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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중에는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종류가 있다. 대부분 환각버섯 속에 속하는 이 독버섯들은 먹으면 환각과 환청을 일으켜 대다수 국가에서 마약류로 분류된다. 그런데 최근 이 버섯들이 새로운 정신 질환 치료제로 의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과연 환각버섯은 우리의 정신을 구할 수 있을까.
난치성 우울증에 효과 높은
환각버섯 추출물
“사이키델릭(psychedelic)은 그리스어 ‘마음(psyche)’과 ‘드러나다(deloun)’를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마음을 드러나게 해주는 약물’이라는 뜻이죠.”
6월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전덕인 한림대 의대 교수는 ‘환각성 약물’로 통하는 사이키델릭 약물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 교수는 2023년 대한정신약물학회 산하 한국사이키델릭연구회를 결성해 현재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마약류 물질 중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각성작용을 일으키는 암페타민이나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졸피뎀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성분은 환각버섯 류에 들어있는 ‘실로시빈(Psilocybin・사일로사이빈으로 읽기도 함)’이다. 실로시빈은 몸속에서 ‘실로신(psilocin)’이라는 물질로 대사되는데, 이 물질이 흡수되며 특유의 사이키델릭 작용이 시작된다.
우선 주변 상황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을 더 느리거나 빠르게 느낀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는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실로시빈을 복용한 후로 우울증이 개선되는 효과가 관찰됐다.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정신 질환은 치료저항성 우울증입니다. 차도가 없는 우울증에 실로시빈이 효과가 있었죠.”
6월 5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만난 최원석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로시빈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내원하는 우울증 환자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는 두 가지 이상의 항우울제를 복용해도 치료 효과가 없는 이들에게 실로시빈이 효과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실로시빈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처음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우울증과 실로시빈의 관계를 다루는 수많은 연구가 쌓여왔다. 최근에는 찰스 레이슨 미국 위스콘신대 우소나연구소 임상 및 중개의학 연구 책임자가 이끈 연구팀이 104명의 우울증 환자를 상대로 6주간 5차례씩 25mg의 실로시빈을 투약했다. 그 결과 투약군은 위약군에 비해 약 3배가량의 높은 우울 증상 완화 효과를 보였다. doi:10.1001/jama.2023.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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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실로시빈 효과
실로시빈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LSD나 메스칼린 같은 다른 사이키델릭 약물을 정신 질환 치료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도 나왔다. 대표적인 질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PTSD는 전쟁, 자연재해, 사고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에 당시의 경험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질환으로, 사이키델릭 약물 ‘MDMA(엑스터시)’가 PTSD에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다. 전 교수는 “이외에도 알코올 중독 같은 물질 중독, 거식증, 강박 장애(OCD) 등 다양한 정신 질환에 사이키델릭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어떻게 약효를 내는 걸까. 전 교수는 “사이키델릭 약물의 중요한 작용 중 하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회복시키는 것”이라 설명했다. 신경가소성은 뇌의 신경 세포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거나 기존의 연결을 끊어서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드는 능력이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은 부정적이고 고정된 사고를 계속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사이키델릭 약물은 신경가소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저희는 ‘경직된 뇌를 풀어준다’고 표현합니다. 굳어있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거죠.” 최 교수의 비유처럼, 사이키델릭 약물을 복용하면 이전에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뇌 부위의 연결이 증가한다. 평소의 감정과 지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느낄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다.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날까. 실로시빈에서 LSD에 이르는 사이키델릭 약물의 성분은 육각형에 오각형이 붙은 특징적인 형태의 탄소 고리를 가지고 있다. 뇌에는 이것과 닮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바로 세로토닌이다.
“이 약물들은 세로토닌과 화학적 구조가 비슷해서, 5-HT2A 같은 뇌 속 세로토닌 수용체에 붙어 효과를 일으킵니다.” 전 교수는 그 결과 다른 마약류 의약품과는 다른 사이키델릭 약물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텱efault Mode Network)’ 영역의 억제다. DMN은 특정한 작업을 하지 않고 휴식 중일 때, 즉 ‘멍을 때릴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다. 공상을 하거나 자기 자신에 관해 생각할 때 DMN이 작동한다. 그래서 DMN은 ‘자아’를 만드는 뇌의 활동이라고도 알려졌다.
그런데 실로시빈과 같은 약물이 DMN의 활동을 가라앉히면, 평소 DMN에 의해 억제됐던 다른 뇌 부위가 활성을 일으키며 서로의 연결성이 증가한다. 환각을 보거나 환청이 들리는 것도 이때다. 자아를 잠시 내려놓음으로써 함께 강박을 내려놓고, 자신이 겪고 있는 정신 질환을 새롭게 인지할 계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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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약물
연구에 불이 붙다
“최근 사이키델릭 약물은 정신의학계 최대의 화두 중 하나입니다. 학계에서는 사이키델릭 약물의 ‘르네상스’라 부르고 있죠.”
전 교수는 사이키델릭 약물 연구가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에서 열리는 정신의학 관련 학회에는 사이키델릭 약물 세션이 적어도 하나는 있을 정도”라고.
일각에서는 사이키델릭 약물이 ‘제2의 물결’을 맞이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붐이 1950~1960년대에 이미 북미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사이키델릭 약물은 미국의 대중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환각 등으로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나고 건강에도 나쁘다는 연구들이 연이어 발표되며 역풍을 맞았다.
그렇게 금지되고 잊혀졌던 약물이 연구자를 중심으로 2000년대 들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존의 정신의학 약물들의 한계가 드러나면서부터다. 최 교수는 “현재 널리 쓰이는 2~3세대 항우울제는 개발된 지 30~40년이 지났다”며, “혁신적인 작용 기전의 항우울제는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이키델릭 약물의 부작용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므로, 도파민 분비를 통해 중독성을 일으키는 오피오이드 진통제보다 중독성이 낮다는 것이다. 사이키델릭 약물의 독성이 강하다는 이전 연구들도 재검토되고 있다.
정신의학계에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새로운 사이키델릭 약물을 ‘미개척지’로 보지만, 사이키델릭 약물이 진정 약으로 쓰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기초 연구다. 마약으로 분류되는 오피오이드 진통제가 이미 임상에서 쓰이고 있고, 대마의 화학 성분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편이라면, 향정신성의약품의 사이키델릭 약물은 이제 막 연구에 불이 붙은 단계다.
최 교수는 “기초적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다”며 “예를 들어 5-HT2A를 제외한 다른 세로토닌 수용체에는 약물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키델릭 약물마다 효능과 작용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성분을 어떤 질환에 쓸지도 고민해야 한다.
약물을 제대로 복용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그 특성상 환각과 환청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주변 환경에 따라 약물 복용이 부정적 경험이 되거나, 환각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날 우려도 따른다. “약물 사용자의 마음가짐(Set)에 따라, 그리고 약물을 사용하는 주변 환경(Setting)에 따라 약효가 천차만별로 변합니다. 이를 ‘셋 앤 세팅(Set and Setting)’이라 부르는데, 적절한 조건을 갖춘 제어된 환경에서 복용을 실시해야 합니다.” 최 교수의 설명이다.
더 좋은 방향은 사이키델릭 약물의 복용량을 줄여 환각이나 환청 같은 부작용은 피하고 치료적 효과만 취하는 것이다. 이를 ‘마이크로도징(microdosing)’이라 부른다. 마이크로도징 연구가 진행되면 환각성 약물에 관한 고정관념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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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엑스퍼트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뉴로이미징 센터 교수가 이끈 공동 연구팀은 2014년, 실로시빈을 복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 활성을 측정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로열 소사이어티 인터페이스 저널’에 발표했다. doi: 10.1098/rsif.2014.0873 연구팀은 뇌의 각 부위를 이어주는 네트워크를 작은 원으로 표시하고, 이 네트워크끼리 어떻게 이어지는 지를 뇌자도 기술로 측정했다. 그 결과, 실로시빈을 복용한 후에는 이전에 연결이 약했던 부위들 사이에 강한 연결이 새로 생성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이트웨이 드러그’
위험성도 경계해야
2023년 7월, 호주 식품의약품안전처(TGA)는 세계 최초로 실로시빈과 MDMA를 의약품으로 승인했다. 2024년 2월에는 투자 정보 기업 피치북이 ‘사이키델릭 약물을 연구하는 스타트업들이 1월에만 최소 1억 6300만 달러(약 2246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도, 산업계에서도 사이키델릭 약물에 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관심이 현실로 이어지기까진 긴 시간이 걸릴 걸로 예상된다. 당장 6월 4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PTSD 치료에 MDMA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연구가 활발하고 일찍이 사이키델릭 약물을 접한 문화적 맥락이 있는 미국에서도 실로시빈은 아직 법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힘든 테두리에 묶여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사이키델릭 약물은 마약이라는 인식 외에 아무 것도 갖춰져 있지 않다. 전 교수는 약품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명칭에서 떠오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실로시빈과 MDMA 같은 물질들이 ‘환각제’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불리는데, 사실 적절한 명칭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치료적 효과를 필요로 하는 거지, 환각이나 환청은 쓸 일이 없거든요.” 전 교수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험을 하려고 해도 물질 사용 허가가 나지 않는다. 전 교수는 “동물 실험은 가능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신의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사이키델릭 약물에 관한 의견이 갈린다. 환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연구자가 있는 반면, 중독이나 ‘게이트웨이 드러그’가 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연구자도 있다. 전 교수는 “올해 200명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사이키델릭 약물에 관한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며, “이 조사를 토대로 추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소개했다.
인터뷰 말미, 최 교수에게 사이키델릭 약물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물어봤다. 단정한 정장 복장의 그와 사이키델릭 약물의 이미지는 100만 광년은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진료를 하다보면 약을 2~3개씩 써도 차도가 없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사이키델릭 약물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자료를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이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사이키델릭 약물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고 연구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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