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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도시를 설계한다
“도시를 건축하고 설계하는 일은 별자리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밤 보는 별은 밤하늘에 떠 있는 수천 개의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각기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을 모아 별자리를 만들면 하나의 별도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건물과 도로는 의미없는 파편이다. 만들어진 시기도 제각각이다. 도시건축설계는 이 요소들을 모아 의미를 갖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건물을 짓고 길도 낸다. 별을 잇기 위해 별이 없는 위치에 별을 만드는 셈이다. 건축물이 지역과 도시의 의미를 잘 연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북촌 한옥마을이다. 북촌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옛길과 문화재, 조선시대 상류층이 살았던 한옥 주거지에 한식집과 한복집, 전통공방을 더해 한옥마을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한옥 여러 채와 이름 모를 돌담길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도시는 안락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종로구에 살고 있다는 것과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작가 이상이 태어나고 공부했던 곳이라고 느끼며 사는 건 다르죠. 우리 연구실은 살고 있는 곳의 의미를 회복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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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설계 연구실 식구들]
서울을 연구하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김 교수는 서울의 도시건축설계를 칠판에 비유했다. 칠판에 그려져 있는 게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일단 지우고 새로 그린다는 얘기다.
“살고 있는 곳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것은 역사가 선물한 공간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무조건 없애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게 능사가 아니죠.”
김 교수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예로 들었다. 반듯한 도로와 주거지역, 화려하고 깔끔한 건물로 단장한 싱가포르보다 낡고 골목도 많지만 시간이 가져다주는 깊이가 있는 홍콩이 도시로서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2007년에 만든 ‘서울도시디자인 기본계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도시를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첫 도시건축설계다. 김 교수와 연구원들이 함께 서울 곳곳을 다니며 직접 사진을 찍고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사해 만들었다.
2~3년이 걸리는 단기프로젝트부터 7~8년 동안 추진할 장기프로젝트까지 총 40여개의 프로젝트를 담았다. 성곽을 복원하고 사대문 곳곳에 남아있는 한옥골목을 보존하는 등 서울 곳곳에 드러나 있지 않은 자연과 역사문화유산의 의미를 찾는 계획이다.
“원래 계획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지만 서울시에 도시 디자인 전담부서가 생기는 등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개념이 세워졌죠.”
‘아산시 근대산업유산활용 창작벨트 조성사업 마스터플랜’도 같은 맥락이다. 도고읍내중심가는 1970년대 지어진 중국집과 다방, 대포집(술집) 등의 건물이 지저분하게 방치된 상태였다. 이를 한국근대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지역으로 바꿨다. 페인트를 묻혀 손으로 쓴 간판은 약간만 수리하고 나무 전봇대와 녹슨 자전거, 서커스 천막을 함께 배치해 복고풍 냄새가 물씬 나는 거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트로트 음악을 틀고 만화영화를 상영해 근대의 한국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다.
서울대 캠퍼스 장기계획도 연구실의 작품이다. 보존해야 할 건축물과 숲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적었다.
“학교는 학생문화관과 인문관 주변의 건물을 새로 짓자고 했어요. 그런데 말렸지요. 그 건물들은 1970년 건축물의 특징을 잘 담고 있는데다 완성도도 높거든요. 리모델링을 해야지 없애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요. 지켜야 하는 건축물을 알고 이를 보존하는 것도 건축가의 책무입니다”
요즘 연구실은 서울에 푹 빠져있다. 서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서울은 1970년대가 돼서야 대도시가 됐습니다. 중국은 1800년대 이미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가 생겨났지요. 도시설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은 그 변화상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도시입니다.”
도시의 진화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 경제 등 모든 변화가 다 얽혀있다. 그 변화를 보면 서울만의 특색있는 도시상을 찾을 수 있다.
연구실은 앞으로 10~20년간 꾸준히 자료를 모을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여타 도시와는 다른 창조적인 서울을 설계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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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학생들이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 학생들과 세운상가의 변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보편적이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건축물들이 서울엔 많습니다.”
남대문도 그 중 하나다. 도시 한중간에 노점상과 건물이 얽히고설켜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들은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돼 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큰 시장이 있는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도 마찬가지다. 1km가 넘는 거대구조물이 도시를 가로지른 경우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연구실의 강건우 석사 졸업예정자는 졸업논문으로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를 택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물인 거대상가가 사회와 문화, 경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세계의 거장에게 배운다
김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교육이다.
“유학을 가지 않고도 세계적인 건축가로 클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매년 해외 유명 건축가를 초청한다. 학생들은 7~10일 동안 건축가들과 함께 주제를 정해 생각을 나누고 설계를 할 뿐 아니라 직접 작품을 만들어본다. 그동안 일본에서 젊은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테츠카씨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팀 SSD 등이 함께 했다.
2006년부터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대 학생들과 함께 서울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교환 건축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세운상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면 좋을지에 대해 논의했다. 석사과정 3학기인 류효은씨는 “나라가 달라도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은 같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 학생들은 어떻게 건축을 배우는지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매년 국내외로 답사도 떠난다. 미국과 싱가포르에 이어 지난 겨울에는 여주에 있는 김 교수의 자택에서 먹고 자며 여주의 고건축을 답사했다. 여주 자택은 김 교수가 직접 설계했다. 석사과정 2학기 신세철씨는 “보통 유명 건축물은 밖에서 구경할 수 있었는데, 직접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편안한지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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