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도되고 있긴 하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보자면 굶주림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절대량은 이미 인류를 모두 먹이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는 말이다.
오랜 세월동안 천형(天刑)으로 불리던 기아에서 인류를 구원한 것은 사람들이 별로 들어본 바 없는 극소수의 식량 관련 연구소들이다. 서방의 기부자들에 의해 지난 50년대에 설립된 전세계 18개의 농업관련 연구소(IARCs, International Agricultural Research Centers)에서는 지난날의 이른바 '녹색혁명'을 주도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들 연구소들이 뒤숭숭하다는 소식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잡지 '뉴사이언티스트' 근착호에 따르면 세계 은행(IBRD)이 세계 식량 생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연구소들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IARCs는 폭발적 인구증가에 따른 정치적 불안을 과학으로 해결하고자 설립된 연구소인지라 설립 이후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꿈'에 의해 운영돼 왔다. 그들은 기부자들이 대강을 정한 일반 연구 전략에 의해서만 영향받을 뿐, 넓게 보아 독립적이었다. 따라서 연구소들의 최고 자산이라 할 방대한 양의 '씨앗 은행'은 그 소유가 명확치 않은 상태.
IARCs의 많은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이 유전 자원을 원하는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한 종을 제공한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은 자신의 것을 공짜로 제공했지만 정작 씨앗 은행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생명공학회사를 소유한 부자 나라의 기부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급부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공적이고 책임 있는 기관이 이 씨앗 은행의 운영을 맡는 것만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과연 어떤 기관이 이런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데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정답에 근접하면서도 IARCs이 원하는 것은 UN의 국제식량기구(FAO)다. 그러나 IARCs의 기부자인 세계 은행은 자신들이 이 연구소들을 담당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극소수의 부자나라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은행이 이 문제에 나서는 이유는 제3세계 정부를 통제할 중요한 자원을 결코 양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은행의 의도는 앞으로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IARCs의 씨앗 은행은 빈부를 떠나 전세계를 먹여 살려야 할 인류 공동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