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가 탈선하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 대참사를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최고속도를 자랑하는 프랑스 고속전철 TGV(테제베)는 탈선사고를 내고 한 사람의 사망자도 발생시키지 않았다.
'초고속열차의 기적' '시속 3백km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들이 보도했듯이 TGV는 사고를 내고서도 흠이 되지 않고 오히려 높은 안전도를 증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TGV는 작년 12월 21일 오전 프랑스 파리 북부에서 탈선사고를 냈다. 사고열차가 북부 발랑시엔을 출발, 파리로 가던 중 파리 북부 1백33km 지점인 숀느 근처에서 객차 8량중 4량이 탈선됐다.
그러나 다행히 객차가 전복되지 않아 사망 또는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열차에는 모두 2백11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나 객차 8량과 객차 앞과 뒤에 연결돼 있는 기관차 2량이 모두 전복되지 않아 6명만이 쇼크를 받거나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이번 사고는 작년 5월 파리-발랑시엔 TGV노선이 개통된 이후 처음 발생한 것으로 사고 당시 열차는 경제주행 최고 속도인 시속 3백km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속에서의 탈선이 탈선으로만 끝났다. '기적'의 안전도는 각 차량을 분리할 수 없게 관절처럼 결합한 일체형이라는 구조적 특성에서 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대차형식을 관절형 대차라고 하는데, 세계의 고속전철중 TGV만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사고원인은 연일 내린 비로 신설역 공사지역내 선로지반이 내려앉은 때문으로 밝혀졌다. 흙이 패여 선로 한쪽 2m가량이 허공에 떠 있었던 것. 선로는 정규 점검뿐만 아니라 추가점검까지 했었다. 지반침하는 이때 포착되지 않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운행중 비정상적인 충격을 느끼자 위험을 직감, 비상제동보다 정상제동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정상제동 거리는 약 2km. 일부 뒤쪽 차량이 선로를 벗어난 채로 열차는 심하게 덜컹거리면서 달렸다. 자갈들이 차창을 때렸다. 하얗게 질렸던 승객들은 정차 후 기관사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만약 급제동을 했더라면 차량들이 아코디온처럼 짜부라져 사상자가 날 뿐만 아니라 차량들이 옆 선로에까지 걸쳐져 반대방향 진행열차와 충돌했더라면 엄청난 참극이 빚어질 뻔 했다고 입을 모았다. 안전도가 입증된 열차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위기대처 능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 사고였다는 것.
TGV는 지난 81년 실용화 이후 지금까지 여섯번의 사고가 있었다. 그중 네번이 탈선사고였으나 그때마다 열차는 전복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인명피해는 전무. 중요한 사실은 TGV도 사고는 난다는 것이고 기계가 우수해도 그것을 사람이 제대로 다루어야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TGV를 들여올 우리나라는 여름의 폭우와 봄철의 해동으로 지반침하 가능성이 더 많다. 더구나 큰 사고들의 원인은 대개 부실공사 또는 근무자의 미숙련이나 불성실이다. 이런 것들이 먼저 고쳐지지 않으면 그 좋다는 TGV도 '거적문에 돌쩌귀'일 것이다. TGV사고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