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된 거인' 공룡에게는 화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왜 멸종했느냐는 시나리오다. 2백가지가 넘는다. 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흥미를 끄는 논쟁거리가 있다.
공룡이 계통진화단계상 어디에 속하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파충류쪽이 우세하다. 혹자는 계통도에서 공룡강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는 단계의 어디쯤인가 공룡이 위치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공룡의 자손이 새'가 아니고 '새의 자손이 공룡'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과학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공룡연구가인 오르세프스키는 BCF(Birds Came First)이론을 대중과학지인 '옴니'에 발표했다. 학술지가 아니고 대중지에 발표한 이유는 결정적인 화석의 증거를 확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이 이론은 그동안 공룡의 자손이 새라는 BADD(Birds Are Dinosaur Descendants)이론이 명쾌하게 해석하지 못했던 몇가지 모순을 해결해주어 많은 공룡연구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새가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1861년 독일에서 발견된 시조새의 화석. 시조새의 골격은 육식공룡 그대로였고 전신에 깃털이 나 있어, 틀림없이 공룡과 새의 중간 형태가 분명했다. 그러나 시조새를 비롯, 모든 새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V자형 쇄골(빗장뼈가 서로 붙어 만든 뼈)이 육식공룡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육식공룡에는 쇄골조차도 없었다. 이 결과 새가 공룡의 자손이라는 '친자설'은 '형제설'로 바뀌었다.
1960년대 들어 이른바 '공룡 르네상스' 시기에 젊은 연구자들은 쇄골이 발견된 일부 육식공룡 화석을 근거로 '친자설'을 다시 들고 나왔다. 또한 그들은 공룡이 항온동물(온혈동물)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따라서 항온동물인 조류와의 관계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대부격인 미국 예일대학의 존 오스트롬은 "곤충을 잡아먹는 소형 육식공룡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앞발에 붙은 비늘을 발달시키고 이것이 날개로 진화해 비행능력을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자설에는 몇가지 모순점이 있다. 하늘을 날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듯한 공룡화석이 발견되며, 새와도 공룡과도 아주 유사한 화석이 공룡이 존재하기 전의 시대로부터 발견된다는 점이다. 또 시조새 등장 후 어떻게 매우 빠른 시간내에 고도로 진화한 조류가 등장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오르세프스키는 이제까지 공룡연구가들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고의 대전환을 시도했다. 친자설은 친자설인데 '부모 자식이 바뀐 친자설'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는 "시조새가 공룡의 후예라면 새와 유사한 공룡이 시조새보다 전시대에 많이 발견돼야 하는데 실제는 시조새보다 오히려 조금 후, 즉 백악기 중기 이후에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진화의 일반 원칙인 "대형 생물은 소형 생물로부터 진화한다"는 '코프의 법칙'을 들어 육식 공룡이 너무나도 작은 조류로 진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린 새로운 계통도에 따르면 중생대 삼첩기 초기에 조류 공룡 익룡 악어 등 모든 파충류의 조상인 주용류(主龍類)가 존재한다는 것. 그 일부가 진화해 빠른 시기에 수상(樹上)생활에 들어가 곤충을 잡아먹다가 날개를 달게 된다. 이를 오르세프스키는 공룡조(dinobird)라 부른다. 공룡조 중 일부는 익룡으로, 일부는 날기를 멈추고 대형화된 공룡그룹으로, 나무 꼭대기에서 먹이를 좇아 하늘을 동경하던 그룹은 현재의 조류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공룡이 이족보행을 하는 이유도 새에서 진화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 지상에서 육식동물이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4족보행이 훨씬 유리한데 굳이 2족보행을 해야하는 이유는 새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지금까지 진화했다면 키위와 같은 존재가 됐을 것이다" 오르세프스키의 주장은 그동안 친자설이 안고 있던 많은 모순점을 해결해주고 있다. 앞으로 그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려면 화석증거가 믿밭침돼야 하겠지만 일단 공룡연구가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