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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물질 보툴리눔, 염기서열 분석 의무화 해야

 

보톡스의 ‘친자 확인’을 둘러싼 국내 대형 제약사들의 법정 다툼이 2년째 계속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보톡스인 ‘메디톡신’을 개발한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의 보톡스 균주를 훔쳐 또 다른 보톡스 의약품 ‘나보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웅제약은 “공장 주변의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고 맞서고 있다.

 

맹독성 보툴리눔 독소, 한국만 ‘신고제’로 운영


일반적으로 보톡스로 불리는 물질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 이하 보툴리눔) 균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신경 독성 단백질, 보툴리눔 독소를 희석시킨 의약품이다. 보톡스라는 이름은 글로벌 제약회사인 ‘엘러간’의 상품명이다. 보톡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보툴리눔 독소를 만들어내는 보툴리눔 균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약사들이 보툴리눔 균의 출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이 균이 어디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독소로 알려진 보툴리눔은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마비시켜 질식사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정맥주사시 치사량은 단 0.1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 분의 1g)이다. 북한에서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화학 무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은 보툴리눔 독소와 균의 보관 및 유통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국가 간 이동 역시 엄격하게 제한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보톡스를 상용화한 기업은 엘러간(미국), 멀츠에스테틱(독일), 입센(프랑스), 란주연구소(중국) 등 네 곳뿐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휴젤, 메디톡스, 대웅제약, 휴온스그룹 등 보툴리눔 독소를 상용화한 기업만 네 곳이며,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고 신고한 기업은 10여 개에 이른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의 보툴리눔 균주 관리 체계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의미다.

 

현재 국내에서 보툴리눔 균주 관리에 관여하는 부처는 4개다. 질병관리본부는 보툴리눔 균이 일반에 퍼지지 않게 관리하는 역할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생물무기금지법, 대외무역법 등으로 보툴리눔 균이 생화학 무기로 사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보툴리눔 균을 이용한 제품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를 관리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보툴리눔 균에 전염된 가축은 없는지 관리한다. 하지만 이 중 보툴리눔 균주의 발견 경위를 감독하는 부처는 없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보툴리눔 독소를 취급하기 전에 안전점검 등의 절차를 거쳐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허가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균의 보유 여부만 신고하는 ‘신고제’를 채택하고 있다. 균의 출처를 조작해도 신고서만 제출하면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셈이다. 국내법으로는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보툴리눔 균주의 출처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보툴리눔 균의 유전체 염기서열 공개해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사건을 계기로 보툴리눔 독소를 포함한 고위험병원체에 대한 관리 체계가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균주의 획득 경위와 유통 과정을 관리하지 않으면, 악의를 가진 테러 집단에 쉽게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2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이 보툴리눔 독소 균주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2월 12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툴리눔 독소 균주를 포함한 고위험병원체를 분리하거나 이동할 때는 염기서열 분석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툴리눔 균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동일한 균주에서 파생된 균인지 확인하고 배양된 환경을 추적하는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균주의 기원을 확인해 독소 제제의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 법안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01년 우편물로 배송된 테러 목적의 탄저균에 대해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탄저균의 출처를 밝혀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테러용 탄저균이 미 육군연구소의 브루스 이빈스 연구원이 연구하던 탄저균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그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지난해 12월 이대 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데에도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이 큰 역할을 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숨진 신생아 네 명 중 세 명의 혈액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Citrobacter freundii)’ 균이 검출됐고, 이 균의 염기서열이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모두 동일한 균에 의해 감염됐다는 것이다.

 

 

유전체 분석해 균의 출처 확인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균주의 기원을 찾는 기술은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해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과 원리가 같다. 모든 생물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유전자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식습관, 행동 양식 등 다양한 후천적 요소들에 의해 변하기도 하지만, 자연적으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발생한 돌연변이는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개체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비교하면 어떤 균주에서 유래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보툴리눔 독소 단백질의 분자 구조 - 보툴리눔 독소 단백질을 소량 사용하면 얼굴의 주름을 펴는 등 미용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 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해야 한다. 가령 A와 B 두 균이 동일한 균주에서 유래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개체마다 변이가 큰 유전자를 분석해야 한다.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나, 종 특이성을 나타내는 유전자는 유전자 변이의 폭이 작다.

 

예를 들어 정상적으로 호흡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개체는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살아남은 개체들의 유전자 중 호흡에 관여하는 유전자에서는 큰 변이가 발견될 가능성이 낮다.

 

마찬가지로 보툴리눔 균에서는 독소를 만들어내는 기능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보툴리눔 균은 모두 독소를 생성하기 때문에, 이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개체마다 큰 차이가 없다. 즉, 이런 유전자를 비교해서는 A와 B의 기원이 동일한 균주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큰 상관이 없는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류 책임연구원은 “유전체에서 이런 부분은 변이가 잘 일어나기 때문에 동일한 균주에서 파생된 개체라고 하더라도,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전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비교해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기술의 발전도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방두희 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데 수억 원이 들었지만, 최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이 등장하면서 분석 가격이 100만 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전체 유전자의 염기 수가 380만~400만 개인 보툴리눔 균의 경우 분석 가격은 200만~300만 원이다.

 

 

영국에 위치한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 (EBI)의 전경. 유럽분자생물학실험실 (EMBL) 산하에 있으며, 각종 생물체의 유전자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美-英 유전자 은행, 염기서열 이미 공개


유전체 분석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한 가지 더 있다.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는 인간과 달리 보툴리눔 균은 무성생식을 통해 번식한다. 무성생식으로는 종의 다양성을 늘릴 수 없다. 이들이 다양성을 위해 택한 방법은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다. 가까이에 있는 다른 개체와 유전자의 일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마치 전혀 상관 없는 모자이크 조각이 관찰된다는 의미에서 이를 ‘모자이크 현상(Mosaicism)’이라고 부른다.

 

자연에서 발견된 보툴리눔 균의 유전자에서는 대부분 이런 모자이크 현상이 발견된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자연배양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만약 두 개체의 유전자를 분석했는데, 대부분의 유전자가 일치하지만 한 개체에서만 모자이크 현상이 발견됐다면, 이 둘은 기원이 다를 확률이 높다.

 

현재 보툴리눔 균의 전체 유전자를 공개하는 데 대해 일부 기업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툴리눔 균을 보유하기 어려운 만큼, 이들의 염기서열 정보 자체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염기서열 정보만 가지고 완벽하게 이를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은 성숙하지 않은데다가, 합성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유전자를 합성해 만든 생물이 실제 기능을 할 확률은 더욱 낮다.

 

류 책임연구원은 “현재 미국, 유럽 등의 유전자 은행은 세계 각국에서 발견된 균의 염기서열을 공개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공개한 미국과 유럽의 연구소나 기업들은 지적재산권을 포기했다는 의미인데, 이는 합당한 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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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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