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울고 웃고 화를 낸다면 믿을까. 최근 등장한 아이보, 코그와 같은 로봇들이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또 센토와 P2는 성큼성큼 걸어와 인간에게 악수를 청한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어느 수준일까.
최근 인간친화적인 신세대 로봇들이 연이어 소개되면서 마치 제2의 로봇전성시대를 맞는 듯하다. 지난 6월 일본 소니사가 선보인 강아지로봇 아이보(AIBO)는 마치 인간처럼 울고 웃고 화를 내는 감정을 지닌 로봇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한대에 25만엔(한화로 약 2백50만원)이라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예약을 시작한지 20분만에 3천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7월 29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을 닮은 휴먼로봇 센토(CENTAUR)가 등장했다. 반인반마(半人半馬)의 모습을 지닌 센토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작품. 1994년부터 5년 동안 15명의 박사와 70여명의 연구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8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4개의 다리로 아장아장 걷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으로 꽃다발을 화병에 꽂거나 톱질을 하는 기술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로봇이 인간을 닮고 인간친화적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여길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로봇은 인간 대신 일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로봇(robot)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1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가 쓴 ‘로섬의 만능로봇들’이란 극본에서다. 이 극본에 따라 연출된 연극이 영국 런던에서 상영되면서 ‘힘든 일’을 뜻하는 로보타(robota)라는 체코말은 로봇(robot)이란 새로운 영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로섬의 만능로봇들’에서 그려진 로봇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한 과학자가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모든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그런데 힘들여 만든 로봇은 일하기 싫어함은 물론이거니와 주인인 인간에게 반항하다가 결국에는 인간을 죽이는 흉측한 기계괴물로 변한다는 게 연극의 줄거리.
차페크의 예언이 옳았던 것일까. 1960년대에 등장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컴퓨터의 도움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로봇은 그동안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왔지만, 인간친화적인 존재는 못됐다. 모습 자체가 흉악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로봇의 몸은 쇳덩이로 이뤄져 언제 어디서 인간을 해치는 흉기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산업로봇은 주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인다. 만약 자동차를 조립하는 작업대에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올라간다면, 로봇은 자동차 문에 박아야 할 나사를 사람의 몸에 박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이런 이유로 로봇들이 작업하는 현장에는 철저하게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됐다. 유명한 SF작가였던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가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생명체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자기자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로봇 3원칙을 정한 것은 로봇이 발전했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 예다.
그렇지만 점차 로봇이 생활 속에 파고듦으로써 인간친화적인 로봇을 만드는 일이 로봇과학자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휴먼로봇연구센터 강성철박사는 “청소로봇, 안내로봇,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재활로봇 등 인간과 함께 사는 로봇이 갖춰야 할 최대 덕목은 효율이 아닌 안전”이라고 강조한다.
무게중심은 고난도 기술
흔히 인간친화적인 로봇을 인간형(humanoid) 로봇이라고 한다. 휴먼로봇(human robot)이란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 그렇다면 무엇을 두고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할까.
사실 쇠로 만든 로봇은 생체조직으로 이뤄진 인간이나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로봇은 전기를 통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인간이나 동물처럼 내장기관을 갖출 필요가 없다. 또 스스로 자기복제를 할 수 없으므로 생식기관도 불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휴머노이드 로봇이 갖출 기능은 크게 인간처럼 움직이는 운동기관, 인간의 감각을 닮은 감각기관, 그리고 인간처럼 판단하고 사고하고 느낄 수 있는 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게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운동기관은 인사를 하거나 물체의 움직임을 좇는 허리와 머리(눈)의 운동도 있지만, 중심은 팔과 다리의 운동. 로봇이라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그런데 로봇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실망하고 만다. SF 만화나 영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로봇 팔은 인간의 팔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어깨관절(상하, 좌우, 회전 등 3개의 자유도), 팔꿈치(상하의 1개의 자유도), 손목(3개의 자유도) 등 7개의 자유도로 어떠한 동작이든 자유롭게 구사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만든 센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7개의 자유도를 지니고 있어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두개의 팔을 동시에 움직여 물건을 잡는 기술은 센토는 물론 다른 나라의 로봇들도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센토의 손가락은 인간의 손만큼 예민하다. 그 끝에는 촉각센서가 부착돼 있어 물건을 부드럽게 쥘 수 있다. 악수를 해도 사람의 손을 망가뜨리지 않을 만큼 인간친화적이란 뜻이다. 계란을 떨어뜨리거나(약하게 잡을 경우) 깨지 않고(세게 잡을 경우) 잡는 고난도의 기술도 여기서 나온다. 사람과 힘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톱질을 하는 기술은 산업로봇에서는꿈꿀 수 없었던 것.
센토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기술은 아령들기. 보통의 로봇은 1백kg의 물건을 들려면 1백kg중의 힘을 써야 했다. 그런데 센토는 팔의 유연성을 이용해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힘으로 물건을 들 수 있다. 역도선수가 배치기를 하며 허리의 유연성을 이용해 무거운 역기를 드는 것과 흡사한 기술을 지닌 것이다.
로봇의 발은 대개 8개에서 2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발이 많으면 안정적이지만 컨트롤하기 힘들고, 발이 적으면 서 있거나 움직일 때 무게중심을 잡기 힘들다. 물론 발이 적을수록 첨단기술이다. 그래서 대부분 4-6개의 다리를 선택한다.
센토의 경우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속도는 분당 1m 정도. 일본의 혼다자동차의 두발로봇 P2가 분당 40m를 움직이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80억원을 들여 5년간 개발한 센토와 1천억원을 들여 10년 동안 개발한 혼다로봇의 차이는 이만큼 크다.
그러나 네발로 걷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한발을 들었을 때 나머지 세발이 그리는 삼각형 안에 무게중심을 두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원리. 그러나 1백50kg(배터리 착용시 1백80kg)의 몸무게를 지닌 센토가 움직일 경우 몸이 크게 쏠리는 가속현상과 관성을 극복하면서 걷는 기술은 첨단에 속한다. 만의 하나 넘어진다면 보호장치가 없는 센토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실제로 센토는 공개되기 전 걸음걸이 연습 중 넘어지는 바람에 손목이 크게 망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몸무게가 가벼운 아이보와 같은 장난감 로봇들은 이런 고민을 덜 수 있다. 넘어지더라도 부서지지 않고, 무게중심을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깡충깡충 두발로 뛰는 기술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몸무게가 큰 것들이 그런 흉내를 냈다가는 무사할 수 없다.
현재 두발보행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로봇왕국 일본뿐이다. 혼다자동차가 두발로 걷는 인간로봇 P2(www.honda. co.jp/tech/other/robot.html)를 발표한 것은 1996년 12월. 1백80cm의 키에 2백10kg의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P2는 두발로 성큼성큼 걸을 뿐 아니라(최고속도 40m/분) 공도 차고 계단을 오르며 수레도 거뜬하게 민다. 이듬해 9월 혼다는 P2를 소형화한 P3(키 1백60cm, 몸무게 1백30kg)를 다시 선보였다.
지금까지의 로봇들은 바퀴나 트랙(탱크처럼)을 달아 이동했다. 설계하고 움직이기에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악지대나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는 바퀴나 트랙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에서야 다리를 가진 로봇들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쓸모가 많지 않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까닭은 이런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사정을 모를 경우 뛰다못해 훨훨 나는 SF 속의 로봇들을 보다가 실제의 로봇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지능이 낮은 로봇
로봇의 감각기관은 운동기관에 비해 그리 발전하지 못했다. 그나마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의 오감 중에서 비교적 연구가 많이 된 부분은 시각과 촉각. 센토의 경우 인간의 눈처럼 한쌍(두개)의 스테레오 카메라를 이용해 거리와 상황을 판단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박쥐나 돌고래처럼 초음파를 이용하거나 레이저센서를 이용해 거리를 판단한다. 센토가 스테레오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은 주위 환경을 판단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촉각은 물건을 잡거나 장애물을 판단할 때 유용하다. 현재는 힘의 강도를 조절할 뿐 물건의 재질이나 종류를 알아내지는 못한다. 청각은 음성인식과 관련된 기술로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아직 초보적인 명령을 따르는 수준을 머물고 있다.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로봇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 수준은 매우 낮다.
이처럼 로봇의 감각기관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결국 로봇의 지능이 낮기 때문이다.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신호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할 능력이 로봇에게는 없는 것이다. 센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각센서(스테레오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물체를 보고 이게 장애물이니까 피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또 미리 계단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계단을 오를 수 없고, 책상 위에 놓인 물체가 물컵인지 콜라캔인지 구별할 수도 없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로봇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로봇들은 원격조종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걷거나 명령을 받은 물건을 집어 옮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감성과 지능을 가진 로봇 연구가 미국과 일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MIT 인공지능연구소의 로드니 브룩스박사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로봇 코그(www.ai.mit.edu/projects/cog/). 1993년부터 개발돼 올해로 6살이 된 코그는 두개의 팔, 두쌍(4개)의 눈, 마이크로폰으로 만든 귀, 평형감각을 느끼는 내이를 가지고 있지만, 다리는 없다. 눈 한쌍은 광각렌즈로 주변상황을 판단하는데 사용되고, 다른 한쌍은 인간의 눈을 모방한 초점렌즈로 거리를 판단한다. 코그는 이제 겨우 손과 눈을 조화시켜 물체를 집거나 드럼을 치고, 초보적인 감정을 나타낸다.
10여년 전부터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사이콥사(社)(www.cyc.com/)에서는 인간지능을 닮은 컴퓨터를 연구해왔다. 스스로 배우고 혼자서 판단하는 사이크(Cyc, enCYClopedia에서 유래)가 바로 그것. 사이크에는 일상생활에서 추출한 2백만가지의 정보와 그 안에 내재된 50만건의 규칙이 입력돼 있다. 이를 기준으로 사이크는 사물을 판단한다. 한번은 수십만장의 사진과 관련기사를 입력한 후 강하고 용감한 남자의 사진을 찾으라고 명령했더니 등산하는 남자의 사진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코그는 사이크처럼 입력된 정보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센서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현재 코그는 키스멧(KISMET)이라는 새로운 얼굴을 이식 중이다. 키스멧은 분홍색 귀, 두툼한 눈썹, 눈꺼풀로 덮인 크고 푸른 눈, 그리고 넙죽한 입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흥분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놀라워하는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또 신기한 것을 보면 눈동자를 확대하면서 눈썹을 치켜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지만, 싫증이 나면 갑자리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인간의 행동을 닮고 인간의 감정을 읽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산업로봇이나 서비스로봇에 비해 그리 쓸모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이를 개발하기 위해 적지않은 비용을 들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휴먼로봇연구센터 김문상박사는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것은 본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인간을 닮은 인형을 보고 신기해서 가지고 놀듯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어 함께 놀아주며, 외로울 때 말벗이 돼주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센토는 당분간 휴면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연구의 효율성 측면에서 청소로봇, 지뢰제거로봇, 물류이동로봇과 같은 서비스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