없는 실험실에서도 관찰됐다. 그는 수 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이 현상은 공중 전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생각지도 않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1791년에 발표한 '근육의 운동에 관한 전기작용에 관한 논문'에서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전기를 갈바니즘, 즉 갈바니 전기로 불렀다(그림2).
 

(그림2) 갈바니 전기의 발견^철판 위에 껍질을 벗긴 개구리를 놓고 척수에 꽂은 놋쇠 갈고리를 철판에 갖다 대면 기전기가 없어도 놋쇠-개구리-철판의 폐회로를 형성할때 근육이 수축된다.
 

그는 위의 기본 실험에 조건을 바꾸어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 중에서 재미있는 실험은 (그림 3)과 같은 전기적 개구리 진자다. 개구리 다리가 미끄러져서 은판에 접촉하면 전기의 발생으로 근육이 수축되고, 그 때문에 다리가 다시 들려 올려진다. 그러나 근육이 다시 이완되면 미끄러져 은판에 접촉하고 다리는 다시 들려 올려간다.

이러한 갈바니 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현상은 그 원인을 두가지 측면에서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는 동물의 몸 자체에 기인 한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금속의 접촉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개구리는 민감한 검전기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이 중의 어떤 입장인가? 아니면, 둘중의 어느 것도 아닌 또 다른 입장인가? 갈바니는 이 현상의 원인을 동물전기의 작용으로 보았다. 갈바니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같은가? 그의 생각은 과학적인가?

갈바니 : "근육은 라이덴병처럼 표면과 내부에 정 반대의 전기가 생기며, 따라서 내부의 신경과 근육의 표면을 도체로 연결하면 방전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근육이 수축한다."

갈바니의 이러한 생각은 일반적인 승인을 받게 되었고 그의 학설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시 개구리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금속이 있는 곳이면 너도 나도 절단한 개구리 다리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그림3) 개구리 전기 전자^개구리 다리가 미끄러지도록 경사지게 놓은 판의 아래 쪽에 은판을 대고 척수에 꽂은 놋쇠 갈고리를 은판에 접촉시킨다.


볼타의 새로운 해석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알레산드로 볼타(1745-1827)는 근육의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지 않고 내부끼리, 혹은 외부끼리 도체로 연결해도 같은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전류의 원인이 금속의 접촉에 있다고 보았다. 전류의 원인이 금속 자체에 있으며, 개구리의 신경은 전류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개구리 다리의 경련은 단순히 검전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갈바노미터(근육의 작용에 의한 전기량의 측정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접촉 전기의 양을 측정하려 했다.

그는 축전기를 이용해 미량의 접촉전기를 검출할 수 있었다. 검전기에 전기를 축전해 놓으면 미소량의 전기의 검출이 가능해진다(그림 4). 또한 금속의 단순한 접촉에 의해 서로 반대의 전기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전압열의 배치를 얻었다.

(+) 아연 납 주석 철 구리 은 금 (-)

이 계열은 앞쪽에 있는 각 항이 뒤쪽에 있는 항 중의 하나에 접속하면 앞쪽은 양으로 대전되고, 뒤쪽은 언제나 음으로 대전된다. 볼타는 자신의 밀짚 검전기로 측정해 본 결과 두 항 사이의 전기차(전위차)는 항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커짐을 알았다. 또한 전압의 두 항에 대한 전기차는 그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항의 전기차의 총합과 같음을 알았다.

이후 독일의 과학자인 요한 빌헬름 릿터(1776-1810)는 1798년에 볼타의 전기접촉설에 반대해 전기 화학설을 제창했다. 그는 두 금속이 습한 상태에서 접촉하면 그 한쪽이 단독적으로 존재할 때보다 빨리 부식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전기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단순한 금속의 접촉이 전기발생의 원인이 아니며 습기에 의한 금속 간의 화학작용, 즉 산화·환원에 의한 전위차가 갈바니 전기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산화가 진행될 때 전류가 흐른다는 증거로 볼타 계열이 금속의 산화력의 세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 금속을 다른 금속이온이 용해된 용액에 넣었을 때, 용해된 금속이온을 용액속에서 금속으로 유리시키는 반응을 통해 금속의 서열을 정했다. 즉, 구리 이온이 용해된 용액 속에 철을 넣으면 구리가 석출되고, 철이온이 용해된 용액 속에 아연을 넣으면 철이 석출된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그는 아연>철>구리 순으로 금속의 산화되기 쉬운 서열을 정했다. 그는 자신의 실험 결과가 볼타의 접촉에 의한 전압열과 일치함을 보였다.

릿터의 이러한 견해는 당시에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패러데이(1791-1867)의 여러 연구에 의해 릿터의 견해가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림4) 볼타가 스케치한 밀집 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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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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