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미국유학일기] 국적은 달라도 K팝 댄스로 통한다

입학해서 제일 처음 사귄 친구들은 기숙사 친구들이다. 신입생만 사는 기숙사(All-Freshmen Dorm)에 배정됐는데, 처음 1~2주는 기숙사의 모든 친구들이 자신과 잘 통하는 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는 하루 종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대화를 이어 나간 탓에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매일 8~9시간씩 자도 굉장히 피곤했다. 그렇지만 점차 말이 잘 통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러면서 기숙사 안에서 자연스레 친구 모임(Friend Group)이 생겼다.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이 친구들과 학기 초 진행되는 다양한 신입생 행사에 같이 가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뻔하지 않은 대화 거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정말 유명한 팝송이 아니면 잘 듣지 않았고, 드라마보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미드)도 거의 보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넷플릭스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나 최근 나온 음악 이야기를 할 때는 왠지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우와, 신기하다”라는 말 밖에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는데….
그래서 가입하게 된 것이 스탠퍼드대의 K팝 댄스 동아리 ‘XTRM’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조금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고등학생 때 방송 댄스 동아리를 했기 때문에 춤이라는 공통분모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날부터 친구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았다. 내가 한국에 대해 알려주면 친구들은 미국의 문화와 은어 등을 정말 많이 알려줬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미국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마스터’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리 친구들과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춤 연습이 끝나면 같이 저녁이나 야식을 먹었고, 기숙사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밤새 떠들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열리는 파티에 같이 가서 밤새도록 춤추고, 그 다음 날 겨우 일어나서 같이 기숙사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곤 했다. 
방학 때도 동아리 친구들과의 만남은 멈추지 않았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연구실에서 일하기 위해 학교에 남았는데, 마침 동아리 친구 여러 명이 학교에서 인턴십이나 연구를 하기 위해 머물렀다. 그 덕에 매일같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다 같이 모여 함께 춤을 추곤 했다. 이 때 매주 한 편 씩 K팝 댄스 커버 영상을 찍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친구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동아리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미국 대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처럼 MT(수련모임)를 많이 가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 비해 교통도 불편하고, 캠퍼스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 2학년 여름방학 때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한류 컨퍼런스 ‘K콘(KCON)’에 참석하기 위해 XTRM 친구들과 LA까지 자동차 여행을 떠난 적은 있다. 
두 번 모두 K팝 댄스 배틀에 참여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친구들과 2박3일을 함께 보내면서 쌓은 추억이 대회에서 받은 상보다 더 값졌다.
스탠퍼드대에서 LA까지는 자동차로 6~7시간 걸리는 길이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교대로 운전을 했는데, 졸음을 막으려고 가는 내내 말도 안 되는 내기를 걸고 게임도 하고, 맥도날드에 들려 치킨 너깃도 사먹었다. LA에서는 한인타운에 있는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에서 지냈는데, 떡볶이, 고기 등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내 곁에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이 많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이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이 친구들이 함께 기뻐해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생일 샤워(Birthday Shower)’라는 문화다. 친구들이 생일 전날 밤 11시 50분 쯤 모여서 12시 정각이 되면 생일 주인공의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주인공을 샤워실로 모시고(?) 가 샤워기를 틀고 물을 뿌리는 것이다. 내 생일 때도 친구들이 함께 해줬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물론 물에 홀딱 젖었지만.
이렇게나 정이 많은 K팝 동아리 친구들과 나는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때까지 이 친구들과 계속 즐거운 대학생활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영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과 3학년
  • 에디터

    서동준 기자

🎓️ 진로 추천

  • 문화콘텐츠학
  • 국어국문·한국학
  • 언론·방송·매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