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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m 카메룬 고원의 차밭

말레이반도 열대우림

말레이반도 중앙에 있는 해발 1천8백m의 카메룬 고원은 매우 온화한 기후를 가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1년에 4백만㎏에 달하는 양의 차(茶)가 생산되고 있다.

말레이반도 중앙에 위치한 카메룬 고원은 인접한 겐팅 고원과 함께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원 휴양지다. 전형적인 열대우림 기후를 보이는 말레이시아에서 고원지역은 만년 더위에 지친 현지 부유층들이 여유를 즐기는 곳. 하지만 해발 1천8백29m에 있는 카메룬 고원은 사람의 때가 별로 타지 않은 장소로, 엄청난 규모의 도박장과 위락시설로 항상 사람이 바글거리는 다른 고원과는 크게 다르다.

영국인들이 세운 차 플랜테이션

하지만 이곳의 효용이 단지 휴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이면 도착하는 이 지역이 휴양지 이상의 생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 시작된 밀림 속의 꼬불꼬불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로 왼쪽에 나타난 거대한 산등성 전부가 차밭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보통의 밀림 식생대 모습과 달리 잘 조림된 이 푸른 지역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자랑하는 엄청난 양의 질좋은 차가 1년 내내 생산되고 있다.

카메룬이란 지명은 1885년 영국 정부의 측량기사였던 윌리엄 카메룬이 이곳을 발견하고 '완만한 경사를 지닌 높은 산세'를 본국에 보고한 뒤부터 붙여졌다. 영국 정부는 이곳을 그들의 휴양지로 만들기 위해 1896년부터 1902년까지 당시 금액으로 2만달러를 들여 밀림을 뚫고 34마일의 길을 닦았다.

밀림 속 산간 오지였던 이 곳은 20세기 초반 개발의 손이 지나면서 커다란 발전을 보았다. 오랑 아슬리(원주민)만이 띠엄띠엄 살던 이 곳의 현재 인구는 약 2만명. 물론 드넓은 땅에 이 정도의 인원이 산다는 것은 도시 확대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곳을 지난 초기 모험가들의 손길은 지금도 남아 있어 카메룬 고원 곳곳에서는 잘 단장된 영국식 건물이 눈에 띈다.

그리고 1967년에는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태국 톰슨실크의 설립자이자 탐험가인 미국인 짐 톰슨이 이곳에서 정글 탐험을 떠났다가 행방불명돼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일도 있었다.

한편 이 곳에 차 플랜테이션이 세워진 것은 1925년 경 역시 영국인들에 의해서였다. 차를 얻기 위해 19세기 중엽 중국과 아편전쟁을 벌이기도 했던 영국인들에게 차를 키울 수 있는 땅의 발견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영국에서는18세기말 정부가 차의 수입세를 인하하면서부터 일반 국민 사이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보편화 됐다.

차나무가 자라기 가장 좋은 기후조건은 연평균 기온 14℃ 이상이면서 많은 일광량, 1천4백㎜ 이상의 강우량, 표토가 깊고 땅이 기름지며 물이 잘 빠지면서도 적당하게 물을 머금는 흙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곳 카메룬 고원은 대낮 기온이 항상 21℃ 이상을 유지하며 태양이 없는 밤에도 1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또한 하루 한번씩 시원하게 뿜어대는 열대성 집중 강우(스콜)와 토양산도 pH 5.5 내외의 비옥한 약산성 토질 등으로 인해 차를 재배하기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천혜의 장소로 꼽힌다. 물론 이 같은 기후는 차 뿐만 아니라 원예농업을 위한 조건이기도 해서 이곳의 화훼와 과일 생산도 적지 않은 편이다.
 

산을 뒤덮은 보플랜테이션의 차밭. 사진은 전체의 일부분이다.
 

건조 과정이 차의 등급결정하는 열쇠
 

전형적인 모습의 말레이 반도 원주민. 오랑 아슬리라 불리는 이들은 정부에서 좋은 집을 지어주며 밖으로 나와 살라고 해도 자신들의 생활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밀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차잎의 수확 횟수는 생육상태 경영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대략 한관목의 차나무에서 1년에 4~5회가 가능하다. 워낙 땅이 드넓어 전체를 등분해서 번갈아 수확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별도로 비료를 주거나 김을 매주는 일도 필요 없다. 단지 차나무 밭의 고르지 않게 자라난 나무를 전지하는 정도. 전지는 균일한 새눈이 일시에 많이 나오게 해 잎을 따는 능률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키우는 차는 중국종(camellia sinesis)으로, 이 종은 미얀마와 중국, 인도가 만나는 지역의 들판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자연 상태에 그대로 두면 15m 크기까지도 자라지만 차밭에서는 재배와 수확을 위해 전지를 계속, 1m 크기에 머물게 한다. 잎은 길이 6~20㎝, 너비 3~4cm의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잎이 단단하고 윤기나 흐르는 것이 마치 어린 동백과 유사하다.

대략 1백년을 사는 차나무를 키우는 방법에는 실생번식법과 영양번식법이 있다. 실생번식법은 어미나무를 골라서 씨앗을 받은 뒤 이를 다시 파종하는 방법이며 영양번식법은 꺾꽂이로 이해하면 된다. 파종은 5년, 꺾꽂이는 2년 후면 본격적으로 차를 딸 수 있다. 파종한 차나무는 1년이 지나면 45㎝ 정도의 크기로 자라면서 포기를 이루기 시작하면 관리를 위해 테이블 모양으로 가지를 쳐준다. 이 때문에 차나무는 잘 정돈된 분재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차나무 한 관목이 차지하는 공간은 1㎥에 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BOH) 플랜테이션'은 3백89에이커의 넓이를 가진 이 지역 최대의 차 농장이다. 카메룬 고원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말레이시아에서 수확되는 차의 70%를 차지하는 농장이기도 한 보플랜테이션에서 한 해 수확하는 차의 양은 1헥타르당 3천㎏, 총 4백만㎏에 달한다. 이는 약 5백5십만 잔의 차를 낼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이곳의 소유주는 영국인이지만 직접 차밭에서 차를 따는 일은 대개 방글라데시에서 몰려온 인부들의 몴. 2백명이 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인부들은 고국에서 보다 3배쯤 많은 임금(1백50 달러 정도)을 얻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인부들은 하루 종일 커다란 바구니를 매고 차나무의 윗부분에 4~5장의 잎이 피면 가위나 손으로 입을 딴다. 하루 한명의 인부가 따는 잎의 양은 2백㎏ 정도.

채취된 차잎이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건조과정과 선별과정을 거친다. 차의 품질은 토양과 기후, 차잎의 상태뿐만 아니라 공장의 제조 공정에 의해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각 과정은 모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단 채취된 차잎은 푸대자루에 담겨 집하소로 옮겨진다. 2층 건물인 집하소에서는 12-18시간동안 채취 당시 75-80%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차잎을 건조한 바람을 쐬 널려 말리는 한편, 30-40명의 인부가 남은 물기를 제거한 다음 기계로 채를 쳐 차잎을 대략 선별한다.

건조 과정에서 무게가 반으로 줄어든 차잎들은 기계로 잘게 썰어져 2시간 반 동안 보관된다. 그리고 다시 철로 만든 둥근 통에 1백20℃가 넘는 고열을 가해 회전시키는 완전 건조 과정이 10여분간 계속된다. 이때 사용하는 열원은 고무나무인데, 이는 차의 향을 더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차의 색깔은 원래의 녹색을 잃고 조금씩 갈색으로 변화한다. 남아 있는 습기는 3.5% 정도.

건조 과정이 지나면 차를 등급별로 고르는 작업이 남아 있다. 이 작업은 전적으로 숙련된 여성 인부들에 의해 행해지는데, 그들은 건조된 차잎의 원래 부위와 색깔로 4개 등급을 판별한다. 잘 건조된 어린 순 부분의 조각들이 최상품이고 생육이 더 되고 건조 상태가 불량할수록 등급이 낮아진다. 이렇게 등급이 매겨진 차잎은 부대에 넣어져 건조한 자연상태에서 3개월이 지난 뒤 다시 잎차나 조각, 티백의 형태로 포장돼 각지로 팔려나간다.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야생초
 

차종류에 따라 맛과 향 각각

지구상에 있는 차의 종류는 약 3천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차는 차나무의 종류보다는 차를 만드는 제조 방법에 따라 구분하곤 하는데, 이들은 우려내면 각각 색깔과 향, 맛이 모두 독특하다.

흔히 실론차 영국차 등으로 불리는 홍차는 차잎을 완전히 발효시킨 것으로 발효 과정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차이난다. 하지만 녹차는 차잎 채취 후 증기와 열처리만 할 뿐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상태의 것. 차를 우려내면 잎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짙은 향을 풍긴다. 오룡차는 중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로 유명한데, 태양에 반쯤 말린 후 불을 때서 반쯤만 발효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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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위희복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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