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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밤 낮 구분하는 눈 있다

색소단백질 피토크롬, 외부 광정보전달

식물에도 외부 환경이 낮인지 밤인지, 봄인지 여름인지를 인식하는 눈이 있다.

식물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고착하여 살고 있으므로 불리한 환경이 되어도 도망가지 못한다. 싫든 좋든 현위치에서 외계의 변화에 하나하나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속한 온대지역처럼 춘하추동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곳에서는 식물이 생존하여 번성할 수 있으려면 4계절의 변화에 맞추어야 한다. 온화한 계절에는 나무의 싹이나 종자가 휴면상태(세포내 물질대사 활동이 최대로 억제된 상태)에서 깨어나 발아하고 생육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4계절의 변화를 알아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먼저 온도의 연중변화를 보자. 명백히 기온은 여름에 높고 겨울에 낮은 규칙적인 연주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온도는 계절변화의 주요한 지표의 하나다. 그러나 때로는 계절에 걸맞지 않는 이상고온이나 이상저온도 있어 만일 기온만을 근거로 하여 식물이 외계의 계절을 추정한다면 예상외의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온도 요인과는 달리 위험성을 동반하지 않는 정확한 근거가 있다. 바로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한 밤과 낮의 길이 변화다. 일년 중동지를 경계로 낮이 매일 조금씩 길어져 하지에 최대가 되었다가 다시 짧아진다. 이것은 틀릴 수 없는 4계절에 관한 환경정보로서 이것과 온도요인 등을 이용하여 계절을 알아보는 방법은 식물이 계절을 인식하는 중요한 척도라 할 수 있다. 봄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는 식물은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이미 도태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식물은 외부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 이를 자신의 생존에 적극 이용한다. 사진은 저녁에 피었다 아침에 지는 달맞이 꽃
 

빛을 느끼는 눈

1952년 미국 농무부 산하 농학연구소의 보스위크(H.A. Borthwick) 등의 연구자들은 상추씨를 재료로 한 종자 발아 실험에서 '적생광·근적외선의 가역반응'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즉 물에 적신 여과지 위에 상추종자를 뿌린 샤레를 여러개 준비하여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 몇 시간 두어 종자가 충분히 물을 흡수하게 한 후, 그중 일부 샤레를 꺼내어 적색광을 1분 동안 비춘 후 다시 원래의 어둔 곳에 두었다. 2일 후 적색광을 쪼인 이들 샤레를 꺼내 보았을 때 거의 모든 종자가 발아해 있었다.

한편 그 동안 계속 어두운 곳에 둔 샤레, 또는 적색광 대신 청색광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근적외선을 몇분간 비춘 샤레에는 발아한 종자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점은 적색광과 근적외선을 번갈아 가면서 조사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종자발아의 결과이다. 다시말하면 적색광을 비춘 종자에 이어 근적외선을 단시간 비춘 후 어두운 곳에 두면 거의 발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적색광 다음에 근적외선을 비추고 또 다시 짧은 시간 적색광을 비춰 어둔 곳에 두면 다시 거의 모든 종자가 발아하게 된다.

이와같이 적색광과 근적외선을 반복하여 비춘 경우 최후에 어떤 빛을 주었는가에 따라서 상추 종자는 휴면을 계속하는지 또는 발아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색광·근적외선의 가역적 반응'은 그후 식물의 발생이나 생장, 분화 등의 여러가지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환경의 빛정보가 식물에 전달되는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이다. 예를 들면 어두운 곳에서 콩 종자를 기르면 소위 '콩나물'로 되는 것(광형태형성), 해바라기의 기공 개폐 운동의 조절, 자귀나무의 소엽편이 낮에 펴지고 밤에 닫히는 '수면운동' 현상, 광주기성에 의해 밤의 길이를 재어서 꽃봉오리를 만드는 것 등이 바로 이 가역반응을 통해 일어난다. 자, 그렇다면 식물에도 동물과 같이 빛을 감지하는 눈이 있을까?

상추 종자 발아 실험에서 '적생광·근적외선 가역반응'을 발견한 미국 농무부 농학연구소 사람들은 곧이어 이 반응에 관여하는 빛수용체 색소 물질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59년 여름 버틀러(W.L. Butler) 등은 특별한 색소-단백질 복합체인 피토크롬을 식물조직에서 추출, 발견했다. 바로 이것이 위 반응에 관여하는 주인공임을 밝혀냈다. 여기서 '피토'는 식물, '크롬'은 색소라는 뜻이다.

피토크롬은 가시광이나 근적외선을 흡수하는 비단백질성인 색소를 단백질 부분에 덧붙여 갖고 있다. 그 색소 부분을 '발색단'이라 부르고 단백질 부분을 '아포 단백질'이라 부른다. 이것의 화학적 구조는 분자량이 약 12만인 아포단백질 1분자에 대해 피롤 4분자가 붙은 발색단이 하나씩 결합되어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들 눈에 존재하는 시각물질인 경우에도 '옵신'이라는 아포단백질에 '레티날'이 발색단으로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가시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식물 조직내서 피토크롬은 적색광을 최대로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인 적생광 흡수형(Pr)과 근적외선을 최대로 흡수할 수 있는 근적외선 흡수형(Pfr) 중의 어느 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식물에 적색광이 비춰지고 만일 Pr형이 존재하고 있다면, Pr형 피토크롬은 적생광을 흡수하여 Pfr형으로 스스로 형태 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이 Pfr형은 근적외선을 흡수하면 Pr형으로 곧바로 바뀌므로 적색광에 이어 근적외선을 주게되면 Pfr을 Pr로 되돌리는 것이 되어 생리적 활성이 다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식물은 잎의 선단에서 뿌리의 선단까지 모든 세포에 피토크롬이 포함되어 있어서 하루 동안, 그리고 1년동안 계속해서 외계의 광조건을 감지한다. 빛을 받지 않는다는 것, 즉 어둠도 식물에 있어서는 중요한 정보로서, 피토크롬은 그것을 식물에 전한다. 그것에 의해 식물은 낮인지 밤인지 그리고 춘하추동의 계절을 알고 외계의 조건에 맞도록 훌륭하게 체내의 기구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적생광(R)과 근적외선(Fr)조사에 의한 상추종자의 가역적인 발아현상. 적색광 조사시는 1분간, 근적외선 조사시는 4분간 비춰준다. 상추종자에 마지막으로 조사된 빛이 적색광이면 종자는 발아하고, 근적외선이면 발아하지 않고 휴면상태로 남는다.
 

199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진창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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