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태계에 대한 조금의 고려도 없이 개발의 깃발아래 무계획적으로 파헤쳐진 우리 국토. 이제 이 땅에는 동물은 커녕 미생물조차 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국토를 따라 연이은 산은 실상 주변 생태계와 연관을 갖지 못하는 섬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 국토는 전체 면적의 3분의2가 산이어서 우리 민족은 대대로 산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은 스스로가 자연생태계의 구성원임을 깨닫고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생활철학을 일상생활의 신조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신라시대에 자생적으로 나타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산을 의지하고 사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생활풍습이 된 것이다. 풍수지리의 네요소는 산 물 방위 사람으로, 산을 기대고 사는 정주터를 산자락에 만들고 살다가 죽으면 산과 정주터의 중간인 산중턱에 영원한 휴식처인 무덤을 쓰게 된다. 땅은 조상 대대로 뼈와 살을 묻은 영혼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공간으로 여겨 땅을 파헤치는 것을 절대로 금했다.
생태학적으로 보아도 땅에는 풍화된 광물질 수분 공기 유기물질 이외에도 흙 1g에 10억마리 정도 되는 토양 미생물이 살고 있다. 즉 흙은 생명체인 것이다. 이런 생명체인 흙 위에 길을 낸다고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덮게 되면 땅속에 공급되는 공기가 차단돼 대부분의 토양 미생물은 결국 질식사하고 무생명체의 공간으로 전락, 도로 양쪽의 생태계는 단절된다.
일제 시대 일본인은 지맥 끊기에 혈안
지금으로부터 6백년 전 수도를 천도(遷都)할 때 한양은 풍수지리로 보아 길지(吉地)로 판단된 곳이었다.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거쳐 광주산맥에서 방향을 바꾼 내룡(來龍)의 지맥이 삼각산을 진산(鎭山), 북악산을 주산(主山), 인왕산을 백호(白虎), 낙산을 청룡(靑龍), 남산을 안산(案山), 관악산을 조산(朝山)으로 연결했다. 북한산은 백두산에서 내룡한 지맥이 연결된 것이다.
이러한 풍수적인 관점은 오늘날 생태적인 관점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본래 합자연주의(合自然主義)의 사상을 근저에 깔고 있는 철학적인 관점을, 자연을 기계적으로 대하여 이용수단으로 생각하는 서양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기에는 사고수준의 차이가 크다. 그러나 자연을 수학적인 모델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보통사람을 위해 풍수적인 관점을,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생태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지맥이 연결된다는 것은 생산자인 식물의 서식지가 연결된 것이며 소비자인 동물의 이동통로가 연결된 것이다.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넓은 행동권 지역을 필요로 한다. 호랑이나 사자같은 육식동물은 4백㎢이상의 자연 생태계 면적이 있어야 하고, 몸집이 작은 딱다구리 한쌍도 7㎢의 보존된 숲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백두산에서 인왕산까진 지맥이 연결됐던 조선조에는 호랑이가 인왕산까지 내려 올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철저히 우리 풍수지리설을 연구해 제일 중요시 여기는 지맥 끊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철도와 도로를 놓더라도 지맥이 끊기는 곳을 택했다. 해방 이후 여과 없이 수입된 서양학문의 결과로 국토는 이용수단으로만 생각을 했지, 살아있는 유기체로는 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용의 최소화와 능률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경제발전 위주의 국토개발은 계속 지맥을 단절시켜왔다. 그동안 건설된 고속도로에 의한 지맥단절도 엄청나다. 그런데 건설부에서 1992년말 발표한 전국간선도로 계획에 의하면 (그림 1), 앞으로 격자형의 도로가 건설될 것이므로 지맥은 토막토막 끊기게 될 것이다.
지맥의 단절은 자연생태계를 소면적으로 고립화시켜 생태적인 섬 (島)을 만들고 만다. 섬은 바다나 호수가운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가 인근 생태계와 단절된 채 고립되면 생태적으로는 섬이라고 부른다.
1963년 생태학자인 맥아더와 윌슨은 도서생물지리설(theory of Island biogeography)을 발표했는데,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은 어느 한 섬에 살고 있는 생물종수는 육지로부터 이주하는 종수와 그 섬에서 멸종되는 종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생태섬은 주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단절된 곳이 많다. 아스팔트 도로가 생기면 후각이 발달한 대동물들은 냄새를 맡고 도로 좌우 10km 이내에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숲속에 들어가면 대(大)동물들이 4~5km 이내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쥐도 넘나들지 못하는 철조망
본래 생태섬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수는 외부로부터 이주하는 종수와 관련이 많은데,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맨 윗단계인 육식동물들의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생태계의 교란으로 멸종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존재가 생태계의 질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외국에서 밝혀진 바가 많다.
미국 서북부지역 초원 생태계에 쥐가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크기를 가진 망을 높게 몇 백m 길이로 설치하고 20년 후 그 결과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년 전에는 동일한 생태계의 구조가 철조망으로 양분된지 20년이 지나서는 이질적인 생태계 구조를 형성했다. 쥐가 출입할 수 있는 철조망의 크기이지만 장애물인지라 양쪽의 쥐가 서로 내왕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양쪽으로 격리된 쥐들은 1년에 여러 세대를 거칠 정도로 번식속도가 빠른데 대를 거칠수록 양쪽 쥐집단이 좋아하는 먹이가 달라져 10여년 후에는 완전히 먹는 풀종류가 달라졌다. 그리하여 철조망 왼쪽 집단에서 군락을 형성하는 풀은 오른쪽 집단에서는 쥐들이 거의 먹어치워 없어지고, 오른쪽 집단에서 군락을 형성하는 풀은 왼쪽 집단에서는 쥐들에 의해 거의 없어져 양쪽에 서식하는 식물종류가 달라진 것이다.
또한 양쪽 집단의 쥐들이 섭취하는 풀들의 종류가 달라지니 배설물의 성분이 달라지고, 풀들이 가을에 썩어 만들어지는 부식질의 영양성분도 달라져 이들을 먹이로 하는 토양미생물까지 달라졌다.
생태계는 정교한 틀로 이루어져 외부의 환경이 달라지면 내부구조가 변화하는데, 도로에 의해 섬이 된 생태계는 대동물들의 이동이 차단돼 식물 동물에게까지 모든 영향이 파급된다.
또한 생태적인 섬에서는 생물들의 멸종속도가 빨라진다. 대개 한 동물군의 크기가 50마리 미만이 되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멸종위기에 도달돼 결국 아무리 사람이 그 동물을 보호하려고 노력해도 멸종되고 만다. 50마리 미만이 되는 집단에서는 근친교배로 인해 열성형질이 자꾸 나타나 기형과 불임률이 높아져 결국 출생률이 사망률을 앞서게 되는 것이다.
숲에 도로를 개설하면 사람을 좇아 이주한 식물들이 산속 깊숙이 생육하면서 자생식물들과 경쟁, 결국 자생식물들을 쫓아내고 세력을 확보하게 돼 생태계의 생산자 구성이 변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소비자와 분해자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구호물자와 함께 우리나라에 이주한 개망초와 달맞이꽃이 전국적으로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195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서양 민들레는 전국 도로가에 무성히 자라서 우리나라 민들레를 도태시켜 이제 우리 자생종 민들레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서울에 위치해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북한산을 살펴 보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북한산이 백두대간과 광주산맥인 한북정맥과 지맥이 연결되었을 때는 대동물군의 이동이 자유로워 세력권이 보장됐다. 그러므로 먹이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관계도 포식자와 피포식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평형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 지도를 들여다보면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울의 도봉구 종로구 은평구 고양시 양주군 의정부시로 에워 싸여 있지만, 북한산과 도봉산 둘레를 주택가와 아스팔트 도로가 차단해 결국 이들 산은 생태적인 섬이 됐다. 북한산 도봉산 동쪽에 불암산과 수락산이 있지만 중간에 대규모 주택단지로 생물종의 이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서쪽에 노고산, 북쪽에 꾀꼬리봉이 있으나 중간에 아스팔트도로 주택가 유원지가 들어서 북한산으로 생물종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생태섬에 외부로부터 이입되는 생물종이 없고, 대신 연간1천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간의 이용으로 북한산 도봉산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종들이 외부로 탈출했다. 나갔으면 돌아와야 하지만 이마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이 버리고 간 음식물에 들어 있는 각종 방부제로 인해 야생조류의 알껍질이 얇아져 어미새가 알위에 올라앉아 품으면 깨진다. 또한 태어난 어린 동물도 기형이 많아 멸종속도는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유입 생물은 없고 사람은 파괴 앞장
최근 서울대학교 김태욱 교수가 조사한 수도권지역의 아생조류 종수 및 개체수를 살펴보면 생태 섬의 면적이 좁을수록 생물종수가 적음을 알 수 있다(표1). 광릉숲은 우리나라에서 보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숲의 하나이지만, 광릉보다 성숙된 숲은 아니나 면적이 넓은 청계산에 비해 야생조류의 종수와 개체수가 적다. 북한산자락인 북악산은 우면산보다 면적이 2배 가까이 되지만 야생조류 종수와 개체수가 더 적은데, 이는 북악산에 바위가 많으며 이용객이 많고 아울러 환경오염인 대기오염물질과 산성비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즈음 북한산을 올라가면 산성토양에 강한 신갈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당단풍나무 노린재나무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광릉숲에서 쉽게 발견되는 서어나무, 까치박달나무 등 산성 토양에 저항성이 약한 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금년 7월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 북한산성의 선봉암-중성문-흥국사지 코스에서 식생조사를 할 때 관찰된, 나이가 20-30년된 서어나무 10여주가 모두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기오염물질과 산성비에 의한 피해로 생각된다.
북한산은 생태섬으로 외부로부터 생물종의 이입도 어려운데 설상가상으로 대기오염과 산성비의 피해로 저항성이 약한 식물은 멸종되고 있다. 즉 식물종이 단순해지면 곤충의 종류가 적어지고 또한 야생조류의 종류가 적어진다. 생산자와 소비자 종류가 적어지면 이들의 시체를 분해하는 토양 미생물도 적어질 수 밖에 없다.
토양 미생물은 생육에 적당한 토양산도를 필요로 하는데 토양이 산성화될 경우 미생물의 종류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요즈음 북한산에는 낙엽들이 쌓여 있지만 미생물수가 적어져 잘 분해가 되지 않고 있다. 토양에 유기물과 미생물이 적어지자 이들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줄어들었고 또한 지렁이를 먹고 사는 두더지마저 찾아 보기 힘들다. 곤충 종류가 적어지니 개구리를 찾아 보기가 어렵고 뱀이 거의 사라진 셈이다. 최근 숲에서 도토리 줍기가 유행이 돼 도토리가 떨어지는대로 사람들이 줍자 다람쥐가 결국 굶어 죽어 북한산 속을 뛰놀던 다람쥐 만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북한산 인수봉 밑에 있는 백운산장 근처 숲에는 키가 1~1.5m 정도되는, 산에서 살아 산죽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릿대의 커다란 집단생육지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 다른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북한산에서 조릿대의 분포면적이 계속 늘어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조다.
좁은 땅을 또 쪼개는 도로 개발
대나무 일종인 맹종죽의 죽순은 우리에겐 고급식품으로 취급되는 맛있는 부위다. 조릿대의 죽순도 쌓인 눈이 녹을 때쯤 파랗게 올라오면 겨우내 굶주렸던 고라니 사슴 노루 산토끼 등이 덤벼들어 뜯어 먹는다. 그러나 현재 생태섬인 북한산에는 이런 초식동물들이 완전히 멸종, 조릿대 죽순을 뜯어 먹지 않자 땅속줄기로 번식하는 조릿대가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즈음 북한산에 조릿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조릿대가 치밀하게 지표면을 덮으면 큰나무의 종자가 떨어져도 땅에 도달되지 않고 조릿대더미에 얹혀 싹이 틔지 않는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다음 세대를 이어갈 나무들이 출현하지 않아 숲의 구조가 단순해지고 만다. 일본 북해도의 국립공원에서는 조릿대의 세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라니를 인위적으로 방사해 시험을 하고 있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단 1종의 야생조류가 멸종되면 곤충은 90종 이상, 식물은 35종, 어류는 2~3종이 함께 멸종된다고 한다. 북한산은 외부에서 이입되는 생물종류도 거의 없는데다 대기오염과 산성비에 의해 다른 생태섬보다 생물종의 멸종속도가 빨라 현재 북한산의 생태계는 상당히 파괴되어 키 큰 나무만이 서 있어, 녹지사막(green desert)에 다만 녹색말뚝(green lollipop)이 꽂혀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섬의 파괴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채 매년 1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북한산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각지 않고 다만 체력단련장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청은 우이령을 지나는 비포장 군인작전도로를 확장·포장하기 위해 이미 측량을 마치고 올가을부터 공사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이 도로가 개통되면 곰 한 쌍도 살기 힘든 78㎢의 북한산과 도봉산의 면적은 각각 50, 30㎢정도의 생태섬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현재 엄청난 속도로 줄어가고 있는 생물종의 서식처가 또다시 2개의 생태섬으로 나뉜다면 멸종속도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 수도도 서울의 북한산과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는 곳은 없다. 아름다운 바위와 능선, 숲이 어우러진 북한산은 우리의 자랑이자 영원히 후손이 바라보며 희열을 맛보아야할 자원이다. 알래스카에 1천3백km의 송유관을 건설하면서 동물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4백여 군데에 지상 4m 높이로 송유관을 설치한 행동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한다. 생태섬에 살고 있는 온갖 생물들은 언제 죽을 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뽐내는 우리 인간은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생태섬은 우리 인간의 추악한 욕심이 남긴 결과이기 때문이다.