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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식물의 천국' 제주도

제 15회 전국 과학교사 자연생태계 탐사

탐사일정

8월8일:서울출발
8월9일:산굼부리 탐사(오전) 비자림 탐사(오후)
8월10일:천지연, 천제연(오전) 한림원, 납읍난대림지대(오후)
8월11일:한라산 국립공원 900고지, 1100고지(오전) 영실입구, 한라수목원(오후)
8월12일:관음사, 천왕사(오전), 제주출발

참가교사(가나다순)

김동석(제주 남녕고)
김소직(광주 선광고)
김영기(강원 북원여고)
김인진(경기 부평고)
김종철(전남 목포상고)
김진국(경북 비안고)
박광훈(대전 새일고)
오창호(충남 조치원여고)
유면옥(전북 옥구고)
이병우(경남 남해상고)
임지춘(부산 경남상고)
전병학(대구 경북사대부고)
최선철(서울 여의도고)
한병길(경기 경기과학고)
허왕호(충북 청주여고)

지도교수 및 인솔진행자

이창복(서울대 명예교수)
배희병(서울 강동교육청 장학사)
조석근(동아문화센터 문화기획부 차장)
김용현(한국자생식물연구회 회장)
 

바위손^바위 겉에서 자라는 관속식물이다.


제15회 전국과학교사 자연생태계 탐사가 지난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제주도의 양치식물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섬 제주도는 해발 1천9백50m 한라산이 중심에 솟아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제주도'라는 말을 들을 만큼 독특한 지리적 요건을 가진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은 모두 2백54종. 정확하게는 21과 62속 2백29종 21변종 4품종이다. 이 중 71%인 1백80종류가 제주도에서 자라고 있다. 솔잎란을 비롯한 60종은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종으로서 특별한 보호가 요청되는 귀중한 자원이다.

이번 탐사에서는 제주도의 난대성 아열대성 온대성 지역에서 각기 자라는 약 70여종의 양치식물을 관찰했다.

제주도는 좁은 면적에 많은 식물들이 분포돼 있고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우선 제주도의 지리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맨 남쪽에 있어 날씨가 따뜻하다. 지형의 특이성 또한 몫을 하는데, 복판에 솟아있는 한라산의 높이에 따라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평지와 산 아랫자락은 열대나 난대성 식물들이 자라며 산 중턱에는 한반도의 식물과 비슷한 종들이 분포하고 한라산 정상근처에는 고산성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1천 8백여 식물이 해발 고도에 따라 수직 분포된 식물의 보고를 이룬다.

또 제주도가 대만 일본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한가운데에 있어 바닷물의 흐름이나 철새의 이동에 따라 여러 지역 식물의 씨앗이 들어올 수 있었던 점도 제주도에 다양한 식물이 있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는 여러 학자들의 꾸준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탐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보다는 일선 교사들이 현장학습 기회를 갖고 이를 교육현장에 적용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점에 주안점이 맞춰졌다.

탐사주제를 양치식물로 한 까닭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것을 도외시하다보니 양치식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안돼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는 지도교수의 뜻을 따른 것. 또한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탐사하려 욕심을 내는 수박겉핥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건질 것을 찾아보자는 취지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양치식물은 관속식물 중에서도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종류에 대한 총칭이다. 지피식물이자 고비 고사리 등과 같이 식용자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식물의 형태가 눈에 띄기 어려워 꽃피는 식물보다 관심을 받는 비중이 적다. 가장 외진 곳 습진 곳 어두운 곳에 있지만 홍수조절 등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양치식물은 가장 오래 살아남아 있는 식물의 선조라는게 이창복교수의 말이다. 공룡시대에 지구를 뒤덮었던 식물이 바로 양치식물이다. 오늘날에는 꽃이 피어 종자를 생산하는 종자식물과 더불어 육상식물의 뼈대를 형성한다. 결국 양치식물을 연구한다 함은 유인원을 연구해 현생인류의 기원을 밝혀내듯 오늘날의 식물들을 조명하는 안경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종류는 1만 2천 종 정도. 열대와 아열대에서 주로 자라며, 배우체와 포자체가 서로 독립하여 생활하고 세대가 교대하는 현상을 밖에서 관찰할 수 있다. 잎과 뿌리가 없는 솔잎란류, 뿌리가 있고 잎이 나선상으로 배열된 석송류, 잎이 돌려나고 뿌리가 있으며 관절과 능선이 있는 속새류 및 뿌리 잎 줄기가 뚜렷하고 잎이 크며 엽극이 생기는 양치류 등 4개로 크게 나눈다.

이창복교수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식물분류학은 아마추어, 그중에서도 여성 연구자들이 주로 맡고 있다고 한다. 동호인회나 연구회도 많아 취미와 연구욕을 함께 충족하고 있다고 한다.

탐사기간중 탐사진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76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행을 앞지르는 이창복교수의 노익장. 그는 사전에 탐사지를 혼자 찾아가 답사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제주의 비바람은 이미 정평이 난 바지만 탐사기간과 겹친 태풍 '더그'의 탓으로 더욱 심한 비와 바람을 만나야 했다.

이번 탐사의 특징은 환경보존을 위해 표본을 꺾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채집을 하기로 한 것. 사진을 찍을 때는 전체와 부분 포자 부분을 모두 찍음으로써 정확한 채집이 되도록 했다.
 

나도파초일엽


첫째날

서울에서 이창복 교수의 양치식물에 대한 간략한 강의를 듣고 오후 6시 40분 김포 출발. "고사리보러 비행기타고 가다니" 등의 농담이 오갔다. 공교롭게도 때맞춰 몰려온다는 태풍 버그의 진로를 우려하며 내일을 준비.

둘째날

본격 탐사에 들어가기 전 이창복교수는 한 식물을 들고 이름을 물었다. 알아맞춘 사람이 2명. 생물을 전공한 현직교사들뿐 아니라 일반인의 양치식물에 대한 지식수준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교수의 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출발한다는 의미다.

먼저 양치식물을 관찰하는 법을 간단히 배웠다. 고사리는 우편과 소우편, 열편으로 나누어 관찰하며 포자의 유무, 대의 유무, 털의 유무, 엽맥이 갈라지는 방법 등으로 동정한다는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뒤 산굼부리 탐사에 들어갔다.

산굼부리는 해발 4백여m의 가스 분출로 형성된 요철식 분화구다. 깊이는 1백-1백40m .분화구 안쪽은 기온이 높아 난대림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 2백63호로 지정돼 있다. 화산구의 안쪽 경사면은 32-37도의 급경사인데, 민간인 통제 지역이라 다양한 식물군상이 보존돼 있다.

빽빽한 나무와 수풀들 사이로 많은 종류의 양치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사전에 독사가 출몰한다는 주의를 들었는데, 실제로 탐사진은 오전 탐사 동안 독사 두마리와 만나기도 했다. 이곳에서 발견한 양치식물은 다음과 같다.

가시고비고사리 개면마 검정개관중 고비고사리 관중나사미역고사리 도깨비고비고사리 바위손 봉의꼬리 부처손 산일엽 석위 바위고사리 쇠고비 실고사리 십자고사리 왁쌀고사리 족제비고사리 진퍼리고사리 콩짜개덩굴 고사리 고비 진고사리 곰담취 뱀톱 곰비늘고사리 가는잎쪽사리뫼 애기일엽 애기꿩의다리(특산) 개숭마 붉은지네고사리 도깨비고비 섬꿩의고비 괴불이끼 히초미 틈지네고사리 일색고사리 부채괴불이끼 붉은사철란 나도진퍼리고사리 바늘엉겅퀴 꼬지고사리 설설이고사리 큰진고사리.

오후에 찾은 비자림은 6백살이 넘는 비자나무 2천5백여 그루가 자생하는 곳. 천연기념물 제18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방치되어 비옥하고 습기가 풍부하다.

비자나무는 비자나무과에 딸린 상록침엽수로 붉은 자주색 열매가 열린다. 비자열매는 구충제로 쓰이기도 하고 나무는 집이나 배를 짓는 재목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멋들어진 나무보다는 그 아래 그늘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이 탐사진의 관심 초점. 가는잎고사리 왕지네고사리 암고사리 봉의꼬리 더부살이고사리 십자고사리 가지고비고사리 돌토끼고사리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기드물게 핀 고구마 꽃^ 흉작을 예고하는 꽃으로 알려진다.


셋째날

본래 영실에서 윗새오름까지 등산을 할 예정이었으나 태풍으로 인해 일정을 대폭 수정, 천지연 천제연 한림원 등 일반 관광지이기도 한 안전 코스를 택했다.

천지연에서는 별고사리 돌담고사리 돌토끼고사리 실고사리 참쇠고비 큰진고사리 도깨비고비 더부살이고사리 엷은비늘고사리 진고사리 등을 보았다. 또 꾸지나무 바람등칡 나도맥문동 모시풀 개모시풀 두릅 등도 관찰했다.

계곡 전체가 식물원인 것처럼 보인다는 천제연에서는 1·2단 폭포 가장가리에 양치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본래 습한 지역인 데다가 비까지 오니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이곳에서는 절벽 바위 틈에만 드물게 자란다는 솔잎란과 담판수 자생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솔잎란은 관속식물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뿌리와 잎이 없고 줄기만 있는 열대식물이다. 제주도는 솔잎란이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이다. 진퍼리고사리 설설이고사리 돌담고사리 선바위고사리 더부살이고사리 등도 발견했다.

이곳에서 이창복교수는 솔잎란채집과 관련한 오래된 일화를 들려주었다. 천제연에서 표본을 채집중이던 이교수와 제자는 서로 구역을 나누어 이교수는 폭포밑으로 들어가고 제자는 절벽쪽을 살피기로 했다. 그런데 이 제자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천우신조로 채집망이 쿠션 역할을 해 다친데도 없이 살아난 제자의 손에는 떨어지면서 엉겁결에 잡아뜯은 풀포기가 쥐어져 있었다. 알고보니 그 유명한 솔잎란. 그때 그는 제자가 다쳤는지 여부보다 솔잎란이 먼저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 솔잎란은 지금 서울대에 표본으로 남아 있는데, 훗날 이 제자가 그 표본에 '구사일생'이라 적어놓고 갔더라고.

아열대림을 이루고 있는 한림원에서는 선바위고사리 세잎고사리 쇠고비고사리 도깨비고비고사리 곰비늘고사리 넉줄고사리 갯마치수염 세뿔석위 해송나무 석위 산호무 골고사리 등을 보았다.

한림에 들른 김에 한림읍 한수리 임순경씨 밭에 들러 5백여평에 걸쳐 핀 고구마꽃을 촬영. 지방신문에 실릴 정도로 화제가 된 이 꽃은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의 나팔꽃 모양으로, '보통사람은 평생 한두번 볼까말까한 희귀한 꽃'이라고. "대나무에 꽃이 피면 대밭이 망하고 고구마에 꽃이 피면 나라가 어려워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흉작을 예고하는 꽃이라 한다.

한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납읍 난대림지대는 60여종의 난대식물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자라고 있어 원시적 경관을 방불케 했다. 천연기념을 3백75호이기도 한 이 지역에서는 나무에 붙어서 식생하는 일엽초, 밤잎고사리 등을 볼 수 있었다.

넷째날

제주 사상최대의 폭우. 태풍 버그가 사라지기 직전에 흘린 눈물이라는 이 비로 하루 강수량이 9백mm에 육박했다. 탐사는 바람을 동반한 폭우 속을 헤치고 강행되었지만 많은 한계가 있었다.

먼저 한라산국립공원 900m 고지에서는 가는잎처녀 고사리 족제비고사리 가는잎족제비고사리 고사리 늦고사리삼 뱀고사리 잔털고사리 솔비나무 사다리고사리 석송 백리향 등을 관찰했다.

이어 1100고지에서는 꼬리고사리 바늘엉겅퀴 박주가리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사정 보지 않고 내리는 폭우에 탐구열도 두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1100고지 휴게실에서 약 1시간 비를 긋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영실로 출발.

그러나 영실은 낙석위험 때문에 아예 폐쇄되어 입구부근만 탐사할 수 있었다. 층층고란초 다람쥐꼬리골피고사리 산개고사리 등의 양치식물을 발견했다.

한라수목원에서는 그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양치식물 중 상당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톱지네고사리 바위고사리 넉줄고사리 반쪽고사리 별고사리 파초일엽 히초미 선바위고사리 큰봉의꼬리 등을 보았고 제주도 특산인 만년콩 등도 관찰할 수 있었다.

다섯째날

나흘간의 탐사를 마무리하는 날, 오랜만에 날이 개었다. 나흘간 경험이 쌓인 탐사진은 이제 뭔가 관록도 붙고 더욱 학구열에 불타는 듯 그러나 시간관계로 주로 관음사, 천왕사 등 사찰 주변의 양치식물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관음사에서 탐라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곳에 섬공작고사리가 있을 터였으나 시간관계상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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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전민조 기자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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