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비눗방울 표면에 붙어있는 은하

우주의 심연은 균일하고 등방적이다.

 

우리은하와 함께 국부은하군에 속해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


거대한 코끼리의 모습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장님의 어려움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명의 장님이 모여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져보고, 각자 코끼리란 여차여차하게 생겼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비해 우주의 모습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천문학자들의 어려움은 어떠할까? 놀랍게도 답은 ‘더 쉽기도 하고, 또한 더 어렵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1)하늘에서 보이는 밝은 은하들의 분포^한 점이 은하 한 개에 해당하며,여기에 보이는 은하의 수는 1백만 개가 넘는다(출처:Seldner et al.1977,Astronomical Journal,82,249).


코끼리, 벽돌, 우주

장님은 코끼리의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 촉각을 사용해 손으로 만져서 모양을 추정한다. 이 방법은 코끼리의 각 부위의 구조 연구에는 쓸만하지만,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천문학자들은 촉각 대신에 시각만을 이용해 전혀 만져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밝히려고 애쓴다. 시각을 이용하면 일반적인 물체의 모습을 알아내는 것이 쉽다. 그러나 우주는 코끼리에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우주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며, 전체 모습이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또한 관찰자인 우리가 우주 속에 있으므로 숲 속에서 숲 전체의 모습을 알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우주의 모습에 관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어떻게 거대한 우주의 모습을 밝혀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자.

우주는 삼라만상을 포함하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이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물질과 빛,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주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물질과 빛의 공간적 분포를 알아내면 된다. 천문학자들은 바로 이를 이용해 우주의 참모습을 알려고 노력한다.

물질을 이용해 우주의 거대 구조를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양, 달, 행성 등의 분포를 이용해? 아니면 별들의 공간적 분포를 이용해? 모두 아니다. 태양계나 별만 봐서는 우주의 거대 구조를 알 수 없다. 답은 은하이다.

은하란 수천억개의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한 항성계이며, 우리는 우리은하를 포함하는 하나의 나선 은하에 속해 있다. 우주를 거대한 벽돌 건물에 비유한다면, 은하는 바로 건물을 이루고 있는 벽돌에 해당한다. 따라서 은하의 공간적 분포를 조사하면 우주의 거대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잡은 우주의 끝에서 날아온 빛.사진에 보이는 것들은 1백20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먼 은하들이다.


은하까지 거리 구하기

밤하늘을 맨눈으로 살펴보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별들이 수없이 많이 보이지만, 은하는 거의 볼 수 없다. 맨눈으로 볼 때 북반구 하늘에서는 안드로메다 은하와 삼각형자리 은하, 그리고 남반구 하늘에서는 마젤란 은하 등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은하는 거대한 항성계이지만 대부분 워낙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매우 어둡고 작게 보인다. 따라서 이를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큰 망원경과 좋은 관측 기기가 필요하며 시간 또한 많이 걸린다.

(그림1)은 은하의 북극 근처의 하늘에 있는 밝은 은하들의 분포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한 점이 한 은하에 해당하며 그림에 있는 은하의 수는 1백만개가 넘는다. 이 그림은 우주에 있는 물질의 분포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습은 3차원 우주가 2차원 하늘에 투영된 것이므로 우주의 3차원 구조를 잘 알 수 없다. 우주의 3차원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각 은하까지의 거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은하들의 거리를 모두 알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이 은하들 중 일부에 대해서만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멀리 있는 은하의 거리는 적색이동을 측정해 구한다. 적색이동은 멀어지는 천체에서 나오는 빛을 관측할 때 파장이 긴 쪽으로 이동되는(원래보다 붉게 보이는) 현상이다. 이 때 이동되는 양은 멀어지는 속도에 비례하므로, 분광 관측을 이용해 적색이동량을 측정하면 천체가 멀어지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적색이동량은 보통 z로 표시하며 정지 파장에 대한 관측 파장의 변화율을 나타낸다.

은하들이 서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므로, 은하의 후퇴 속도와 허블법칙을 이용하면 그 은하들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은하의 거리와 속도를 각각 d와 v라 하고, 허블상수를 H라 하면, 허블법칙은 d(거리) = v/H로 나타낼 수 있다. 현재 알려진 허블 상수의 값은 H=(65km/초)/메가파섹이다(1메가파섹=3백26만 광년). 따라서 은하를 이용해 우주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연구의 핵심은, 은하를 찾아내고, 그 은하들의 적색이동을 측정하는 일이다.
 

(그림2)30억 광년보다 가까운 우주의 단면^각 점은 은하들을 나타낸다.km/초로 표시한 속도를 허블상수의 값 65로 나누면 각 은하의 거리가 된다(출처:Las Campanas Redshift Survey).


거대한 비눗방울

분광 관측은 관측 특성상 가까운 은하들에 한정되므로, 이런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가까운 우주에 불과하다. (그림2)는 이렇게 밝혀진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하늘의 일부를 길게 자른 단면에서 30억 광년보다 가까운 은하의 분포를 보여준다. 이로부터 우주의 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그림을 보면 첫눈에 은하, 즉 물질 분포는 매우 불균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곳은 은하들이 매우 많이 모여 있으며, 어떤 곳은 은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은하가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은 은하단, 초은하단, 장성(Great Wall) 등에 해당하며, 우리은하도 국부은하군(Local Group)이라고 불리는 작은 은하군의 일원이며, 이 국부은하군은 다시 거대한 국부초은하단(Local Supercluster)에 속해있다. 은하가 거의 없는 지역은 공동(空洞, void)이라고 하며, 그림에서 대략적으로 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 3억광년이나 되는 거대한 구형의 빈 공간이다.

(2)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면 우주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많은 비눗방울들이 서로 붙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은하들은 비눗방울의 표면에 주로 분포하고, 비눗방울의 안쪽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공동이 우주의 비눗방울에 해당한다.

(3) 그림을 공동보다도 더 큰 규모에서 살펴보면 은하의 분포는 거의 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사진에서 보이는 지역 중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을 크게 몇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은하의 평균 개수를 계산해보면 대략적으로 비슷하다. 우리로부터 먼 지역은 가까운 지역보다 은하의 수가 적게 보이는데, 이는 관측에 포함되지 않은 은하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심연

위의 결과는 30억 광년보다 가까운(적색이동량 z<0.2) 우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영역은 전체 우주에서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이보다 먼 우주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 보다 먼 우주에서의 물질 분포는 매우 어두운 은하의 분포를 조사해 알아낼 수 있다. 은하의 평균 밝기가 일정하다면,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욱 어둡게 보일 것이다. 따라서 어두운 은하를 조사하면 더욱 먼 우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로부터 우주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먼 은하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먼 과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은하에서 과거에 출발한 빛을 오늘날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며, 그 은하의 현재 모습을 보려면 다시 억겁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먼 우주에 있는 은하들은 매우 어둡기 때문에 관측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대형 망원경이나 허블우주망원경과 같은 고성능 장비로 오랜 시간 동안 관측을 해야 보인다. 하늘의 넓은 지역에 대해 이런 관측을 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므로, 실제로는 하늘에서 매우 좁은 지역을 선정해 오랜 시간 관측을 하게 된다.


(그림3)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허블딥필드의 모습^하늘에서 매우 작은 지역이며 한변의 크기는 각도로 2.5분에 불과하다.현재까지 관측한 자료들 중에서 가장 먼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사진에 보이는 천체의 99%이상이 은하들이다(출처:NASA/STScl).


(그림3)은 1995년에 허블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찍은 사진으로서 현재까지 관측한 자료들 중에서 가장 먼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하늘의 북극 근처에 있으며 북쪽 허블딥필드(Hubble Deep Field North)라고 불린다.1998년에는 남쪽하늘에 대해 같은 방법으로 관측을 했는데, 그 지역은 남쪽 허블딥필드(Hubble Deep Field South)라고 불린다. 사진에서 보이는 영역은 하늘에서 매우 작은 지역으로서 한변이 각도로 2.5분이며, 이는 보름달 지름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사진에는 놀랍게도 약 3천개나 되는 많은 천체가 보이는데, 이 천체들의 99% 이상이 은하들이며, 별은 거의 없다. 이 중에서 가장 밝은 은하는 밝기가 21등급으로서 처녀자리의 가장 밝은 별 스피카보다 1억배나 어둡다. 은하들의 대부분은 워낙 멀리 있으므로 매우 작게 보인다. 이 사진은 우주가 다양한 은하들로 가득 차 있으며, 많은 은하들끼리 충돌하거나 합쳐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명균, 구본철 지음 ‘허블망원경으로 본 우주’/서울대 출판부, 2000 참조).

허블딥필드에 있는 은하들의 적색이동을 분광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케크(Keck) 망원경과 같은 구경 10m급 망원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러 파장에서의 밝기를 측정하는 측광학적 방법으로도 어두운 은하의 적색이동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허블딥필드에서 비교적 밝은 은하수백 개에 대해 필자의 연구진이 측광학적 방법을 이용해 최근에 구한 적색이동 결과가 (그림4)에 있다.(그림4)는 대부분의 은하들의 적색이동이 2보다 작은 지역에 몰려있으며,일부는 4-5의 값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z=1은 우주 전체 크기의 80%,그리고 z=5는 우주 크기의 93%에 해당하는 거리이다.이로부터 은하는 이미 z=5일 때부터 존재했으며,대부분의 은하는 z<2일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림4)허블딥필드에 있는 은하들의 적생이동 분포^허블딥필드 북쪽 은하들(푸른색)과 남쪽(붉은색)을 따로 표시했다.(출처:황나래,이명균의 논문)


우주배경복사

단순한 마음으로 우주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모든 만물은 고루 분포할 것이라고 추측할 것이다. 즉 어디에서나 밀도가 같고(균일성)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같게(등방성) 보일 것이라고. 아인슈타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은하와 우주의 거대 구조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이.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은하들의 분포를 보면, 균일하고 등방적인 특성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은하의 분포는 비균일하고 비등방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는 정말 비균일하고 비등방적일까?


(그림5)우주의 균일성^북반구(왼쪽)와 남반구(오른쪽)하늘에 있는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분포를 나타낸다.사진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은 절대온도 2.726도(영하270℃)를 기준으로 1만분의 1K높고 낮음을 나타낸다.하늘 전역에서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2.726K로서 거의 같음을 보여주며,이는 우주배경복사가 나올때의 초기 우주가 매우 균일하고 등방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작은 규모에서는 10만분의 1K의 크기로 온도가 변한다.이 미세한 변화는 이때 이미 물질의 분포가 국부적으로 불균일함을 보여주며,이런 불균일한 부분이 진화해 후에 우주의 거대 구조물이 태어나게 된다(출처:NASA/COBE).


 

하늘 전체에 퍼져 있는 매우 먼 천체나 빛의 분포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그림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 하늘에 있는 우주배경복사의 분포를 살펴보면 우주의 빛 분포가 매우 균일하고 등방적으로 보인다. 또한 멀리 있는 전파은하나 20세기 천문학의 최대 수수께끼인 감마선 버스트(폭발)의 분포를 보아도, 그 분포가 매우 균일하고 등방적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은 규모에서는 우주가 매우 불균일하고 비등방적이지만, 큰 규모에서 보면 우주는 균일하고 등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지역에 걸쳐 멀리 있는 은하들을 관측해 그 분포를 살펴보면 이런 점을 보다 자세히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현재 막대한 투자를 해서 이런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21세기에는 흥미진진한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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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명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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