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에서 호르몬은 세포와 세포사이, 기관과 기관 사이에 정보를 전달해줌으로써 생명활동을 유지시키는 화학적 메신저이다. 그래서 호르몬을 이해하면 생명현상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생명체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들로 구성된 극히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위, 즉 음식물의 획득, 섭취와 소화, 외부 적들과의 투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체의 적응과 종의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내부기관들은 빠른 협동을 필요로 한다.
고도로 진화가 된 생명체일수록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중요해진다. 척추동물 포유류 영장류 그리고 인류에 이르면 그 미묘함은 극에 이른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의 기본을 유전자로 보고, 생명현상을 연장확대된 유전자의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유전자들은 각기 해당되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이 단백질들은 스튜어트 카우프만에 따르면 극히 복잡한 자촉매세트(autocatalytic set)를 형성하여 세포를 만들어내고, 다시 이 세포들이 기본이 되는 한차원 높은 개체라는 거대한 자촉매세트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의 표현형인 생명체
인체는 7.5×${10}^{23}$의 다양한 세포로 구성돼 있는 하나의 복잡한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들 세포들은 서로 모여서 기관을 형성하고, 이 기관들은 다시 개체 전부의 주요 부분이 된다. 이 기관들은 개체의 이익을 위하여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각 세포들은 기관의 일부로서, 각 기관들은 개체의 일부로서 맡은 바 일을 조화롭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세포와 세포 사이, 기관과 기관사이에 정보전달이 항상 이루어지고 있어야 하는데, 생명체들은 화학적 메신저를 세포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이러한 정보전달을 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호르몬은 이러한 정보전달을 맡는 화학물질을 총칭하는 단어다. 본래 호르몬은 '자극하는'이란 의미의 그리스어다.
가령 남성을 남성스럽게 하고 여성을 여성스럽게 해주는 성호르몬, 혈중 당도를 조절해 주는 동화호르몬인 인슐린이 인체에서 작용하는 호르몬 중 유명한 것이라면, 곤충의 경우도 의사소통 매체인 페로몬이 있고 식물에서 작용하는 호르몬도 따로 있다. 특히 식물의 지베렐린과 에틸렌과 같은 호르몬은 매우 작은 분자지만 생체기능을 조절해 나가고 있다.
모든 호르몬은 생체기능을 조절해주는 신호전달물질이다. 그래서 이 호르몬의 신호를 받아들일 목표세포가 있어야 하고 그 세포표면에는 호르몬을 분자단위로 인식하는 호르몬 수용체가 있어야 한다.
세포 기본단위 정보전달
●신경계 : 분자생물학적인 입장을 떠나 구조적인 측면(해부학)에서 개체를 보면, 뇌를 중심으로 한 중추신경계가 모든 조절의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뇌신경과 척추를 거쳐, 하부구조인 각종 운동신경과 지각신경, 교감 및 부교감의 자율신경이 전기적 신호에 따라 연결돼 있다.
주컴퓨터와 보조컴퓨터, 그리고 수많은 전화선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상상하면 이러한 신경계의 조절을 이해할 수 있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신경계와 근육계의 접촉 부위에서의 정보전달은 화학적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매개체는 신경과학을 연구해오던 학자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 불려왔다.
●신경내분비계 : 우리 몸의 모든 장기는 궁극적으로 중추신경계의 조절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말초신경을 통한 조절이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것이라면 더 간접적이고 입체적인 것도 있다.
개체의 내부 모든 기관과 세포들에게 어떤 일정한 일을 중추신경계가 지령하려 하면, 그 정보전달은 전화선 같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방송이나 신문같은 대중매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인체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시상하부-뇌하수체로 이어지는 신경-내분비변환기다.
인체 내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신호는 궁극적으로 뇌의 각 센터에서 정보분석이 이루어지고 필요에 따라 뇌의 일부분인 시상하부(시상하부를 구성하는 각 센터)에 정보가 전달된다. 이곳에서는 호르몬을 생산하여 특수한 혈관계를 통해 뇌하수체에 특정한 정보를 전달한다.
특수하게 발달된 내분비기관인 뇌하수체, 또는 뇌하수체를 이루고 있는 특수한 세포들은 이 지령을 받아 다시 제2차 전령이 되는 각종 뇌하수체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으로 내보낸다. 이 호르몬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있는, 이 호르몬에 반응할 수 있는 특이수용체를 가지는 세포에 특정정보를 전달한다.
●내분비계 : 혈액을 통한 정보전달은 속도는 느리지만 전체를 통합하는 능력에서는 우월하다. 호르몬은 이러한 정보전달을 위하여 생명체가 발달시킨 화학물질을 말한다. 호르몬 분비를 주목적으로 발달된 기관을 내분비기관이라 부른다.
17세기에 월리엄 하베이가 혈액순환을 발견한 뒤 2백50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혈액이 산소와 탄산가스를 수송하고 영양소를 운반하며, 외부 침입자를 잡는 경찰역할을 하는 백혈구들이 다니는 통로일 뿐 아니라 몸의 각종 기관과 세포들이 상호 의사소통을 하는, 수많은 호르몬들이 떠다니는 매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0년대에 어느 학자가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을 세어 보았더니 1백종이 넘는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그 수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정보전달물질들이 필요한 이유는 각 기관들이나 세포들끼리 수평적으로 조절하는 일이 극히 많고, 인체는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데, 이 '연계'를 호르몬이 맡기 때문이다.
각 기관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혈액을 통해 나름대로 모두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은 내분비적 특성의 세포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관은 내분비기관이라 할 수 있다.
기관이든 세포든 어떤 호르몬에 대한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야 그 호르몬의 신호를 전달받을 수 있다. 수용체의 존재여부가 그곳에서의 호르몬 작용을 결정하는데, 세포에 따라 수용체와 수용체 결합 이후의 작용 메커니즘이 다를 수 있다.
인슐린은 식사 후 혈액내에 존재하는 높은 포도당의 양을 적당히 낮추도록 조절해주고 글루카곤은 공복시 간세포 등에 축적해 놓은 글리코겐을 가수분해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혈당을 높여준다. 혈액 속 포도당을 같은 농도로 유지함으로써 각 생체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생합성 원료를 균형있게 공급하도록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이 호르몬이 제 기능을 발위하지 못하면 혈당 조절능력을 잃어 당뇨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갖게 된다. 인체의 많은 호르몬들은 혈액을 통해 생체의 목표지점에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러한 내분비호르몬은 주로 펩타이드(peptide)로 구성돼 있다. 물론 이러한 생체기능을 조절해주는 물질은 펩타이드뿐 아니라 콜레스테롤과 같은 저분자 물질도 있다.
그래서 이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생명현상 모두를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게 된다. 사실 최근 생명현상의 이해는 이러한 상호정보전달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크게 발달하고 있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조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사회에 흐르는 정보를 이해하는 것이 첩경임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혈액량 조절에서 본 통합 조절 메커니즘
우리 몸 각 기관의 수평적 상호조절의 예를 하나 더 든다면, 체액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시상하부-뇌하수체후엽-부신-간-신장-심장-자율신경계로 이어지는 극히 복잡다기한 체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체 내부환경을 구성하는 체액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일, 즉 항상성 유지는 생명 유지에 극히 중요하다. 이를 호르몬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 수준에서 설명 해보자.
가령 출혈을 일으켜 혈압이 떨어지면(체액이 모자라면) 자율신경계는 활성화되어 신경전달물질인 노르 에피네프린을 매개로 하여 말초혈관을 수축시킨다. 뇌에서는 혈압저하를 인식하고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체위를 낮추는 동시에 시상 하부에 있는 갈증을 느끼게 하는 중추가 활성화된다. 이 센터와 연계된 센터에서 항이뇨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져 뇌하수체 후엽을 통해 분비되면 이 신호를 받아 신장은 수분 배설을 억제한다.
또 부신수질 호르몬인 에피네프린(노르 에피네프린과 극히 유사하다. 부신 수질은 특별히 발달된 신경말단이어서, 신경내분비 기관이라 부르는 것이 낫다)의 분비는 촉진되어, 이 결과 심장은 그 지령을 받아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심장에서 나올 수 있는 심방이뇨호르몬(atrial naturetic factor)은 분비를 그치게 된다.
한편 신장에서는 레닌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어 간에서 만들어진 안지오텐시노젠이라는 단백질에 작용하여 안지오텐신이라는 호르몬을 생성시키고, 이것을 부신피질에 지령하여 알도스테론이란 호르몬을 생성시킨다. 이는 신장으로 되돌아가서 나트륨 재흡수를 촉진시키도록 지령하는데, 이 결과 혈액 소실은 부분적으로 만회된다.
이러한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몸의 다른 장기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근육의 에너지 소비는 줄고, 위장 운동이나 생식기관 기능은 억제되고, 간의 포도당 생성은 증가하며 호흡은 빨라지고 조혈장기의 혈액생성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들의 통합된 반응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다.
체내 각종 기관들의 상호조절이 뇌와 시상하부-뇌하수체를 지휘자로 하는 오케스트라라고 한다면 각 기관 내부에서 관찰되는 자율적 조절은 지휘자 없는 현악 중주단과 유사하다. 이때도 화학적 메신저를 매개로 하여 기능이 통합된다.
이때 이 메신저를 방분비호르몬(paracrine hormone)이라 부르는데, 혹자들은 사이버닌(cybernin)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관 내부 기능통합과 세포의 자율 조절
가령 인슐린이 나오는(내분비) 췌장의 랑게르한스 섬은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들, 글루카곤을 만드는 알파세포들, 소마토스타틴을 만드는 델타세포들, 그리고 판크레아틱 폴리펩티드를 만드는 PP세포들이 옹기종기 모인 사중주단과 같은 사회다. 소마토스타틴은 인슐린과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고, 글루카곤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등 서로 자극과 견제를 하고 있다. 이 사회는 또 자율신경계의 지휘 아래 있다. 기타 더 복잡한 조절기구, 가령 성장촉진인자들의 역할도 있으리라 짐작되고 있다.
췌장에서 혈관에 분비된 인슐린은 목표세포의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하여 구조적인 조정을 하고 세포내부로 들어간다. 그후 인슐린은 혈액 안에 있는 포도당을 세포내로 유입시키도록 신호를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도당을 축합하여 글리코겐과 같은 형태로 포도당의 비축과정을 촉진하게 한다.
현재 인슐린이 세포내에 유입되어 혈당조절을 하는 작용기전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여기서 인체 췌장에서 제조되는 인슐린의 입체구조에 결함이 있거나 인슐린의 양이 적게 만들어지면 제1형의 당뇨병환자로서 계속적인 인슐린의 투여를 받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슐린의 혈당조절신호의 전달과정과 세포 내의 혈당강하작용에 문제가 생기면 제2형의 당뇨병 환자가 된다. 이 경우 인슐린은 직접적인 혈당 조절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한편 세포 하나하나는 자신이 내놓은 정보전달물질에 의해 스스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를 자분비(autocrine)라 부른다. 바로 이런 물질들을 자분비 호르몬(autocrine hormon) 또는 오타코이드(autacoid)라 부른다.
아라키돈산 대사물질, 가령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나 류코트리엔(leukotriene) 그리고 많은 성장촉진인자들, 가령 표피성장인자, 인슐린 양성장인자-I(insulin like growth factor-1, IGF-I)내지 IGF-II등은 국소에 주로 작용하는 생리활성 물질들로, 흔히 방분비 내지 자분비 호르몬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물질을 호르몬이라 부르건 사이버닌이나 정보전달물질, 생체활성물질이라 부르건, 이 물질이 세포표면에 있는 그 물질의 특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어떤 특정한 반응을 일으킨다.
앞에서 필자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신경-내분비계의 역할이 생체기능의 통합을 위한 세포-기관 상호간의 정보전달에 있음을 설명했다. 호르몬은 그 메신저로서, 화학물질이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 각국의 호르몬 연구는 생명현상 이해라는 과학적 목표도 강하지만, 호르몬을 이해하고 호르몬(광범위한 의미)의 수용체와 수용체 결합 이후의 세포내 정보전달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각종 질병의 퇴치와 생명공학에 이용하려는 의학-산업적 측면도 강하다.
인슐린, 스테로이드 호르몬, 프로스타글란딘, 성선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 신경성장인자 등의 신물질을 발견한 이들에게 항상 노벨생리-의학상이 주어져 왔음을 보면 그 과학적 중요성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암 퇴치 또한 호르몬의 세포내 신호전달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한편 단백질이 대부분인 이러한 호르몬들을 유전공학적 기술로 쉽게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학자나 산업가들 사이에서는 남보다 먼저 어떤 특정 장기에 특정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호르몬을 찾아내고 이를 산업화하려는 경향이 촉진되고 있다.
19세기 말, 민코우스키가 췌장을 제거하면 당뇨병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낸데서 시작된 생리활성물질 추적 게임은 1920년대 밴팅과 베스트, 막클레오드, 콜립의 협력에 의한 인슐린 발견과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실은 이 발견이 지금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미국의 릴리사를 창립시키고, 유럽에서는 세계적 화학회사로 자라난 노보-노르 디스크사의 기초가 됐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부터 진행된 라이크스타인 그룹과 켄달 그룹의 스테로이드 호르몬 발견, 그리고 그 후의 생합성은 셰링 등 대제약산업의 근간이 되었다. 신장의 에리스로포이에친이라는 조혈촉진 호르몬을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미국 제넨테크사, 인슐린을 유전공학적 산업으로 이끌고 있는 릴리사, 성장호르몬의 산업화 이야기 등은 호르몬이 산업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호르몬은 체내에 투여하면 특정한 수용체를 가진 세포에만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특정수용체를 가진 세포는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하여 그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 호르몬이 모자라서 키가 자라지 않거나, 수용체가 말을 안 들어서 암이 자라면 호르몬을 특수하게 제조하여 조정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꽃, 호르몬
호르몬 연구는 처음부터 분자 수준에서 진행돼 왔으며, 최근 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내분비학이 분자생물학과 통합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각 기관, 각 세포간의 정보전달 메커니즘을 이해하던 것에서 호르몬이 세포내부의 정보전달, 호르몬의 핵내 수용체 내지 유전자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연장 확대되어 소위 분자내분비학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연구와 여느 분자생물학의 기본 모습은 거의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르몬이라 부르건 다른 이름으로 불리건, 이러한 생체활성물질 연구가 수용체를 경유하여 세포내로 들어가, 궁극적으로 각 유전자, 세포내의 각 효소나 단백질, 세포내의 조그마한 소기관, 그리고 이들간의 세포내 신호전달을 이해하는 기본적 뼈대를 제공했다. 또 개체 전체의 기능통합을 알게 하는 열쇠가 됨으로써 게놈의 이해와 함께 21세기 생명과학의 핵이 되고 있다.
호르몬 연구는 무궁무진한 산업화 가능성 때문에 생명공학으로 황금을 노리는 현대 연금술사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이토킨이라 불리는 면역-조혈계를 조절하는 인터페론이나 인터루킨의 여러 종양괴사인자, 백혈구 집락자극인자(granulocyte colovy stimulation factor, G-CSF)는 벌써 임상의학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많은 벤처회사를 돈방석에 앉히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호르몬, 가령 붙지 않는 뼈를 붙이는 뼈 형성인자(bone morphgenic protein, 신장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로 뼈의 재생을 촉진하는 물질로 최근 확인되었다), 그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세포인 베타세포 재생인자(beta cell regenerating factor)를 개발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백만장자가 될 것이다. 또 노벨상을 받을 확률도 대단히 높다.
인체의 페로몬을 향수로 이용?
미국에서는 인간의 페로몬을 함유시켰다는 향수 '렐름'(REALM, 왕국)이 발매돼 화제다. 사람에게도 페로몬이 있다는 설과 상업주의가 결합된 이 향수는 어디까지 효능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원리는?
인간의 페로몬이 함유됐다는 향수 '렐름'은 뉴욕 에록스사에서 발매한 것으로 남성용과 여성용이 따로 있다.
본래 페로몬은 곤충의 성행동이나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생리활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페로몬에 의해 수km나 떨어져 있던 암컷과 수컷이 서로를 찾아낼 수 있으며, 개미가 집단행동을 유지하거나 유충의 부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즉 페로몬은 곤충 등 하등동물의 개체들끼리의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넓은 의미에서의 화학정보전달물질이라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사람'의 페로몬이다. 페로몬이 든 향수를 몸에 뿌리면 마치 거미줄에 걸려들 듯 이성이 다가와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에록스사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의 페로몬은 곤충의 페로몬과는 다르다고 한다.
렐름의 페로몬에 의해 성적인 욕구가 촉발되거나 하는 일은 없으며 쾌적함이나 안정감, 행복감, 자신감 등 긍정적인 기분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더욱 매력적으로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러나 곤충 등 하등동물의 화학정보전달수단인 페로몬이 인간에게도 있다는 생각은 과연 과학적일까. 에록스사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의 페로몬을 발견한 것은 전유타주립대의 해부학교수였던 데이비드 발리나 박사라 한다.
1950년대, 해부학연구실에서 인간의 피부세포의 성분을 연구하고 있던 박사는 어느날 신기한 현상에 착목했다. 피부추출물을 넣은 시험관 뚜껑을 무심히 열어 놓았는데, 이전에는 혐오스러웠던 연구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온화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시험삼아 추출물을 다른 화합물로 바꾸어보자 연구실은 다시 이전의 신경질적인 장소로 돌아갔다. 이 추출물에서 분리 합성된 것이 페로몬이라는 것이다.
이를 페로몬이라 해도 좋은 것일까. 또 인간에게 있어 페로몬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포유류의 화학정보전달은 과거 페로몬이 아니라 '냄새'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 그래서 지금도 '냄새의 페로몬과 같은 작용'과 페로몬이 혼동돼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 '냄새의 페로몬적 작용'이란 개가 자신의 분비물 냄새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수컷 사향노루가 암컷을 유인할 때 쓰이는 것. 긴 시간 포유동물에 있어 페로몬과 같은 화학정보전달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휘발성 냄새물질이라 여겨졌다.
최근에는 포유류에서도 페로몬이라 부를만한 물질의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 이들은 냄새와는 아주 다른 것으로 제6감이라 부를 만한 것이라 한다. 가령 암컷 햄스터가 분비하는 아프로디진이라는 물질은 단백질의 일종으로, 냄새는 거의 없다. 그러나 수컷이 이 물질을 조금만 코에 댄 것만으로 급격히 발정하고 교미의 준비를 시작한다. 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아프로디진은 보통 냄새와 같이 후각센서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콧속의 한 기관 수용체에서 포착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포유류라도 하등동물에서는 페로몬을 감지하는 기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는 포유류에게도 페로몬이 존재한다는 것을 추측케하는 것이기는 했으나 오랜 기간 포유류에서는 특정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특히 인간에게서 이 기관은 아주 작고 퇴화된 기관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에 록스사의 연구자들은 인간의 페로몬이 이 기관에 작용, 시상하부에 직접 연결되는 경로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주장이 상업주의에 의한 것인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대표적 생체 호르몬4
흔히 말해지는 호르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 호르몬의 면면.
① 남성·여성 특징짓는 성(性)호르몬
생식활동을 유지시킨다는 점은 호르몬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우리가 '호르몬'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성호르몬'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선(남자는 고환, 여자는 난소)에서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분비함으로써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유지된다는 생각은 생식기능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너무 단순한 논리다. 고환과 난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선자극호르몬이 고환과 난소를 적당히 자극해주어야 한다.
이 성선자극호르몬은 분비량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 뇌하수체 상부에 있는 뇌조직의 일부인 시상하부의 분비물질에 의해 분비가 조절되는 것이다.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이 호르몬을 성선자극호르몬분비촉진호르몬이라고 한다.
사춘기 때 2차성징이 완성되려면 시상하부의 중추신경이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그래야 뇌하수체와 성선 등의 성숙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중추신경계 질환이 있거나 뇌손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으면 2차성징이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기능장애로 불임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뇌에서 분비된 물질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난소나 고환을 어떻게 자극할까. 성선자극호르몬은 일단 피 속으로 흘러들어가서 혈액순환을 하게 된다. 몸 안을 순환하던 물질이 성선에 도달하게 되면 뇌하수체 분비물과 특이하게 결합하는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러면 성선이 자극된다.
고환에서 생성되는 남성호르몬은 신체를 남성답게 만들어준다. 강건한 근육, 수염, 생식기의 발육과 같은 외형적인 남성다움 뿐 아니라 정신적인 남성다움까지도 이끌어준다. 남성호르몬은 중추신경계에 있는 남성호르몬 수용체와 결합, 정신적 남성을 만들어준다.
여성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된 다음 신체의 전체를 고루 여성답게 발달시켜준다. 생식에 필요한 기관을 발육시키고 생식에 적절하도록 유지시켜준다. 월경주기에 따른 배란과 수정 및 착상과정, 태아로 성숙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호르몬들이 동적인 연결을 갖기 때문에 아직 이해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② 인체내 동화작용 촉진, 인슐린
1889년 폰메링과 민코브스키는 실험동물의 췌장을 절제하면 그 동물이 당뇨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1923년, 밴팅과 맥클레오드는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의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가 인슐린의 발견과 더불어 생겨났고, 인슐린은 곧 산업화되었다.
몸안에서 인슐린이 하는 주요작용은 섭취한 영양소를 몸에 저장시키고 나아가 몸을 비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화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이 모자라면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이 섭취한 음식물을 잘 저장하지 못하고 근육과 지방조직이 소실돼 간다.
인슐린은 여느 단백호르몬과 같이 표적이 되는 간 근육 지방조직 등의 세포막에 있는 특수한 수용체의 결합, 세포내에서 복잡한 2차효과를 유발한다. 가령 간에서는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촉진한다. 또 포도당이나 아미노산이 근육세포로 이동하게 하고 지방조직에서는 리파제를 활성화시켜 지방 생성이 늘어나게 한다.
인슐린은 췌장 내에서도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되는데, 음식을 섭취, 영양분이 몸에 들어오면 분비된다. 소화흡수된 영양소, 즉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 등이 다시 처리될 때도 인슐린이 췌장에서 분비된다.
여느 호르몬이 그러하듯 인슐린도 과다하게 분비되는 경우 극약에 속한다. 이 호르몬의 과량분비는 혼수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여러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③ 동물상호 의사 수단, 페로몬
페로몬은 같은 종(鍾) 동물의 개체 사이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되는 체외분비성 물질을 말한다.
인체에서의 호르몬이 도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혈액 속을 돌아다니며 체내에서 작용을 하는데 비해 곤충의 페로몬은 몸밖으로 발산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곤충의 세계에서는 개체와 개체가 유기적인 연계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개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사이의 의사소통수단인 페로몬은 인체의 호르몬과 비슷한 점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보면 소설의 주인공격인 개미들은 모든 의사소통을 페로몬으로 함을 알 수 있다. 사소한 의사전달에서부터 사회행동의 조절, 알의 부화까지, 이들의 사회에서 페로몬은 인간세계에서의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매체다.
페로몬은 우선 곤충의 성행동, 즉 암컷이 수컷을 유인해 교미를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유인물질이다. 흰개미의 여왕이 분비하는 여왕물질은 다른 미성숙 암컷의 난소발육을 억제한다.
꿀벌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왕을 핥은 일벌로부터 입을 통하여 여왕물질이 무리 전체로 전달되어 여왕의 존재가 인식된다. 여왕이 죽으면 여왕물질이 없어지고 무리는 새로운 여왕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유충이 없으면 일벌의 난소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④ 식물의 일생 조절 구실, 식물호르몬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으로부터 싹이 돋아나 생장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 번식하는 생활사를 되풀이한다. 그런데 같은 종의 식물이라도 생육환경에 따라 발아의 시기, 개화 및 결실의 시기가 다르다.
이러한 식물의 생장과 발달 및 노쇠에 이르는 생활사를 조절하는 물질중 하나가 식물호르몬이다. 식물호르몬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9세기말 독일의 식물학자 줄리우스 폰세크스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식물은 기관형성에 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데, 어떤 물질은 줄기의 생장을 유발하며 어떤 물질은 잎 뿌리 꽃 과실의 생장을 유발한다고 가정했다.
20세기 들어와 식물생장 조절물질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식물의 특정조직세포에서 극히 적은 양의 식물호르몬이 만들어짐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 식물호르몬으로는 식물의 굴광성을 관장하는 옥신, 벼곰팡이에서 추출되는 지베렐린, 세포분열을 유도시는 시토키닌 등이 있다. 이들은 식물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반면 식물의 동면과 관련한 아브시산, 수평생장을 일으키는 에틸렌 등은 성장 억제물질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