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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주미입니다

◇안 어려워요

 

5월 8일 오후 1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주가량 남은 최종시험을 앞두고 훈련을 나왔다. 나는 경기도 용인에 살지만 매일 수원, 분당 등 낯선 지역에 나가 훈련을 한다. 처음 간 곳에서도 ‘그들’을 잘 안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주미’다.


나는 2018년 4월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이하 학교)에서 태어났다. 내 아빠는 약간 소심하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었고, 엄마는 쉽게 흥분하지만 동시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두 분의 장점만 받아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자신감 넘치고 학습력도 뛰어나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안내견은 훈련사가 가계도, 기질, 건강 등을 꼼꼼히 따져 교배시키기 때문에 날 때부터 건강하고 성격도 좋다.


학교에는 나처럼 훈련을 받는 중이거나 마친 동료와 선후배가 40마리 정도 살고 있다. 대다수는 캐나다에서 온 품종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외국에는 간혹 저먼 셰퍼드나 스탠다드 푸들 출신 안내견도 있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대세 안내견은 리트리버다(약 90%). 사람을 안내할 만큼 덩치와 힘이 있으면서도 얼굴이 온순하고, 사람에게든 개에게든 친화력 있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까지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1년간 ‘퍼피워킹(puppy-walking)’을 했다. ‘앉아’ ‘엎드려’ 같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기본적인 사회화 훈련을 마쳤다. 올해도 우리 학교에서 태어난 후배 50~60마리가 자원봉사자들의 집에서 퍼피워킹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은 작년 10월 학교로 돌아와 시작했다. 오늘은 수내역에서 시작해 아파트 단지, 놀이터, 백화점 등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그동안 배운 것을 점검할 계획이다. 


그중 첫 번째는 우리의 가장 큰 임무인 위험 감지다. 우리는 함께 걷는 사람보다 반 발짝 정도 앞서 걸으며 둔턱이나 횡단보도, 엘리베이터, 개찰구 등을 찾아내고 그 자리에 멈춘다.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신호다. 우리가 멈추면 함께 걷던 사람이 장애물의 존재를 알아채고 둔턱을 오르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등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개찰구 찾아.”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함께 나온 훈련사가 미션을 던진다. 타겟팅 훈련이라나 뭐라나. 내겐 누워서 개껌 씹기 수준의 쉬운 미션이다. 훈련사를 개찰구쪽으로 이끈 뒤 개찰구를 코로 ‘콕’ 찍었다. 훈련사는 성공에 대한 포상으로 오독오독 씹는 맛이 일품인 간식사료를 건넸다. 역시 꿀맛이다. 모든 훈련은 미션을 잘 수행하면 포상을 받는 긍정강화 훈련이다.


물론 내게도 어려운 훈련이 있다. 일반 반려견들은 ‘깜놀’하겠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는 함께 있는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 훈련을 열심히 받는다. 그들이 횡단보도에서 ‘가자’ 하고 말해도 차가 오는 돌발상황이라면 스스로 판단해 가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지시와 관계 없이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선발되려면 6~8개월의 훈련 기간 동안 3번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훈련 1개월 차에는 똑바로 걷는지, 유혹을 이겨내는지 등 선천적인 기질과 안내견이 되기 위한 가능성을 평가받는다. 


이후 중간평가와 최종평가는 훈련사와 함께 받는다. 훈련사가 눈을 가리고 우리와 함께 걸으며 보행의식(걷는 것을 좋아하는지), 미션 수행능력(횡단보도에서 잘 기다리는지 등)을 평가한다. 나는 중간평가까지 통과하고 5월 20일 최종평가를 앞두고 있다. 


1~3차 시험의 최종합격률은 35% 정도로 꽤 낮다.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시험이 엄격하게 치러지기 때문이다. 최종평가까지 통과하면 앞으로 6~8년간은 안내견으로 활동하게 된다. 탈락해도 일반 가정에 분양돼 반려견으로 지낼 수 있지만 꼭 합격하고 싶다. 
너무 이른 감은 있지만, 만약 안내견이 된다면 은퇴는 열 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보통 그맘 때 은퇴를 하고 퍼피워킹을 했던 집으로 돌아가거나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시각장애인 가족들의 집에 입양되기도 한다. 


일반 가정에서 지내더라도 주기적으로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현재 60마리 가량의 대선배 안내견들이 은퇴 후 삶을 즐기고 있다.


과학동아 6월호가 나올 때쯤에는 나의 안내견 최종평가도 모두 끝난 시점일 테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많이 떨리지만, 내 훈련을 담당한 박나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가 “주미는 사람과 스킨십을 좋아하고 학습력이 뛰어나 합격할 것”이라고 말했으니 믿어볼 밖에. 이번에 국회로 간 학교 선배 ‘조이’처럼 언젠간 꼭 사람들을 돕는 멋진 안내견이 되고 싶다.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 도움

    박나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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