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잉껌의 혁명」은 지속형 약제 개발에 앞서 수행한 워밍업을 통해 달성되고
오래 씹어도 단맛을 잃지 않는 껌이 최근 미국에서 개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껌씹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 발명품은 멀지않아 동네가게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추잉껌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지속형 껌의 발명은 미국내 한 연구소의 별난 전초전이 그 계기가 됐다. 제약업계의 주요한 첨단연구대상중 하나인 지속형 약제를 취급하는 컬럼비아연구소(Columbia Laboratories)가 본격적으로 약제를 개발하기에 앞서 비슷한 성질의 껌을 제조한 것이다. 이를테면 지속형 껌은 지속형 약제를 멋지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워밍업 상대였다.
여기서 지속형 약제란 예를 들어 몸에 부착돼 있다가 혈압이 높아졌을 때 순간적으로 작용하는 고혈압약, 24시간 약효를 유지하는 감기약 등을 말한다. 이런 약이 개발되면 고혈압환자도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고 '식후 3회'라는 번거로운 약 복용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감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1986년에 문을 연 컬럼비아연구소는 위스콘신주에 위치하고 있으나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둔 한 제약회사의 재정지원을 받는 일종의 기업연구소다. 개소 당시 이 연구소의 개발담당 부소장 조셉 로빈슨은 연구원들에게 지속형 약제의 개발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만만해 보이는 껌을 1차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지속형 물질과 친숙하게 하고 그 기본개념을 확실히 심어주고, 개발의지를 고무시킨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소장의 본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손쉽게 해내리라고 예상했던 일을 성취하는데 장장 5년이나 걸린 것이다. 사실 지속형 껌 개발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하고 까다로웠다.
일반적인 껌은 풍미를 지닌 기름을 함유하고 있는데 그 속에 설탕과 껌의 기본물질이 녹아 있다. 우리가 껌을 씹을 때 바로 이 기름이 껌밖으로 나와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달콤한 맛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껌을 씹은지 5분 내에 설탕의 90% 이상이 빠져 나가고 기름의 절반 정도가 밖으로 배출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을 잃어버리면 껌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번에 컬럼비아연구소가 내놓은 신종 껌은 기존의 껌위에 중합체 피막(polymer film)을 입힌 것이다. 이 피막의 성분은 독성이 없는 폴리비닐아세테이트(polyvinyl acetate)인데 여기에 향기나는 분자가 다량 스며들게 했다. 아울러 피막은 더 많은 기름과 감미료를 함유하게 했다.
게다가 폴리비닐아세테이트는 기름과 감미료를 단단히 묶어두는 능력이 탁월하므로, 설령 계속해서 피막부위를 이로 갈고 침으로 씻어낸다 할지라도 기름과 감미료의 방출은 극히 천천히 이뤄진다.
컬럼비아연구소가 만든 껌을 입속에 넣고 씹으면 곧 그 피막안에 갇힌(?) 기름과 감미료가 내는 단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맛은 절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껌을 잘근잘근 씹는다 할지라도 피막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속형 껌의 기름과 감미료는 침과의 직접접촉을 회피하고 있다.
"껌을 씹는 동안 극소량의 기름과 감미료만이 배출된다. 물론 이 정도면 껌 본래의 맛을 내는데 있어 충분한 양이다. 따라서 거의 같은 수준의 단맛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고 로빈슨은 자랑한다.
"적어도 10시간 동안 단맛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로빈슨의 호언과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실제 실험결과 6,7시간 동안 최초의 맛을 거의 완벽하게 유지했다. 모기업에서 설정한 연구대상은 제쳐놓고 엉뚱한 것에 매달려 5년을 투자한 컬럼비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문제는 껌맛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보다 훨씬 빨리 껌씹기를 지겨워한다는 데 있다"며 다소 멋적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