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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위에 펼쳐지는 가짜의 세계

적외선, 자외선으로 위조수표판별

최근 국릭과학수사연구소에 위조된 문서를 감정해달라는 의뢰가 폭주하고 있다. 한달에 접수되는 사건이 6백여건 이상. 하루에 20여건의 문서위조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영수증, 돈, 사진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종이류를 어떻게 위조하고 판별하는지 알아보자.

3월어느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에 한장의 영수증이 전달됐다. 영수증에는 “A씨가 B씨에게 빚 3천5백만원을 전부 돌려받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A씨는 전체 금액의 일부인 ‘5백만원’을 받았다는 영수증에 도장을 찍은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5백만원’이 하루아침에 ‘3천5백만원’으로, ‘일부’가 ‘전부’로 둔갑한 것이었다.

B씨는 영수증을 제시하며 돈을 모두 갚았다고 주장했다. 외관상 이 영수증은 처음 A씨가 도장을 찍었던 영수증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A씨는 경찰에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고, 경찰은 이 영수증의 조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했다.

덧칠 아래의 진실을 밝힌다

연구원들은 영수증을 찬찬히 살펴봤다. 만일 글씨체가 다른 곳이 발견된다면 영수증이 조작된 것임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채무자 B씨가 영수증 글씨를 쓴 다음 A씨가 도장을 찍은 형태였기 때문에 설령 B씨가 글씨의 일부를 바꿨다 해도 영수증 전체의 글씨체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B씨가 새로운 영수증을 만들고 그 위에 A씨의 도장을 위조해 찍은 것은 아닐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영수증은 ‘화상분석시스템’으로 옮겨졌다. 먼저 영수증에 찍힌 도장 문양을 촬영해 TV 모니터에 띄운 뒤 컴퓨터를 조작, 화면에 나타난 도장 글씨에 색상을 입혔다. A씨로부터 받은 진짜 도장 문양에는 다른 색상을 처리했다. 그리고 이 두가지를 화면에서 겹쳐보았다. 만일 영수증의 도장이 위조된 것이라면 모니터 화면에서 도장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었다. 하지만 도장의 모양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다음으로 적외선 검사로 넘어갈 차례였다. 적외선은 어떤 물질에 탄소가 많이 함유돼 있을수록 잘 흡수되는 성질이 있다. 탄소가 많이 포함된 잉크로 글자를 쓰고 그 옆에 탄소가 거의 없는 잉크로 글자를 추가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육안으로는 두가지 글자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적외선을 쪼이면 추가한 글자는 적외선을 거의 투과시키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처음 글자는 적외선을 흡수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드러나 두가지 종류의 글씨가 구별될 수 있다.

영수증을 ‘고정밀비교확대투영기’에 올려놓고 적외선 필터를 설치한 뒤 글씨를 관찰했다. 그러자 육안으로 똑같아 보였던 글자가 달라졌다. ‘3천5백’에서 ‘3천’이란 글씨가 ‘5백’보다 확연하게 흐려진 것이다. 또 ‘전부’(全部)라는 글씨의 ‘전’자가 ‘일’(一)자만을 제외하고 흐려진 것이 드러났다. ‘5백’ 앞에 ‘3천’을 새롭게 써넣고, ‘일’자를 ‘전’자로 고쳐 표기한 것이다. 탄소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새로운 필기구로 글씨를 추가시켰음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결국 영수증 감식 결과는 채무자 B씨가 영수증을 위조한 것으로 판명됐다.

적외선은 아주 작은 덧칠이라도 쉽게 잡아낸다. 1996년 말 회사직원 P씨가 현금수송업체로부터 회사자금 2천여만원을 받은 뒤 나중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금수송업체측은 P씨가 돈을 받기 위해 들어온 시간이 오전 7시 40분이었고 장부에도 그렇게 적혀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장부에 기재된 시간이 11시 40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P씨는 자신이 그 시간에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장부를 눈으로 보면 P씨가 기재한 시간이 분명 11시 40분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11’자의 오른쪽 ‘1’ 중간 부위가 왼쪽 ‘1’에 비해 조금 두껍고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없어진 문자 되살려

문제의 장부가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됐다. 그러자 ‘11’의 오른쪽 ‘1’이 두번 겹쳐져 쓰여진 사실이 드러났다. P씨가 7시 40분에 들어와 장부에 기재한 뒤 나중에 다시 와 ‘7’ 위에 적당히 덧칠해 ‘11’로 바꿔쓴 것이다.

만일 특수한 화학약품으로 글자를 완전히 지운 경우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1천만원권 수표가 5천만원으로 둔갑해 시내에 유통된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당좌수표에서 ‘1천만’이라는 글자를 완전히 없애고 그곳에 ‘5천만’이라는 글자를 대신 써넣은 것이다.
이 경우 기존의 글씨체에 덧칠한 흔적이 없기 때문에 적외선으로는 위조 여부가 감지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자외선 감식이다.

자외선은 물질과 화학적인 반응을 잘 일으키기 때문에 ‘화학선’이라고도 불린다. 자외선이 염료의 색을 바래게 만들거나 피부를 그을리게 하는 것이 바로 높은 화학반응성 때문이다. 화학약품으로 글자를 지운 경우 그곳에는 화학약품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곳에 자외선을 쪼이면 지워진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외선은 컬러복사기나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위조지폐를 감식하는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요즘 들어 복사기와 프린터를 이용해 돈을 위조하는 사건이 부쩍 늘었다. 고액 수표를 주로 위조한 과거와 달리 1만원·5천원권까지 마구 위조하는 분위기다.

사실 대부분의 위조지폐를 식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진짜 돈과 위조 돈은 해상도와 종이 재질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진짜 돈을 복사했을 때 선의 예리함이나 잉크 두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육안으로 자세히 보거나 확대경, 현미경을 통해 살펴보면 위조성 여부가 금새 드러난다. 종이도 정부의 특별 주문에 의해 비밀스럽게 제작되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보면 위조 돈의 두께나 감촉이 진짜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돈의 곳곳에 숨겨진 표식들의 유무를 잘 관찰하면 위조 여부가 쉽게 파악된다.(과학동아 96년 11월호 ‘뜯어봅시다-돈’ 참조)

하지만 컬러복사기와 프린터의 성능이 날로 향상됨에 따라 기존의 방식으로 좀처럼 식별할 수 없는 정밀한 위조지폐가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 유용한 방법이 자외선 감식이다. 지폐의 곳곳에는 자외선을 쪼였을 때 특수한 반응을 나타내도록 화학물질이 처리돼 있다. 이 물질들이 복사나 프린트를 통해 전달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위조 수표 감식^자외선으로 촬영한 위조수표. 육안으로는 '5천만원'으로 보이지만(위) 자외선으로 촬영하면 '1천만원정'이라는 글자가 지워진 사실이 나타난다(아래).


포즈 아무리 달라도 동일인 들통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종이 위에 펼쳐지는 위조성을 가려내는 또하나의 연구실이 있다. 사진의 조작을 밝혀내는 형사사진실이다. 사실 이 연구실의 주요 업무는 좋지 않은 화면상태를 깨끗하게 복원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사진을 위조하는 사례가 발생할 때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형사사진실의 몫이다.

사진을 ‘간단하게’ 조작하는 일은 일반인에게도 간간이 나타난다. 몇년 전 건축물 사진을 조작해 구청에 제출했다가 나중에 들통난 사건을 살펴보자. 새로 건물을 지은 건축주는 2층 발코니를 규정보다 넓게 설치했다. 구청의 시정명령을 받은 건축주는 지적받은 발코니 부위의 사진에 ‘정상적인’ 크기의 발코니를 오려붙이고 이를 구청에 제출했다. 처음 구청에서는 이 사진을 보고 발코니 크기가 시정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건물에 가보니 발코니 크기는 그대로였다.

구청에 제출된 사진이 형사사진실에 전달됐다. 조작 여부는 금새 드러났다. 우선 발코니의 밑면이 뻥 뚫린 채 설치돼 있었다. 또 현미경으로 사진을 관찰하자 벽돌 이음새가 부자유스럽게 엇갈리는 부위가 발견됐다. 어느모로 보나 정상적인 발코니가 아니었다. 엉성한 사진조작이었지만 막상 주의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례였다.

사진 판독은 종종 범인이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한다. 96년 11월 국내에서 가짜 카드를 이용해 2억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사들인 외국인 국제신용카드 전문위조단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중 한 나이지리아인은 영국 여권과 런던대학 학생증을 만들어 카드를 사용할 때 주인에게 제시해 왔다.

경찰은 위조된 신용카드와 영국 여권·학생증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범인을 심문했다. 그러나 그는 범행을 부인하며 영국 여권과 학생증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곳에 붙어있는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여권에 붙은 사진을 포함해 3장의 사진을 비교하면 육안으로는 차이점이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눈을 뜬 크기나 고개를 든 각도가 모두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 범인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결국 형사사진실에 3장의 사진이 전달됐다. 연구원들이 부분 확대와 중첩을 통해 미세한 특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3장 모두에서 오른쪽 귀가 왼쪽보다 눈을 기준으로 위로 올라왔으며, 오른쪽 눈은 쌍커풀이 있지만 왼쪽은 없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또 오른쪽 눈 아래 2개의 점이 있으며, 뺨에 작은 상처가 났고, 왼쪽 눈썹은 짙으나 오른쪽 눈썹은 옅다는 점이 관찰됐다. 결국 3장 모두가 동일인의 사진임이 판명됐고, 나이지리아인은 범행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조작의 사례^2층 발코니를 찍은 사진(왼쪽)에서 왼쪽 동그라미 부위를 현미경으로 촬영하면(오른쪽) 벽돌의 이음새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촬영한 발코니 사진을 합성시킨 것이다. 발코니 밑면이 텅 비어있는 것도 조작의 증거다.


컴퓨터 기법 활용이 난제

최근에는 컴퓨터에서 화면을 처리하는 기법이 늘어나면서 짧은 시간에 매우 정교한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여러장의 사진을 스캐너를 이용해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이들을 합성시키거나 모양·색상을 다양하게 조작하는 방식이다. 특히 화면에서 각 픽셀(이미지를 구성하는 그림의 요소로 수천개에서 수백만개의 작은 사각형으로 이뤄짐)을 다른 밝기와 색깔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최대 1천6백만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컴퓨터 합성 사진을 이용한 범죄 사건이 거의 발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남아있다. 문서위조 역시 어떤 범죄자에 의해 획기적으로 새로운 방법이 등장해 언제 사회를 혼란시킬지 모를 일이다. 날로 지능화되는 범죄를 막기 위해 첨단의 과학기술 장비와 고도의 추리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역사 이래 끊이지 않는 위폐사건

고대부터 현재까지 위조화폐를 없애기 위해 갖가지 노력이 진행돼 왔다. 영국의 헨리1세는 1125년 위폐가 범람하자 조폐국 관리 1백여명의 손목을 자른 끔찍한 일도 감행했다. 중세 중국에서는 위폐를 없애기 위해 전국에서 솜씨있는 위폐범을 불러들여 주전소의 관리로 채용하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위조 사건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위조화폐범은 기원전 5백40년 경 그리스의 지배를 받던 사모스도에 살던 포리크라테스라는 인물이다. 위조금화를 만들어 스파르타인을 속인 것이 들통나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일명 ‘베른하르트 작전’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위폐사건이다. 2차대전이 진행되던 중 독일의 베른하르트 크리그 소령은 한 포로수용소에서 1백40명의 유태인 죄수를 시켜 9백여만장의 영국지폐를 만들었다. 현재 금액으로 2천억원 정도의 규모였다. 목적은 위폐를 유통시켜 영국의 경제를 파괴시키는 것. 무척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처음 돈이 나돌았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가 1945년 독일이 항복한 뒤 트럭에 실린 가짜 돈뭉치가 발견되고서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사진연출의 시작

1857년 스웨덴 사진작가 오스카 레일랜더가 촬영한 ‘인생의 갈림길’이 최초의 합성사진으로 꼽히고 있다. 한 현인이 두명의 청년에게 인간 본성의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설명하는 장면을 연출한 사진이다. 즉 종교나 자비와 같은 미덕과 도박과 술 같은 쾌락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이다.

이 내용을 한장의 사진에 담으려면 많은 사람과 거대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유랑극단 단원들과 무대장치를 각각 30장에 걸쳐 찍은 후 한장으로 만들었다. 각 장면을 담은 인화지를 그림맞추기 게임처럼 이어붙여 한장의 인화지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를 완성하는게 걸린 시간은 6주.

당대 많은 사람들은 이 사진이 너무나 정밀하게 완성돼 마치 위대한 미술작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레일랜더는 사진의 역할이 미술계에 적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레일랜더 작 '인생의 갈림길'의 일부 장면.
 

199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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